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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 작성일 2015-10-30
  • 조회수 252

장례(葬禮)

 

 

 

그는 예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100살에 가까워질 때까지 살아 있을 줄 알지 못했다. 사실 그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100살에 가까워질 때까지 살아남으며, 필연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견뎌야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는 새로운 탄생과 마주하기도 했다. 그가 100살에 가까워진 것과 동시에 세상도 많이 발전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을 때 그는 스무 살이었다. 그는 그때를 잊지 못한다. 밀레니엄 버그, 1999년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 이후로, 세상에 종말이 찾아올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그때를.

 

세상은 많이 발전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기업들은, 그리고 그의 삶 중간에 세워진 기업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들은 세계적 기업을 넘어 우주적 기업으로 진출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야망은 그가 서른 살이 되던 2010년에도 천명했던 이야기였다. 세상은 발전했지만, 아직 인간들에게 우주는 개척하지 못한 땅이었다.

 

그는 15년 전에 20년 후에 이루어질 사업에 투자했다. 20년 뒤에 인류의 우주선이 지구에서 출발해 우리 은하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항성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30년 전에 이룩한 쾌거에서 비롯된 사업이었다. 나사가 이룩해낸 쾌거를 자칭 우주적 기업이라는 S기업에서 투자와 협력을 통해 추진하게 된 사업이었다. 사업 내용은 이러했다. 우주선에는 인간이 탄다. 단 우주선에 타는 인간에겐 조건이 있다. 바로 죽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 그 죽은 인간을, 동행하는 로봇과 프로그램이 새로운 항성에 묻어줄 것이다. 그 항성은 언젠가 인류가 건너갈 새로운 땅이었다. 다만 아직까지 기술력이 따라와 주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인류가 항성으로 넘어가는 데에 150년이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정확히 하자면 150년 하고도 4개월 23일 21시간 32분이 걸린다고 했다.

그가 젊었을 때 했었던 걱정처럼 지구는 쉽사리 멸망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명력이란 무척이나 질겨서 여러 가지 지적되고 예상되었던 문제들을 해결할 기술을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물론 그는 공기가 예전에 비해 무척이나 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 고전 SF영화들이―이젠 더 이상 SF 영화라 부를 수 없으니 판타지 영화라고 해야 할까―걱정했던 것처럼 인류가 지구를 버리고 탈출할 필요는 없었다. 지구는 여전히 살만했다. 물론 수많은 멸종 위기 종들이 정말로 멸종해버리긴 했지만. 사람들은 그걸 멸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운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우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인간들에게 지구는 이미 질려버린 땅이었다. 우주라는 새로운 공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지구는 질려버린 애인과도 같았다. 우주는 매력적인, 새로운 이성(異姓)이었다.

 

이 사업은 앞으로 이어질 인류의 우주 진출의 초석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선발된 사람들은, 아니 시체들은 새로 찾아올 우주 시대의 거름이 될 것이었다. S 기업은 그렇게 홍보했다. 그리고 큰돈을 요구했다. 투자한 사람들만이 탈 수 있다고 했다. 우주선에 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100명이었다. 아니, 100구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까. 어쨌든 100명을 태운 우주선은 150년 4개월 23일 21시간 32분에 걸친 여행을 떠나 A항성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100명은 A항성의 땅에 묻혀서 거름이 될 것이었다.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장례법을 찾고 있었다. 지구엔 더 이상 사람들을 묻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화장(火葬)되어야 했다. 화장이란 문화는 무척이나 보편화되었지만, 화장이란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머니를, 그리고 아들과 아내를 땅에 묻었다. 그는 자신이 사들인 땅에 아버지를, 어머니를, 그리고 아들과 아내를 묻었다. 그는 자주 무덤을 찾아 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항상, 자신도 꼭 땅에 묻히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 땅은 지구에 있는 땅이었다. 자신을 덮어줄 이불은 지구의 흙이어야 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우주로 나갈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우주는 막연한 공간이었다. 언젠간 우주여행을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는 2000년대 초반에도 있었다. 그때는 설렜었다. 2010년에도, 2020년에도 그런 이야기는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이야기가 있지만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은 없었다. 달조차 아직 먼 곳이었다. 우주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가기엔 달은 여전히 먼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주를 잊고 살았다. 우주 대신 그는 지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또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우연히 고개를 들어보니 여전히 우주는 그의 곁에 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는 사실, 15년 전에 자신이 A항성으로 가는 프로젝트에 투자했단 사실 조차 잊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준 것은 전화 한 통 이었다.

 

“J 선생님 댁 맞으신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아 안녕하세요, 저는 S기업 우주개발팀의 B라고 합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린 건 다름이 아니오라, 선생님께서 15년 전에 투자해주셨던 프로젝트가 드디어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메일과 우편은 확인을 하시기 어려울 것 같아서 전화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내가 15년 전에 뭘 했소?”

 

“선생님께서는 15년 전에 저희 S기업 우주개발 팀에서 기획한 프로젝트에 투자해주셨습니다. A항성에 처음으로 가게 될 인류로 말입니다.”

 

그제야 그는 15년 전에 했던 일이 생각났다. 더 이상 땅에 무덤이 설 수 없게 되었다고 법적으로 공시되었던 날.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땅에 묻힐 수 없다는 사실에 황망한 마음을 금치 못했었다. 그는 처음에 정부 관련 부처에 전화를 걸었으나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화만 잔뜩 난 그는, 이번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를 받고자 했으나 딸의 대답은 성의가 없었다. 오히려 딸은 그런 정부의 규제를 반기는 입장이었다. 딸은 지구의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운동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더욱 분노했다.

 

“너는 내가 죽으면 불에 태워버릴게냐?”

 

수화기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딸이 대답을 망설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 날 밤, 우울함에 빠져 있던 그는 TV에서 뜻밖의 기회를 접하게 되었다. A항성으로 우주선이 떠날 거라는 광고였다. 티켓에는 출발일이 정확히 20년 뒤로 적혀 있었고, 도착일은 170년 뒤로 적혀 있었다. 170년 뒤에,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A항성의 땅에 묻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날 밤 컴퓨터를 키고 S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 프로젝트 내용을 정확히 확인했다. 우주시대의 개척자가 되실 기회를 잡으세요! 그는 이 문장은 싫었다. 그러나 이 문장 밑에 작은 글씨로 ※ A항성에서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러드리겠습니다 라는 문장은 마음에 들었다. 만 79세 이상―또는 이미 명을 달리 하신 분분―이라는 조건도 마음에 들었다. 시대는 진보했으나 인류의 수명연장은 그저 꿈이었을 뿐이다. 100살을 넘게 산다는 것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보편적인 일이 아니었다. 의료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었지만 명백하게 한계가 있었다. 인간의 기대수명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진보하면 인간 100세 시대는 꿈이 아니라고 했었지만, 사실은 꿈이었을 뿐이다.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100살을 넘은 인간은 흔한 존재가 아니었다. 환경이 더 나빠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인공장기도 삶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S기업의 자격조건은 이런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100살은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것이었다. 우주와 마찬가지로.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인간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두 세계, 영생과 우주 말이다. 아무튼 S기업에겐 80세가 넘은 노인들이 신청한다면 20년 뒤에 거의 대부분이―그리고 아마 모든 사람들이―생을 달리할 거라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현재까지 100살을 넘어 살아남은 사람이, 전세계를 통틀어 몇 십 명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나라에서도 단 두 명 뿐. 그리고 뉴스에 나온 그들의 삶은, 절대 S기업의 프로젝트에 돈을 투자할 수 없을 삶이었다. 허름한 양로원에 버려진 삶. 그래서 그도 자신이 100살에 가까울 때까지 살아남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겐 여전히 우주란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장례 문제는 당면한 문제였다. 그는 땅에 묻히고 싶었다. 그는 1981년에 태어난 신세대였지만, 관습이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관습의 문제보다는, 자신의 신체를 불태운다는 것이 무척이나 불쾌하게 여겨졌다. 젊었을 적에는 화장을 꺼리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차피 죽은 몸인데?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깨닫게 된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마지막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장례방식의 선택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죽어서 땅에 묻힐 것인지, 불에 타 재가 되어 납골당에 묻힐 것인지는 전적으로 죽기 직전의 자신이 하는 선택에 따른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섬뜩하게도, 자신이 죽어서 화장을 당할 때 고통스럽지 않다는 보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그를 강하게 압박했다. 만약 화장이란 결국 화형과 다르지 않다면? 그저 죽으면 끝이라고 떨쳐내기엔, 그는 미련이 꽤 많이 남았다.

그래서 그는 S기업 프로젝트에 지원했던 것이다. 평생 동안 모아놓은 돈도 투자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 많은 갑부들이 투자를 망설이고 있을 동안, 그는 우발적인 동기로 말미암아 재빨리 투자를 했기 때문에 비교적 많지 않은 투자금액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에 접수된 것이었다. 그리고 S기업 역시 가장 먼저 지원한 그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선발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그러나 세월의 힘이 그에게서 기억력을 서서히 앗아가면서, 그는 이 프로젝트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와중에 걸려온 전화였다. 15년만의 전화였다.

 

“그러니까 5년 뒤에 정말로 떠난단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현재 우주선은 마무리 작업 중이며 내후년 완성될 예정입니다. 시뮬레이션 결과도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난 아직 살아 있소.”

 

“아 예,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전화를 드린 것입니다.”

 

B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재 지원해주셨던 대부분의 분들은―안타깝게도―모두 생을 달리하셔서, 현재 S기업에서 직접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그런데 현재까지 J 선생님과 다른 한 분은 다행히도―그러나 B가 내뱉은 다행이란 두 글자엔 당혹스러움이 담겨 있었다―아직 건강하시기 때문에 향후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자 전화를 드렸다고 했다.

 

“틀어진다는 게 무슨 의미요?”

 

“예 선생님, 이 우주선은 자원하신 분들의 시신을 A항성까지 안전하게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주선에는 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로봇들만이 탈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참, 말씀드리기가….”

 

“그러니까, 내가 아직 죽지를 않아서 A항성으로 갈 수 없다 이 말이오?”

 

“아,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 뜻이 아니라…선생님이 원하신다면 동행하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쉽지가 않은 방법입니다. 선생님.”

 

“내가 죽지 않는 이상 프로젝트에 동참하긴 사실상 어렵다 이 말 아니오?”

 

“음, 그래서 조만간 선생님을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결정 난 것은 없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염원이 무너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노기로 가득 차 있었다. B가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말에 쌀쌀맞게 대답한 것을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그러나 전화를 끊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했다. 5년이란 시간은 길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충분히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필요 이상으로 건강했지만, 노년기의 건강이란 언제든지 한 순간에 꺾일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부모가,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이 그렇게 스러져버린 것을 보았다. 5년이라면, 그 시간 동안 분명 죽음의 문턱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B도 확답을 주지 않은 것 같았다. B의 책상엔 그에 대한 서류가 놓아져 있었을 것이다. 1981년생, 올해 나이 95세(만 94세). B로서는 신기했을 지도 모른다. B는 전화를 걸기 전 서류를 검토하면서, 옆에 있는 동료에게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이 노인네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말이나 알아들으려나? 그러나 전화를 다 받고나서, B는 고민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정정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B는 분명 처음 그가 전화를 받았을 때 멈칫했었다. B는 전화를 끊고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을 지도 모른다. 젠장, 이거 생각보다 일이 귀찮아질 지도 모르겠는걸.

 

 

S기업 빌딩은 높았다. 212층짜리 빌딩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나라에 이런 건물이 들어설 거라고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타이페이에 빌딩이 들어설 때도, 두바이에 147층짜리 빌딩이 들어설 때에도 그는 모두 다른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911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후로 세계는 더 이상 하늘에 도전하는 바벨탑을 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예측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예측을 비웃듯이 더 높이 바벨탑을 세워나갔다. 한 층, 한 층, 한 층. 사람이 저 정도 높이에서 숨을 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높은 빌딩들이 세상에 가득했다. 그는 여전히 낯선 기분이었다. 예전엔 하늘을 보아도 목이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빌딩의 첨두로 포위된 하늘이 너무도 좁고 멀리 있어서 바라보기 힘들었다.

 

빌딩 안으로 들어서자 홀로그램이 그를 막아섰다. 홀로그램은 몇 가지 기본 사항을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침묵 했다. 홀로그램은 스캔을 통해 얻어낸 그의 신상정보를 표시했다. 승인되었다는 빨간 글씨가 홀로그램의 위에 새겨지자 홀로그램은 사라졌다. 그리고 데스크 업무를 보는 여직원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J 선생님, 맞으시죠?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우주개발부서는 209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209층으로 향했다.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여직원은 그를 세련된 가구들과 피카소의 그림이 걸린 응접실로 안내했다.

 

“곧 B팀장님이 오실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직원은 공손히 인사하고 응접실을 나갔다. 그는 천천히 응접실에 걸린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피카소의 그림인 줄 알았던 것은, 피카소의 그림이 아니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변형해놓은, 팝 아트의 일종이었다. 피카소의 변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림은 네 점이 있었다. 칸딘스키, 달리, 피카소의 그림 두 개. 모두 변형된 그림들이었다. 몇 분이 지나고, 그림을 보고 있는 그에게 한 사내가 다가왔다.

 

“제이스의 작품들입니다. 저희 부장님이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대가의 그림을 망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냈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피카소의 스케치에 강렬한 원색들을 배치시킴으로써 어떤 정서적 감회를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강렬한 원색들은 잘 섞이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굳이 피카소에 기대어야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낭만주의 그림들이 좋소이다. 그건 명확하잖소. 뭘 그렸는지.”

 

그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다. 키가 훤칠히 큰, 잘 생긴 청년이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S기업 우주개발팀 팀장 B라고 합니다.”

 

B는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말단 직원인 줄 알았는데 팀장이라니, 그는 새삼 놀랐다.

 

“안녕하시오, J라고 하오.”

 

B는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아닙니다. 바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차는 안 주나?”

 

“아, 예. 무슨 차로 준비 해드릴까요?”

 

“난 커피. 믹스 커피.”

 

B는 직원에게 차를 준비하게 했다. 그는 B를 유심히 살폈다. 검은색 정장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조각처럼 잘 생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시원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다른 직업보다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B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저돌적인 것이 싫지는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아시다시피 저희 프로젝트에 가장 먼저 신청하신 분이기 때문에―그리고 적지 않은 투자금을 내신 분이시기 때문에 저희 S기업에서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특별히 생각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참, 이런 상황이 다가온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저희의 잘못이 큽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사과하고 돈 돌려 줄 테니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뭐 그런 건가?”

 

“아닙니다, 선생님. 물론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선생님에게 이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선생님의 선택이 가장 중요합니다.”

 

B는 그에게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투자금과 보상금을 받고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방법.

 

“이 나이 먹고 돈이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러자 B는 두 번째 선택지를 제시했다.

 

“저희가 10년 뒤에 또 한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우주선을 통해서 A항성으로 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첫 번째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10년 뒤라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평가절하라고 생각했다. 그가 공들여 짜놓은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 계획이 죽음에 관한 것이라면.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B는 난감한 듯했다. B는 엄한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투둑, 투둑 치고 있었다. 불안해서 그러는 거겠지.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생각했다. 불안할 때마다 깨물었던 손톱, 떨었던 다리. 그는 곤경에 처할 때마다, 자신이 불안하단 사실을 세상 밖에 드러냈다.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B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선생님,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B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결심한 듯 말을 이어나갔다.

 

“산 채로 우주선에 탑승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상태로 우주선에 탈 수 없는 것 아니었소?”

 

“예, 사실은 그렇습니다. 우주선에서 사람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탄 단 말이오?”

 

“예, 그것이…. 현재 J 선생님과 D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다른 신청자분들은, 애석하게도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리고 고객님들은 현재 저희가 소중히, 아주 철저하게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님들은 5년 뒤, 우주선에 탑승하게 됩니다. 우주선에 탑승하면, 고객님들은―선생님도 아실 겁니다, 냉동인간 말입니다―급속냉동장치에 의해서 영원히 보존됩니다. 그렇게 150년이 넘게 걸리는 여행의 끝에 소중히 그리고 안전히 보존된 상태로 A항성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근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음…그러니까 선생님, 선생님은…꼭 이번 기회에 A항성으로 가고 싶으신 것이잖습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A항성에 가서 묻히고 싶은 것이지, A항성에 꼭 가고 싶은 것은 아니오.”

 

“예, 선생님. 그러시겠지요. 음…선생님께서 정말로 원하시고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이렇게 제안을 드리는 게 실례가 될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그는 질질 끄는 B의 모습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가 B에 대해 느꼈던 첫인상은 틀린 것이다. B는 소심하고 대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고, 남의 눈치나 보는 작자였던 것이다. 그는 급한 성격을 자제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 노기가 드리운 것이다. B는 눈치 빠르게 그의 노기를 읽어내었다.

 

“예,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만약, 5년이 지난 뒤에도―이런 표현 밖에 쓰지 못하는 저의 부족한 어휘력에 대해 우선 양해를 구합니다―건강하게 살아계신다면, 그리고 그때까지 선생님께서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하시길 원하신다면, 저희가 마지막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선생님께서 급속냉동장치에 들어가신 채로 우주선에 탑승하시는 것입니다.”

 

“음.”

 

그는 짧게 신음했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메이웨더의 훅이 그의 면상에 한 방 꽂힌 것만 같았다. 그는 훅을 맞아 흔들거리는 뇌를 붙잡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뭐, 냉동인간이라면 그 미래로 가서 살기 위해서 일부러 몸을 얼리는 그거 말인가? 근데 내 알기로 그게 얼리는 순간 인간은 죽게 된다고 들었는데.”

 

“예, 사실상 냉동인간이라는 것은 과거의 미신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냉동장치란 소중한 고객님들을 온전하고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말일세. 내가 그 냉동장치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인가? 살아있는 내가 그 냉동장치에 들어간다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B는 그의 질문에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B는 차를 한 모금 마셨고, 그에게 커피를 마시길 권했으며, 연신 탁자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도 이젠 굳이 B를 재촉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도 이미 B가 할 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B의 손가락은 메이웨더의 잽과 같았다. 잽은 계속해서 그에게 적중하고 있었다. 그는 가드를 올리고 있지도, 올릴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 이제 B가 입을 여는 순간, B의 혀는 메이웨더의 강력한 어퍼컷이 되어 그를 강타할 것이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로, 녹다운 상태가 될 것이었다. 그는 그런 상상을 쫓고 있었다.

 

“그래서 저희가 감히 선생님께 제안을 드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만, 선생님의 의지가 워낙 강경하시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이 프로젝트를 이어받은 지는 5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신 분께서―지금은 상임이사로 계십니다―만들어놓은 메뉴얼에는 사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책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첫 째도 설득, 두 번째도 설득, 세 번째도 설득. 예, 다음 기회로 미룰 수 있도록 설득하라는 것이 최우선시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밑에는, ‘혹시나 설득이 되지 않을 경우―그럴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고 확신하지만, 또한 없어야 하지만―유일한 방법은 우주선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라. 그렇게 해서 다시 설득을 시도하라.’ 고 되어 있었습니다. 예, 제가 지금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은…설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이 저희 프로젝트에 가장 힘이 되어주신 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투자해주신 금액은 저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개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고, 선생님께서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신청해주셨던 것은 저희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멘트도 그 메뉴얼이란 것에 적힌 것인가? 5년 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자네가 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고 있다는 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것인가?”

 

“예, 선생님. 선생님의 존함은 제가 5년 전 처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매일같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사실 무산 직전의 위기까지도 갔었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이 투자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기를 꺼려했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우주에 대해 투자하는 것이 헛된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아시겠지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주여행이라는 테마로 여행상품들이 팔렸던 것을요. 예, 그 상품들, 그런 기업들.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근접하지도 않았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급속도로 과학기술이 집중되어 발전한 거의 300년에 가까운 시간도 인간이 우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을 만큼 발전하게 만들어주진 못했습니다. 50년 전만 해도 인류는 마치 미국으로 여행을 가듯이, 유럽 여행을 가듯이 우주로 여행을 나갈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은하를 따라 열차가 달릴 것이고, 승객들은 열차에 앉아서 창밖을 수놓는 별을 볼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잠수함을 타고 해저를 탐험하듯이, 우주선을 타고 나가 별들의 바다에 잠길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은 발전을 거듭하다 이내 정체를 겪고 말았으니까요. 사람들은 실망했 습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요. 지구는 질리지만 그렇다고 우주로 나가기엔, 우주는 너무나 먼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직접 목도하신 어르신들은 이 프로젝트를 쉽게 믿지 않으셨습니다. 거액의 투자금을 내기에는 못미더우셨던 겁니다. 더 이상 진보할 거라고 믿어지지 않는 과학기술의 명백한 한계, 지금껏 자신들이 봐왔던 실패들…. 그때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저희에게 지원을 해주신 겁니다.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프로젝트를 폐기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프로젝트에 지원해주셨고 그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저희는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주셔서 모집인원을 모두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설득을 드리는 겁니다. 선생님. 이 사업은, 물론 저희 S기업은 무척 큰 기업입니다. 전 세계에 지사를 뻗친 기업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희와 선생님의 관계가 단순한 기업과 투자자, 기업과 고객의 관계라고만 생각하셔서는 안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거액을 투자한 이 프로젝트는 향후 S기업의 미래를 가늠할 프로젝트입니다. 그런 프로젝트의 시작을 함께 해주신 선생님은 저희에게 있어서 단순한 고객님, 혹은 투자자님이 아니십니다. 예, 이렇게 말씀드려도 믿지 않으시겠지만…. 선생님. 선생님에게 저희가 제안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선생님의 죽음을 담보로 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고려를 넘어서서, 저와 선생님의 관계, 저희 S기업과 선생님의 관계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 부디 잘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무조건 선생님의 의사를 따르겠습니다만….”

 

 

그는 빌딩을 나왔다. 그는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갈릴레이 이후 신은 죽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저 빌딩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빌딩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이, 저 하늘에 살고 있는 신을 찌를 듯이, 도전하고 있었다. 그도 분명 저 바벨탑을 쌓은 사람 중 하나였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걸까,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이 빌딩은 하늘을 뚫고 우주로 날아갈 것이다. 인류가 그토록 기원해왔던 일이다. 인류가 끝없는 바벨탑을 쌓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인류는 바벨탑을 계속해서 쌓을 것이다. 쌓고 쌓아서, 대기를 넘어, 지구를 넘어, 달을 넘어, 바벨탑이 A항성으로 이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쭉 쌓을 것이다.

 

피곤했다. 그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나이를 실감했다. 어쩌면, B의 우려와는 달리 5년 뒤에는 시체가 되어 우주선에 탑승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3년, 2년,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쓰러질 수 있는 게 그의 나이였다. 이런 생각은 그에겐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는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세상만사가 지겹다가도 그 지겨움 속에서라도 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붙잡고 살았다. 그는 30년 전, 암에 걸렸을 때 인공장기를 이식 받았고, 22년 전 심장 쇼크가 왔을 때에도 인공장치를 이식받아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그의 의지였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몸에선 인공장기들이 작동하고 있었다. 전혀 이질감 없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 장기를 이식 받을 때, 그는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생긴 간의 모습을 보고 거부감을 느꼈었다. 간의 형태를 하고는 있지만 너무나 투명하고, 차가운 간의 모습. 그건 간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두려웠다. 자신의 몸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의 몸은 간을 받아들였다. 그는 무척 건강해졌다. 수술 전에는 고통 때문에 마시지 못했던 술을 이젠 마음껏 마실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는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두려웠다. 그는 수술을 받고 난 몇 년 동안 비슷한 꿈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의 몸속을 탐험하는 꿈. 언제나 그의 간이, 그 차갑고 투명한 간이 쿨럭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심장을 쥐었다. 간은 저 밑에 있는데 말이다. 심장에 인공 칩을 심은 뒤로, 그는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지만 어쨌든 살아남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고,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손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살아남아왔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5년 안에 죽거나, 5년 뒤에 죽거나, 아니면 언제 찾아올 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며 살다가 결국 죽거나. 그에겐 죽음이란 선택지밖엔 없었다. 그는 B에게 생각해본다고 했다. 생각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는 B에게 D의 연락처를 요구했다. B는 D 선생의 연락처와 현재 입원해 있다는 병원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병원이라니. 그는 신음했다.

 

딸은 두 달에 한 번 찾아왔다. 딸은 언제나 두 손 가득 무엇인가를 들고 왔다. 주로 반찬이나 그가 먹을 약이나 영양제들이었다. 딸은 빈손으로 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를 보고 웃음 짓지는 않았다. 그도 딸을 보고 웃음 짓지 않았다.

 

그날도, 딸은 집에 들어서며 그가 너무 넓은 집에 혼자 산다고 말했다.

 

“애비 보면서 할 말이 그것뿐이냐.”

 

그가 쏘아붙여도 딸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딸도 어느새 70살에 가까워진 나이였다. 물론 나이와 상관없이 딸은 단 한 번도 그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도 예전 같진 않았다. 두 번의 커다란 수술과 열 차례가 넘는 자잘한 수술들과 잔병치례는 그에게서 권위와 힘을 앗아갔다. 그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딸의 말처럼, 커다란 집에서 홀로 사는 기괴한 노인네. 그것이 그가 가진 타이틀의 전부였다. 딸은 항상 그에게 그 사실을 각인시키려 했다. 마치 그에게 왜 아직 죽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딸을 보면 심기가 불편했다. 그런 한편으로, 딸을 보지 않아도 심기가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딸은 식탁에 반찬거리와 약을 늘어놓고 일일이 설명을 했다. 이 반찬은 어떻게 먹고, 이 약은 언제 먹고, 이 영양제는 어디에 좋고…. 그는 건성으로 들었다. 그는 딸이 가져다주는 것을 잘 먹지 않았다. 반찬은 식욕이 없어서, 그리고 약은 먹는 것이 귀찮아서였다.

 

“건성으로 듣지 좀 말고. 알았죠? 이거 한약이니까 꼭 먹어야 돼.”

 

딸은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그런 딸을 굳이 잡지 않았다. 딸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C가 저녁 먹자고 해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딸은 그럴수록 석연치 않은 듯했다. 불안한 듯이 그를 자꾸만 돌아보면서, 딸은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런 딸을 보고 있다가, 그는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아빠, 5년 뒤에 떠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병 걸렸어? 의사가 뭐라고 했어?”

 

“아냐, 병에 걸린 게 아니라…. 20년 전에 신청했던 거 기억하니? 우주로 가는 거.”

 

“아….”

 

딸은 맥이 빠진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거 죽어야 가는 거 아니었어? 아직 안 죽었는데 어떻게 가.”

 

“담당자 말이 그때까지 죽지 않는다면…. 우주선에 내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하더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뭐 그 우주선이 크루져 같은 거야? 시체들만 담고 가는 거 아니었어?”

 

“말조심해라. 시체라니. 크루져 같은 건 아니고…냉동장치를 마련해주겠대. 그러니까,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거지.”

 

딸은 기가 막혀했다. 그건 살인이지 않느냐고. 안락사도 허용되지 않는 이 사회에서 그런 범법적인 일이 행해지는 것이 맞는 일이냐고, 그리고 그런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아버지도 제정신이냐면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5년 뒤에도 살아 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면…이 애비는 꼭 땅에 묻히고 싶어. 그게 불가능한 이 지구에 남아서, 내 시체를 불태우는 것보단 얼리고 얼려서, 그래서 그 시체를….”

 

딸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발을 신고 나가버렸다.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가 그를 거슬리게 했다. 한참 뒤에, 그는 집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혼자 살기엔 너무나 큰 집이었다.

 

그는 그 날 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로봇을 주문했다. 일상적인 대화와 가사를 봐주는 로봇이라고 했다.

 

“홀로 계시는 부모님에게도 무척 좋은 말동무, 친구가 되어줄 제품입니다.”

 

쇼호스트가 소개하는 동안에도 로봇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옆에 앉은 노인 배우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쇼호스트가 손을 뻗으면 쇼호스트의 손을 잡았고, 어색하게 녹음된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다음 날 로봇이 배송되었다. 그는 상자를 뜯었다. 로봇은 딱 그의 키만 했다. 그는 이 로봇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난감했다. 그가 로봇을 들려고 시도한다면, 그날로 그의 허리는 생명을 다 하고 말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도 로봇 옆에는 사용설명서가 놓여 있었다. 로봇의 가슴에 위치한 전원버튼을 누르면 로봇이 알아서 작동할 것이라고, 사용설명서 가장 첫 장에 적혀 있었다. 그는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자 네모난 눈에 불이 들어오더니, 스스로 상자에서 일어섰다. 로봇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듯했다.

 

“제 이름은 SL-414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는 SL-414의 손을 잡지 않았다. SL-414의 손은 어색하게 공중에 떠 있다가, 정말이지 한참을 떠 있다가 내려갔다.

 

“주인님의 이름을 말씀해주세요.”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로봇의 가슴에 그의 이름이 입력되었다. 로봇의 배터리량과 함께 그의 이름이 표시되고 있었다.

 

“집이 넓어서, 그래서 산거니까.”

 

그는 변명하듯이 중얼거렸다.

 

“시키실 것이 있으십니까?”

 

그는 로봇에게 청소나 하라고 했다. SL-414는 청소기를 돌렸다. 윙, 윙. SL-414는 그저 청소기를 돌렸다. 그는 소파에 피곤한 몸을 뉘었다. 그는 천천히 매뉴얼을 읽어보려 했지만, 돋보기를 침대 맡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돋보기를 가지러 가기엔 방은 멀리 있었다. 그는 청소를 하고 있는 SL-414를 바라보았다. SL-414는 분주히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SL-414를 바라보다가 잠에 들었다. 꽤 깊은 잠이었다.

 

그를 깨운 것은 SL-414가 아니라 벨소리였다. 딸의 전화였다. 딸은 그에게 쏘아붙였다. 다음 달 엄마 기일인 건 알죠? 벌써 그렇게 되었나. 늙어서 이젠 기억도 못 하나봐.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냐, 잊어버릴 수도 있지. 잊을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엄마 기일을 잊어? 미안하다, 미안해. 아무튼 갈 거예요? 가야지 그럼. 무리할 거 같으면 가지 말고. 아냐, 가야지. 그럼 다시 연락드릴게요. 딸은 전화를 끊었다. 딸과 전화를 하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딸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찝찝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는 그 감정과 가장 가까운 단어가 죄책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다시 소파에 몸을 푹 파묻던 그는 자신의 눈앞에 SL-414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SL-414는 그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4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아마 SL-414는 청소가 끝난 뒤부터 쭉 그의 명령을 기다리며 서있던 듯했다. SL-414는 그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일자로 쭉 찢어진 눈에 찍힌 두 불빛을 그에게 집중했다. 그는 저 불빛 뒤에 숨겨진 SL-414의 진짜 눈을 보고 싶었다. 어쩌면 눈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는 복잡한 로봇공학의 설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SL-414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저 두 개의 붉은 점이 SL-414의 진짜 눈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진짜 눈을 굳이 찾으라면, 일자로 쭉 찢어진 모든 부분이 다 SL-414의 눈일 것이다. 그렇다면 SL-414의 눈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일 것이다. SL-414는 전체적으로 각진 형태였다. 얼굴은 정사각형, 몸통도 정사각형. 팔과 다리만 곡선으로 설계되어 있었지만, 그 역시 재질 때문인지 부드러운 곡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었다. 움직이는 무거운 고철덩어리.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겐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날, SL-414의 매뉴얼을 보았다. SL-414가 가져다 준 돋보기로, 그는 힘겹게 매뉴얼을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갔다. 글씨는 배려심이 없게 너무나도 작았다. 혼자 사는 노인분들에게도 좋을 거라고 광고한 것치곤 너무나도 배려심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로봇은 혼자 사는 노인이 직접 사는 게 아니라 선물해주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가 D의 병원을 찾아간 것은 B를 만나고 나서 이주일이 지나고서였다. D의 온 몸에는 생명유지 장치가 붙어 있었다. D는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D의 곁에는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한참을 D의 곁에 서 있었다.

집에 돌아온 그를 반긴 것은 SL-414였다. SL-414는 딱 필요한 말만 건넸다.

 

“옷을 받아드릴까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식사를 준비할까요?”

 

그는 그러나 그런 SL-414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SL-414의 눈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소파에 몸을 푹 파묻었다. 지팡이는 바닥에 쓰러졌다. 피곤했다. 눈을 감고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또한 영원히 잠드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또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감정이기도 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영원한 휴식 뿐이었다. 평온한 상태로 영원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 100살에 가까운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오면서, 그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 고민들, 살아오면서 갖게 된 수많은 무게들을 모두 떨쳐낼 수 있는 그런 휴식. 그러나 모든 것을 떨쳐내고도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휴식. 존재하면서도 평온할 수는 없을까.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고들 하지만, 그 말은 너무도 잔인한 말이 아닌가. 인간은 왜 죽음을 향해서만 가야 할까. 죽음으로 향하지 않고도 영원한 휴식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왜 생(生)은 고통이고 사(死)는 평온이란 말인가. 모든 것이 모순이었다. 그는 어떤 철학적 답안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적인 답안을 원했다. 그는 SL-414를 바라보았다. 그래, 차라리 로봇이 되는 거야.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영원히 사는 육신이 되면 모든 고통에서도 벗어나고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이잖아. 인간을 로봇으로 만드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라고 할 수 있나? 아니,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저 로봇은 내 눈앞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저 로봇은 그저 물질으로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이지만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답답함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SL-414는 그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붉은 두 불빛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SL-414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것 봐, 저게 진정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프로그래밍 된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의 섭리 속에서 굴러가는 존재에 불과하지 않는가. 저건 지금 살아 있는 것이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저 녀석은 죽음과는 상관이 없다고. 죽음의 섭리에, 생의 섭리에는 껴있지 않는 존재란 말이야. 그저 존재할 뿐이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그렇다면 나는 실존인가? 실존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실존이 무엇인가? 아니 그 전에 인간 역시 시스템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태어난 이후로 죽음을 바라보며 걸어간다는 그 명확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그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SL-414는 그런 그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그가 혼자 살기에, 아니 SL-414와 함께 살기에도 집은 너무 넓고 고요했다.

 

“너.”

 

“예, 주인님.”

 

“너는 살아 있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나처럼 숨을 쉬고 살아 가냐는 이야기야.”

 

“아닙니다. 저는 주인님처럼 생체적 장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너는 나처럼 생각을 할 수 있나?”

 

“예,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주인님의 명령에 대한 프로토콜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시스템에 저장되어 있는 매뉴얼을 토대로 주인님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그것이 너희들이 하는 생각의 전부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가서 물이나 좀 떠와.”

 

“예, 주인님.”

 

그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로서는 절대 답안을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는 죽음의 섭리에 속박된 존재였다. 지금껏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열심히 발버둥 치며 살아왔으나, 결말은 결국 죽음일 뿐이었다. 지금 당장 죽느냐, 자진해서 죽느냐. 자연적으로 죽을 것이냐, 자진해서 죽을 것이냐. 아니, 어쩌면 평생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또한 그는 평생 살고 싶진 않았다. 이런 상태로 살고 싶진 않아…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떠올렸다. 건장했던 그 시절을. 아무런 걱정도 없었던 그 시절을. 배는 고팠어도 포부는 있었던 그 시절을. 그리고 그 포부를 실제로 실현시켜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어냈던 그 시절을. 그러나 그 시절은 모두 사라졌다. 그는 나이에 걸맞게 여전히 건강했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었을 뿐, 오히려 젊었을 적과 비교한다면 또한 상대적으로 무척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의 무릎에는 연골이 없었고, 디스크는 닳고 닳아 퇴행할 것조차 없어졌다. 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인공장기가 붙어 있었다. 몇 차례 이어진 수술의 여파로 그는 지팡이가 없으면 제대로 걷지 못했고, 조금만 오랫동안 외출을 해도 금방 지쳐서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잠은 줄어들었고, 새벽에는 항상 깨어나야 했으며, 나오지도 않는 오줌을 누기 위해 변기 앞에 서서 고통의 신음을 흘리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늙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는 죽음에 무척 가까운 상태였다. 단순히 육체만 늙은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힘든 삶을 견뎌왔다. 그리고 여전히 견디고 있고. 모든 일들은 지나갔지만 그의 기억에 남았다. 또한 그의 앞에는 언제나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집안에서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언제나 새로운 현실이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더라도, 그렇게 집에만 있더라도 그는 현실과 부딪치고 있는 것이었고, 그도 그 사실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고통의 원인일 지도 모른다. 인간의 숙명이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이자 고통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고통이었고, 동시에 죽음을 기다리는 것도 고통이었다.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고통이었다.

 

타인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그리고 그 죽음을 기리는 것도 그에겐 고통이었다. 딸이 그를 데리러 왔다. 딸은 SL-414을 보고 놀랐다.

 

“언제 로봇을 샀어? 필요하면 말을 하던지 그랬어요. 손자가 로봇회사에서 일하는데. 어머, 우리 아들 경쟁사 로봇이네. 이런 걸 왜 사요?”

 

그는 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로봇아, 가자.”

 

그는 SL-414와 함께 대문을 나섰다. 딸은 당황했다.

 

“로봇도 데려간다고? 엄마한테?”

 

“왜, 네 엄마는 이런 것도 못 보고 죽었는데 보여주면 좋지.”

 

딸은 기가 찬다는 반응이었지만 그는 끝내 SL-414를 딸의 차에 태웠다. 딸은 투덜거리며 운전석에 앉았다. 딸은 로봇을 좋아하지 않았다. 단순히 환경단체에서 일해서 로봇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딸은 생명이 있는 것을 좋아했다. 생명이 있고, 또한 그로 인한 죽음이 있는 존재들을 좋아했다. 딸은 어렸을 때부터 그러했다. 커서도 그러했고. 딸이 멸종위기 동물들을 지키겠다며 국제단체에 가입하고, 말도 없이 집을 나가 남극이니 북극이니 떠돌았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딸은 모든 생물에겐 자연적인 죽음이 있다고 믿었다. 인공적인 죽음, 혹은 불필요한 죽음은 막고자 했다. 그는 그런 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에 한 종의 멸종이 예견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흐름이고자 한다면, 그것을 막는 딸의 행위는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굳이 꺼내진 않았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딸은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는 로봇을 싫어했다. 요즘엔 그 흔한 로봇 가정부―SL-414와 같은 로봇들―도 단 한 번도 둔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재밌는 건 딸의 아들이자 그의 손자인 C가 로봇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C는 오늘 오냐?”

 

“바쁘다고 그러더라고, 무슨 출장 갈 일이 생겼다고.”

 

“걘 지 할머니 기일에만 꼭 출장을 가더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빠는. 벨트나 메요.”

 

“왜 운전을 네가 하냐. 오토로 돌려. 난 네 운전실력 못 믿는다.”

 

“매년 내 차 타고 갔으면서 또 그러네. 그만 좀 해요.”

 

SL-414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용히 벨트를 맸다. 그의 오른손은 창 위에 붙은 안전바를 찾았다.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한적한 산이었다. 그의 걸음으로 아내의 산소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은 짜증을 내긴 했지만 그를 기다려주었다. SL-414는 말없이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는 매번 무덤 앞에 설 때마다 숨이 막혀왔다. 저 솟아오른 무더기 아래에 아내가 묻혀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무더기 앞에서 술을 따르는 행위가 꼭 우상숭배 같았다. 미신 같기도 했다. 나의 아내는 저런 흙무더기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그의 아내는 분명 저 흙무더기 밑에 묻혀 있었다. 그가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형체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백골도 이미 흙이 되어 있겠지. 흙이 되어서, 나무 관에 쌓여 있다가, 나무마저 흙이 되는 그 순간, 아내는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지금 아내는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무는 언제 흙으로 돌아갈까? 내가 5년 뒤 우주선에 올라서, 150년 뒤에 A항성에 도착해서 묻힐 때? 그땐 나무가 흙으로 돌아갈까? 내가 땅에 묻힐 때 아내는 흙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지, 땅으로 돌아간다니, 웃긴 이야기야. 땅으로 돌아간다는 표현도 웃긴 표현이다. 그는 그의 부모가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비웃었었다. 땅에서 태어나질 않았는데 왜 땅으로 돌아 가냐고. 그가 아내를 땅에 묻은 것은, 그리고 아들을 땅에 묻은 것은 오로지 아내의 시체를, 아들의 시체를 불태우기 싫어서였다. 그가 A항성으로 가고 싶었던 것도 온전히 그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시체를 누군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장례문제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그것은 바로 더 이상 자신의 육체의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해놓고 떠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함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수의를 두고, 짜놓은 관을 두고,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다. 그의 부모가 그러했다. 죽기 직전의 아내가 그러했다. 아들은…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죽고 말았다.

 

땅에 묻힌다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 차라리 불타서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고 한다면, 즉 죽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고 해도, 우리는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 않는가.

 

아내의 무덤 옆에 아들의 무덤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가버린 아들. 서른 세 살이 되던 해에 떠나버린 아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아들이었다. 아내와 아들에게 그는 죄를 많이 지은 기분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결혼하고 낳은 자식이었다. 어려운 시절이어서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구체적인 기억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자기방어적으로 바뀌어, 이제는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의 조각으로 변해버렸지만.

그는 아들의 무덤 옆에 놓인 자리를 보았다. 텅 빈 자리, 내 무덤이 들어섰어야 할 자리. 내가 누웠어야 할 자리. 15년 전에 죽었어야 했을까. 규제가 있기 전에 죽었다면 아내의 옆에, 아들의 옆에 묻힐 수 있지 않았을까. 딸은 죽어도 땅에 묻히지 않을 테니, 그리고 죽기엔 아직 젊은 나이니 그렇다고 쳐도….

 

그러나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죽은 자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다고, 우리가 땅속에서 손을 잡고 있을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저 나무에 갇힌 채로 썩어갈 뿐이다. 이미 그때엔 시체가 있을 뿐이다. 무덤엔 시체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떠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젠 장례라는 문제 자체가 의미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을 속일 순 없었다. 더 생각하면 스스로를 부인하게 될 것 같아서 외면한 것이었을 뿐이다.

 

“아빠, 진짜로 할 생각이에요?”

 

“고민 중이야.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5년 뒤에도 내가 살아있을 것 같니?”

 

“아빠는 왠지 그럴 거 같은데.”

 

그는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나랑 상의는 해요. 난 그런 안락사는 인정할 수가 없어.”

 

“음.”

 

“그리고 그 로봇한테 내 번호 입력해둘 테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 올 수 있게, 알았지?”

 

“알아서 해라.”

 

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차는 질서정연하게 깔린 도로를 달려 그의 집에 도착했다. 그가 소파에 앉았을 때, 딸은 능숙하게 SL-414의 가슴팍을 눌러 번호입력 화면을 띄웠다. 그는 그런 딸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그렇게도 로봇을 싫어하는 딸이 로봇을 저리도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굳이 딸에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살면서 이보다도 더 이상한 일들을 많이 겪지 않았던가. 예를 들면, 100살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점까지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가 바로 그 이상한 것이 아닌가.

 

 

그 날이 왔다. 정말로 올 줄 몰랐는데. 5년이란 시간 동안 세상엔, 그리고 그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의 나라에선 정권이 바뀌었고, 인류는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한 대 더 쏘아 올렸으며, 보이저 4호가 우리 은하에서 새로운 항성들을 몇 개 발견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홀로그램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전 세계 12개국 대표들이 모여 지구의 대기문제에 대한 새로운 협약을 발표했다. 지열로 새로운 대체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는 기술이 상용화되었다. 그렇게 환경단체들이 힘써서 보존해오던 아프리카 코뿔소는 결국 잔악한 인간들에 의해, 모든 종이 멸종되고 말았다. 이에 환경단체는 일제히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이 저지른 행동을, 그리고 그 결과를 비난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또한 인간들이 바다로 진출함에 따라, 2000년대를 넘어서며 다시 개체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던 흰수염고래는 현재 전 세계에 5마리만 살아남아 바다를 헤엄치게 되었다. 한편 유전공학은 30년 전 멸종했었던 아프리카 들쥐를 복원해내는데 성공했다. 동물단체는 이러한 성과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몰라 침묵했다.

 

손주가 결혼했고, 딸이 암에 걸려 쓰러졌다. 딸은 인공장기를 달게 되었다. 인공적인 죽음에 대해 설파하던 딸은, 그러나 살기 위해 인공장기를 달았다. 5년 동안 딸은 건강을 잘 회복했다. 그도 두 차례 쇼크로 쓰러졌고, 그러나 나이가 있어 수술을 하진 못했다. 그는 그저 병원에서 회복했을 뿐이다. 두 번의 쇼크는 그에게서 건강과 활기를 빼앗아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다시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고, SL-414의 부축을 받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론 회복할 수 있었다. D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는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D의 시체는 우주선에 실리게 되어 있었다. 장례식에서 그는 B를 만났다. 그는 B에게 그동안 보류했던 질문의 답을 했다. 3년 만에 답을 하게 되서 미안하오, 그때 얘기했던 대로 준비해주시오. 아…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대신 몇 가지 서명해주셔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 그는 서류에 서명했다. 예, 선생님. 제가 모셔다드릴까요? 아니, 괜찮소. 택시 타면 되니까. 장례식장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장례식장 밖으로 나온 그를 우산을 든 SL-414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그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에요? A항성으로 안 가기로 했다. 그래? 다행이네. 며칠 뒤에 반찬 들고 찾아갈 게요. 그래, 알았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5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SL-414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버린 SL-414는 팔과 다리가 한쪽씩 부서지는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꽤 많은 수리비가 나온다는 사실에 잠시 망설였지만 그는 SL-414를 수리했다. 그 결과 SL-414는 오른팔보다 더 좋은 왼팔을, 왼쪽 다리보다 더 좋은 오른쪽 다리를 갖게 되었다. 두 번의 시스템 업데이트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SL-414가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주선이 떠나게 되는 날을 하루 앞둔 밤, 그는 잠에 들지 못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SL-414는 그런 그의 옆에 서있었다.

 

“로봇.”

 

“예, 주인님.”

 

“너도 죽는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기능을 멈추게 되냐는 거야.”

 

“예, 최대 20년 동안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15년은 더 살 수 있단 말이군. 근데 말이야. 나도 너처럼 90살에 가까우면 죽게 설계가 되어 있었을 거란 말이야. 근데 난 아직도 살아남아 있어. 관리와 보수를 잘 받았다는 얘기겠지. 그렇다면 나는 최대 몇 년까지 살 수 있었을까? 내일이면 알지 못하게 되겠지. 네가 언제 기능을 멈추게 될 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구나.”

 

그러나 그는 그날, 눈을 감았을 때, 내심 잠에 들었을 때 조용히 죽음이 찾아와줬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여전히 두려웠기 때문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냉동장치에 들어간 채로, 멀어져가는 땅을 바라보면서 얼어붙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냉기를 떠올렸다. 또한 죽음을 떠올렸다. 안개처럼 희미한 죽음이란 두 단어를.

 

그러나 끝내 그에게 죽음은 조용히 찾아오지 않았다. 그가 잠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죽음이 찾아와서 그를 데려가기엔, 그는 죽음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날이 밝았다. SL-414는 그런 그의 곁에 가만히 서있었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집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새벽의 푸른빛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빛이 될 것이다. 이제 8시간 남았다. 그는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우주선의 출발을 함께 할 것이다. 우주선과 함께 출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산 채로 우주선에 탔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2시간 뒤에 B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금 모시러 가겠습니다, 준비를 하셔야 되니까요, 혹시 마음이 바뀌시진 않았는지요? 아,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30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그는 한 달 전부터 오늘 입으려고 꺼내놨던 양복을 바라보았다. SL-414는 그의 명령을 받고 그에게 양복을 입혔다. 삐그덕하는 소리가 거슬렸다. 삐그덕하는 소리는 SL-414의 원래 팔에서 나는 소리였다. 바꿔줄 때 아예 팔 다리 전부 다 바꿔줄 걸 그랬나. 기름칠이라도 제대로 해줄 걸. 내가 떠나면 이제 누가 얘를 관리해줄까? 스스로 할 수 없을 텐데. 딸에게 부탁해볼까? 그래, 손자가 로봇회사에 다니는데…정성껏 돌봐주겠지. 혹시 알아, 계속해서 부품만 잘 갈아준다면 나처럼 10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래서 이 녀석도 스스로 우주로 나갈 지 모를 일이야. 그는 딸에게 남길 메모를 적어놓기로 했다. 양복을 갈아입는 데에만 17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그는 딸에게 SL-414를 맡긴다는 이야기는 적지 않았다. 그저, 사실은 오늘 떠나며, 오늘 자신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미리 이야기하지 않아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적었을 뿐이다. 집을 SL-414에게 맡긴다는 이야기도 적었다. 가끔 와서 SL-414를 돌봐주라는 이야기도 적었다. SL-414가 작동을 멈추었을 때, 이 집을 처분하라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엔, 이건 그저 내 뜻이고 집의 명의도 네 앞으로 돌려놨으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고 적었다.

 

그는 SL-414에게 자신은 떠나며, 자신의 집에서 알아서 살아가라고 했다. 집에 있어도 되고, 나가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도 된다고 했다. 내가 없으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라고 했지만, SL-414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기대 하지 않았다. SL-414는 그가 명령했기 때문에 그를 따라 나서지 않았다. B가 찾아왔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었다.

 

우주선을 발사하는 곳까지는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B는 그를 위해 즐거운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더 이상 그에게 설득을 하려 하진 않았다. 아예 우주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B는 그에게 지난 2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변화들을, 자신에게 있었던 재미난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런 B를 내버려두었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생각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그는 모든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차는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이미 우주선이 출발하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탁 트인 황야에 빌딩만한 우주선이 서있었다. 저곳이 내 안식처인가. 차가 발사대 근처에 멈추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흑인, 백인, 황인, 그리고 홍인까지…. 그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B는 그에게 서류를 내밀었고, 그는 서류에 서명했다. 펜을 들고 망설였지만, 끝내 서명을 했다. 그는 지팡이를 짚으며 B를 따라갔다. B는 그에게 설명했다. 그는 설명을 들었다. 차분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B의 단어는 거침없었다. 선생님은 우주선에 들어가시게 되면, 가장 높은 층에, 가장 오른쪽에 있는 1번 냉동캡슐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냉동캡슐은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졌고, 어떤 변수에도 탁월하게 대응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올라가시는 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아 걸어 올라가셔도 되긴 하지만…예,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선생님이 캡슐에 들어가시면, 적당한 온도로 유지됩니다만, 우주선이 출발하는 순간부터는 냉동이 시작될 겁니다. 아, 아무리 캡슐이 견뎌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선생님 연세에 급격한 변화, 속도를 견뎌내기엔 무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서 입니다. 예, 우주선이 일정한 상공에 이르게 되면 급속냉동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께서는….

 

그는 B의 말을 멈추게 한 뒤 물었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그 냉동이란 걸 우주에 나간 뒤에 해주면 안 되겠나? 우주선이 우주까지 나갈 때, 내 신체가 훼손되지는 않을 거 아닌가? 그 장치란 것이 성능이 무척 좋다니까.”

 

“예, 선생님. 그러나 선생님의 심장이 견디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그렇게 해주게. 냉동 되서 죽는 것보단 훨씬 자연스러운 방법 아닌가. 사실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 않지만.”

 

“예, 선생님.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이제 탑승하셔야 합니다.”

 

B의 뒤를 따라 그가 들어갔다. 그로서는 처음으로 보는 우주선이었고, 또한 우주선의 내부였다. B가 사진을 보여준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의 눈앞에 100개의 캡슐이 들어왔다. 캡슐은 20개씩 5층으로 되어 있었다. 마치 벌집을 보는 기분이었다. 벌집 같기도 했고, 아파트 같기도 했다. 또한 납골당 같기도 했다. 항아리가 아니라 캡슐이라는 차이일까. 그는 문득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원한 것은 아닌데. 어떤 면에선 그로테스크해보이기 까지 하는 시체들의 아파트. 100개의 시체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얼려버리는 새로운 장례방식일지도 모른다. 이 우주선은 영원히 출발 안 할 지도 모르지. 이 황무지에 세워진 납골당일 지도 모른다. 우주선을 테마로 한 납골당일 지도 모르지. 아니 어쩌면 A항성으로 간다고 하고 우주선을 중간에 버릴 지도 몰라. 훗날에 도착했다고 거짓말을 칠지도 모르지. 이 무인 우주선은 우주 어디선가 버려져서 떠돌게 될지도 모르지. 아니야, 도착할 거야. S기업인데. 투자금보다도 더 비싼 우주선일 텐데, 그걸 막 버릴 순 없겠지. 그럼에도 이 모습은…항아리에 시체를 담아놓은 납골당 그 자체로군. 아니 생각해보면 이 지구의 모든 땅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나무로 만들어진 캡슐 속에 사람들이 들어찬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지면 밑에 들어서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캡슐을 하나, 하나 지나칠 때마다 다시 만족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시체들이 정말 잘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죽은 것처럼, 아니 살아있는 듯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였다. 저 상태로 150년을 여행해서 A항성에 묻힌다 이거지. 그는 2층에서 D를 만났다. 생명 유지 장치를 붙이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한 층, 한 층 걸어 올라가 그는 드디어 자신의 캡슐 앞에 서게 되었다. 1번 캡슐이라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창이 바로 그의 앞에 나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뷰가 좋군. 모든 걸 볼 수 있겠어. 그는 자신이 죽을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근사했다. 그 어떤 인류도 해보지 못한 죽음을 맛보는 것이다. 저 99명의 사람들과는 다른, 나만의 근사한 죽음.

 

B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도 그런 B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는 자신의 지팡이를 B에게 건넸다.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정리했고, 캡슐로 들어섰다. 캡슐은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푹신한 매트에 몸을 뉘었다. 매트는 정확히 그를 품었고, 이내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이제 1시간 뒤 출발합니다, 선생님. B는 캡슐의 문을 닫았다.

 

1시간 동안 그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흘러갔다. 우주선 안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분 뒤 발사합니다. 59, 58, 57, 56, 55, 54, 53, 52, 51, 50, 49, 48, 47, 46, 45, 44, 43, 42, 41, 40―그는 여기서 잠시 딸을―, 39, 38, 37, 36, 35―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34, 33, 32, 31, 30, 29, 28, 27, 26―그의 지난 젊었던 나날을―, 25, 24, 23, 22, 21, 20, 19, 18―B를―, 17, 16, 15―그리고 SL-414를 떠올렸다―14, 13, 12, 11, 10, 9, 8, 7―그리고 자신이 심장마비로 죽을 것인지―, 6, 5―아니면 심장이 얼어붙어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인지를―4, 3, 2―생각했다―1.

 

굉음과 함께 우주선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캡슐이 흔들렸지만, B의 말처럼 캡슐은 견고했다. 매트는 그를 확실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는 편안함을 느꼈다.

 

우주선이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캡슐의 창, 그리고 그 창 너머에 있는 우주선의 창을 바라보았다. 발사대의 철근을 지나, 푸른색 하늘이 계속되었다. 우주선은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구름을 지났고, 오존층을 지나 성층권을 향해서,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날아올랐다. 밝은 빛이 사라지고 밝은 어둠이 우주선을 감쌌다. 지구를 나온 것이다. 서서히 멀어져가며, 창가엔 지구가 점점 작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주선이 출발할 때였는지, 발사대를 지날 때였는지, 구름을 지날 때였는지, 오존층을 뚫고 나올 때였는지, 아니면 우주에 도달했을 때였는지, 아니면 심장이 얼어붙어 죽게 되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는 그저 죽었을 뿐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혹은 원하지 않았던 대로,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를 실은 우주선은 150년 4개월 23일 21시간 32분 뒤에 A항성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A항성의 흙으로 덮여, 흙이 될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150년 4개월 23일 21시간 32분 뒤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채로 행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