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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고향을 어이 잊으리까」

  • 작성일 2015-10-29
  • 조회수 1,745


‘오늘날이 오늘이라/ 매일이 또한 오늘이라/ 날은 저무는데...’
그들의 마음은 백년이 지나도 고향을 떠날 때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고향을 어이 잊으리까」


팔십이 넘은 노인이라 걸음이 시원치 않았다. 노인을 등에 업자, 그는 등 뒤에서 일일이 방향을 지시했다. 뒷산은 덤불이 무성했다. 노인이 대나무를 하나 길게 자르라고 해서 세죽(細竹)을 잘라 손에 쥐어주었더니 노인은 말이라도 탄 기분인지, 등 뒤에서 대 회초리로 이리저리 가리키면서 길을 지시했다. 골짜기에 닿자 노인은 등에서 내렸다. 노인은 나무 등걸에 앉으면서,
『거길 파 보라구.』
하며 회초리로 한군데를 가리켰다. 심 씨는 노인이 이른대로 괭이를 깊숙이 휘둘렀으나 거기서는 기대했던 흙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곳도 몇 번이나 파보았지만 노인이 일러준 어느 곳에서도 화산지대 특유의 잿빛 모래흙만 나올 뿐 바라는 도토(陶土)는 구경할 수 없었다.
-산이 망령 났다.
노인은 산을 탓했다. 산도 변했다. 내 산이건만 오십 년 전의 기억이다. 대나무며 수목이 성장해서 골짜기 모습도 달라졌다. 노인은 엉덩이가 시리다면서도 그대로 앉아 있다. 그런 노인보다 심씨의 피로가 더 했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파헤치자니 괭이가 천근만치나 무거웠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젊은이, 골짜기 저쪽 언덕을 파보라구, 하며 회초리로 다시 가리켰다. 심 씨는 정강이까지 묻히는 낙엽토를 밟으면서 그곳까지 갔다. 언덕은 온통 양치식물에 뒤덮여 있었다. 거의 단념하다시피 하면서 심 씨는 낫으로 풀을 베고, 그 낫으로 언덕의 흙을 후벼 보았다. 축축한 물길이-잿빛 모래흙과는 전혀 다른, 짙은 갈색의 초콜렛 같은 질 좋은 흙이 낫 끝에 묻혀 나왔다. 서둘러 풀을 베고 표면을 벗겨보자, 수산화철이 침전된, 보기 드문 토층이 나타났다. 한웅큼 집어 핥아보았더니 철분을 함유한 진한 맛이다. 심 씨는 다짜고짜 가져왔던 전대 둘에 담아서 노인 곁으로 가져갔다.
『글쎄, 이건가보군.』
하면서 노인은 젊은 심 씨가 한 대로 자신도 그 흙을 핥았다. 그리고 조건을 말했다.
『영구무상이여.』
거저 준다는 것이다. 단 구워진 것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다. 큰 것은 일없어, 술잔만 하면 돼, 부엌에서 쓰는 그릇도 좋아. 난 이렇게 별난 늙은이지만 약속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어.

▶ 작가_ 시바 료타로 - 일본의 소설가. 1923년 오사카 출생.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소설을 창작, 일반인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 받는다. 1987년 일본 예술원 은사자상을 수상했으며, 국민훈장을 받는 등, 국민작가로 추앙 받다가 1996년에 타계했다. 지은 책으로『료마가 간다』,『성채』,『대망』등이 있음.

▶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미망인들>, <유리알눈>,<스페인연극> 등에 출연.

배달하며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도자기전쟁’ 이라고도 한다.
전란 때 일본으로 납치된 6만 명의 양민 중에는 고명한 유학자, 활판기술자, 도공들이 있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끌려간 심, 신, 박 3성의 도가는 사쯔마야끼, 도공 이삼평은 아리다야끼의 도조(陶祖)가 되었다. 이들의 후예는 해마다 음력 8월 보름, 달 밝은 밤이 되면 조상의 묘가 있는 산에 올라, 나무 사이로 빛나는 바다 너머로 ‘오늘’을 부르며 고국의 산천을 향해 절을 했다. ‘오늘날이 오늘이라/ 매일이 또한 오늘이라/ 날은 저무는데...’. 그들의 마음은 고향을 떠날 때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 한국을 주제로 한 일본중단편선 『고향을 어이 잊으리까』(문학사상사. 1977)

▶ 음악_ BackTraxx-nature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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