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김지원 「시간과 강물」

  • 작성일 2015-10-22
  • 조회수 1,179


“총구 앞에 서본 일이 있는가.
한국말로 ‘ 야, 그 총 저리 치워 ’ 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
이때의 모국어는 동족 전체가 그와 함께 한다는 교감이다.”



김지원 「시간과 강물」


「빨리빨리, 허리업.」
강도는 발길질까지 했다. 도혜는 날카로운 그 발길에 맞을 새 없이 앉았던 자리에서 용수철이 튕기듯 일어나 화장실로 향해 한달음으로 달렸다.
이웃 상점 주인도 객장에 서 있던 다른 흑인에 의해 화장실 문 안으로 떠밀려지고 있었다. 찬 와인을 넣어두는 냉장고 옆에 있는 나무문을 열면 오른쪽에 상점 바닥과 같은 높이로 세면대와 변기가 있고 왼쪽으로 지하 창고로 통하는 좁고 가파른 층계가 있었다. 화장실에는 청소용 물걸레와 물통, 빗자루 등을 두어 복잡했다.
이웃 남자와 도혜는 가파른 층계를 공이 구르듯 내려갔다. 이웃 남자와 도혜를 몰아넣고 강도는 문을 닫았으므로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아 축축한 먼지내 나는 어둠은 고체같이 짙었다. 전등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켠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어둠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층계 끝나는 곳에 상점과 비슷한 면적의 지하실이 있었다. 술 상자들이 현대 도시같이 통로만 남기고 반듯반듯 쌓여 있었으며 상점과 상점 위의 네 세대 아파트를 상관하는 보일러와 수도 계량기, 전기 미터기가 그 안에 있었다.
이웃 상점 남자와는 고개인사나 하고 지내던 처지인데 이제 이곳에 갇혀 인간의 존엄성은 간 곳 없이 벌거벗긴 듯 무력하고 수모당하는 모습을 서로 보이고 보는 것이 도혜는 부끄러웠다.
「여기가 막혔습니까? 」
이웃 남자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도혜는 지하실 입구를 더듬어보는 중이나 찾을 수가 없었다. 덩치 큰 어른이 술 상자를 안고서도 수월히 드나들던 입이 큰 통로가 감쪽같이 없어졌다. 도혜는 강도들이 어느 순간 화장실 문을 열고 시커먼 계단 아래쪽을 향해 총질할 것만 같아서 지하 창고로 들어가 높이 쌓인 물건 상자들 속에 몸을 숨기고 싶었다. 그 입구를 찾는 일이 초를 다투며 죽고 사는 일같이 절박했다. 지난 추수감사절 즈음에 물건을 많이 쌓던 때 물건 정리하는 청년이 잘못해서 입구를 막도록 물건을 쌓아버렸다고 도혜는 생각했다. 입구 찾기를 단념하려니까 도혜에게 절망감이 거꾸러지듯 엄습했다. 도혜는 계단 밑바닥 흙먼지 속에 얼굴을 박았다. 층계 한 칸밖에 안 되는 면적에 물건 상자가 버티고 높이 막았으므로 도혜의 엉치는 들려 있게 되었다. 모래 속에 대가리를 박은 타조 모양이 되었다.
「엎드리세요. 」
도혜가 말했다. 한국말이 통해 편했다.

▶ 작가_ 김지원 - 소설가. 1942년 경기도 덕소에서 시인 김동환과 소설가 최정희 사이에서 태어남.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한국일보 기자인 남편 따라 미국으로 이민. 이민생활의 두렵고 아픈 속내를 섬세한 감성으로 쓴 소설들을 발표하기 시작.「사랑의 예감」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2013년 7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지은 책으로『폭설』,『잠과꿈』,『낭만의 집』등이 있음.

▶ 낭독_ 전현아 - 배우. 연극 <차이메리카>,<쉬반의 선발>,<가스등>,<상당한 가족> 등에 출연.

박성연 - 배우. 연극 <베르나르다알바의 집>,<목란언니>,<아가멤논> 등에 출연.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미망인들>, <유리알눈>,<스페인연극> 등에 출연.

배달하며

불시에 목숨이 위협 당하는 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누구라도,
그렇다 그 누구라도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힘으로 제압당하여 두 손을 뒤로 묶일 때,
타인의 손에 들린 총구가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을 때,
마취를 당한 채 다리를 벌리고 산부인과 수술대 위에 누워있을 때,
지진에 무너져 내린 지붕에 깔렸을 때,
침몰하는 배에 갇혀 무거운 물체에 끼어있을 때...
그렇다면, 목숨 자체가 이렇게 하찮은 것인가?
아니다,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도 하찮은 존재로 보이게 할 뿐이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 김지원 소설 선집3 『물이 물속으로 흐르듯』 (작가정신. 2014)

▶ 음악_ soundidea-Drama suspense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추천 콘텐츠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내 마음의 뒷방, 그 은둔처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다.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병은 결코 자신에게서 이탈하지 못하는 마음에 있다. (호라티우스) 그러므로 마음을 끌어내어 제 자신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외롭고 쓸쓸함이다. 이것은 도시의 한복판이나 왕들의 궁전에서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따로 떨어져서 더 잘 자기를 누린다. 그래서 우리는 홀로 살며 사람들과 교섭 없이 지내려고 하는 만큼, 우리에게 만족이 매여 있게 하자, 우리를 타인에게 얽매이게 하는 모든 연결을 물리치고, 정말 홀로 살며 편안하게 살아갈 능력을 얻기로 하자. 스틸폰은 자기 도시의 화재를 피해 나오며 거기서 아내도 어린것들도 재산도 잃었다. 데메트리우스 폴리오클레테스는 그가 조국의 그 참혹한 파멸에 처하여 얼굴빛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손해를 본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고마운 일로 자기 것은 잃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철학자 안티스테네스가 사람은 물 위에 뜨는 장비를 가지고 난파할 때에 헤엄쳐 나갈 차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농담조로 말한 것은 바로 이 뜻이다. 실로 이해심 있는 사람은 자신을 잃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 놀라 시(市)가 야만족들에게 파괴되었을 때에 그 곳 주교이던 파울리누스는 거기서 모든 것을 잃고 포로가 되어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주여, 이러한 손실을 느끼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음을 주께서는 아시지 않습니까. 』 그를 부하게 만들던 재산, 그를 착하게 만들던 보배, 그런 것들은 모두 온전하였다. 이것이 진실로 손실을 면할 수 있는 보배를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보배를 아무도 갖지 못하는 곳에 감추는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도둑질해갈 수 없는 보배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내, 아이, 재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을 가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행복이 거기에 매여 있게까지 집착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남이 침범하지 않는 아주 자기 고유의 것인 뒷방을 가지고, 그 속에 진실한 자유와 은둔처를 마련해 둘 일이다. 여기서 우리 자신과의 일상의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사사로워서, 외부와의 어떠한 관련이나 교섭도 그 곳에는 미치지 못하게 할 일이다.아내도, 어린애도, 재산도, 다른 사람도, 하인도 없는 듯 그곳에서 혼자 생각하며 웃고 지내며, 그런 것들을 잃는 경우에 부딪혀도 그런 것들 없이 살더라도 아무런 별다름이 없게 할 일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들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 그것은 자기를 동무 삼을 수 있다. 마음은 공격할 거리, 방어할 거리, 줄 거리와 받을 거리를 가졌다. 이러한 고독함 속에서 할 일 없이 괴롭다고 오그라들까 두려워 말자. 고독함 속에 그대 자신이 한 군중이 되라. (티블루스) ▶ 작가_ 몽테뉴 - 목사, 문필가. 남프랑스 페리고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귀족으로 몽테뉴 성의 성주. 2세 때 가정교사로부터 라틴어 학습을 받음. 13세 때 명문 기엔느

  • 김 태 형
  • 2016-09-29
이난호, 『아홉번 떠났다, 산티아고』

산티아고로 이끈 노란 화살표들이 도미노처럼 반대로 쓰러지는 것을 본다,내가 사는 삶의 방향으로... 이난호, 『아홉번 떠났다, 산티아고』 저녁 아홉 시를 조금 넘은 시각, 마당 한켠에 내놓인 은색 탁자에 둘러앉은 국적이 갖가지인 순례객들이 캔맥주를 마시며 밝게 웃고 있다. 가게 주인 여자는 빈 맥주캔으로 넘치는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변 새 맥주캔을 가져다 은색 탁자에 놓는다. 그뿐, 마당의 나머지 부분은 씻은 듯 휑해, 은색 탁자 주변이 흡사 추상극 무대 세트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진작 집안으로 들었고 대개의 순례객들도 숙소에서 일기를 쓰거나 독서를 할 것이고 한둘은 가게 안에서 티브이를 볼 것이고 드물게는 저녁미사 끝에 오래된 레스토랑에서 약간 긴 코스의 저녁을 먹을 것이다. 나는 마을 끝까지 걸어가 나직한 성벽 너머로 천천히 지워지는 낙조를 보았다. 해가 지는 쪽은 황량한 들이었다. 낙조는 먼 들녘부터 엷은 어둠으로 조용히 스몄다. 만종이 울리지 않아도 내가 서 있는 시공을 점검하게 됐다. 2014년 10월 1일, 걷기 순례에 나선 지 딱 보름만이다. 문득 어떤 성당 제대 옆에 늘어졌던 ‘우리는 모두 나그네’라는 글귀를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순례자에게 나그네적 로망 따위 가당찮아』 하며 돌아섰다. 이번엔 좁은 뒷길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 역시 씻은 듯 비었다. 그곳의 적요는 음습하고 뭔가 함축적이었다. 이 또한 일체의 세트를 배제한, 생의 저편을 형상화한 무대쯤. 허술한 토벽에 착 달라붙은 알전구 아래 배우 둘이 있다. 낮은 추녀 밑에 그들 노인 둘은 쪼그리고 앉아 포도주를 마시다가 세 번째 배우로 등장한 내게 수줍게 웃어 보였다. 세 번째 배우는 단박 감격하여 흠뻑 웃어준다. 흐린 빛으로도 확연한 저들의 꼬질꼬질 때 탄 입성과 낡은 신발짝이 세 번째 배우를 확 당겨갔던 것이다. 노인이 들고 있던 포도주 주전자를 내밀었다. 주전자 주둥이가 두루미 목처럼 길다. 『긴 목은 슬프다!』 세 번째 배우는 유명 시구에 기대어 속말을 주절거린다. 긴 목은 목마름, 배고픔, 구차함, 슬픔의 다른 발음, 얼핏 카미노의 이미지일 수도 있었다. 자기 앞으로 내밀어진 주전자를 세 번째 배우는 그냥 바라본다. 기다리다 못한 노인이 『이렇게! 』하듯이 주전자를 허공에 높이 쳐들어 자기 입을 겨냥하고 포도주를 붓는다. 절묘한 순간에 주전자 주둥이가 수평이 되고 포도주를 머금은 노인의 입이 닫혔다. 세 번째 배우가 맛있게 웃는다. 노인들도 따라 순하게 웃는다. 노인이 주전자 주둥이가 청결함을 온 몸으로 증명해 보였음에도 세 번째 배우는 여전히 난감하다ᆞ. 아니 짠하다. 『저렇게 웃으면 뒤로 뒤로 밀려나는 건데...』 모성이 동한다. 『괜찮아요!』 하듯 세 번 째 배우가 주전자를 받는다. 위로 쳐드는 시늉까지는 따라했다. 더 이상은 어림없다. 고개를 홰홰 저으며 주전자를 넘긴다. 그리고 셋은 아이들처럼 웃었다. 매우 잘 웃었는데 세 번째 배우 목 아래는 여전히 아리다. 영락없이 망령스런 연상. 『뒷전으로 밀려나는 스페인!』 각본에 없는

  • 김 태 형
  • 2016-09-22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

크라우스-수수께끼, 이제부터 이 무명의 하인을 주목해 볼 일이다. 로베르트 발저, 『벤야멘타 하인학교』 그의 주변에는 날개를 달고 속삭여대는 지식들이 날아다니지 않는다. 그 대신 무엇인가가 그의 내면에 들어 있다. 그는 그 무엇 위에 가만히 있고, 그리고 그 무엇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누군가를 속이거나 헐뜯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이 수선스럽지 않음을 나는 교양이라고 부른다. 수다스러운 자는 사기꾼이다. 그가 매우 친절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뱉어내지 않으면 못 배기는 그의 단점은 그를 비열하고 나쁜 친구로 만들 것이다. (중략)그는 재능들로 빛나지는 않지만, 타락하지 않은 선한 마음의 미광을 내비치고 있다. 그의 촌스럽고 소박한 몸가짐은 거기 수반되는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아마 인간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움직임과 태도일 것이다. 그렇다. 크라우스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를 재미없고 못생겼다고 생각할 여성들에게서도 그렇지만, 그를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이 세상사에서도 말이다. 무심하게? 그렇다. 사람들은 결코 크라우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그가 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것, 바로 그 점이 경이로운 것이고, 계획으로 충만한 것이며, 조물주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신은 이 세상에 심오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내주려고 크라우스와 같은 인간을 보낸 것이다. 그 수수께끼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봐라,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수수께끼를 풀려는 노력을 보이는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크라우스-수수께끼는 너무나 훌륭하고 심오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그 수수께끼를 풀고자 애태우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그 어떤 인간도 이 무명의 초라한 크라우스에게 그 어떤 과제 수수께끼 혹은 그토록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크라우스는 진정한 신의 작품이며, 무(無)이며, 하인이다. 크라우스는 교양 없고, 매우 고된 일을 수행하기에나 적합한 자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기이한 것은, 그런 판단이 틀린 데 없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크라우스는 겸손함 그 자체이다. 순종의 왕관이자 왕궁인 크라우스. 그는 진정 보잘것없는 일들을 수행해나가기를 원한다. 그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또 하고 싶어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누군가를 돕고 복종하고, 시중을 드는 일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곧 알아차리고는 그를 착취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착취한다는 사실 안에는 환하게 빛을 발하는 자비와 광명으로 빛나는, 금빛 찬란한 신의 정의가 들어 있다. 그렇다. 크라우스는 거짓 없는, 아주, 아주 단조롭고, 단순하고 명료한 존재의 초상이다. 어느 누구도 이 사람의 단순함을 오인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성공하지 않을 것이다. 난 그것이 멋지고, 멋지고, 또 멋지다고 생각한다.

  • 김 태 형
  • 2016-09-15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