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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가족의 휴일」

  • 작성일 2015-12-21
  • 조회수 2,966


박준, 「가족의 휴일」




아버지는 오전 내내
마당에서 밀린 신문을 읽었고

나는 방에 틀어 박혀
종로에나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날은 찌고 오후가 되자
어머니는 어디서
애호박을 가져와 썰었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마을버스 차고지에는
내 신발처럼 닳은 물웅덩이

나는 기름띠로
비문(非文)을 적으며 놀다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바퀴에
고임목을 대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번 주도 오후반이야” 말하던
누나 목소리 같은 낮달이
길 건너 정류장에 섰다

▶시_ 박준 -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남.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있음.

▶낭송 - 최광덕 - 배우. , 등에 출연.


배달하며

낮달처럼 조요로운 가족의 휴일이다. 가장인 아버지는 바퀴에 고임목을 대고, 장차 시인이 될 아들은 무지개 빛 기름 띠로 젖은 땅에다 이상한 글을 쓴다. 이 시간과 공간이 있던 자리를 어느 날 그리움과 애달픔과 상실이 차지할 것이다.
“어머니가 노래를 시작하자 할머니가 함께 따라하신다. 엄마와 딸이 어린 소녀처럼 노래를 부른다....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아버지는 아마도 노래에 맞춰 아코디온을 연주하셨을 것이다, 나룻배처럼 몸을 흔드시면서....”
현재 미국의 주목받는 시인 가운데 하나인 중국계 시인 리영 리(1957- )는 무심한 풍경, 한가한 방안의 풍경을 진정어린 시어로 직조하여 가족 해체시대에 뭉클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 음악_ 이영배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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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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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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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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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10410윤찬휘

    내가 이 시를 읽으면서 가볍게 읽을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 시의 아버지는 마당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고, 어머니는 애호박을 가져다가 썰고 있었다. 우리의 삶을 가볍게 읽을수있게 표현한것 같아서 좋았고, 우리집의 모습도 생각이 나면서 좋아졌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생동감있게 표현한것 같아서 좋았다.

    • 2018-11-05 10:22:15
    10410윤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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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스타

    요즘 박준 시인의 시집이 인기가 대단하지요. 좋아하는 시인인데, 감사합니다. 따뜻합니다.

    • 2015-12-22 19:59:51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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