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코이께 마사요, 「언덕무리」

  • 작성일 2015-03-30
  • 조회수 1,270





“ 누구나 상자를 갖고 있지.”

- 영화「미행」중에서 -



코이께 마사요, 「언덕무리」






다음날부터 해질녘이면 나는 언덕에 올랐다. 래피얼의 종이비행기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서. 이제 언덕 위에서 아파트를 보는 일은 그만두었다. 환각을 보고 실망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집 안도 텅 비었지만 나도 텅 비었다. 저절로 시선이 가서 텅 빈 눈으로 아파트를 바라보면, 아아 있구나, 내 집이다,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다. 변함없이 미즈오의 팬티가 널려 있다. 얼룩이 지워지지 않은 내 후줄근한 팬티도.
종이봉투 하나에 담긴 종이비행기는 스무 개에서 서른 개 정도였다. 나는 그것을 며칠에 걸쳐 정성스레 날렸다.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과 어서 빨리 다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줄곧 맞섰다.
종이비행기 하나를 손에 들고 바람 속으로 찌르듯이 던진다. 붕, 하고 난다. 잘 날아간다. 잘 뻗어나간다. 저쯤에서 착지하겠구나 싶으면 그보다 훨씬 더 앞까지 날아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상한 쾌감을 느꼈다. 내 마음까지 날아가서 내 가슴에 흙을 묻히면서 착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팔랑거리는 종이로 만든 것, 두꺼운 종이로 만든 것 등, 종이비행기의 종류도 다양했다. 처음에는 날린 다음 주우러 가기도 했지만, 그러다보니 피곤해져서 나중에는 계속 던지기만 했다.
조금 흐린 날 오후였다.
종이비행기 날리기에 열중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래피얼은 이런 시간에도 곧잘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완전히 밤이 되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하얀색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달빛이 반사되는지 흐릿하게 빛나면서 눈에 띄었다.




▶ 작가_ 코이께 마사요 - 일본의 시인이자 소설가. 1959년 도쿄에서 태어나 국제관계학을 전공함. 1988년 첫 시집 『물의 마을에서 걷기 시작하여』를 펴냄. 시집으로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가장 관능적인 방』, 소설로 『감광생활』『재봉사』등이 있음.


▶ 낭독_ 우미화 - 배우. 연극 「말들의 무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농담」 등에 출연.



배달하며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무엇엔가 열중해 본 게 언제인지요. 밤이라면 곧잘 새우지만. 영화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또 가끔은 글을 쓰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이 단편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동사는 ‘던지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던지다, 날리다, 줍다……. 최근 제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동사는 ‘줍다’입니다. 해질녘이면 가끔 궁리해보곤 하지요. 작가란 무엇일까, 하고요. 그러다보면 떠오르는 동사는 걷다, 보다, 듣다, 줍다, 그리고 쓰다, 정도로 압축되더군요. 이제 진짜 봄인데, 가장 중요해지는 동사는 무엇인가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파도를 기다리다』(코이께 마사요 지음, 한성례 옮김, 창비, 2010)

▶ 음악_ The Flim Edge - Themes-Concepts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