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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 작성일 2014-09-18
  • 조회수 568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 니체론/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

기오 브란데스 지음/ 까만양/ 2014년 09월/ ISBN: 9788997740147


* 책소개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의 저자 브란데스는 니체를 최초로 예찬한 비非독일인들 중 한 명이다. 브란데스는 니체의 추종자는 결코 아니되 니체의 가르침들에 매우 공감하는 탁월한 니체 해석자이다. 이 책은 제1부 ‘귀족적 급진주의’, 제2부 ‘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 제3부 ‘니체의 특징들’, 제4부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관하는 서술관점은 니체의 저작들이 유래한 원천, 그것들을 잉태시킨 독일과 유럽의 여건들, 니체와 다른 작가들의 친연관계들을 상세히 해설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어 니체 철학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확연하고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 저자소개

기오 브란데스(Georg Brandes, 1842~1927)는 1842년 2월 4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도매업에 종사하는 유대인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몸은 허약했으되 뛰어난 두뇌를 타고나서 초·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비非종교적 집안분위기에서 성장하여 소년기에는 무신론자로 자처했다. 1859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여 부모의 바람대로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학을 전공했지만 곧 흥미를 잃고 헤겔의 저서들을 탐독하며 철학과 미학에 심취했다. 그즈음 특히 덴마크의 유신론적 실존철학자 키에그고(=키르케고르)의 저서를 읽고 1862년까지 심각한 내면투쟁을 겪기도 했다.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1864년 미학석사학위를, 1870년 미학박사학위를 취득한 브란데스는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당대의 석학들 및 문인들과 교제하고 급진적 자연주의철학과 현실주의문학관을 발전시켰다. 1871년부터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19세기 문학의 주요 흐름들”을 주제로 1890년까지 속행한 브란데스의 획기적 연속공개강의는 급진적 문학개념 및 문화개념을 설파하여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의 문학 및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강의주제와 같은 제목으로 1891년 완간한 연속저서(총6권)는 유럽문학계를 흥분시킨 기념비적 업적으로 손꼽힌다. 1874년 코펜하겐 대학교 미학교수로 임용될 기회를 맞이했지만 유대인이고 급진주의자이며 무신론자라서 임용을 거부당한 브란데스는 1877년 덴마크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1883년까지 거주하며 당대의 석학들 및 문인들과 교제하고 집필에 매진했다. 1877년 키에그고와 그의 철학을 최초로 국제적으로 알린 중요한 저서 『쇤 키에그고』를 출간했다. 1883년 덴마크로 귀국할 무렵 니체의 존재를 처음 알고 니체의 저서들을 읽기 시작한 브란데스는 1887년 니체의 귀족적 급진주의를 발견하고 니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감하기 시작했다. 1888년 4~5월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세계최초로 니체와 그의 철학을 주제로 공개강의를 결행하여 성공시켜 니체의 마지막 집필의욕을 북돋운 브란데스는 1889년 니체에 관한 최초의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시론 『귀족적 급진주의』를 발표했다. 1902년 코펜하겐 대학교 미학교수로 임용된 브란데스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개성인격자들을 연구한 『윌리엄 셰익스피어』, 『하인리히 하이네』, 『괴테』, 『볼테르』, 『율리우스 카이사르』, 『미켈란젤로』 같은 대작들을 속속 발표했다. 1927년 2월 19일 코펜하겐에서 사망한 걸출한 문예비평가 겸 철학자 브란데스는 오늘날에도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문화인들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 목차

번역자 서문 006

제1부 귀족적 급진주의(1889년) 049

제2부 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1899년 12월 정리) 141

제3부 니체의 특징들(1900년 8월) 213

제4부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1909년) 223

[부록 1] 브란데스의 삶과 문학 237

[부록 2] 브란데스의 업적 255

찾아보기 263


* 출판사 서평

<세계최초로 니체를 주제로 삼은 공개강의를 진행하여 큰 성공을 거둔 니체 전도사 브란데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니체 사상의 풍요로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채택한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은 매우 탁월한 것입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내가 여태껏 읽어본 나에 관한 표현들 중 가장 명석한 것입니다.(1887년 12월 2일 니체가 브란데스에게 보낸 편지)>


니체는 급진주의 사상가였고 브란데스는 그런 니체의 예언가였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서 유래한 ‘지음(知音)’이라는 말은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백아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거문고를 타는지를 그의 친구인 종자기는 묻지도 않고 속속들이 읽어냈다. 후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자기 음악을 이해할 사람이 천하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는 학문과 예술세계에서 자신의 뜻을 깊게 알아주는 소중한 관계를 표현하는 고사로 통용되고 있다. 니체와 브란데스도 바로 그런 관계라 할 수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브란데스는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의 문학 및 문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세계적인 평론가다. 뿐만 아니라 1914년 5월 하순~6월 초순 브란데스는 미국을 여행하면서 시카고와 뉴욕에서 공개강연도 병행하여 미국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뉴욕의 주간지 《아웃룩The Outlook》(1914년 6월 6일자)은 브란데스를 “의심할 여지없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극히 중요한 비평가”로 소개했고, 시카고의 《다이얼The Dial》(1914년 6월 1일자)은 “브란데스의 미국방문은 비록 2주일에 불과할지라도 우리의 문화역사에서 극히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다”고 평했으며,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1914년 5월 18일자)은 브란데스를 “문학의 왕자”로 칭했고, 《시카고 헤럴드》(1914년 5월 23일자》는 “가장 출중한 스칸디나비아인 문학자의 미국방문”을 “근래 이루어진 아나톨 프랑스의 잉글랜드 방문만큼이나 흥미롭고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했다.

브란데스는 니체를 최초로 예찬한 비非독일인들 중 한 명이다. 브란데스는 니체의 추종자는 결코 아니되 니체의 가르침들에 매우 공감하는 탁월한 니체 해석자이다. 브란데스의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는 1부 ‘귀족적 급진주의’, 2부 ‘브란데스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들’, 3부 ‘니체의 특징들’, 4부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내용을 일관하는 서술관점은 니체의 저작들이 유래한 원천, 그것들을 잉태시킨 독일과 유럽의 여건들, 니체와 다른 작가들의 친연관계들을 상세히 해설하는 데 초점을 두어서 니체 철학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확연하고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니체 철학에서 ‘귀족적 급진주의’의 면모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지를 니체의 저작들에 대한 해석을 통해 상세히 설명한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할 만하다. 니체는 자신의 사상을 ‘귀족적 급진주의’라고 압축·설명한 브란데스에 대해 “당신이 채택한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표현은 매우 탁월한 것입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내가 여태껏 읽어본 나에 관한 표현들 중 가장 명석한 것입니다.”라고 극찬을 했다. 뿐만 아니라 니체는 막역한 친구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에게 (1888년 8월)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들뜬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늙은 유혹자 바그너는 이미 죽었는데도 ‘나의 영향을 감지할 만한 극소수자들마저 나로부터 멀리 떼어놓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덴마크에서 이런 일은 상상조차 불가능해요! 나는 이번 겨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활력을 가득 머금은 정신의 소유자 기오 브란데스 박사가 담대하게도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나에 관한 일련의 강의들을 감행했답니다. 그리고 그 강의들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답니다! 게다가 매번 300명을 넘는 청중이 강당을 가득 채웠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강의는 우레 같은 갈채를 받았고요! 그리고 비슷한 일이 미국 뉴욕에서도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유럽에서 가장 ‘독립적인’ 정신이요 그럴싸하게 보이는 ‘유일무이한’ 독일작가인 셈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니체는 브란데스에 대해 자신의 철학을 대중적으로 알린 소중한 친구로 소개하고 있음을 볼 때 니체와 브란데스의 관계는 분명 ‘지음’의 관계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대중의 문화속물주의와 니체의 귀족적 급진주의

속물(俗物)이란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니체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독일과 유럽의 문화적 특질을 ‘속물성’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대한 외롭고 고독한 투쟁을 과감히 전개했다. 그런 이유로 니체는 독일과 유럽에서 외면을 당했다. 그러나 브란데스는 그의 사상이 갖는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니체가 생각하기에 진정으로 불행한 사실은 ‘어떤 국가가 아직 진실하고 동질적이며 완벽한 문화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국가가 자국을 문화국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브란데스는 니체의 귀족적 급진주의의 출발을 그가 이른바 “문화속물(文化俗物)들”로 비칭(卑稱)한 인간들의 전모(全貌)를 확연히 드러내는 상황들’에서 찾는다. 니체와 브란데스가 서로 교감한 ‘문화속물’의 위험성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만연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브란데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화속물은 자신이 받은 비인간적인 교육을 진정한 문화로 생각한다. 만약 문화속물이 ‘문화는 정신의 동질성을 전제로 삼는다’고 배웠다면, 그리고 그가 어디서나 그와 같은 부류의 교육받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초?중?고등학교들, 대학교들, 학술원들이 그의 요구들을 순순히 받아들여 그의 문화지식에 상응하는 모형模型대로 변형된다면, 그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확신할 것이다. 만약 그가 거의 모든 곳에서 종교, 도덕, 문학, 결혼, 가족, 사회, 국가와 관련된 동일하고 암묵적인 인습들을 발견한다면, 그는 자신의 그런 발견을 ‘이런 압도적 동질성이 곧 문화이다’라는 논리의 증거로 생각할 것이다. ‘모든 고상한 장소에서 목소리를 내고 모든 언론출판편집부에 비치되는 이 체계적으로 원활히 조직된 속물근성은 단지 그것의 예하기관들이 원활히 제휴한다는 이유만으로는 결코 문화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문화속물은 상상조차 못한다. 속물근성은 심지어 ‘나쁜 문화’조차 못된다고 니체는 말한다. 그것은 보유한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게끔 강화된 야만주의이기는 하되 야만주의 특유의 신선함과 야생적 위력을 완전히 상실한 야만주의이다. 그래서 니체는 갖가지 사실적인 표현들을 사용하여 문화속물근성을 ‘탈진脫盡한 모든 것이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늪’이나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리는 유독有毒한 안개’로 묘사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모두 문화속물근성이 만연한 사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다. 그런 사회는 유행하는 의견을 우리에게 들이밀고, 우리는 그런 의견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한다. 심지어 그런 의견이 분할되어도, 그렇게 분할된 의견은 단지 당파의 의견―여론―으로 흡수될 따름이다.

여기서 니체의 잠언은 다음과 같은 문답을 가능하게 해준다.


여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적 나태이다.


비인간적인 교육을 진정한 문화로 생각하는 속물근성이란 심지어 ‘나쁜 문화’도 되지 못하며, 속물근성을 호도하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교양’으로 탈바꿈시켜 대중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여론에 대해 ‘그것은 개인적 나태이다.’라고 규정한 니체의 사상, 그것이 바로 ‘귀족적 급진주의’의 핵심 면모이며 니체 사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귀족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귀족’ 혹은 ‘귀족주의’란 말은 여러 가지로 대중들의 오해를 사고 있다. 그 근저에는 지배계급(=귀족)과 피지배계급의 대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니체는 그러한 계급의 대립 구도를 조장한 역사학자들에 대해 분노하며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실현할 것을 강조했다. 지배와 피지배, 진보와 보수, 다수와 소수라는 역사학자의 구분은 개인의 가치를 실종시키는 것이다. 역사학자가 자신의 생존시대에 유행하는 여론들을 기준으로 삼아 과거사를 평가하면 객관적 역사학자로 간주되고, 그리하지 않으면 주관적 역사학자로 간주되는 것이 바로 ‘문화속물’이 지배하는 사회의 주된 특징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한편으로 하층계급들 사이에서는 ‘하층민들의 증오심과 앙심(怏心)이 왜곡한 지배계급의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유행하기 마련이다. 이런 왜곡과정에는 보복심(報復心)이 작동한다.”는 것이 니체의 견해이며, 브란데스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면서 니체의 ‘귀족주의’가 무엇인지를 소상히 밝힌다.


귀족의 가치평가기준(좋다=고귀하다, 아름답다, 행복하다, 신들의 총애를 받는다)과 상반되는 것이 바로 노예도덕이다. 노예도덕은 ‘오직 비천한 자들만 선善한 자들이며 오직 괴로운 자들과 억눌린 자들과 병자들과 추레한 자들만 경건한 자들이다’고 말하면서 ‘너희, 고귀하고 풍요로운 자들은 모조리 악惡한 자들, 잔인한 자들, 탐욕스러운 자들, 불경스러운 자들,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 자들이다’고 비난한다.

그래서 귀족도덕은 부단히 “그렇다”고 말하는 위대한 자긍심의 표현인 반면에 노예도덕은 줄기차게 “아니다, 너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부정심否定心의 표현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나쁜 것=무가치한 것)을 분별하는 귀족의 가치평가기준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하는 노예도덕과 상반된다. 그렇다면 이런 피억압자들의 도덕(=노예도덕)에서 악인들로 분류되는 자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다른 도덕(=귀족도덕)에서 선인들(=좋은 자들)로 분류되는 자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니체의 ‘귀족주의’는 지배와 피지배라는 계급의 구도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 부산물이 아니라 인간(=개인)의 고유한 정신에서 발현된 ‘고귀한 가치’라 할 수 있다. 니체는 인간을 ‘약속들을 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동물’로 정의定意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니체는 ‘무언가를 약속할 수 있고 약속한 것을 스스로 보증하여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인간의 진정한 고귀성(高貴性)’이 내재한다고 보았다. 왜냐면 인간이 이런 능력을 발휘하려면 자기지배력(自己支配力)도 당연히 습득해야 할 뿐더러 ‘외부환경들에 대한 지배력’과 ‘단기간만 유지되는 의지력을 보유한 다른 생물들에 대한 지배력’도 반드시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귀족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의 길이 갈린다. ‘인간의 진정한 고귀성’과 ‘삶에 대한 무한의 긍정’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유의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점에 대해 브란데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니체는 자신이 행하는 공격의 타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참신하고 납득할 만한 어떤 증거도 거의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토록 맹렬히 공격하는 니체의 개인적 과잉정념(過剩情念)이야말로 작가로서 니체의 성격을 특징한다. 왜냐면 그런 니체의 공격은 분명히 현대 민주주의의 논리와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부르짖는 현대의 수많은 함성은 결국 서민대중의 앙심과 시기심이 내지르는 것들이다. 현대의 많은 중류계급이나 중하류계급 출신 학자들은 ‘오랫동안 탄압받아온 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격세유전(隔世遺傳)된 감정들―증오와 억하심정, 앙심과 보복열망―이 부당하게 중요시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니체의 과잉정념이 대중들에게는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친절함이 그의 사상에 대한 폄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브란데스는 니체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뿐 아니라 니체의 기질적 과잉성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 “니체는 지배계급과 노예계급을 대조하는 데 유달리 몰두했고, ‘자신의 동시대인들 중 진보적인 자들로 하여금 서민군중의 본능들을 관대하게 봐주고 지배정신들을 의심하거나 적대시하게끔 조장하는 학설들’에 대한 분노를 줄기차게 반복하여 표출했다. 그러면서 니체는 ‘피억압계급이나 피억압종족의 억눌린 원한감정이 노예도덕을 낳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오로지 경멸하거나 멸시하기만 하는 반면에 ‘지배계급이 행사하는 권력의 쾌락’과 ‘지배계급이 살아가는 건강하고 자유로우며 솔직담백하고 진실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특유의 습관에 물들었다. 바로 이런 습관을 통해 니체의 순전히 개인적인 특성 ―비非철학적이고 기질적인 특성―이 드러난다. 니체는 지배계급의 전제주의적인 행위들마저 변호하거나 관대하게 봐준다. 그가 볼 때 ‘지배계급이 자신들을 위해 만든 노예계급의 이미지’는 ‘노예계급이 만든 주인계급의 이미지’보다 위조된 성격을 훨씬 적게 지닌다.”라고 지적한다. 이 점이 브란데스가 가지고 있는 시각의 균형성이며,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라는 저서가 지니고 있는 최대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오직 삶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만이 행동을 준비하고 역사의 가치를 인정하며 역사를 응용할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삶에 대한 자각을 통해 니체 사상의 현대적 해석과 수용의 길을 마련해야한다는 것이 브란데스가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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