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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설 「물계자」

  • 작성일 2015-10-03
  • 조회수 843





“동양에서는 심심함에 처해져 도에 이른 물계자를 낳았고, 서양에서는 심심함에 처해져 구토를 일으킨 로깡땡을 낳았다.”



김정설 「물계자」






물계자는 아무 이름도 없는 집 사람이어서 그 교류하는 친구들도 무슨 세력이 있거나 유명한 사람은 그리 없었다. 식견은 비범하고 그 도술은 신기했지만 달리 배운 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평생에 좋아하는 것은 검술과 음악이었는데 그것 또한 별로 배운 데가 있었던 것이 아니며, 그저 타고난 천분이 이런 것을 좋아했고, 좋아하였기에 부지런히 쉬지 않고 공부하는 동안 신기한 묘리를 두고두고 혼자서 깨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좋아한 것도 무슨 특별한 익망(翼望)을 가져서가 아니라, 첫째는 그냥 좋아서 한 것이고 그보다도 오히려 심심풀이로 했던 편이었다. 심심풀이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 물계자처럼 심심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물계자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가 물계자에게 배우려 하는 사람들이고 물계자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계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도 자기를 몰라주는 데 대한 불평이라곤 조금도 없었으며, 오히려 누가 자기를 아는 체하는 때는 오히려 그것을 옳게 여기는 기색이 아니었고, 또 옳게 여기지 않는 것이 과연 옳았던 것이다. 이러고 보니 절로 심심한 때가 많았고 심심한 때면 으레 칼을 만지거나 혹은 거문고를 안고 앉는 것이 평생의 버릇이었다. (중략)
가까운 부락에 아주 불량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힘이 장사요, 게다가 그 근처에서는 검술도 짝이 없었다. 그래서 어떠한 짓을 하든지 그를 당적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쉬운 것이라 생각한 이 어린 영웅은 못할 짓이 없어 사람을 쳐죽이기도 했고, 좀 얼굴이나 예쁜 계집이면 그것이 누구의 아내거나 뭣이거나, 그 남편이 보거나 말거나 불구하고 제 하고 싶은 짓은 끝끝내 다 해내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그때 물계자는 이 세상에 적수 없는 영웅을 찾아가서 처음에는 좋은 말로
「좋은 힘과 좋은 술법을 아껴 두었다가 천하를 위해 환난을 덜어주는 데 사용함이 장부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하고 타이르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그 사람에게 이러한 점잖은 말이 귀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래도 물계자는 다시 정색을 하고는
「옳은 말을 들을 귀가 없으면 허는 수 없이 다른 법으로 듣게 할 수밖에..」
하였다. 그러자 그 영웅은 크게 웃으면서 웃통을 벗고 주먹을 칼처럼 들고서는
「너 이거 아느냐?」
하고 물었다. 물계자는 오히려 몸을 뒤로 지쑥하게 버티며 되물었다.
「네가 그것을 아느냐?」
그러자 그 영웅은 두 눈에 불을 흘리면서 벼락같이 바른편 주먹으로 물계자의 가슴을 쳤다. 그 때 누구든 보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물계자는 그 자리에 부서져 해골이 남았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주먹으로 치려던 영웅은 도리어 제 주먹이 탁 풀린 채 땅에 나꺼꾸러졌다.




▶ 작가_ 김정설(金鼎卨) - 사상가. 1897년 경주 출생. 호는 범부(凡父). 김동리의 맏형, 전설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열 살 때 신동으로 알려지기 시작, 열두 살 때는 사서삼경을 혼자서 떼었다. 십구 세 때 장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제대, 동경제대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뒤, 스물여덟 살 때 YMCA에서 칸트 이백주년 기념강연을 하는 등, 동양의 유불선은 물론 서양의 현대사상까지도 통달했다. 해인사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1년간 고초를 겪었다. 건국대부설 동양학연구소장으로 지내면서 2년간 진행한 토요강좌에는 사계의 학자, 지식인, 예술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본인은 저서를 한 권도 남기지 않았고, 제자들이 강의를 듣고 정리한 책 (『화랑외사』, 『풍류정신』 등)이 몇 권 남아있다.

▶ 낭독_ 우미화 - 배우. 연극「말들의 무덤」,「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농담」 등에 출연.
유성주 - 배우. 연극 「그게 아닌데」, 「싸움꾼들」 「동토유케」등에 출연

김주완 - 배우. 연극 「그을린 사랑」,「'오장군의 발톱」,「너무 놀라지 마라」등에 출연.


배달하며

무료함, 한가로움과 비슷한 듯 아주 다른 심심함.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심심함에 처해질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있어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져서 드러나지 않는다. 심심한 사람은 무엇을 애써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있는 자로 변해 간다. 그의 변화는 저절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닌 본래부터 있어온 것, 근본원리와 하나 됨으로, 무엇을 하든, (물계자처럼 칼을 쓰든, 거문고를 타든) 심심함이 도달하게 하는 궁극(窮極)에 이른다. 그것을 통달이라 하지 않을까.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풍류정신』 (범부 말하고, 사위 진교훈 서울대교수 받아 적음) (정음사. 1986)

▶ 음악_Soundidea/Drama suspense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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