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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 작성일 2015-02-13
  • 조회수 964



“어쨌거나 행복에 관한 책은 두꺼울 수는 없을 것이다.”

- 토마스 에스페달, 장편 『자연을 거슬러』 중에서 -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우리는 계속 조금씩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차를 타게 되면, 조금만 흔들려도 바로 당신의 두통과 전신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거미막염 때문에 당신은 좋아하는 일 대부분을 조금씩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고통을 용케도 감추었지요. 친구들은 당신이 아주 건강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신은 끊임없이 글을 쓰라고 나를 격려했지요. 우리 집에서 살아온 23년 동안, 나는 책 여섯 권과 수백 편의 논문 그리고 대담집을 펴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수십 명의 방문객을 맞았고 인터뷰도 수십 차례 했습니다. 나는 30년 전에 결심한 대로 살아오지 못했던 게 분명합니다. 현재에 충실하고, 무엇보다도 우리 둘이 함께하는 삶이라는 풍요에 집중하며 살자고 결심했는데 말입니다. 다급한 심정으로 그런 결심을 하던 순간들이 이제 다시 눈앞을 스치는군요. 지금은 집필하고 있는 대단한 작품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조르주 바타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존을 나중으로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에게 온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걸 당신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작가_ 앙드레 고르 - 오스트리아 출신 언론인이자 사상가. 192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남. 1946년 사르트르를 만난 이후 실존주의와 현상학에 관심을 갖게 됨. 작품으로 『배반자』『프롤레타리아여, 안녕』『자본주의 사회주의 생태주의』『유토피아로 가는 길』등이 있음.


▶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싸리타』, 『유리알눈』등에 출연.



배달하며

제가 머물고 있는 도시의 관광객들 중에는 유난히 노부부가 많아 보입니다. 대부분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어 다닙니다. 그런 노부부의 곁을 조용히 스쳐 지나갈 때마다 사랑에 대해, 인생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반자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상하지요. 너무 젊고 아름다운 연인들을 보면 그런 ‘깊은 공명’은 느껴지진 않는 것이.
사상가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에게 쓴 이 편지글의 부제는 ‘어느 사랑의 역사’입니다.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자 밖의 일을 접고 20여 년간 간호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단 하나의 사랑을, 갖고 계신지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D에게 보내는 편지』(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학고재, 2007)

▶ 음악_ Backtraxx - piano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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