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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貧)자의 가을

  • 작성일 2015-11-21
  • 조회수 174

빈(貧)자의 가을 / 흑비

 

 

 

텅 비어 너른 벌판도

기나긴 겨울로 갈아들 때는

누구에게나 너그럽지만은 않다.

 

 

 

펼쳐지다 만

오래 묵은 책 같은

지붕들 아래 좁은 골목길

그 골목길 접으며 다가오던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끊어지면

이 가을이 다 가도록

아무것도 거둘 것 없는 자들은

빈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村老의 분주한 추수와 갈무리를

먼 세상 바라보듯 멀뚱거리다가

 

 

 

문득

가슴 한켠에 처박힌

그 후진적인 쓸쓸함이나

방관자적 삶을 갈무리할 양으로

물결치는 갈대밭으로 뛰어들어서

하늘이 노랗게 자지러지고 싶건만

 

 

 

이 가을은

그들에게 그럴 여유도 주지 않고

습관처럼 그들을 밟고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