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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 작성일 2015-07-23
  • 조회수 1,708




“ 1960년 1월4일 월요일 오후1시55분, 상스로부터 파리로 가는 아름다운 7번 국도에서 들려온 『끔찍한 소리』 에 세계의 문학계가 비탄에 잠겼다”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심각한 표정에 옷을 잘 차려 입은 신사 한 사람이 무슨 봉투 같은 것을 들고 층계에 불쑥 나타났다. 깜짝 놀란 두 여자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냄비 속에서 집어 낸 렌즈 콩을 골라 담던 접시를 내려놓고 손을 터는데 층계의 끝으로 두 번째 계단에서 발걸음을 멈춘 신사가 가만들 계시라면서 코르므리 부인이 누구냐고 물었고 「여기 있습니다. 나는 그 어머니고요」하고 할머니가 나서서 대답하자 신사 쪽에서 자기는 시장인데 괴로운 소식을 가지고 왔다면서 부인의 남편께서 전사하셨으므로 프랑스는 그의 죽음을 애도해 마지않는 동시에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노라고 말했다. 뤼시 코르므리는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공손한 태도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할머니는 일어선 채 손을 입에 대고 스페인 말로 「하느님 맙소사」하는 말을 되뇌고만 있었다. 신사는 뤼시의 손을 한 손으로 잡고 있다가 이윽고 두 손으로 더욱더 꼭 움켜쥐더니 위로의 말을 중얼거리고 나서 그녀에게 봉투를 건네주고 돌아서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그 사람이 뭐라 그랬어요? 」「앙리가 죽었어. 전사한거야. 」뤼시는 봉투를 바라보기만 할 뿐 열어 보지 않았다. 그녀도 어머니도 글을 읽을 줄 몰랐다. 그는 알 수 없는 어느 어둠의 저 밑바닥에 잠긴 그 머나먼 죽음을 상상할 수가 없어서 말 한 마디 못 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한 채 봉투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그 여자는 부엌에서 쓰는 앞치마의 주머니에 봉투를 집어넣었고 아이는 바라보지도 않은 채 그 옆을 지나 두 아이들과 함께 쓰는 방으로 가서 문과 마당 쪽으로 난 창의 덧문들을 닫은 다음 침대 위에 누워서 오랜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눈물도 없이 자신은 읽을 수도 없는 봉투를 주머니 속에서 꼭 거머쥔 채 어둠 속에서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불행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작가_ 알베르 카뮈 - 프랑스 소설가. 1913년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 에서 태어났고, 알제대학 문과반 시절 장 그르니에를 스승으로 만남. 스승의 권유로 공산당에 가입했으나, 이듬해 탈퇴. 사르트르와의 논쟁으로 좌파들로부터 총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사망 후 유고집 출간이 유보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의 붕괴로 카뮈가 옳았음이 증명되어 그의 진가가 새로이 조명될 즈음 출간된 『최초의 인간』은 악의에 찬 공격을 일시에 멈추게 하며 프랑스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펴낸 책으로『이방인(異邦人)』『시지프스의 신화』『페스트』등이 있음.

▶ 낭독_ 박상종 - 배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내마', '햄릿프로젝트' 등에 출연
문형주 _ 배우. 연극 '맘모스 해동', '칼리큘라', '당통의 죽음' 등에 출연

배달하며

카뮈의 미완성 초고는 그의 사후 (1960년 1월 4일) 34년 뒤 (1994년)에야『최초의 인간』이란 표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처음엔 그의 아내가 정리를 해서 생전에 절친했던 친구 몇몇에게 보여주고 자문을 구했을 때 모두 출간을 반대했다. 수년 뒤 아내가 죽고 아버지의 모든 저작권을 위임받은 딸이 아버지의 친구들에게 다시 자문을 구했을 때, 그들은 모두 찬성으로 의견을 바꾸었다.『최초의 인간』을 번역한 김화영 선생의 해설에서와 같이 「이 소설은 우리가 끝내 읽을 수 없게 된 어떤 〈소설〉의〈밑그림〉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이 글 속에는 온갖 자전적인 내용이 전혀 여과되지 않은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위의 문장도 카뮈가 어린 시절 겪은 자전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남편의 전사 통지를 받아들고, 쇠뭉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멍한 상태의 의식의 암전을 겪었던 것일까. 현실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렌즈 콩을 접시에 골라 담게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도 삶도 이미 이전과 같지 않은 그 치명적 차이는 언제 후두둑 접시 위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눈물 속에 감춰져 있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최초의 인간』(열린책들)

▶ 음악_ Sound ideas /romantic pastoral 4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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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여우같은북극곰공주

    우와~ 어떻게 이런 표현이! 왜 까뮈 까뮈 하는지 이 짧은 글만으로도 알겠네요. 찾아 읽어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좋은글!

    • 2015-07-28 12:06:44
    여우같은북극곰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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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그녀도 삶도 이미 이전과 같지 않은 그 치명적 차이'라는 표현이 마음을 크게 두드립니다. '치명적 차이'는 단 하나만으로도 이미 생을 돌이킬 수 없게 바꾸어 놓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차이'들 앞에서 크게 목 놓아 울고 싶습니다.

    • 2015-07-27 17:26:0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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