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 작성일 2014-08-07
  • 조회수 1,851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 조세희, 단편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중에서 -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교사를 신뢰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군, 지난 1년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주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만은 입학 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뒤적여 보다가 제군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일단 내가 묻는 형식을 취하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에 한 학생이 일어섰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교사가 말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학생이 물었다.
교사는 말했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은 놀람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묻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작가_ 조세희......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출생. 경희대 국문학과 졸업.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돛대 없는 葬船」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함. 연작소설집, 산문집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시간여행』『침묵의 뿌리』등이 있음.


▶ 낭독_ 김주완 - 배우. 연극 『그을린 사랑』, 『오장군의 발톱』, 『너무 놀라지 마라』 등에 출연.
서진 - 배우. 연극 『서울,댄스홀을 허하라!』, 『러브스토리』 『안티고네』,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등에 출연.



배달하며

교사의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것과 똑같습니다. 학생들도 그리고 이미 독자들도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답은 틀렸습니다. 교사 말에 따르면 함께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아이의 얼굴은 깨끗하고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곤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인 뫼비우스의 띠에 관해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지요.
이 우화적 질문에는 전제 자체에 단절이 있으며 질문이 틀렸기 때문에 대답도 틀렸다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양립된 세계에 살고 있으며 언제나 그 대결을 직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대립의 세계가 아니라 “전면적 진실”의 세계에 살고 싶다는 건, 영영 꿈에 불과한 걸까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문학과지성사)

▶ 음악_ The Film Edge / Reflective-Slow 중에서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양연식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1건

  • 익명

    남이 그렇다고 나도 그럴 것이다라고 보는 건가요? 친구가 해줬던 얘기인데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 2014-08-07 19:21:31
    익명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