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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별 모양의 얼룩」

  • 작성일 2015-01-15
  • 조회수 2,164



하성란, 「별 모양의 얼룩」

일년 전 야영을 떠나던 날 아침이었다. 그날도 여자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식빵을 굽고 계란 프라이를 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이는 속옷 차림으로 거실을 서성거렸다. 원복을 입히고 난 후에야 원복을 세탁해두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원복 앞가슴에 아이가 먹다 흘린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초코시럽 자국이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아이는 얼룩이 있는 옷은 입기 싫다면서 칭얼거렸다. 서둘러 그 부분만 빨았지만 얼룩이 지워지기는커녕 사방으로 시럽이 번져 얼룩은 별 모양이 되고 말았다.
“에이, 아이들이 놀려댈 거야. 더러운 옷을 입었다고. 아기처럼 흘리고 먹었다고.”
여자는 아이의 팔에 옷을 꿰면서 달랬다.
“어차피 하루 놀다보면 옷은 금방 지저분해질 거야. 친구들 옷도 죄다. 다른 아이들 옷이 더러워질 때까지만 참아.”
아이에게 배낭을 메어주고 페트병은 어깨에서 반대편 허리로 가게 걸어주었다. 얼룩이 생긴 원복과 씨름하느라 출근시간이 바듯했다. 아이의 한손을 잡고 뛰듯이 걸었다. 여자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한 아이가 몇번이나 뒤뚱거렸다. 아이와는 유치원 앞에서 헤어졌다. 유치원 정문 앞에까지 걸어간 아이가 별안간 뒤돌아서서 엄마를 불렀다. 아이가 여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 안녕히 계세요.”
여자도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안녕히 계세요, 가 뭐야?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해야지.”




▶ 작가 _ 하성란 - 소설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남.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함. 소설집으로 『루빈의 술잔』『옆집 여자』『웨하스』『여름의 맛』, 장편으로『삿뽀로 여인숙』『A』등이 있음.
▶ 낭독_ 김주완 – 배우. 연극 '그을린 사랑', '오장군의 발톱', '너무 놀라지 마라' 등에 출연.
▶ 서진 – 배우. 연극 '서울,댄스홀을 허하라!', '러브스토리' '안티고네',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등에 출연.



배달하며

아무리 큰 슬픔도 큰 사고도 결국엔 잊게 되겠지요. 그래도 모든 것을 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똑같은 일은 겪게 될지도 모를 테니까요.
유치원 아이들이 야영을 떠나는 모양입니다. 그날 밤, 야영지에서 불이 날지도 모른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1999년 6월에 씨랜드 화재참사가 있었지요. 지난해에도……. 슬픔이 아직도 압축적으로 찾아옵니다. 부모들은, 이 소설의 엄마처럼 누가 뭐라든,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창작과비평사)
▶ 음악_ StockMusic - Funous Fingers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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