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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 『길 위의 집』

  • 작성일 2014-09-10
  • 조회수 1,256



“어쩌면 그 절대적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
그렇게 불완전한 것임을 알게 되었을 수도 있다.”

- 레이철 커스크, 장편『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중에서 -



이혜경, 『길 위의 집』






은용의 눈에 졸음이 실렸다. 몇 번인가, 고개를 꾸벅거리더니, 소파 등받이에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고되었는가,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밤새 베란다 문을 열어놓아서, 식전 공기는 살갗에 아렸다. 은용은 기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잠들어 있다. 설핏 잠들었다 깬 길중씨는, 새벽, 부지런한 사람들이 켠 건너편 동의 불빛이 점점 힘을 잃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제 글렀구나. 정신없는 노인네가 낯선 곳에서 노숙하기엔, 이틀도 충분히 길었다. 이제 어떡하나.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길중 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쩐단 말인가. 내 몸 운신조차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이렇게 힘없을 수가 있나. 아주 오래전에 오늘을 미리 보았던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길중 씨의 온몸은 굳는 듯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꼭 오늘 이런 모습을, 빈손에 움켜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느라 한평생 아등바등하다, 무언가를 쥐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다시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마침내 빈손의 막막함에 오그라든 몸으로, 빈손을 무연히 내려다보는 한 노인을. 조강지처마저 어디서 여의었는지 모르게 잃고 마는 무기력한 늙은이를.
효기 엄마.
콧잔등이 시큰거리려 해 길중 씨가 눈을 홉뜨는데, 따르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은용이 눈을 반짝 뜨더니 전화기로 손을 뻗쳤다. 여보세요.
“네, 네, 언제요?”
은용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번졌다.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은용의 눈가가 빨개졌다.




▶ 작가_ 이혜경 - 소설가. 1960년 충남 보령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하며 등단. 소설집 『그 집 앞』 『꽃그늘 아래』『틈새』『너 없는 그 자리』등이 있음. 장편소설『길 위의 집』으로 독일 리베라투르상 장려상 수상.


▶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싸리타』, 『유리알눈』등에 출연.



배달하며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가 사라진 모양입니다. 남편 길중씨도 아들들도, 유일한 딸인 은용도 애가 타게 어머니를 찾다 지쳐 있습니다. 위기가 생기자 가족들은 비로소 한마음이 된 듯 보이는군요. ‘가족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건 모두에게 어떤 것일까요.
명절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모처럼 가족들이 다 모이는 자리가 생기겠군요. 어쩌면 집안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싸움도 생기도 누군가는 울고 상처받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반면에 부모로부터 받아온, 그 절대적인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거나. 그건 가족들 앞에서, 우리가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길 위의 집』(민음사)

▶ 음악_ Stock music/funous fingers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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