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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 「깨끗한 몸」

  • 작성일 2015-01-02
  • 조회수 1,430





김원일, 「깨끗한 몸」

어머니는 두루미알처럼 둥글게 뭉친 수건의 겉면에다 역시 물기가 적게 볼끈 짠 때밀이 삼베수건을 쌌다. 그렇게 해서는 왼손으로 나의 오른손 손가락 끝을 잡고 엄지부터 때를 밀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판장이가 판 다리에 옻칠 올리듯 한 번이 아니고 두세 번에 걸쳐 꼼꼼하게 때를 밀곤 다음 차례인 손가락 사이와 손바닥으로 옮아갔다. 손바닥에도 묵은 때가 앉을 틈이 있는가 모르지만 어머니는 반드시 손바닥을 씻어주었고 발바닥은 간지러움으로 몸을 비트는 나를 꾸짖어가며 목욕탕 바닥에 굴러다니는 구멍 숭숭한 돌을 찾아내어 박박 밀어주었다. 그렇게 하여 양쪽 팔이 모두 끝나면 머리․ 목․ 겨드랑이․ 등․ 엉덩이․ 허벅지․ 다리로 차례에 따라 때를 밀었다. 그런데 때밀이를 할 때 어머니의 표정이나 그 힘쓰는 정성은 마치 불공대천 원수를 만나 피를 말리는 싸움을 방불케 하였다. 아니면 살갗의 얼룩점까지 지워내겠다는 가증스런 모질음이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나는 어머니의 때밀이 때 그 용쓰는 행동거지를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자식들의 몸을 씻기고 났을 때 당신 스스로 탈진이 될 정도였으니 늘 하는 말처럼, 너들 씻기고 나면 널치(어원을 알 수 없지만 경상도 남부 지방 사투리로, 기력이 다하여 넋이 빠질 정도라는 뜻)가 난다는 말이 제격이었다. 새(鳥)같이 마른 자식의 몸에 때가 붙었다면 그 때가 얼마만큼 덖었기에 어머니는 뭉쳐 싼 삼베수건이 해져라 뼈가 아릴 정도로 살갗을 그렇게 학대했는지, 구천의 넋이 된 당신을 두고 지금도 그 공력을 헤아려보면 나는 이상한 감회에 잠긴다.




▶ 작가_ 김원일 - 소설가. 1942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남. 1966년 대구 매일신문에 「1961.알제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작품으로 『마당 깊은 집』『어둠의 혼』『바람과 강』『도요새에 관한 명상』『불의 제전』『노을』등이 있음.
▶ 낭독_ 김주완 – 배우. 연극 '그을린 사랑', '오장군의 발톱', '너무 놀라지 마라' 등에 출연.




배달하며

설을 앞둔 대목에 가난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공중목욕탕에 갑니다. 한바탕 목욕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세월을 만나 애비 없는 설움으로 니가 비록 남으 집에 얹혀 얻어묵고 있지마는 씻은 몸처럼 마음도 깨끗해야 하니라.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 첫날이 밝았습니다. 모두 집에 계시는지요? 2015년, 씻은 몸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지내볼까요? 하는 마음에서 오늘 이 문장들을 배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마당 깊은 집』(문학과지성사)
▶ 음악_ sound ideas - solo instrument 중에서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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