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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브레히트를 위하여」

  • 작성일 2014-12-13
  • 조회수 1,407



“그래도 목을 움직여서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 김행숙, 시 「목의 위치」중에서 -



한창훈, 「브레히트를 위하여」






인생은 요리와 비슷하다. 한 가지라도 빠지면 맛이 안 난다. 신체와도 같다. 오장육부 수백 개 뼈마디가 다 괜찮다 하더라도 이빨 하나 썩거나 발톱 갈라져 빠진다면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잔다. 국가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아침에 우는 사람들의 존재가 왜 중요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된다. 중심과 권력과 도시의 고독한 자아 외에도 저 먼 곳의 거친 삶도 하나의 뚜렷한 형태로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해놓고 보니 문득 떠오른다. 사실 구구절절 떠드는 것보다 이게 가장 좋은 답이 될 것이다. 브레히트의 시(詩) 「책 읽는 어느 노동자의 질문」이다.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지었을까? / 책 속에는 왕들의 이름만 나와 있네 /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 그리고 몇 번이나 파괴되었던 바빌론을 / 그때마다 누가 다시 세웠을까? 황금빛 찬란한 / 리마에서 건축노동자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미장이들은 / 어디로 갔을까? / 위대한 로마제국이 / 개선문으로 가득 찼을 때 로마의 황제들은 과연 / 누구를 정복하고 개선한 것일까? 수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
주민들을 위한 궁전만이 있었을까? 전설의 아틀란티스에서조차 / 바다가 땅을 삼켜버리던 밤에 /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은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하지 /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지 /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 시저는 갈리아를 무찔렀지 / 그때도 요리사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 / 스페인의 필립페 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 울었다지.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지. 그 말고 / 승리한 사람은 없었을까? /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등장하지 / 누가 승리의 향연을 차렸을까? /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지 / 누가 그 비용을 치렀을까? // 그렇게 많은 기록들 / 그렇게 많은 질문들.




▶ 작가_ 한창훈 - 소설가. 1963년 여수시 거문도 출생.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가던 새 본다』『그 남자의 연애사』, 장편소설 『홍합』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등이 있다.


▶ 낭독_ 오민석 - 배우. 연극 「만파식적」, 「봄은 한철이다」, 「바람직한 청소년」 등에 출연
문형주 - 배우. 연극 「맘모스 해동」, 「칼리큘라」, 「수인의 몸이야기」 등에 출연



배달하며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한창훈 소설가가 쓴 글입니다. 왜 쓰는가, 라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자기 갱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저도 저 자신에게 때때로 던져보는 질문이기도 하지요. 그 질문이 이어지면 결국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책 읽는 노동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질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고들 / 그렇게 많은 우는 사람들 / 그렇게 많은 일자리 잃은 사람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세 겹으로 만나다; 왜 쓰는가』(삼인)

▶ 음악_ Backtraxx - atmospheric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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