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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스깔 레네, 『레이스 뜨는 여자』

  • 작성일 2015-07-10
  • 조회수 1,134





“ 그녀는 늘 그의 곁을 지나간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바라보아야만 보이는 그런 여자이다. ”



빠스깔 레네, 『레이스 뜨는 여자』






그는 침대 속에서 그녀의 발이 와 닿는 것을 더 이상 참아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밤에 그녀의 숨소리를 듣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뽐므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이제 자기 남자 친구를 성가시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아차려야만 했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더욱더 신중하고 근면하고 분주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에므리는 자신이 그 끝없는, 그 경솔한 겸허의 포로가 되는 것을 느꼈으며, 이러한 겸허는 그가 항거하는 것을 금했고, 비록 내심으로라도 그가 최소한의 비난이라도 표명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은 그를 은근히 화나게 했다. 이 참아내기 힘든 순진성, 그것은 반항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그에게서 박탈하면서 그에게 가하는 폭력이었다. 뽐므의 무가치성은 엄청난 중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서는 수치심이 점점 더 커가고 있었는데, 고문서학교 학생인 그를 그 자신의 겸허로 격하시키는 그러한 힘을 가진 그 수치심은 그가 그 이후로 엄청나게 겸허한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면서 느낀 그런 수치심이었다. 이 시선이 이 전에 볼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가 아니었다. 뽐므는 사실상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그의 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 의혹이 그를 비통하게 만들었다. (중략)
그는 잠을 자지 않는다. 그는 그녀가 잠자는 모습을 바라본 이후로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녀의 얼굴은 딱 한 번 환하게 빛난다. 그녀는 그녀의 내심의 미소로 반짝인다. 그녀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녀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무(無)에게 미소를 짓고, 마치 애인에게 자신을 내맡기듯이 무(無)에게 자신을 내맡긴다. 여러 번이나 그는 그녀를 깨워서 감히 자기가 거기에 대해 질투를 느낀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자기가 없는 그녀의 고독과 그녀의 평화의 절정으로부터 그녀를 흔들어 떨어뜨릴 뻔 한다.




▶ 작가_ 빠스깔 레네 - 프랑스의 작가이자 교육자, 사회학자. 1942년 프랑스 아네 출생. 사범학교 졸업 후 지방의 중고등학교에 부임. 빈곤층 자녀들의 자기발견의 의미를 가르치다가 보수적 교육관료들의 몰이해에 부딪쳐 학교를 그만둠. 소설과 사회학 연구서를 쓰기 시작. 『레이스 뜨는 여자』는 1975년 공쿠르상을 수상하고, 끌로드 고레따 연출로 영화화되었음. 펴낸 책으로 소설 『거리의 꽃』 『길위의 여인들』 사회학서적으로 『여성과 그 이미지』 가 있음.


▶ 낭독_ 손상규 - 배우. 연극 「여직공」, 「죽음과 소녀」, 「새빨간 얼굴」 등에 출연. 극단 양손프로젝트 대표


배달하며

순진무구함은 그 자체가 훼손되지 않은 원초의 세계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소통조차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레이스 뜨는 그 여자의 가득 찬 조용함은 무언의 도끼날과 같다. 가서 부딪치지 않았음에도 의식하는 것만으로 자꾸 상처를 입는다. 귀족 가문의, 소르본느 문과대학생 에므리는 어설픈 애정의 환영에 이끌리어, 창녀의 딸인 견습 미용사와 눈 먼 동거를 시작한다.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여자가 내면에 품고 있는 보다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평화는, 에므리가 자기의 정체성으로 걸터듬고 있는 가문, 부유함, 지식, 사회 계층적 우위 등등, 그의 삶의 기득권적 바탕이 되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무익한 것으로 돌려놓는다. 그의 수치심은 고요의 거울에 비췬 자각의 피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레이스 뜨는 여자』 (도서출판 예하)

▶ 음악_ Song Bird av212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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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이 책의 주인공은 타인이 내면에 품고 있는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평화가 '자신의 삶의 기득권적 바탕이 되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무익한 것으로 돌려놓는' 것을 보았다는 묘사가 마음을 서늘하게 합니다. 그걸 보면서 그가 느낀 것에 그의 인생의 무게가 모두 걸려 있었겠지요. 인생의 실제 무게는 가끔 매우 평이한 저울을 통해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는군요!

    • 2015-07-27 12:13:1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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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깐나

    '그의 수치심은 고요의 거울에 비췬 자각의 피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늘 흔들리는 정체성속에서 주변 것들을 나의 정체성인냥 내세울때가 많았습니다. 그 남루함이 부끄러울때가 많았는데, 이 글을 보며 새삼 자각합니다.

    • 2015-07-20 01:22:38
    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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