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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밤, 기차, 그림자」

  • 작성일 2014-12-16
  • 조회수 1,688


김경미, 「밤, 기차, 그림자」





밤은 무엇을 하는가
기차는 무엇을 하는가
좁은 골목은 무엇을 하는가
물을 건져 올리는 그물
손닿지 않는 바다와
하늘은 무엇을 하는가


사과는 썩고
피부약은 뚜껑 밖으로 흘러넘치고
내의는 뒤집히고
구두는 떠나가고


어둡던 보관창고가
한꺼번에 열려버린 그날


그 밤에 비는 무엇을 하는가
눈송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기차는 무엇을 하는가
기차를 탄 밤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세상은 무엇을 하는가
세상이 무엇을 할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내가 무엇을 할 때
세상은
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 시_ 김경미 - 김경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쉬, 나의 세컨드는』등이 있다.



▶ 낭송_ 성경선 - 배우.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배달하며

며칠 전 새벽, 서울에 올 겨울 들어 첫눈이 내렸어요. 그 시각 어쩌다가 잠이 깨어 첫눈을 보았어요.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그 차가운 것을 가만히 손에 쥐어봤어요. 내가 깨어 있을 때 당신은 잠들어 있고, 당신이 안과병원에 가고 있을 때 나는 추운 시골집에서 혼자 중국술을 마시며 마두금(馬頭琴)을 연주하고 있었지요. 그 사이 “사과는 썩고 피부약은 뚜껑 밖으로 흘러넘치”겠지요. 그 시각 밤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요. 기차는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요. 좁은 골목은 무엇을 했을까요. 밤은 별들의 풍찬노숙을 도우려고 제 품을 빌려주고, 기차는 대륙을 횡단하며 달리고, 골목들은 어둠과 가로등의 연애를 위해 눈을 감고 있었겠지요. 그 시각 당신은 자고 있었겠지요. 꿈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잠들어 제가 꿈길에 다녀간 것도 모르겠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밤의 입국심사』(문학과지성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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