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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무질, 「지빠귀」

  • 작성일 2015-06-26
  • 조회수 1,361





“ 마음속의 자유는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지켜봅니다. ”

-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중에서 -



로베르트 무질, 「지빠귀」






이 방에 침대를 갖다놓고 잠을 자기도 했어, 그때 지빠귀가 다시 나타난 거야. 자정이 지날 무렵 경이롭고 아름다운 노래가 나를 깨웠지, 나는 곧장 눈을 뜬 것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동안 잠에 취한 채 이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그것은 밤꾀꼬리의 노래였지, 하지만 새는 숲이 우거진 정원이 아니라 옆집 지붕에 있었어, 나는 눈을 뜬 채 참을 청하기 시작했지. 이곳에 밤꾀꼬리는 없는데-나는 문득 생각했어-저건 지빠귀야.
하지만 내가 이미 이것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확신할 필요는 없어, ‘이곳엔 밤꾀꼬리가 없어. 그건 지빠귀야’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잠에서 깼지. 그때는 새벽 4시로 여명이 찾아들기 시작했어. 파도의 흔적이 바짝 마른 백사장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잠은 그렇게 빨리 달아났지. 그런데 그때 부드러운 흰 양털 수건 같은 여명을 받으며 검은 빛깔의 새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 있지 않겠나? 그놈은 그곳에 앉아 있었고, 틀림없이 나는 침대에 앉아 있었지.
나는 너의 지빠귀야- 그놈이 말했어- 나를 모르겠니?
그때 그 새를 금방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그 새가 말을 걸었을 땐 정말 행복했어.
전에도 한번 이 창틀에 앉은 적이 있었는데, 기억 못해? 그놈은 계속 말을 이어갔어. 그리고 나는 대답했지. 응, 지금 앉은 그곳에 네가 앉은 적이 있어. 그래서 내가 급히 그 창문을 닫았지.
나는 네 엄마야- 지빠귀는 말했어.
그래, 이 말은 내 꿈이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 새만큼은 내가 꿈속에서 본 게 아니야. 그놈은 그곳에 앉았다가 내 방으로 날아들었지. 그래서 얼른 창문을 닫았어. 다락방으로 올라가 기억을 더듬으며 큰 나무새장도 찾아왔지. 나는 그 새장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전에 말했던 것처럼 어릴 때 지빠귀를 기른 적 있었기 때문이야, 그때도 그 새는 먼저 창가에 앉아 있다가 내 방으로 날아왔어. 새장을 사용했지만 그놈은 곧 길들여져서 가두지 않아도 됐어. 그놈은 내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살았지.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돌아오지 않았어. 그런데 그때 다시 돌아온 거야. 나는 그때 그 지빠귀와 같은 녀석인지 따지느라 신경쓰고 싶지 않았어. 새장을 찾았고 책이 담긴 궤짝까지 발견했는걸.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뿐이야. 내 일생에서 그 지빠귀 새를 기를 때만큼 내가 좋은 인간이었던 때가 없었다는 것 말이야.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설명하기 힘들 것 같아.




▶ 작가_ 로베르트 무질 -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1880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남. 베를린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함. 1906년 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으로 작품 활동 시작함. 미완성 장편 『특성 없는 남자』와 『세 여인』『생전의 유고』『합일』등이 있음.

▶ 낭독_ 송명기 - 배우. 연극「세익스피어의 사내들」, 「다락방」 등에 출연.


배달하며

저에게 “소설은 영혼의 해부학이다”라고 알려준 작가가 로베르트 무질입니다. 작가가 해야 하는 일은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정신이 포착할 수 없는 “미지의 현실”을 독자에게 열어주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 「지빠귀」를 읽고 나면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아집니다.
만약 누가 저에게, 가장 좋은 인간이었던 때가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제가 첫 조카를 키우던 때였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첫 책을 쓰던 때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만약 질문이 현재형이라면, 새 책을 쓰고 있는 ‘지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요.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그리고 또 우리는 언제 가장 좋은 인간이었을까요.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사랑의 완성』(북인더갭)

▶ 음악_ 박지영

▶ 애니메이션_ Stock music/Home Town Proud 중에서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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