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 작성일 2015-01-08
  • 조회수 893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예전의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니 바틀비가 층계참의 난간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틀비,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난간에 앉아 있어요.” 그가 유순하게 대답했다.
나는 몸짓으로 그를 그 변호사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고, 그러자 변호사는 우리를 남겨두고 나갔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사무실에서 해고된 뒤 건물 현관을 계속 점유함으로써 자네가 나한테 크나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대답이 없었다.
“이제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어. 자네가 무슨 조치를 취하든지 아니면 자네한테 무슨 조치가 취해지든지. 그런데 어떤 종류의 일에 종사하고 싶나? 어딘가에 취직해서 다시 필사일을 하고 싶나?”
“아니요, 나는 어떤 변화도 안 겪고 싶습니다.”
“포목상 점원 일은 어떤가?”
“그 일은 너무 틀어박혀 있어서요. 싫어요, 점원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까다롭게 가리는 것은 아니에요.”
“너무 틀어박혀 있다니,” 하고 내가 소리쳤다. “아니 자네는 계속 틀어박혀 있잖아!”
“점원 자리는 안 택하고 싶습니다.” 그는 마치 그 작은 사안을 즉각 매듭지으려는 듯이 대꾸했다.
“바텐더 일은 자네 마음에 맞을 것 같나? 그 일은 눈을 피곤하게 하지는 않아.”
“그 일은 전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에요.”
그가 이례적으로 말을 많이 해서 나는 고무되었다. 나는 다시 공략했다.
“좋아, 그렇다면 상인들 대신 지방에 돌아다니면서 수금하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러면 건강이 나아질 거야.”
“아니요,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대화로써 젊은 신사를 즐겁게 해주는 말동무 자격으로 유럽에 가는 것은 어떻겠어, 그건 자네 마음에 들겠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 일에는 조금도 확실한 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붙박이 일이 좋아요. 하지만 내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에요.”
“그럼 붙박여 있어.” 나는 여기서 참을성을 잃고 소리쳤고, 나와 그 사이의 그 모든 분통 터지는 접촉 중에서 처음으로 상당히 화를 냈다.

▶ 작가 _ 허먼 멜빌 - 미국의 소설가. 1819년 뉴욕에서 태어남. 가게점원, 은행원, 농부, 광부, 교사, 선원 등의 일자리를 전전하다 글을 쓰기 시작함. 작품으로 『모비 딕』『선원 빌리 버드』『화이트재킷』『사기꾼』등이 있음.
▶ 낭독_ 김주완 – 배우. 연극 '그을린 사랑', '오장군의 발톱', '너무 놀라지 마라' 등에 출연.
정훈 - 배우. 연극 '과부들', '봄날' 등에 출연.


배달하며

깊은 밤이면 이따금 필경사 바틀비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뭐, 꼭 바틀비가 그렇다는 건 아닌데요.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지 않을까요.
‘바틀비’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지요. 예술가, 은둔자,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존재 등등. 제 소견이지만, 바틀비는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말로요. 그나저나 원치 않는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라고 말하고 살 수 있는 한 해가 돼야 할 텐데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 외 지음, 창비.)
▶ 음악_ Backtraxx - classical 1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