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넘었으니까 추천 즐찾 부탁드립니다
- 작성일 2014-10-19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523
열 받는 일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정말 징 하게도 내렸다. 와르르 쏟아지는 빗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듣기 힘든 그런 날이었다. 그런 날에 딱 맞는 게 있다. 담배다. 그런 날씨에 우산 속에서 피는 담배처럼 맛있는 것은 흔치 않다. 그래서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서 담배를 샀는데, 넘어진 것이다. 옷이야 빨면 그만이지만 담배가 다 젖어 버렸다. 물론 이것도 말리면 그만 이다. 그러나 젖은 옷을 입을 수는 있어도 젖은 담배를 필 수는 없다. 정말 열 받는 일이다. 내가 넘어진 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다시 편의점에 돌아 가려다가 아차 했다. 돈이 없다. 이 담배도 잔돈을 모아 겨우 산 것인데. 정말, 정말, 열 받는 일이다. 일진 더럽다. 날씨도 더럽고.
"왔냐."
김지석이 나를 보며 한 말이었다. 정확히 하자면 나를 보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내가 들어온 것을 알고도 여전히 휴대폰을 보고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때는 꼼짝도 못하던 똘마니 새끼가 많이 컸다. 그래 봤자 자기도 야간 편돌이면서.
"뭐 있어?"
내가 물었다.
"저기."
지석이 가르친 곳에는 과자를 담고 있던 플라스틱 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샌드위치와 삼각김밥이 가득했다. 오늘은 뭘 먹을까. 아까 낮에 액땜을 한 덕분일까. 운이 좋다. 도시락이 남아있다니.
"가져간다."
"어. 잘가."
벌써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이 놈 한태 신세를....... 신세까지는 아니지. 어차피 버리는 음식들인데 내가 가져가서 무슨 손해가 있다고. 그래도 뭐, 얘가 안 된다고 하면 또 그만인 일인데 고마운 부분이다. 볼 때마다 점점 무심해지고 있다. 이러다가 1년 정도 되면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는 건 아닐까?
"끝나고 뭐해?"
내 물음에 지석은 나를 뻔히 쳐다봤다.
"새벽5시에 뭘 해. 자야지."
"술 한잔 할까?"
계속 나를 뻔히 쳐다본다. 무심했던 놈의 표정에 변화가 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표정이 변했다. 또 다른 무심한 표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은 차이였지만. 입 꼬리가 약간 실룩거렸고 나를 좀 더 집중해서 보는 듯 했다.
"얼마 있는데?"
하긴 씨발, 내가 지금 썩은 음식만 골라 가니까 거지로 보이겠지. 그래 나 거지 맞다 개새끼야. 그러는 지는 얼마나 부자라고 편돌이 주제에.
"얼마 없어. 그냥 맞춰서 먹는 거지."
내 말을 듣고는 다시 휴대폰을 봤다. 씹는 건가. 죽으려고. 그렇게 휴대폰을 보다가 자기 카운터의 컴퓨터를 몇 번 보더니 입을 열었다.
"끝나고 전화 할게."
"그래. 나중에 봐."
의외였다. 이제는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쉽게 승낙했다. 나에겐 정말 다행 이였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지만 진짜로 얼굴을 맞대며 만나는 일은 아니었다. 사람과 직접 대화한지 꽤 된 것 같았다. 요즘은 휴대폰을 바꾸라는 광고 전화를 받아도 자세히 물어보며 길게 통화했다. 사실 요즘은 아니고 예전부터 그랬다. 요즘은 그런 나를 발견한 때였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심하게 외롭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은 좀 있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이 만나고 싶었다. 바로 지석이 그런 친구였다. 지나가듯 말했지만 꽤 절박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내일 낮 쯤 되면 담배도 다실 필 수 있을 테지.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렌지에 도시락을 돌린 후 그걸 챙겨서 집으로 갔다. 그리고 컴퓨터를 켰다.
“벌써 12시가 넘었네요. 추천, 즐찾 부탁 드려요.”
고정 맨트. 12시가 넘으면 시청자가 이전에 올려준 추천, 즐겨찾기 점수가 초기화 되어 bj간의 순위 경쟁이 새롭게 시작된다. 세 달간 매일 12시 마다 이 말을 했다.
"니네 엄마는 맛있어 점심 저녁 식후 땡, 모두의 간식거리 like a choco icecream 맛있고 저렴해 1000원 내고 200원 받아. 최고의 먹거리, 머슐렝도 다녀갔더라."
나는 아프리카 bj를 하고 있다. 팬들은 더티사운드라고 하는데 그냥 폐륜랩이 더 맞는 표현 같다. 두가지 키워드 어떤 것으로 검색해도 내 방송을 볼 수 있다.
"'니 엄마다'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12시 넘었으니까 추천, 즐찾 부탁 드릴게요."
하나에 110원 별풍선. 이걸로 연명하는 인생.
처음엔 인기가 좋았는데 갈 수록 시들해져 갔다. 결국 이렇게 생활비가 바닥이 나 버렸으니. 아직 집세를 내는 데에는 무리가 없지만 제대로 식사를 챙기기엔 확실히 모잘랐다. 고민이 많다. 그냥 좀 참아서 전기 밥솥을 산 다음에 지어먹을까? 뭐가 더 쌀지 모르겠다. 사실 하루 오천원이면 밥은 문제가 없는데. 그래, 담배가 문제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
"엇? '니엄마다'님 별풍300개 감사합니다....... 오늘 조금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쉬엄쉬엄 쏘지죠? 목표 별풍 채웠으니까 식용유 샤워 보여드리겠습니다."
약속한 별풍선 1000개를 채웠다. 오늘도 이것으로 돈을 벌었구나. 받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기 마련 아닌가. 나는 식용유 샤워를 약속했다. 별거 아니고 머리에 식용유 한 통을 다 부으면 끝이다. 이제 식용유도 떨어져가는데, 다음 월급날 까지는 조금 아껴야겠네. 하.
이게 뭐하는 짓인지.
처음에는 패기로 시작했다. 나는 욕을 잘했다. 욕을 할 때면 항상 친구들이 폭소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나를 '욕 잘하는 애'로 소개할 정도였다. 그리고 주변의 주천 속에 방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구들만 들어왔지만 입소문을 타고 시청자 수가 늘었다. 3개월 만에 자취방을 구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성기였을지는 몰랐다. 아마도 마지막 전성기. 일. 일을 해야 한다. 이대로 욕만 하다 망해서 집에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만약 내 애청자 '니엄마다'가 내 방송에 들어오지 않는 다면 내 생계는 끝난다. 그런 불안한 생활을 청산하고 싶다. 그런데, 일을 하면 뭐가 달라지는 거지? 방송 실력이 늘어나나? 평생 알바나 해야 하는 건가? 답이 없다. 과거에 청소부, 노무자들을 보며 '저렇게는 안돼야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분명 불안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이 내 운명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지나고 보면 돌이킬 수 있던 유일한 시기였다. 내 인생을 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오늘은 이걸로 방송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또 봐요."
약속이 있는 날이니 준비를 해야 한다. 적어도 세 번 정도는 머리를 감아야 기름기가 좀 가실 것이다. 씨발.
"야, 김지석!"
편의점 앞에 김지석이 서있었다. 무척 피곤해 보였다. 새벽에는 손님이 적어서 딱히 할 게 없었을 텐데 잠이 많은 모양이었다.
"어, 왔냐."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왜 얘한테 술을 먹자고 한 거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시간도 늦었는데 그냥 앞에서 맥주나 마시자."
최대한 의연하게 말했다. 남자라면 거부할 수 없겠지. 새벽 편의점에서의 맥주. 사실 돈 많이 쓴다고 다 효율적인 건 아니니까. 나만해도 삼천원 짜리 식용유로 30만원을 버는 사람이고. 그런데 김지석은 고민에 빠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별로 끌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살게 술집 가자."
"네가 왜?"
"그러는 너는 왜 사는데?"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개구리도 못 된 놈이.......
"그건 그렇네. 그러든가. 다음에 사지 뭐."
매 주 목요일, 별풍선을 환전 해 주니까, 이번에 내가 받을 돈이 얼마더라…….
김지석과 나는 치킨집에 갔다. 이른 아침까지 여는 곳이었는데 새벽이라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우리 둘을 제외하면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아저씨들 무리가 전부였다. 나이가 들이 있었지만 몸이 튼튼해 보이고 그을린 피부로 봤을 때 공사장 인부들 같았다. 내일 쉰다고 한 판 벌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쓰면 힘들게 모은 돈 언제 모으려고 저러는 걸까.
"뭐 먹을래?"
김지석이 나에게 물었다.
"네가 아무거나 시켜."
내 말을 들은 김지석을 내게 묻지도 않고 후라이드 한 마리와 맥주, 소주를 각각 한 병씩 시켰다. 정말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무엇을 시키든 상관 없었지만 내게 메뉴를 묻지 않은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세히 보니 무척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조금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화가 났던 피곤 하던 그것은 편의점과 관련된 일이지 나와는 상관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랑 만난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나 한태 화가 나나. 또 이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했기에 내가 신경을 끄면 그만인 일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지석은 잔에 소맥을 말기 시작했다. 조금 어색한 손놀림이었다. 맨날 편의점에 앉아서 편돌이나 하고 있으니 제대로 할 리 만무했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때 나랑 놀면서도 술을 마시러 갈 때면 항상 학원을 핑계되며 빼던 놈이었다. 그래도 산 사람이 놈이니 이 술도 지석의 것 아닌가.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기에 그냥 건네주는 잔을 받았다. 우리는 말 없이 잔을 부딪혔다.
"요즘 뭐하고 지내?"
내 일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뭐 그냥, 너는?"
내가 이렇게 망해버릴 건 아는 친구가 꽤 된다. 창피해서 만날 수가 없는 놈들. 놈들은 나를 보면 경멸하거나 측은히 보곤 했다. 정말 기분 잡치는 일이었다. 목석 같아도 차라리 이 놈이 나았다.
"나도 보시다시피 알바나 하고 있어."
"너 서울에 있는 대학 갔잖아? 과외나 해보지 그랬어?"
"서연고 놈들이 수두루 빽빽한데 나를 쓰나. 써도 여자를 쓰지."
"서연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아, 서연고......."
그리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먹고 마셨다. 치킨은 제법 맛있었다. 아니, 사실 맛있는 지 모르겠다. 내 앞에 김지석 놈은 깨작깨작 포크로 치킨을 헤집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너무 맛있었다. 지나고 보면 유통기한이 안 지난 음식을 먹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저녁 안 먹었구나?"
내가 먹는 것을 가만히 보던 걔가 말했다.
"먹었는데, 새벽이라 출출하네."
내일 점심까지는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다행이다. 정신 없이 먹었다 정말. 이젠 뼈 밖에 남지 않았다.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쓰다. 제조를 잘 못한 것이다. 가만, 얘가 나를 거지로 보나? 하긴, 실제 거지니까 큰 문제 없겠지. 내가 잔을 비우자 걔가 잔을 가져갔다.
"줘봐. 내가 따를게."
내가 오히려 내 잔과 걔 잔을 뺏어서 제조를 해줬다. 이 친구에게 소맥의 맛을 알려줄 것이다. 아,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좋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겐 오직 치킨, 소주, 맥주가 있을 뿐이었다. 얼마 만에 만나는 기분 좋은 친구들 인가. 담배. 아, 담배만 젖지 않았어도. 내가 사는 게 아닌 걸 알았으면 한 갑 사다 오는 건데. 지금이라도 사올까? 행복한 순간이다. 왁자지껄 했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니, 진짜 조용하네. 중앙 테이블에서 나를, 우리를 노려 보고 있었다. 그 중 얼굴이 가장 빨개진 아저씨가 소리쳤다.
"어이! 어린 놈들이 왜 이 시간에 술판이야? 내일 학교 안가?"
괜한 시비였다. 당신들은 늙어서 지금 술판인가? 내일이 주말인 것을 어쩌라고. 그래서 내가 답했다.
"아, 예."
아주 조용히, 말이다. 그리고 김지석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게 이성적인 행동 아닌가? 아니면? 싸워? 다 엎어? 그것도 네가 내 줄 거냐? 나는 바로 내 잔을 비웠다. 그걸 본 지석도 자신의 잔을 비웠다.
"맛있네."
당연하지 임마. 내가 먹은 소맥이 몇 박스인데 임마.
"다 마셨으면 나가자."
아직 뜨거운 눈총이 쏟아지는 것을 느낀 내가 말 했다. 김지석도 느꼈는지 군말 없이 일어나 계산을 했고 우리는 푸르스름한 새벽 거리로 나갔다. 비 비린내가 났다.
"성격 많이 죽었네."
엎어? 다시 돌아가서 엎어?
"어렸을 때나 그렇게 했지. 지금 그러면 바보 아니냐?"
"그렇지."
그렇게 헤어졌다. 정말 짜증나는 놈이다. 내 뒤나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놈에게 얻어 먹다니,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짜증나기에, 내 기분은 좋지 않다. 분명 그럴 거야. 이게 얼마 만에 대화였지. 현실에서, 친구와, 얼굴을 마주보고. 그런데 나에게 꼭 필요한 자리를 가지면서도 나는 술 값을 계산할 수 없었다. 참혹하다. 즐거운 만큼의 우울함이 찾아왔다. 흔들리지만 빠른 걸음으로 집에 갔다. 졸리다. 잤다.
목이 칼칼하고 텁텁해서 깼다. 분명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너무 오랜만에 마신 탓인 것 같다. 혼자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는데. 뭘 마셔야 하지? 탄산? 꿀물? 모두 집에 없는 것들이었다. 씽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계속해서 마셨다. 서울 수돗물은 깨끗하다고 했으니까, 아마 괜찮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야. 술을 마실 땐 이렇지 않았는데. 오히려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목이 텁텁할까? 이래서 알콜 중독자가 생기는 걸까? 이 계속되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담배가 피고 싶다. 어제 하루 종일 피지 못했으니 분명 꿀맛이 날 것이다. 꿀물, 꿀맛. 뭐 비슷한 효과가 있겠지. 창에 말려났던 담배를 만져봤다. 축축하다. 어제 밤까지 해가 뜨지 않고 비가 왔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짜증이 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피고 싶을 때 담배를 필 수 없다니. 심지어 돈 주고 샀는데........
시계를 확인 해 보니 시간은 오후 네 시 였다. 새벽 내내 방송을 한 것도 모자라 술까지 마신 것을 생각하면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늦은 시간. 오늘은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컴퓨터를 켜고 알바 자리를 알아봤다. 괜찮아 보이는 곳이 꽤 있었다. 도서관 사서....... 는 내 성격에 무슨 도서관이야. 물류센터도 자리가 많았고 근처 편의점에도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었다. 부재중 통화가 3개나 있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BJ 이현우 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저도 BJ에요. '니노'라고. 보신 적 있나요?"
나랑 컨셉이 겹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도 욕을 참 가열차게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랩 위주인 반면에 이 사람은 장난전화 위주였다. 사실 상종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컨셉이 겹칠 뿐 나와 같은 부류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장난전화가 왠 말인가.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무개에게 전화를 걸어 욕하는 방송이었다. 하지만 그가 제안한 내용은 솔깃했다. 자신의 시청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며 나와 같이 방송을 해보자고 했다. 나도 슬슬 끝물이라는 것을 알고 전화한 것이 분명했고 괘씸했지만 아이디어 만큼은 좋았다. 그냥 같이 방송을 해서 시청자를 합치자는 말이 아니었다. 나에게 장난전화를 걸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싸우자고 했다. 서로 욕을 주고 받다가 자기가 쫄려서 전화를 끊는 스토리를 제안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슈가 되면 시청자 수가 늘게 분명했다. 하지만 WWE도 아니고 조작된 승부라니. 차이가 있다면 철저히 비밀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쇼라고 하지만 사기 아닌가. 나는 프로도 아닌데. 하지만 이것 말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알바는 무슨 얼어죽을 알바. 내가 한창 잘 벌 땐 한 달에 500도 벌었는데. 알바를 찾던 컴퓨터를 껐다. 졸리다. 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현우야? 엄마 젖 잘 빨고 있나?"
그가 전화를 한 시간은 방송을 시작하고 몇 분 안된 밤11시 쯤이었다. 적절한 시간이었다. 어차피 방송 끝날 때 해 봤자 임팩트는 있겠지만 별풍선을 받기에는 어려울 테니까. 그저 가십거리로 소모되어 봤자 우리 같은 사람들 한태는 별 소득이 없지 안은가. 뭐 광고를 찍어 방송에 나가.
"뭔데? 너 누구야?"
"내다 형님! 니 형님 니노! 젖도 아닌 실력으로 방송하려니까 힘들제? 빨리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온나. 니 엄마 젖 다 빨려서 쭈글쭈글해지면 내랑 비슷해 질기다!"
니노의 사투리는 많이 어색해 보였다. 그것이 그가 타향 사람이어서인지 방송이 주는 긴장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나 그나 이번 기회가 아주 중요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것이 과연 내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나에게나 그에게나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은근히 니노씨, 강하다. 어떻게 대응할까....... 일단 컴퓨터로 지노의 방송을 켰다. 지금 이대로 욕을 해 봤자 내 방청자들은 지노의 반응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작했다.
"뭔 젖 같은 소리하고 있어? 내가 이 나이에 젖 빨게 생겼냐?"
"때가 어딨노? 모자르면 은제든지 채워야 안 하겠나?"
"병신이 뭐라는 거야."
아, 실수했다. 이건 질 때 하는 말인데.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다.
"귓구멍이 막혔나 개자슥이."
니노씨도 당황한 모양이다. 합이 맞지 않았다. 나를 몰아세우기 보다는 한 수 접었다. 과연 괜히 먹은 방송 짬밥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방송을 시작할 당시부터 스타였으니까. 뭐, 지금은 한 물 갔지만. 아니야, 지금 이런 잡생각 할 때가 아니지. 한 수 물렀다 해도 이미 주도권은 그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가져와야 한다. 창의적인 한방으로!
"그래 맞다."
"뭐가 맞는데?"
"우리 지노 형님 방송 짬밥이 있는데 내가 따라 갈려면 젖 더 빨고 와야지."
"이제야 말이 통하네. 빨리 갔다 온나. 빨리 엄마 깨워 온나!"
"우리 엄마 젖은 이제 안 나오고 니 엄마 젓이나 빨아야 겠다. 어제도 빨았는데 아주 기가 막히던데 씨발? 우리 지노 형님 좋은 게 있으면 동종업자끼리 같이 나눠 먹어야지 혼자 다 쳐 빠누? 오늘 빨 때 왼쪽이 홀쭉했지? 좀 만 남겨줘! 나 요즘 감 떨어져서 몸보신 해야 돼!"
"뭐라는 거야? 야, 야 이 개새끼야! 어린 놈의 새끼가 아주 경우가 없네. 야, 너 말 다 했어?"
대화의 흐름을 읽은 지노씨가 자신의 수를 완벽히 물렀다. 쐐기를 박아야 한다. 다행히 합이 맞는 것 같았다.
"씨발 우리 니노 형님 재미없어서 방송 안 봤는데 이제 보니까 머리털이 다 빠지셨네? 수염은 폐인 마냥 덥수룩하게 났는데. 나이 들면 털이 다 밑으로 가나? 가랑이에는 정글 차리셨겠네?"
"야, 야! 야 이 개새끼야! 뭐라카노 씹새끼가?"
"개새끼 밖에 모르냐 개새끼야. 끊는다. 동생 바쁘니까 찾지 마라. 퇴물이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지 왜 나대?"
전화를 끊었다. 등 줄기로 식은 땀이 흘렀다. 무사히 끝났다. 다행이다. 화면을 보니 별풍선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성공이다. 재기한 것이다!
"하, 니노 씹새끼 안 본 사이에 퇴물 다 됐네. 저 새끼 망할 줄 알았어요."
내가 씩씩대며 말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평소 같으면 별풍선을 쏜 시청자들의 아이디를 읽어 주었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럼 흐름이 끊긴다. 나도 방송을 한 삼 개월 하며 배운 것이 많았다. 방송하는 내내 표정을 풀지 않고 지노씨를 씹다가 방송을 종료했다. 준비했던 폐륜 랩을 나중에 써도 될 것 같다. 새로운 욕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이제 모두 잘 된 것 같다. 창가로 가 말려두었던 담배를 집었다. 좋은 날이다. 담배도 바싹 말려있어 피기에 좋았다. 빗물에 한 번 적신 담배는 지금까지 피워왔던 담배들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내는 듯 했다. 뭐, 오랜만에 피는 것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튼 좋은 날이다. 그럼 그만이다.
다 잘되고 있는 거겠지? 잠이 오지 않는다. 어제 늦게 잠든 탓인 것 같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이상한 잡생각이 떠오른다. 지금은 내가 잘 나가던 시절이 떠오른다. 분명 이것은 재기의 기회다. 그래서 방송 전성기가 떠오르는 걸까? 그런데 이 불안함은 뭘까? 또 다시 추락할 것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역시 잡 생각일까? 떨어지면 또 다시 떠오르면 되는 건데.
"여보세요?"
"나야. 일 끝났는데, 시간 돼?"
김지석이다.
"그래, 뭐. 내가 거기로 갈게."
얼떨결에 수락해 버렸다. 걔가 내 부름에 응한 적이 있으니 나도 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리로 나가 만난 지석의 얼굴은 눈에 띠게 밝아 보였다. 분명 미소가 있었다. 물론 편의점에서 생긴 일이겠지만 말이다. 휴대폰을 들어 꺼진 액정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어둡다. 불안하기 때문일까. 만날 사람이 나를 잘 모르는 사람 뿐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당장 사람을 만나기에 앞서 돈이 없어서 일까? 방황하던 과거 때문일까. 이유는 차고 넘친다. 아무튼 나는 성공적인 방송을 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저 친구는 편의점을 하면서 저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뭐 좋은 일있냐?"
내가 물었다.
"응? 뭐 별로."
"사장이 월급 올려 준데?"
"세상에 월급 올려주는 편의점이 어디 있어."
"그러냐. 요 앞에서 맥주나 마시자."
지금 수중에 2만원이 있다. 편의점에서라면 무리 없이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내가 일하는 곳이라 좀 그래."
"그럼 저 쪽 편의점 가자."
"어제 갔던 데 가자. 내가 낼게. 너는 다음에 내면 되잖아."
"오늘 완전 진상 손님 하나 왔거든. 생수랑 소주를 사더니 하수구에 생수 통을 비우는 거야. 그리고 소주를 채우는 데 나보고 도와달라 하더라고."
오늘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인다. 어제는 왜 기분이 안 좋았던 걸까. 진상 손님이 오지 않아서?
"그랬냐."
말 없이 술 잔을 비우며 놈의 말을 들어줬다.
"오늘 왜 이러게 말이 없어?"
나에게 물었다.
"그냥."
할 말이 없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이제는 안다 내가 떳떳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 방송들이 있고 각자의 삶이 있다. 그 중에는 떳떳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게임 방송하는 대정령 같은 사람들이야 뭐, 게임도 잘하고 말도 재미있게 해서 방송 출연도 하고, 음식 먹방하는 사람들 중에는 광고를 찍은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렇다고 내 장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말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부끄럽다. 내가 하는 일이 부끄럽다.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버렸다. 이젠 네가 부럽다.
"너는 어디 살아?"
"여기 근처에."
"자취야?"
"아니. 부모님이랑."
"그렇구나."
그것마저도 부럽다. 엄마 보고 싶다. 이게 사는 건가. 이 친구는 편의점 일을 하면서 잘 모르는 친구 술을 사줄 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냥 성실하게 사는 거, 어려운 걸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나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나는 바보였어. 바보여서 어린 시절을 쌩으로 다 날려버렸고 내가 혼자 살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제대로 큰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지금 이 친구만 해도 아직까지 같이 살고 있고 말야.
"너는 뭐 고민 없냐."
"왜 없겠어."
"좋은 대학도 다니고 있고 알바 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 데 왜?"
"좋긴 개뿔."
"아니, 정말 궁금해서 그래. 뭐 특별히 힘든 일 있어?"
내 질문에 걔가 조금 망설였다. 그리고 잔을 들었다. 잔을 부딪히고 각자 마셨다.
"확실히 뭐, 특별히 힘든 건 없는 것 같다. 다 같이 힘든 거니까. 그래도 꼭 찾으려면- 재미가 없는 거?"
와닿는 말이었다. 나에겐 특별한 문제들이 꽤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인 것 같다. 내가 하는 일, 지금의 삶이 싫다. 재미없다.
"재미 없긴 하지."
"그럼 이것도 특별한 고민은 아니겠다."
"모르지 뭐."
"그래도 아주 재미 없는 것은 아니야. 오늘은 괜찮았으니까."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동의 즐거움. 모를 것이다. 그것을 항상 느끼고 있자고 하면 그 즐거움에 무감각해 질 것이니까. 오늘 밤에 피웠던 담배가 맛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 즐거움을 원한다. 이제 모든 것이 명쾌해진 것 같다. 나는 틀렸다. 지석이가 그나마 옳았다. 그렇게 오늘 아침의 술자리가 마무리 되었다.
일어났다. 세시. 다행이다. 그렇게 늦은 것 같지는 않다.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있었다. 아는 번호다. 어제 연락했던.
"여보세요?"
"아, 현우씨! 지금 일어난 모양이네요? 오늘 방송 때문에 연락 드렸어요. 저번에 방송 너무 잘 됬는 데 제 팬들 반응이 좀 격하게 나와서요. 이번에는 제가 이기는 것으로 한번 가도 될까요?"
김지석은 자기 사는 게 재미없어서 별로라고 했다. 그런데 왜 웃고 있었을까. 좋은 구석이 가끔은 있는 걸까? 나는? 나는. 나는 내가 이기는 방송을 해서 나름의 대박이 났을 때도 그렇게 기쁘지 않았는데. 지금 내 인생은 뭐지? 재미없고 떳떳하지 않지만 안전하지 않은 삶?
"죄송해요. 저 이제 방송 그만두려고요."
"네?"
"못 하겠어요. 더 이상은 진짜 못 하겠어요."
동종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니노씨는 내 말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나를 설득했다. 그래도 내가 완강하게 나가자 한번만 해달라고 했다. 20만원을 보내줄테니 자기 한태 지고 방송을 접는 스토리로 가자고 했다. 역시 똑똑한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좋은 제안이기도 했다. 그래도 팬이 있었으니까. 특히, '니엄마다'님 덕분에 지금까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데 별다른 인사도 없이 그만두는 것은 최소한에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일테지. 알겠다고 했다.
"야 이현우 개시끼야."
무난하게 진행됐다. 지는 것은 자신 있었다. 의욕이 없으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더듬거리며 소리만 지르다 전화통화가 끝났다.
"씨발."
전화가 끝나고 캠에 대고 욕을 했다. 어떻게, 뭐하고 하지.
"못 해먹겠네요."
그리고 조용히 손을 모아 입에 갔다 댔다.
"이제 방송 그만하겠습니다. 다른 일 알아볼게요. 솔직히 이거 하면서 즐겁지 않았어요. 그 동안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을 껐다.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지금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팬들에게도 떳떳하지 않은 사람이구나. 그래도 상관없어. 이렇게 홀가분한 기분이라니....... 창 가로 가 담배를 하나 물었다. 한 달만에 피는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기분이 좋다. 모두 끝났다. 그리고 어김 없이 전화가 왔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김지석이다. 이 친구가 열심히 산 덕분에 내 인생을 재조명 할 수 있었다. 고마운 친구다. 오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데 전화를 했다. 마침 술이 땡기는 날이다. 방황하는 나에게 길을 보여준 친구.
"여보세요?"
"뭐야?"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나에게 다짜고짜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이야?"
"왜 그만 두는 건데?"
"아, 들었어? 나 방송 그만 둔거."
"아무튼 왜 그만 두는 건지 말 해봐."
"미래가 없어. 재미도 없고. 이제 정신 차려야지."
"뭔 개소리야? 왜 미래가 없어? 시청자도 좀 늘지 않았어? 계속해서 노력하면 안되는 게 어딨어?"
이상한 일이다. 만날 때 방송 관련 해서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는데? 그걸 모를 만한 친구여서 만난 애였고.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왜 나한테 이러는 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못하겠더라고 내 길이 아니었어. 할 말 있으면 만나서 해. 내가 갈게."
"야, 씨발 그러면 네 팬들은? 너는 니 생각만 하냐? 니 방송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아프리카 별창 정도면 그냥 생각 없이 살아도 되는 모양이지?"
이 새끼가 열 받게 하네.
"야 개새끼야. 니가 뭔데 나 한태 지랄이야?"
"'니엄마다' 병신아!"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