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 「애니」
- 작성일 201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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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편지를 쓰고 싶지 않나? 나는 편지가 쓰고 싶네.” |
정한아, 「애니」
권은 겁에 질린 마리아가 운전 연수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그녀가 제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빠르게 학원에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깍듯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마리아의 운전면허는 무려 사십 년 전에 취득한 것이고, 그마저도 교통사고가 난 후에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마리아는 차에 오르기만 해도 식은땀을 흘렸다. 권은 섣불리 다시 그녀를 운전석에 앉힐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요청대로 마리아를 보조석에 태우고 시범 운전을 해 보였다.
그들은 C시에 두 번 다녀왔다. 권은 수강생과 쓸데없이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직 배우인 그 여인과는 휴게소에서 우동을 사 먹기도 하고, 편의점 의자에 앉아 캔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그들은 주로 마리아의 옛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니」의 마지막 장면이 주인공의 자살을 암시하는 것인지, 귀향을 암시하는 것인지 논쟁을 하기도 했다.
운전 연수를 시작하고 사흘째 되던 날, 권은 마리아가 눈에 띄게 절룩거리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무리해서 근육이 놀란 것 같다고 그녀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리아는 동생의 구형 마티즈에서 시동을 꺼놓고, 가속 페달을 적절한 강도로 사용하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런 연습이 왜 필요한지 몰라도 어쨌든 그다음 주가 되었을 때, 그녀는 용기를 냈다.
▶ 작가_ 작가 정한아......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남. 건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05년 대산 대학문학상, 2007년 장편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함. 소설집 『나를 윗해 웃다』, 장편소설『리틀 시카고』가 있음.
▶ 낭독_ 김주완 - 배우. 연극 『그을린 사랑』, 『오장군의 발톱』, 『너무 놀라지 마라』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이혼한 딸과 손녀를 부양해야 하는 운전 연수 강사와 한때 충무로의 주목받던 여배우 마리아가 만나게 된 모양입니다. 젊은 시절, 권은 한때 마리아의 팬이었습니다. 그런데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마리아가 운전을 배우겠다는 용기를 낸 데는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요.
가끔씩, 왜 소설을 읽는 걸까? 질문해 볼 때가 있습니다. 지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니, 이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위로가 생길 때가 많으니 어쩌면 소설을 읽는 동안은 저마다의 ‘두려움’에 대해서 잊을 수도 있겠군요.
소설은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지요. 하지만 헤밍웨이 말대로 “나중에 진실이 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오늘도 역시 소설을 읽습니다, 진실이 담겨 있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문학계간지《21세기 문학》(2014년 여름호)
▶ 음악_ Sound ideas/romantic -pastoral1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양연식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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