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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

  • 작성일 2015-12-24
  • 조회수 351

중풍병자

 

그 집에는 네 사람이 들어가서

다섯 사람이 걸어 나온다네 

--가버나움 지방의 작자미상 동요

 

1

 

제기랄, 염병할.

지치지도 않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지긋지긋한 태양. 지긋지긋한 아침. 저기 파리가 날아다니네. 저 썩어버릴 것들. 나오미 저년은 느려터졌는데다가 멍청하기 짝이 없다. 또또또 그냥 간다. 날 두고 그냥 가버린다.

여름은 겨울만큼이나 내게 곤혹스러운 계절이다. 여기나 저기나 전부 먼지투성이고 개털투성이에다가 거위가 우는 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잠을 잘 수가 없다. 해는 일찍 떠서 늦게 진다. 하루가 바쁜 사람들에게야 동 트는 시간은 귀중하겠지만,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염병할, 제기랄.

나는 재차 속으로 욕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실컷 욕설을 퍼부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굳어버린 내입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말은 어차피 아무도 듣지 못한다. 현란한 욕설을 퍼붓기에 내 입술은 뻣뻣해서 온 힘을 다해야 한 두 마디 할 수 있는 것이 전부다.

파리는 왱왱거리다가 내 뺨에 앉았고, 나는 다시 누워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저주를 그 작은 곤충에게 퍼부었다. 뒈져버려라 이것아. 죽어 뒈지란 말야.

낮도 없고 밤도 없다. 이곳에는 병자뿐이다.

나는 지옥에 매여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산다. 정신은 미쳐서 죽어가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잘만 굴러간다. , 이런 멋지고 지독한 세계가 있나.

나. 나로 말할것 같으면 가버나움에서 태어나 일평생 이 곳에서만 산 지극히 평범한 돗자리 짜는 장수라 할 수 있다. 마을 밖으로 5km 넘게 나가본 적은 없지만, 나름 인간관계도 원만했고 마을의 사정과 사람들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았다. 그래, 어릴 때 나는 그렇게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아이였지. 해서는 안 되는 짓인 줄 알지만 늙은 랍비를 골탕 먹였고, 가끔은 성서공부도 빼먹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십계명을 지켰고 청년이 되어서도 착실하게 가업을 이었으며, 저 별로 착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여자를 아내로 삼아서 툴툴대긴 했지만 열심히 벌었고, 이듬해 그리고 이듬해 태어나는 아이들도 굶기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삼 년도 지나기 전에 몸매 빼고는 봐줄 것도 없는 여자가 살이 부어터진 아줌마가 되었어도 나는 가정에 충실했어. 돗자리 짜는 것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돗자리 만들 때는 품질이 그런대로 괜찮은 것들을 만들려고 했지. 가버나움에서 내 돗자리는 제법 괜찮다는 평가도 받았는걸.

뭐, 가끔 세금을 떼어먹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 적도 있지만 아주 가끔 뿐이었어. 못된 동업자들의 말에 넘어가서 그런 적도 있었지. 하지만 맹세코 내가 떼먹은 돈 때문에 지고하신 헤롯왕이 그 부와 명성에 해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야. 그 후로도 나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꼬박꼬박 다했으며, 유대인으로서의 의무도 꼬박꼬박 다했지. 얼마 없는 살림에 십일조도 항상 냈으니까. 내가 바친 돈으로 저 회당의 선생들은 아마 멋들어진 집도 짓고 나귀도 사고 예배당도 지었을 걸. 그 돈이 내게 있었다면 나는 그걸로 더 멋진 것을 했을텐데 말이지.

아주아주 가끔은 (가끔보다는 좀 많나?) 못된 여편네에게 화도 냈고, 딱 한번 애새끼가 말을 안 들어서 돼지우리에 던져 넣은 적이 있지. 하지만 그것보다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친구들이 돈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고, 이자 안 받고 원금만 돌려받았지. 성서에 대고 불경한 맹세도 한 적 없어.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건 난 잘 모르지만, 나오미가 항상 신경썼어. 그 여편네는 우리집보다 옆집 사는 과부를 더 신경써 줄 정도니까. 사마리아인들에게 침 뱉는 것 잊지 않았고, 이교도인을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말도 안 건넸지. 이거 하나는 내가 제법 신경써서 지켰지. 이만하면 (그런대로) 여호와가 좋아하는 견실한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아?

오, 그런데, 그런데! 작년에 돗자리 팔고 읍내에서 돌아오는 길에다른 건 몰라도 당나귀처럼 튼튼한 내가친구들과 같이 걷다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쓰러지고 사흘 후에 깨어났을 때 손하나 까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겠어.

내가 말이야, 천하에 불한당이었다면 또 몰라. 그래, 술 퍼마시고 도박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마누라 때리는 그런 놈팽이 말이야.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기생집에 드나드는 그런 놈팽이었다면 말이야. 애새끼들 밥 먹이지 않고 장인어른도 몰라라 하는 그런 놈 말야. 친구들한테 사채 뒤집어씌우고 도망가는 놈 말이야. 하지만 난 아니었단 말이지. 천사 같은 삶을 살지는 아니었지만 불한당은 아니었어. 건달은 무슨. 차라리 개 같이 살다가 천벌이라도 받았으면 내가 또 말을 안해.

평생 나귀처럼 살다가 몸 병신이 되고 보니 세상 잠 거지같더라고. , 이딴게 인생이라니. 내가 고작, 이렇게 침상에 누워서 파리도 쫓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서도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니.

그래도 처음에는 이 병이 나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 위대한 랍비가 우리집에 와서 내 머리에 손 얹고 기도도 해줬거든. 그래서 나도 경건한 마음으로 같이 기도했지. 이 병이 낫게 된다면 험한 말도 하지 않고, 십의 이조까지 바치겠다는 약속도 했어.

친정 식구들까지 왔고, 평소에는 나 몰라라 하는 여편네가 옆에서 우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더군. 내가 먹을 것 사왔을 때만 나를 반기던 아이들이 가지런히 옆에 앉아있는 것도 보기 좋았고 말이야. 그래, 너희는 내가 없으면 안 되지.

하지만 말이야 관심을 받아봐야 뭔 소용이 있어. 랍비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는걸. 그 다음에는 가버나움에서 용하다는 의원들이 다 우리집을 거쳐갔지. 내 두 다리를 걸고 맹세컨데, 그 놈들은 다 돌팔이야. 돌팔이라고! 돈은 돈대로 처먹고 처방한 약은 아무 짝이 쓸모가 없었지. 시간이 지나면 차도가 있을 거라고? 내가 지금 몇 년째 이 집구석에 처박혀 지내는지 알고나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밥 버러지 같은 새끼들. 내가 낫지 않자 의원들은 온갖 어려운 말을 둘러대더니 하나 둘씩 어물쩍어물쩍 도망가버렸지.

몸에 좋다는 음식도 다 먹어 보았고, 가버나움에서 잘 알려진 민간요법도 다 써봤어. 소똥으로 뜸도 떴고, 친구들은 날 데려가서 강물에 빠뜨리기도 했지.

하지만 다 쓸모 없었다고! 난 익사할 뻔했어! 미친 것들! 병신들! 아예 날 죽이지 그랬어?

아, 세상의 끔찍함이여!

난 밤이면 혼자서 몰래 울었어. 시간이 지나면서 온 몸이 아파왔지. 점점 더 아팠어. 맷돌에 산 채로 넣어진채 갈려버리는 것 같았지. 하지만 난 비명도 지를 수가 없어서 그저 울었어. 내가, 혼인식 할 때도 안 울었는데, 그때는 정말로 눈물이 나오더라고. 한 번 눈물이 나기 시작하니까 영락없이 울보가 됐지. 신세한탄 할 사람도 없었지. 나오미는 다섯이나 되는 애들 때문에 눈코뜰새없이 바빴고, 나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병신이니까.

그리고 나서 우리집에 온 랍비가 진지하게 말했지.

혹시 뉘우치지 않은 죄가 있습니까, 형제여. 어쩌면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벌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의사도 당신의 병을 낫게 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여호와께 자비를 구하십시오.”

그때만큼 내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늙수그레한 얼굴을 후려쳐주고 싶었던 적이 없어. 그놈 턱에 난 수염을 잡고 있는 힘껏 따귀를 때렸어야 하는건데.

하지만 난 병자였지. 그것도 침상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불쌍하고 비참한 놈이었지. 랍비는 내게 일장연설을 하고갔어. 그렇게 귀를 틀어막고 싶었던 설교는 처음이었어.

랍비가 돌아가고나서 내가 신세한탄하며 울자, 나오미는 옆에서 죄를 뉘우치세요. 죄를 뉘우치세요.”라고 헛소리를 지껄였지. 그래서 나는 간신히 입술을 움직여서 단호히 말했어. 다시는 저 망할 랍비를 우리집 문간에 들이지 말라고.

이렇게 말하면 가족자랑갔지만 우리집은 독실한 유대교를 믿는 집안이야. 꼬박꼬박 가족들과 회당에 가서 말씀도 들었고 말이야. 물론 바빠서 아침기도를 빼먹은 적은 있지만, 여호와가 그 정도는 이해해줄 거야. 그는 마음이 넓은 신이라며?

내가 견실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가버나움의 모든 주민들이 다 알아. 물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생각나는 모든 죄를 떠올리며 용서를 빌기는 했어. 어쨌든 나는 신실한 유대인이니까 시키는대로 했지.

그래서 그게 내 병을 낫게 했냐고? 아니올시다야! 그래서 내가 더 화가 났지. 나는 우리의 신에게 애원하고 조르고 울며 매달렸어. 랍비도 의사도 내 병을 못 고치는데 이제 매달릴 만한 것이라고는 엘로힘 뿐이었지. 하지만 내가 뭘 알아냈는지 알아? 여호와 역시 의사랑 랍비만큼 힘이 없다는 사실이었지. 세상의 무정함이여, 그리고 옆집 장닭보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유대신 같으니라고.

내 병은 낫지 않았고, 그렇게 부질없이 또 한 해가 지나갔지. 이 무렵의 나오미는 물론이고 나도 지쳐있었지. 제일 어린 막내애가 제법 커서 시편을 줄줄이 외우고 다닐 정도가 되었지. 하지만 그놈 재롱을 봐도 하나도 재미있지가 않았어.

내 인생, 이게 내 인생이라니. 그리고 그때 생각이 났지. 딱 하나 계속 어신 십계명이 있었거든. 돈 벌고 싶어서 안식일에도 일했었어. 하지만 다른 장사꾼들도 나처럼 주일에 나와서 물건 파는 놈 있어. 먹고 살려면 방법이 없었는걸. 여호와야 주말에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걱정 없지만, 난 미천한 피조물인걸 어떻게 해. 들의 양들도 일요일에 되새김질을 하는걸. 하지만 나는 다시 내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했지. 어쩌면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이 죄 때문에 여호와가 내 병을 낫지 않게 하신 걸지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또 한 해가 지났지.

어쩌면 말이야. 때로 생각을 해. 역시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말이야. 나는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죄를 떠올리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었어. , 내가 무릎이 굳어서 더 이상 무릎꿇고 기도할 수 없어서 자세가 좀 불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기도했다고.

그때였지. 내가 지독한 배신감을 느낀 것은.

아, 하늘은 그렇게 침묵을 하더군. 병든 놈을 땅에 두고서 말이야. 내 몸에 파리가 꼬여서 웅웅거리는 것을 보며 조롱하는 거지. 이것이야말로 희대의 코미디일 테니까. 그는 내 기도를 듣고 침묵을 했어. 그는 거기에 없거나 아니면 내 불행을 즐거워하는 악마이거나 둘 중에 하나야. 택한 백성이라는 우리를, 다윗의 후손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데 모른척할 리가 없어. 그런데 그는 모른 척을 하더군.

이를 갈며 울었고, 난생 처음 화가 나서도 울었지. 그렇게 화를 내 본 적이 없었어. 내가 몸이 성했고 턱이 굳지 않았다면 하늘에다 대고 삿대질을 하고 욕했을 거야. 유대 회당에 기름을 뿌려 싸그리 불 질러 버렸을 거야. 랍비들의 목을 따버렸을 거야. 눈 뜨고 눈 감을 때까지 하루종일 욕설을 퍼부었지. 위선자들을 강에 던져버리는 상상을 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뿐이었으니까.

너무나 불행했지. 내 눈에서는 눈물이 멈출 날이 없었고, 굳은 몸은 여전했고, 난생 처음으로 다른 신들도 찾았지. 그런데 신이라는 것도 별 것 없어. 그리스의 신도 로마의 신도 무정하기는 똑같아. 힘 없는 것도 똑같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몸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어. 통증이 멈추질 않았지. 내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를 나도 맡을 수 있었어.

애들은 내가 누워있는 방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지. 그 어린 애들은 죽음의 냄새에 민감하니까. 나오미는 내 몸을 닦아주며 울었고, 장모님도 울었고, 친구들도 울었지.

그래, 그렇게 된 거야.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끔찍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었어. 그래, 그 지경이 되어서도 목숨이 붙어있었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질긴지 알면 소름이 끼칠 정도야. 하지만 내 손목은 머리카락 하나 쥘 힘이 없었어. 그러니까 빌어먹을 내 몸뚱아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힘조차 없었지. 그때 나는 깨달았지. 육신은 스스로의 육신을 죽여버릴 수 있지만, 정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인간에게 주어긴 가장 원초적인 자유도 박탈당한 몸이었어.

그때는 그게 그렇게 애석하더군.

아, 나는 글러먹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도피할 곳도 없었고, 최후의 희망마저 나를 저버렸지. 나는 거기에고통과 죽음 사이에, 그리고 연옥과 지옥 사이에말 그대로 끼어버렸던 거야.

끔찍해, 나오미.” 나는 말했지. “죽음이 내게서 이렇게 멀리 있다니 말이야.”

어느 날 아침에 나는 눈을 떴고,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에 절망했지. 스올은 말이야, 빌어먹을 영감탱이야. 그게 그 놈의 문제점이지. 죽고 싶어하는 놈 안 데려가고, 죽기 싫어서 발버둥치는 것들은 꼭 질질 끌고 가거든.

하지만 나는 그래도 열렬히 죽음에 구애했어. 스올이 죄의 삭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내게는 죽음이라는 이웃이 너무나 달콤하게 느껴졌거든. 그것은 나를 이 모든 고통과 구속과 끔찍함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 테니까. 유대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죽음을 갈망했지. 이 뇌수를 파먹는 고통과 영원히 결별할 날이 그래도 내게는 언젠가 있지 않겠어? 그것은 분명 죽음일 테고, 비록 지금은 내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젠가 오지 않겠어? 그 날이 말이야.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기도를 다시 했지.

신이시여, 당신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간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내게는 다 상관없습니다. 그저 내게 죽음을 주십시오. 다른 것은 그 무엇도 바라지 않습니다. 나를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십시오. 구원도 바라지 않고 천국도 바라지 않습니다. 날 그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주십시오.’

쉬지않고 기도했어. 눈물이 피가 되도록 기도했지. 몇 날 며칠을 기도했어. 회당의 랍비도 나보다 길게 기도하지는 못했을 거다.

아,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염병할, 제기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아, 세상의 간악함이여!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이여! 인간의 육체도 정신도 부질없구나. 우리의 비명은 하늘에 닿기에는 너무나 작고, 땅에서 울리기에는 너무나 여리다. 다른 이들의 귀에 닿아봐야 거기에 구원 또한 없으니 고통이고 고통이다. 비참함과 슬픔은 끝이 없다. 이 세계는 미쳤다.

아, 삶의 미천함이여! 그리고 생의 구역질이여! 머물렀다 떠나는 이들 모두 불운한 자들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나락의 끄트머리에 있으니. 우리는 고통 받기 위해서 태어나고 벌 받기 위해서 살며 지옥에 던져질 준비를 하며 여기 거한다. 이 세계는 미쳤다.

아, 개 같은 절망이여! 그리고 광인들의 축제 같은 하루여! 하지만 헐떡이는 개 한 마리도 우리보다는 낫다. 벌레 한 마리가 그래도 우리보다는 나은 삶을 구가한다. 우리의 숨결은 그것보다 못한 삶이고 악취고 우울이다.

아, 불편한 일상이여! 피와 거품만이 가득한 세계여! 저들은 말하겠지. 보라, 미쳐 날뛰는 인간의 정신은 참으로 볼만한 것이구나. 존재가 빚어낸 참극이고 멀리서 볼 때는 희극이니 저들로 좀 더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자. 우리가 매일같이 관람하는 보잘것없는 비극, 비극, 비극이다. 우리 모두 술 취한 현인이고, 이 세계는 미쳤다.

아, 재앙의 굴레여! 부서지는 정신과 육신이여! 누군가의 갈빗대는커녕 흙 중의 흙도 안 되는 이 무슨 하나의 조소란 말인가? 세계가 빚어내는 한 편의 구토다. 이 세계는 미쳤다!

이 세계는 미쳤다.

 

2.

 

죽음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신은 내 마지막 소망을 철저하게 짓밟고, 나를 고통에 내던졌다. 그는 필시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미쳐가는 정신을 매우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타는 듯한 여름이었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스올의 비웃음이 서려있는 내 집은 쾌쾌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나오미는 어린 아이를 안고 문지방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청소도 되어있지 않았고, 요리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침상에 누운 지 열 해째가 되는 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고통에 잠식되며 비참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아침 일찍, 친구 넷이 내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울고 있는 나오미와 아이들을 지나쳐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들것을 만들더니 나를 그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뭣들 하시는 겁니까?” 나오미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가버나움에 랍비라고도 하고 예언자라고도 하는 어떤 선지자 한 분이 와 있습니다.” 아벳이 날 들것에 단단히 고정시키며 말했다. “그 분의 손에 닿으면 어떤 병자들이라도 씻은듯이 낫는다고 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은 눈을 뜨고 절름발이는 다시 걷게 된답니다.”

“……쓸데없는 짓이야. 쓸데없는 짓이고말고.” 내가 누운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다 헛소문이네. 그 숱한 의원들도 나를 고치지 못했어.”

그 분이 널 낫게 해주실 거야.” 아벳은 그러나 내 말을 무시해버렸다.

아벳이 들것의 오른쪽 윗부분을 들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각각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가 신호하자 네 장정은 날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문간에 아이를 안은 채 서 있는 나오미를 뒤로 하고 그 선지자가 머무르고 있다는 집으로 출발했다.

집 밖으로 나가자 뜨거운 햇살이 얼굴에 닿았다. 실로 오래간만의 외출이었다. 하지만 집 밖도 안과 그렇게 다른 것이 없었다. 도로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공기와 먼지로 가득했고, 여름해는 병자에게도 인정사정 없었다. 몸 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다. 침상의 손잡이를 쥔 억센 손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나를 들쳐 맨 네 친구는 묵묵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계속해서 걸었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된 이후로는 왜소하게 쪼그라들어서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체격은 큰 편이었다. 병이 나기 전에 나는 가버나움에서도 힘께나 쓴다는 남자였던 것이다.

자네들은 공연한 헛걸음을 하는 거야.” 내가 다시 말했다.

그런 말은 나중에 실컷 듣겠네.” 아벳의 뒤에서 잠자코 있던 셋이 말했다.

환자가 들것에 매여서 대낮에 가버나움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그리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던 모양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 선지자는 같은 지방에 와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묵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 시간감각이 많이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장장 두 시간을 넘게 쉬지도 않고 걸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친구들은 가끔씩 자리를 바꾸며 계속해서 나를 매고 걸었다. 친구들의 목덜미와 어깨를 타고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 딱 한번 셋이 이마를 훔치느라 걸음을 멈추었다. 친구들은 물에 젖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걸었다.

나귀에 달려 있는 바구니에 앉아있던 아이는 뭐가 신기한지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문득 주위에 사람들이 늘어나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의 숫자가 곱절로 많아졌을 뿐만이 아니라 소란스러움도 커져 있었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애들 할 것 없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거의 다 왔어.” 아벳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어느 집이었지?” 셋이 물었다.

다섯 번째 골목에 있는 마리아의 집이라고 했네.” 요한이 대답했다.

그리고 골목을 돌았을 때, 네 친구는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지 집 안은 고사하고 문 밖까지 발 디딜틈도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 하나를 보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가버나움의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모두 여기 모여있는 것만 같았다. 내 친구들은 군중들 속에서 침상을 부여잡느라 안간힘을 썼다.

혼자 왔어도 그 인파를 뚫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면 엄청난 모험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장정 넷이 들것에 실린 병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아벳은 잠시 물러나자고 했다. 그래서 네 친구들은 집에서 조금 떨어져서 빈 공간에 나를 내려놓았고, 서로 당황한 눈빛으로 문으로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것 보게, 다 부질없는 짓이지……” 내가 말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자네 침상을 엎어버릴거야.” 아벳이 말했다.

하지만 네 친구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서서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군.” 한참 후에 내 발치에 쪼그려 앉은 유다가 말했다.

내일 다시 올까? 내일이면 사람들이 조금 줄어있지 않을까?” 요한이 말했다.

아니, 내일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 셋이 말했다.

나도 동의하네. 그리고 이 분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 언제 가버나움을 떠날지 몰라.” 아벳이 말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사람들의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이제 아벳은 그 선지자가 묵고 있는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 동안 그는 흙으로 지어진 그 집을 보기만 했다. 가버나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지붕이 납작한 집이었다.

지붕으로 올라가세.” 아벳이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다시 한번 나를 들쳐 매고 군중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힘이 좋은 아벳은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며 말했다.

좀 지나갑시다. 환자입니다. , 거 좀 비키시오.”

당신만 환자요? 밀지마시오.”

하지만 아벳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씩 집 가까이 다가갔고, 이윽고 지붕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도착했다. 그는 힘차게 들것을 위로 잡아당겼다. 좁은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 모두 벽에 몸을 바싹 붙인 채 한 계단씩 걸어야 했다. 침상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결국은 해내었고, 잠시 후 우리 다섯 사람은 지붕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대체 뭘 하려는……” 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대답소리 대신 지붕을 이루고 있는 부드러운 진흙과 타일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한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날 집 안으로 보내기 위해서 작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여덟 개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지붕을 뜯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군중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뭐 하는 겁니까?” 집 아래서 한 여자가 말했다.

보다시피 지붕에 구멍을 내고 있소.” 아벳이 대답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말이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연장도 없었지만아니 연장이 있든 없는 이미 그 지붕 타일은 내 친구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둥근 구멍이 지붕에 뚫렸고,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머리 위로 흙이 떨어지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서 있던 자리에서 얼른 피했다.

뚫린 구멍으로 빛이 들이쳤다. 놀라며 그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 그리고 당황해하는 집 주인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내 친구들을 막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윽고, 내가 내려갈 수 있을만큼 지붕의 구멍이 넓어지자 친구들은 내 몸을 덮고 있던 천을 길게 찢어서 침상의 네 귀퉁이에 묶었다. 그리고 나를 침상에 눕혀 집 안으로 조심스럽게 달아 내렸다.

내가 그 뚫린 지붕의 구멍을 통과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하늘이 좁아졌다. 사람들이 지붕에 난 구멍모양만큼 자리를 비워두어서 마치 날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듯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바닥으로 내려졌다.

이제는 내게도 볼썽사납게 지붕에 뚫린 구멍이 보였다. 내 친구들이 침상의 네 귀퉁이에 연결된 천을 잡고 있었다. 아벳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내 얼굴에 떨어졌다.

침상이 땅에 닿았다. 친구들의 손에서 떠난 천이 천천히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여전히 몸이 굳은 채 거기에 누워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무슨 일이 생기나 기다렸다. 내 눈높이가 너무 낮아서 사람들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의복들을 알아볼 수는 있었다. 그 곳에는 평범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기관과 율법학자도 있었다.

침묵이 너무나 길었고 그리고 불편했기 때문에 나는 거기서 일어나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꼼짝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떠올랐다. 이건, 정말 불편하군 그래.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망갈 수도 숨을 수도 없다니 말이지. 그때 나는 정말로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선지자라는 사람이 날 낫게 해줄 수 없다면 우리의 처지가 얼마나 우스울까 하는 생각이었다. 내 친구들은 침상에 누운 나를 다시 들고 집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오미는 도로 침상에 실려 돌아오는 날 보고 울겠지. 나는 평소와 똑 같은 작은 방 안에 갇혀서 이번에는 정말로 썩어들어갈 거고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는 아마 죽는 데에 성공할 지도 몰랐다.

지붕 위에서 친구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들을 보자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더군다나 나는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이 선지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한 사람을 어찌 알아본단 말인가? 나는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른 사람들처럼 기다렸다. 적어도 이 짧은 불편함이 지나간다면 어느 쪽으로든 결말이 날 터였다. 대체 그는 누구인가? 내 친구들이 나를 데리고 몇 시간을 걸어서 찾아올 만큼의 뛰어난 명의인가? 아니면 랍비인가? 사기꾼인가? 아니면 정말로 날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인가? 랍비라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속죄 기도를 하려고 하겠지. 의원이라면 맥을 짚어보고 약을 처방할 테고. 사기꾼이라면 도망가겠지.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속죄 기도는 없었고, 의원들처럼 온갖 어려운 말을 하며 약을 처방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심각하게 뒤틀린 내 몸을 보고 당황하며 도망가지도 않았다.

내 앞에 선 누군가 말했다.

아들아,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그 말을 듣고 몇몇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그러자 같은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마치 내 속마음을 그리고 좌중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쉽느냐? 하지만 내게는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

  강하고 담대한 목소리를 가진 그 사람은 주위의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날 보며 다시 말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나는 그의 말을 들고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좌중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보다도 내가 더 당황했다. 나는 내 앞에 계신 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서둘러 침상을 들고 그대로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사람들이 급히 길을 터주었다.

집 밖으로 나와서야 나는 내가 걷고 있음을 내 병은 씻은듯이 나았음을 깨달았다. 땅의 감촉이 발에 느껴지고 있었다. 군중들 틈에서 억눌린 목소리로 , 자는 중풍으로 10년 동안 누워있던 가버나움의 돗자리 장수가 아닌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입을 벌린 채 날 보고 있던 지붕 위의 친구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분에게이 곳에 날 직접 데려왔으면서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짖고 있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의 놀란 표정만큼이나 내 얼굴도 이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아벳이 울기 시작했다.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울었다.

내 볼을 타고도 눈물이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갈릴리 지방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일이었지

그 집에는 네 사람이 들어가서

다섯 사람이 걸어 나온다네

병자는 없도다

그의 병이 나았으니

그의 죄가 사하여졌으니

인자가 그에게 말했다네

침상을 들고 걸어 나가라고

그래서 그대로 되었다네 

--가버나움의 작자미상 동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