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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춤」

  • 작성일 2015-07-01
  • 조회수 2,286


이진명, 「춤」





아이는 지금 춤이다
춤추는 게 아니고 춤이다


아이가 식탁머리에서 밥 먹다가 문득 멈추고
뭣에 겨운지 겨운 웃음을 탱탱히 머금고
제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며 두 눈을 빛내다
이윽고 손짓 몸짓 더불어
쟁반의 구슬 굴러간다는 꼭 그런 목소리로 말문을


너무 신기해
어떻게 이 손이 이렇게 쭈욱 나가 반찬을 집고
어떻게 이 손이 입속에다 이렇게 밥을 넣을 수 있어
내가 그러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이 손이 저절로 그러는 거야 글쎄
너무 신기하지 않아, 정말 신기해


아이는 새 나라를 마셨다
신기함이라는 새 나라
밥 뜨고 반찬 집다가 저를 느닷없이 받쳐 올려서
식탁머리에 앉은 채로 공중점프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는 그 한가운데에서
아이는 불꽃 되어 계속 타올랐다


오직 신기함만이 일하는 시간, 춤
오직 존재의 불꽃만이 활발발 일하는 시간, 춤





_ 이진명 - 1955년 서울에서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등이 있음.


낭송_ 이혜미 - 시인.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보라의 바깥』이 있다.




배달하며

아이는 정기가 지극해서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노자예요. 아이는 정기가 지극한 탓에 독충이 쏘지도 않고 맹금이 물어가지도 않는다고 말하죠. 아이는 “뭣에 겨운지 겨운 웃음을 탱탱히 머금고” 밥상머리에서 춤을 추는데요. 신명에 겨워 춤추는 게 아니라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정기 때문이죠. 아이와 탱글탱글한 춤은 하나죠! 아이가 춤출 때는 “오직 신기함만이 일하는 시간”이고, “오직 존재의 불꽃만이 활발발 일하는 시간”이죠.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 『세워진 사람』(창비)

▶ 음악_ 최창국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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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조강현 10922

    아이들의 순수성은 볼때마다 놀랍다. 우리가 생각했을때는 당연하고도 남을 일들을 아이들의 호기심은 모든것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 손으로 반찬을 집고 손으로 입에 밥을 먹는 것이 신기하다는 이 시의 아이. 그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뿝뿜하고 뿜어내는 아이를 바라보면 내가 부모가 아닌데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주체하지 못하는 즐거움과 에너지를 절제하지 못해 밥먹는 밥상앞에서 춤을 추는 아이를 어떤 부모가 멈추게 할수 있을까. 신기함이라는 새 나라 속에서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의 맑은 영혼은 때 타지 않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우리도 한 때는 저럴때가 있었지 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시이다.

    • 2018-05-29 15:51:54
    조강현 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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