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구나카시의 여행

  • 작성일 2015-12-31
  • 조회수 208

구나카시의 여행

 

1. 그는 어느날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구나카시가 타향살이를 시작한지 서른번째 해가 되던 날이었다. 그는 광야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신론자가 될 테다."

구나카시는 지난 삼십년간 기독교인이었고, 자신이 충분히 기독교인으로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신론자가, 그것도 완벽한 무신론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지체없이 여행길에 올랐다.

'사람의 발이 닿았던 그 어떤 곳보다 나는 멀리 가볼테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리라.'

하지만 구나카시가 완벽한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다. 그의 지도 목사 또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목사는 매우 엄숙하게 구나카시의 발걸음을 막았다.

"어디를 가려는 겁니까, 구나카시?"

"목사님, 나는 이제부터 무신론자가 되려고 합니다."

"형제여, 좁은 길에서 떠나지 마십시오."

"하지만 나는 떠나야 겠습니다."

"그렇다면 너무 멀리 가지 마시오. 그리고 가능하면 길동무와 함께 가시오."

목사는 품에서 지도를 하나 꺼내어 구나카시에게 주었다. 이것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좁은길의 문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소. 하지만 명심하시오, 구나카시. 세상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냥꾼이 있으니까. 그가 사슴을 그물로 엮어 잡듯이 당신을 사냥하기를 기도하겠소."

"나는 더 빨리 도망가야겠군요."

", 가시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보시오. 당신이 길에서 앞으로 허비할 시간들이 헛되지 않기를."

"그럼 나는 목사님의 머리에서 머리털이 그만 빠지기를 바라야겠군요."

"내 머리털은 중요치 않소. 당신의 영혼에 비하면."

구나카시는 목사에게 예를 다해서 꾸벅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2. 동반자

 

구나카시는 넓은 길에 올라서 걸으며 생각했다. 완벽한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서 풀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에 대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전에, 구나카시는 같이 여행할 친구를 먼저 찾자고 생각했다. 대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기쁨에 차 있었다. 길은 곧게 뻗어있었으며 아름답기까지 했다.

'왜 진리는 감추어져 있어야 하며, 독사의 비늘은 그렇게 화려하단 말인가?'

구나카시가 생각에 잠겨 대로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한참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혼자 가십니까?"

말을 건 이는 이제 막 여행길에 오른 것처럼 보이는 청년이었다. 구나카시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같이 동행해도 되는지 물었다. 구나카시는 그러라고 했다.

"나는 멜렉입니다."

"구나카시입니다."

"당신은 왜 여행길에 오르셨습니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나는 완벽한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서 여행 중입니다."

그러자 멜렉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했다. 그리고 몇 초 정도 구나카시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구나카시가 멜렉의 행선지를 물을 차례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행자들의 인사법이었다. 하지만 구나카시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어서 그만 무례하게도 여행자들의 인사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멜렉은 그러나 개의치 않으며 생각에 잠긴 구나카시에게 물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십니다."

"오래 전부터 날 괴롭혀왔던 어떤 질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나는...... 그러니까 신의 배신 행위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구나카시는 그렇게 말하고 걱정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소로에 있지 않았다. 구니사키는 안심하고 말을 이었다.

"소로의 사람들은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 주제이지요. 내 옆에 집사와 장로가 없어서 마음이 편합니다. 그들은 내가 이런 질문을 꺼내면 자주 날 타락의 아들이라고 몰아세웠거든요. 하지만 나는 맹세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 곳이 대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구나카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어렸고...... 그리고 질문이 많았어요."

"이 대로에는 인간들 밖에 없으니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이라고 해서 당신의 무지함과 그 엉뚱한 질문에 조소를 퍼붓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렵군요."

"?"

"대로에서는 종교적인 이야기는 안 하는게 좋아요, 구나카시. 그게 이 길의 규칙입니다. 성서를 조롱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것을 진지한 토론거리로 만든다면 사람들은 견디지 못할 거에요. 당신은 풍기문란죄로 죽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나는 더 비참한 놈이 되었군요. 난 다른 종교는 몰라요. 하지만 맹세코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멜렉은 웃었다.

"내게는 말해보세요. 난 당신의 친구가 되었으니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

 

 * * *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일종의 미친 광대와 같은 구석이 있다.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그것도 지독한 기독교인으로 살아본 사람만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일평생을 살아온 내 자신이다. 어린시절의 일기를 펼쳐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매 페이지마다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행복하다. (심지어는 가정불화와 교우관계 악화 그리고 학교 부적응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을 때조차 그렇게 적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 무엇보다도 사랑한다.

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저것은 대체 누가 쓴 글이란 말인가? 아니면 어린아이들은 다 그런걸까?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독교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배운 나는, 정신이 조각날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성서를 집어드는 것이다.

시편 34:1 ... "내가 항상 여호와를 찬양하겠습니다. 내 입에서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차마 다음 구절로 넘어가지 못하고 성경을 덮었다. 구역질이 낫기 때문이다. 다윗은 미쳤거나 아니면 그냥 미친것이 분명하다. 미친것이 분명하다......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난제다. 이것에 대해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찰을 해보아야 한다고는 늘 생각했었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하기 전에 깨어지는 것은 내 머리일 것이다.

누가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쉽다고 했는가? 그렇다면 그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길을 걷는 것이 쉽고 재미있고 광명에 차 있는데다가 진리가 정말로 단비같이 우리의 뒤통수를 갈긴다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떠날리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 의문은 하나다. 우리가 진정 평생을 간직할만한 보석을 손에 쥐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보석에 실망해서 그것을 던져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그러니까 내 말은, 진리라는 보석이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과 같아서 그것을 잡은 자들의 손을 태워버리느냐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사랑이라고 했고, 니체는 몰락과 건너감이라고 했으며, 다윈은 진화라고 울부짖었다. 데카르트는 생각과 존재라고 말했고, 코란은 알라를 위해서, 성서는 야훼를 위해서, 석가모니는 열반이라고 답했다.

누구는 거기에 인간 밖에 없다고 하고, 누구는 거기에 외계인도 있다고 하고, 누구는 거기에 신들이 있다고 하며 (게다가 그 숫자는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거기에 신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단수에도 복수에도 얽매이지 않는 신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난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3. 큰길에서

 

이것은 구나카시와 멜렉이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중간에 대화에 참여한 사람은 대로변에서 물건을 팔던 장사치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시는군요. 난 금을 입힌 장신구를 파는 사람입니다.” 장사치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나는 구나카시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내 친구 멜렉입니다. 우리는 신의 배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 그것은 나도 관심이 있는 주제입니다. 이 질문만 하면 제아무리 뻔뻔한 소로의 사람들에게도 무안을 줄 수 있지요. 거기에는 배신당하지 않은 사람들만 있으니까.”

당신도 신에게 배신을 당했습니까?” 구나카시가 물었다.

내가 비록 지금은 이렇게 보여도 소로 출신 사람입니다. 이 바닥으로 나온지는 꽤 되었지요. 하지만 제법 신실했답니다. 욥기에 대해서 논문도 쓴 적이 있거든요. 당시의 나는 열렬한, 예 그래요 열렬한, 하느님의 앞잡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어느날 내 믿음이 사라져 버린 것이지요.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신의 침묵이었습니다. 내 모든 일들이 어그러지기 시작했고, 집안이 기울었으며, 나는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내 앞길을 인도해 달라고. 그 길을 부디 보여달라고. 당신의 뜻을 보여달라고.”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셨군요. 자주 있는 일이지요.”

내 고통에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을 하는 신은 처음이었습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온통 방언하는 자에,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자들인데 나는 그런 게 없었지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멜렉이 물었다.

보다시피 이렇게 되었지요. 난 불구가 되었고, 아내는 도망간 데다가 하나뿐인 아이도 죽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위로도 목소리도 심지어는 내 죄를 정죄하는 목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득 오래 전부터 가져왔던 질문이 떠올랐지요. 선한 신이 이 세상에 있다면 대체 이 수많은 부조리와 고통은 무엇인가? (인간의 타락이라는 교리문답은 좀 하지 마십쇼. 나도 압니다.) 다윗과 아브라함의 아버지라는 분이, 왜 자녀인 내게 이렇게 모질게 구는가? 그는 내 고통을 즐겁게 보고 있는가? 왜 내 울부짖음에 침묵하는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데, 왜 내 인생이 이렇게 개 같은 꼴이 낫는가? (그리고 이건 내 자랑이 아니지만 난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고, 도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나도 궁금한 것들입니다.”

대체 신이 우릴 배신해서 이득보는게 뭐가 있겠습니까?”

신적인 존재가 이득을 논할리도 없지요......” 멜렉이 말했다.

그는 그저 저 높은 관람석에서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던 겁니다. 불 가운데로 지나는 인간의 정신을 흥미로워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어릿광대입니다.” 장사치가 말했다.

슬프군요. 그런 신이라면 차라지 존재치 않는 것이 낫지요.” 구나카시가 말했다.

맞습니다.”

구나카시와 멜렉은 장사치를 뒤로 하고 계속해서 길을 떠났다. 구나카시는 아주 슬퍼 보여서 멜렉은 한동안 그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신이 당신도 배신했습니까, 구나카시?"

구나카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짧은 시를 읊었다.

 

    내가 온 사랑을 바쳤던 당신은 늘 침묵으로만 일관합니다.

    그 어떤 남자가 울고있는 연인을 버려둡니까?

    하지만 당신은 그랬습니다.

    그 어떤 아버지가 낙심한 아이를 그대로 둡니까?

    그런데 당신은 그랬습니다.

    그 어떤 왕이, 자신을 온 마음과 행동으로 사랑하는 백성의 노래를,

    그래요. 내가 당신을 향해 부른 세레나데를

    그렇게 무참히 짓밟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그랬습니다.

 

    그러니 나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아마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입니다.

    온 사랑을 바쳤던 존재에게 배신당한 내가 있는 바로 이 곳이.

 

구나카시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졸작이지요, 웃으셔도 됩니다. 내게 시적인 영감을 그리고 재능을 달라고 미친듯이 울부짓었을 때 그는 내게 그런 재능들을 주지 않으셨거든요."

"웃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이 끔찍할 정도로 긴 침묵... 이것은 신의 배신일까요? 그는 정말로 저 하늘 위에서 웃고 있는 걸까요?"

"인간이 태초에 신을 배신했듯이 말입니까? 그가 이제는 복수를 하고 있다고요?"

"다른 종교의 신이라면 또 모르지요. 불완전한 신들 말입니다. 인간이 만든 신들. 하지만 내가 아는신, 적어도 내가 자라며 배운 신은 그런 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내 꼴을 보십시오. 고통으로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4. 그들이 말하는 '인간을 배신하는 신'

 

    [<지옥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 나는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데서 오는 괴로움>이라고 해석한다. 시간으로도 공간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의 세계에서 일찍이 어떤 정신적 존재(인간)가 이 지상에 나타났을 때, 그에게는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기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는 행동적인 생명있는 살아의 순간을 한 번, 꼭 한 번 부여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지상에서의 생활이다. 그와 동시에 그에게는 시간과 기한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 행복한 존재는 더없이 귀중한 하느님의 그 선물을 거부하여 존중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조소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끝내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간이라도 일단 이 지상을 떠나면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비유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가슴도 보게 될 것이고, 아브라함과 이야기도 할 것이며, 또 천국도 볼 수 있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누구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자가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서, 자기가 남들의 사랑을 멸시하고 있는 동안 사랑을 실천해 온 사람들과 가까이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커다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때야 비로소 눈을 뜨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알겠군. 그러나 이제 와서 내가 아무리 사랑하기를 원한다 해도, 나의 지상에서의 생활은 이미 끝나 버렸기 때문에 나의 사랑에는 아무런 위대한 것도 희생도 없다.

    (중략)

    흔히 지옥의 불은 물질적인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이러한 신비를 파고들 생각도 않거니와 파고든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서는 가령 그것이 물질적인 불이라고 한다면, 그곳에 떨어진 사람들은 오히려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순간적이나마 더 큰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신적인 고통이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

 

* * *

 

대로에는 그 곳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닮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구나카시처럼 소로에서 뛰쳐나온 사람이 아닌, 파견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구나카시가 듣기에 역겨운 말들을 끊임없이 소리쳤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십시오. 우리가 가는 길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가장 기이하고 그 질료가 베일에 싸인 것이니, 소중히 하십시오. 우리는 스스로를 존재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권한 밖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기나긴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고통 끝에 종종 자기자신에게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한번 더 감내하십시오. 죽음은 탈출구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영원한 기쁨으로 던져지거나 영원한 고통으로 던져질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 섰을 때,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십시오. 의외로 많은 이들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지옥을 감추고, 천국을 감추고 그리고 신을 왜곡하는 현대사조의 흐름이 명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보십시오. 바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인간입니다.

모든 인간은 한 때, 완벽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의 모든 부조리는 신의 '배신'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에 빚어지는 참극입니다. 이 세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러가는 것이 오히려 신의 일반은총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세계의 임시 섭정은, 그것을 인간의 이기심으로 가리워, 멍청한 이들의 무지로 치부합니다. 내 삶의 장애물, 지긋지긋한 것들, 벽에 던저버리고 싶은 아기의 울음소리라고 매도합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악행과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결코 속아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사랑을 왜곡하는 자들을 주의하십시오. 가족의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부양하려는 자들을 비웃는 목소리 또한 듣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이웃들을 사랑하십시오. 사람이 그것에서 돌아서는 순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 또한 놓쳐버립니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은 단련 그리고 단련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좁고 고됩니다, 여러분.

인간의 실패 (이 또한 신의 선물일지니), 그리고 세상의 악함 (이 또한 신의 섭리 아래에 있을지니), 거기에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망가뜨린 세계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날 배신한 이를 사랑하는 법을, 날 미워하는 이를 사랑하는 법을, 설령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처럼 나를 부수고 죽어야 할지라도. 무조건적이고 능동적인 신의 사랑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 신을 사랑하는 것. 우리가 걸어야 할 좁은 길입니다. 이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의 영혼은 평생을 헛간에 갇혀서 이를 갈며 울분 속에서 살게 됩니다. 내면은 파괴될 것이고, 물질적인 불길이 그의 육신을 태워버렸을 때, 남게 될 인간의 정신, 불구가 된 영혼은, , 사랑하는 법을 결코 배우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때에 그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이를 직접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이 종착지가 됩니다. 역의 이름은 신과의 영원한 분리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거기 남게 되는 것입니다. 현세계의 맛볼 수 있는 지옥의 편린은 그 곳에서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곳이 지옥입니다.”

선포하는 사람의 말이 끝나자 대로의 사람들이 돌을 던져 그를 죽였다. 구나카시와 멜렉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다가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저 사람은 미쳤군요. 설교도 구역질납니다.” 구나카시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왜 대로에서 저렇게 큰 소리로 떠든답니까? 여기가 소로인 줄 착각 한 것 아닙니까?”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멜렉이 문득 엄격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시체를 넘어 걸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각자 갈 길을 갔다.

 

* * *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5. 신과 숫자

 

구나카시와 멜렉은 사람들로 붐비는 큰 길을 따라서 걸었다. 그들은 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미친 철학자가 관심을 보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세상에는 세 가지의 신이 있지요. 단수인 신과 복수인 신, 그리고 단수도 복수도 아닌 신 말입니다.”

또는 단수이기도 하고 복수이기도 한 신 말이지요?” 멜렉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소로에서는 그걸 신과 신들과 삼위일체로 구분하는데......” 구나카시가 말했다.

  그러자 미친 철학자가 구나카시의 말을 잘랐다.

난 평생을 신의 존재에 대해서 연구를 해 왔습니다. 특별히 이 신이 어떤 자인지 밝혀내기 위해서 연구를 하고 있지요.”

당신은 학자이니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요.” 구나카시가 말했다. “신은 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우선 그가(또는 그들이) 단수인지 아니면 복수인지를 밝여야 합니다.”

삼위일체는요?” 멜렉이 말했다.

그건 셈을 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의 신일 뿐이지요. 숫자 1 3이 서로 같다고 믿는 바보들의 종교입니다. 논할 가치가 없습니다. 신은 오직 '' 이거나 '그들'일 뿐입니다.”

난 소로 출신의 여행자 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셈을 못하는 게 아니라...” 구나카시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미친 철학자는 갑자기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 압니다. 전부 믿음이라고 말하려고 했지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내가 맞추었지요?”

아니요...... 나는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이성으로는......”

아하, 그러니까 존재 초월적 존재라는 말을 하려고 한 거지요? 나는 다 압니다.”

물론 그렇지요.”

미친 철학자는 수려한 말솜씨로 설명했다.

세상에는 무존재, 존재함을 자각하지 못한 존재, 존재, 그리고 존재 초월적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는 존재 이지요. 하지만 건너가야 합니다. 인간은 여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길 끝으로 갈 필요가 있지요. 그리고 거기서 떨어져야 합니다. 그 길만이......”

  나는 그저 기독교인들이 삼위일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한 것뿐입니다.”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하지요.” 멜렉이 제안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학자가 아닌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기독교인들은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는 성경을 믿습니다.” 구나카시가 말했다. (미친 철학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유물론자가 아니라면 보통은 신의 창조설을 믿지요.”

존재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수학이 필요합니다.”

수학은 왜입니까?”

너와 나라는 객채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니 시간과 숫자 또한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을 것이다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흥미롭군요.”

우리로서는 숫자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지요. 하나와 둘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세계에는 자의식도 개개인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신은 창조되기 전의 세계에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신은 자신을 세 사람인 동시에 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미친 철학자가 인상을 쓰며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시간도 공간도 수학도 없는 곳이라니, 그걸 이해하려면 훨씬 더 긴 연구를 해야 할 겁니다.”

사람들은 삼위일체가 모순이라고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았을 때 신이 숫자 하나에 귀속된다면, 그야말로 신은 세상을 창조한 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실로 논리학적으로는 날카롭지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이성의 너머에 있는.......”

 미친 철학자가 손을 내저었다. “잠깐만요, 잠깐만.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좀 더 연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렵군, 어려워.”

물론 논리학의 헛점을 피해갈 수 있다고 해서 이것을 사람들이 모두 믿느냐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요.” 구나카시는 하려던 말을 마쳤다.

하지만 미친 철학자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저 쉬지않고 중얼거리며 흥미롭다는 말을 반복했다.

삼위일체론을 생각해 낸 사람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알 것 같군요. 그는 신을 우주 위에 올려 두기 위해서 진지하게 고심했고, 이윽고 생각해낸 그 역설적인 논리를 이렇게 펼친 것입니다. 우리의 신은 수학법칙에 귀속되지 않는다. 숫자를 만든 것은 신이다. 그는 숫자가 있기 전의 세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은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세 사람이다. 멋져요, 멋져. 하지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연구요?” 멜렉이 말했다.

숫자가 있기 전의 세상 말입니다. 그것을 연구한다면 신의 본질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늘 존재 초월적 존재라는 말은 너무나 모호하고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카오스를 이해하려면 정말로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겁니다. 신에 대해서 알아내고 난 다음에 결정을 내려도 충분합니다.”

미친 철학자는 두 손을 비비며 그의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멜렉은 광기로 희번득이는 미친 철학자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신에 대해서 알아내고 난 다음에는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그의 머리가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한계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습니다. 그의 머리가 깨어지기 전에 몰락을 건너갈 수 있기를 바래야겠지요. 하지만... 내 처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무언가를 아는 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면 나는 미친 철학자 대신 당신과 30분간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 * *

 

「시인은 창공에 자신의 머리를 밀어 넣으려고 하고, 논리학자는 자신의 머리에 창공을 밀어넣으려고 한다. 결국 분열되는 것은 논리학자의 머리다.

 

--G. K. 체스터턴

 

6. 신에 대하여

 

구나카시와 멜렉은 계속해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셋째 날에는 가짜 신부와 가짜목사가 그들과 같이 동행했다.

신의 배신이라는 개념의 뿌리에 있는 것은 성신론입니다. , 많은 사람들을 곤궁에 빠뜨렸던 것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전제가 아니라 '당신들의 신은 그 사악한 악마와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었지요.“ 구나카시가 먼저 말을 뗐다.

그것은 풀어야 할 난제입니다. 인간들에게 주어진 숙제이지요.” 가짜 신부가 말했다.

아 물론 믿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 위를 걷는 선지자, 떡이 되는 빵, 죽은 자의 부활, 그렇지 않습니까?” 가짜 목사가 말했다.

배신자를 사랑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인 셈이지요. 그 누가 악마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들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는데 말입니다.” 멜렉이 말했다.

  구나카시는 말을 이었다.

신이 정말로 우리를 두고 체스놀이를 하고 있는 거라면 인간들의 분노는 정당화됩니다. 다만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신은 그 사악한 악마와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 참이냐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풀어보려고 하다가 미쳤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시도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면죄부를 살 생각은 있으신지요?”

거절하겠습니다.”

당신의 신은 악합니까 선합니까?” 멜렉이 신부와 목사에게 물었다.

우리의 신은 선하기 때문에 그가 명령하는 것은 모두 옳습니다.” 가짜 신부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신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가짜 목사가 대답했다.

  구나카시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렵구나, 어려워. 만약 신이 선하기 때문에 그가 명령하는 것이 모두 옳다면 선악을 논하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옳기 때문에 신이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라면, 선의 기준이 신 바깥에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선악을 논하는데 있어서 신은 필요가 없다.’

딜레마에 빠지셨군요.” 멜렉이 웃었다.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명제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릅니다.” 구나카시가 고민하며 말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것은 모순입니다.”

인간 이성으로 보았을 때는 모순일지도 모르지요. 우리의 이성은 불완전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구나카시를 미치게 할지도 모르니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만 미사가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가짜 신부가 말했다.

나도 예배 준비를 해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짜 목사가 말했다.

  신부와 목사가 떠나자, 멜렉이 구나카시에게 물었다.

나는 소거법을 좋아합니다. 구나카시, 당신의 신은 거짓말쟁이 입니까? 그는 악한 존재입니까?”

소로에 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신은 미쳤습니까?”

미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신의 법은 현대에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리고 미친 자라면 그런 법을 제정할 수도 없었겠지요.”

그러면 당신의 신은, 진짜입니까? 그러니까 선하고 믿을 만한 신입니까?”

구나카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 * *

 

「어떤 것이 옳은 것은 신이 그것을 명령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것이 옳기 때문에 신이 명령하는 것입니까?

 

--에우티프론

 

「그들은(도덕법 폐지론자) 세상에 선도 악도 없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자신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길 원하지 않는다.

 

--C.S. 루이스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3.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하지 말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십계명

 

7. 자유의지에 대하여

 

구나카시와 멜렉이 허무주의자를 만난것은 큰 도시에서였다. 허무주의자는 열렬한 독서가였고, 말도 조리있게 했지만 멜렉은 도시를 떠나자 미친 철학자 다음으로 대화하기 힘들었던 사람이라고 구나카시에게 말했다. 아래는 그들이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허무주의자는 불평불만을 터뜨렸다.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만약 신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멜렉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우리가 동물과 같은 상태여야 했다는 뜻입니까?”

동물들은 자유의지가 없으니 죄를 짓지도 않고 벌을 받지도 않지요. 하지만 그들은 사람보다 열등한 존재이지요. 그냥 우리 모두 존재하지도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기를 결정하고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구나카시가 말했다.

그러니 그것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멜렉도 말했다.

전부 부질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원래 부질없습니다. 난 발버둥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의 놀림감이 되는 것은 지쳤습니다.”

구나카시와 멜렉은 광장에서 허무주의자와 헤어졌다. 그들은 계속해서 걸었고 도시 밖으로 이어지는 길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저 자와는 이야기하기가 참 힘들군요." 멜렉이 말했다. "자유의지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서에는 그것이 신의 선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무신론자들은 그것이 무료한 신이 세상에 풀어놓은 변수라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동물이나 식물은 우리보다는 적은 자유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층층이부채꽃과 개가 우리보다 열등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동물이 말을 못하지만, 그 놀라운 움직임과 충실함 그리고 멋진 색채를 정말 좋아합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인간에게 보기 좋은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멜렉은 구나카시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지은 노래는 실로 새들의 울음소리에 견줄 수 있지요. 언어는 아름답고, 인간의 움직임 또한 아름답습니다. 걸음걸이는 당당하고 두 눈은 총명합니다. 수금의 현을 뜯는 사람의 손가락은 실로 기이라고 칭할만 합니다."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허무주의자처럼요?" 멜렉이 웃었다.

 

* * *

 

「만약 할 수 있다면, 내게 설명해 주십시오. 왜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입니까?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었다면, 우리가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에보디우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그런 일과 마주하게 된다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지.」

 

-–간달프

 

8. 사냥꾼

 

구나카시와 멜렉은 큰 길을 따라서 계속해서 걸었다. 그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앞 사람을 따라 정처없이 걷고 있었다.

잘 닦여진 도로를 군화와 맨발, 술 장식이 달린 비싼 신발, 끝이 뾰족한 신발, 고무로 만들어진 신발, 가벼운 단화, 등이 거닐었다. 처음에 대로는 (소로에 비해서 크기는 했지만) 길 양쪽이 보였다. 그러나 사람이 늘어나면서 길이 넓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길이 넓어지면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인지, 어느새 구나카시는 길의 양 옆은 보이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군중들 틈에 자신들이 휩싸인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도시에서처럼 사람들이 밀집된 채 부대끼며 걷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띄엄띄엄 걸었고. 구나카시와 멜렉처럼 친구들과 같이 가는 사람도 있었고, 혼자서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간혹 역행해서 온 길을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행하는 사람들은 물처럼 밀려드는 사람들에 부딪혀서 욕을 먹었다.

구나카시가 대로로 나온지 나흘 째였는데, 그는 처음으로 사냥꾼을 보았다. 처음에 구나카시는 그것이 사냥꾼인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을 도망자라고 소개한 어떤 사람이 구나카시에게 그들이 사냥꾼임을 알려주었다.

"저것이 사냥꾼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갑니다." 도망자가 말했다.

그래서 구나카시는 도망자의 손 끝에 위치한 그 기묘한 사람을 보았다. 아니,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은 아닌 그것을 보았다.

사냥꾼들은 키가 컸고, 무시무시한 인상에 등에는 커다란 그물을 걸치고 있었다. 허리에 각종 덫을 차고 있는 자도 있었다. 사냥꾼들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지만, 군중들은 자신들 주위에 사냥꾼이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거인 같은 모습으로 군중들 틈에 불쑥 혼자서 머리가 올라와 있는 채 어슬렁거리는 것이 마치 하이에나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구나카시는 몹시 놀랐다.

가죽옷을 입은 한 사냥꾼이 허둥지둥 도망치는 남자를 덮쳐서 그물로 옭아맨 것이었다. 그러자 붙잡힌 사람은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난 돌아가지 않을테야! 난 돌아가지 않아!"

그것은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사냥감이 소리를 지르건 말건 사냥꾼은 그물을 질질 끌고 대로를 왔던 길을 걸어서 돌아갔다. 가끔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왔는지 허리가 긴 기묘한 동물이 그물을 찢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도망치는 이는 소수였다.

대부분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사냥꾼에게 끌려갔다.

"사냥꾼들은 왜 사람을 잡아갑니까?"

"나는 모르지요. 소문에 의하면 사람들의 피를 빨아내고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도망자가 말했다. "나도 사냥꾼한테 거의 붙잡힐 뻔한 적이 있지요. 내 도마뱀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들에게 잡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어깨에 앉은 노란색 도마뱀을 보여주었다.

"이 녀석은 정말로 똑똑합니다. 사냥꾼들이 어디 숨어있는지 알려주거든요."

도망자는 구나카시와 멜렉과 여러날 같이 걸으면서 사냥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사냥꾼은 잠을 자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힘이 세고 사람들 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사람을 사냥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들에는 사냥꾼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냥감은 집요하게 쫓아가서도망자의 말로는 한 사냥감을 80년 동안 쫓은 사냥꾼도 있다고 했다잡아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무섭군요. 사냥꾼은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까?"

"잘 모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거든요. 다만 우리는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조심할 뿐이지요."

한번은 불타는 것 같은 발을 가지고 있는 사냥꾼이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대로 한 복판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눈을 피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구나카시는 그 사냥꾼이 눈을 감고 있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을 하나하나 눈 여겨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나카시와 멜렉이 그를 지나칠 때 사냥꾼이 한쪽 눈을 치켜떴다. 구나카시는 가슴이 철렁 했다. 하지만 그 사냥꾼은 구나카시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냥꾼들과 대화가 가능합니까?"

도망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아주 가끔씩만 말을 합니다. 그것도 늘 알 수 없는 말만 합니다."

 

9. 무신론자

 

구나카시와 멜렉은 이제 바다처럼 넓어진 큰 길을 따라서 걸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니. 구나카시는 자신이 있던 좁은 길을 떠올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소로에는 사람들이 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길은 험했고 여행자를 만나기도 어려웠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서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더러는 뛰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문득 구나카시가 말했다.

"글쎄요. 무언가가 있겠지요. 허무주의자는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정작 세계의 끝에는 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요. 좁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구나카시? 당신은 소로에서 왔으니 잘 알겠지요?"

"글쎄요, 소로의 사람들은 길 끝에 천국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길이 워낙 험해서 거기까지 간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거기 들어갔다는 소문은 있지만... 나는 천국 문을 본 적도 없어요.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뜬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때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한 사람이 흥미를 가지며 다가왔다. 그는 같이 동행해도 좋은지를 물었고,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구나카시는 무척 들떴다.

"반갑습니다, 나는 구나카시입니다.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멜렉입니다. 구나카시의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임자를 제대로 만났군요. 그래요 내가 바로 무신론자입니다. 그것도 이 대로에서 가장 훌륭한 무신론자일 겁니다. 어디 나랑 같이 눈먼 시계공을 실컷 조롱합시다."

"난 소로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데에는 큰 흥미가 없습니다." 구나카시가 말했다. "당신은 무신론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신을 믿지도, 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는데 어째서 그 존재하지 않는 신에 조롱과 분노를 퍼붓습니까? 내 생각에 그것은 다 시간낭비 같습니다."

무신론자는 구나카시의 대답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가 달리 무엇을 합니다. 신론자들의 무지함을 비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소로에서 살도록 내버려둡시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 큰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냐는 것입니다. 흔히들 소로의 끝에는 천국이 있다고 하고 대로의 끝에는 지옥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까?"

"큰 길의 끝에 지옥이 있다고요? 그것은 자기네들끼리만 어울리기 좋아하는 기독교인들의 거짓말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넓고 편한 길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얼마나 잘 닦인 길입니까? 만약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놓이는군요. 하지만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습니다. 천사도 없고 악마도 없습니다. 천국도 지옥도 없다면 이 큰 길의 끝에는 대체 무엇이 있습니까?"

무신론자는 무척 당황하더니 말을 더듬었다.

"... ... 유토피아가 있겠지요."

"낙원 말입니까? 그게 천국이 아닌가요?"

"아니요, 아닙니다. 내 말은 그러니까, 그래요. 몰락을 건너간 인간들 말입니다. 초인이 된 인간들. 모든 것을 극복한 인간의 진화한 자아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자아에서 스스로 탄생한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이 진화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완전한 존재가 될 때까지."

"우리가 신이 된다는 것입니까?"

"그렇지요."

"그럼 그 곳은 신들의 땅이겠군요. 우리는 낙원을 이룩하는 자들이 될 테고, 그 곳이 천국이군요."

"...... 그런 셈이지요. 하지만 그런 종류의 따분한 천국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칭송할 것입니다. 시공간과 육체의 나약함을 모두 초월해서."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

"어떻게 하면 신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 나도 모릅니다."

"당신은 우리가 무자아에서 진화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체 무엇이 우리를 진화시켰습니까?"

", 그건 나도 압니다. 바로 우연입니다."

"그것이 신이 되는 조건인가요?"

"...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우연히 진화를 해서 자아를 가지게 되었으니, 어느 날 우연히 (조건이 성립하면) 신 또한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연은 우리의 길잡이겠군요. 어디에 가면 우연을 만날 수 있습니까?"

  "내키는 대로 사십시오. 우연은 언젠가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당신이 우연을 찾아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연과는 약속시간을 잡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 녀석입니다. 우리가 무자아에서 자아를 가지기까지 수억년이 걸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럼 신이 될 때까지 또 수억년이 필요합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큰 길을 걷는 이유 또한 신이 되기 위해서였군요."

"맞습니다."

"이 길 끝에 신이 될 수 있는 조건인 우연을 만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그를 본 적이 있습니까?"

"본 적은 없지만, 그를 믿습니다."

"증거는 어디있습니까? 과학적인 증거."

"증거는 없습니다."

"?"

"이 모든 것은 믿음입니다! 믿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

"큰 길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없나요? 소로에서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는 지도를 무료로 나누어줍니다. 그런 지도 말입니다."

"아직까지는 돌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지도도 없고, 선구자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계속해서 갈 뿐입니다."

"혹시라도 큰 길의 끝에 절벽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돌아오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닙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만약 길 끝에 절벽이 있다면 사람들이 멈추어 서지 않겠습니까?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질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누군가가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는 이상."

그러자 구나카시는 어이가 없어져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자는 말도 재미있게 하고 얼굴도 밝지만 하는 말이 마치 백치와 같구나. 아마 저 자는 진짜 무신론자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 자는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 같다. 어떻게 여행자가 되어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그저 사람들 가는대로 따라 가기만 한단 말인가? 그리고 큰 길의 끝에는 대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10.

 

무신론자가 떠나자 구나카시는 멜렉에게 말했다.

아까 그 무신론자는 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저 자는 무를 빈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무가 아닙니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원자가 어떻게 생깁니까? 그것은 빈 공간인데.”

당신들이 말하는 빅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빈 공간은 무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모든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지요. 최초의 원소가 탄생할 수 있는 빅뱅. 빅뱅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연법칙.”

그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 공간, 시간 그리고 자연법칙은 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입니까? 무한히 거기 있었던 겁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십니오.”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최초의 원소들이 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빈 공간 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가 하는 빈 공간은 무 공간과 다릅니다. , 아무것도 없던 시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흐음, 듣고 있습니다.”

공간도 시간도 그리고 자연법칙도 없어야 그것이 무 입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 거기게 빈 공간이 있으면 그건 공간이 있는 것이죠. 무가 아니라.”

하지만 나로서는 공간도 시간도 없는 장소를 생각하기 어렵군요. 인간의 관념 밖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들의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무 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니까요. 하지만 무에서 유가 나온 것은 맞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입니까?”

공간도 시간도 자연법칙도 없는 진짜 무(). 그 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유를 만든단 말입니까? 힘도 없고 의지도 없고 생각도 없는데.”

하지만 여기 일례가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세상은 존재하지 않기 보다는 존재하기를 택했고, 아까 그 무신론자의 말처럼 무자아는 자아를 뱉어냈으니.”

자아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무자아(무존재)는 자아(존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무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게 무를 신처럼 신봉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는 신이 아닙니다. 우연은 무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Nothingness)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하시려는 겁니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세상은?”

내가 이 여행을 하는 이유들 중 한 가지입니다. 그것을 알고 싶은 겁니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존재를 하게 된 것인가?”

큰 길의 끝에 도달하면 답이 있습니까?”

그러기를 바라야죠.” 구나카시가 중얼거렸다.

 

11. 큰 길의 끝에서

 

이윽고 구나카시는 큰 길의 끝에 이르렀다. 그 곳에는 구나카시처럼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길이 어느 순간 뚝 끊겨 있었고, 그 너머는 공허함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에는 표지판도 없었고, 위험을 경고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인파에 떠밀려서 절벽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서 절벽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옳은 길이 나타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구나카시와 멜렉도 절벽 끄트머리를 따라서 걸었다. 구나카시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절벽이 얼마나 깊은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우리는 이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걸까?" 한 여행자가 벼랑에서 끊긴 길을 보며 탄식하고 있었다.

"여기가 그 광인이 말한 몰락의 장소인가 보다. 우리는 여기서 뛰어내려야만 건너갈 수 있으리라."

그렇게 말하고 정말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구나카시는 땅에 못박힌 듯이 섰다. 그는 뛰어내리고 싶지 않았다.

"절벽을 건너가고 싶다면 다리를 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 철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다리 건설자는 우리가 죽여버렸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뛰어내릴 수 밖에."

하지만 구나카시처럼 망설이는 사람들 중에는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가야 할 길은 험하고 멀었다. 머리가 벗겨진 노인, 풍채가 크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가진 한 청년, 울면서 걷기만 하던 여인, 등 상당히 많은 수가 절벽 끝에 이르러서 그 밑을 보더니 지체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구나카시는 그 외에도 놀라운 장면도 여럿 보았다. 막 절벽에서 몸을 던지려는 사람을 사냥꾼이 잡아서 데려가기도 했다. 붙잡힌 사람이 울고 애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냥꾼은 그를 사정없이 끌고가 버렸다.

벼랑에는 기분 나쁜 생물들도 살았다. 구나카시는 그것들이 벼랑에 뚫은 구멍 속에서 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구나카시가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숙이자 멜렉이 그의 팔을 잡았다.

"조심하십시오, 구나카시. 떨어집니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 ..."

"양의 탈을 쓴 이리 같지요?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잡아 먹힙니다. 끊긴 길에서 방황하는 불쌍한 여행자들을 먹이로 삼는 놈들입니다."

구나카시는 불현듯 멜렉이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구나카시는 계속해서 걸었고, 멜렉도 그의 옆에서 조용히 같이 걸었다. 그렇게 크고 깊은 절벽은 처음이었다. 구나카시는 이 절벽이 끝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대로가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을까 희망하며 걸었지만, 아무리 걸어도 절벽은 끝이 나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구나카시는 어느 한 곳에서 멈추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그 어두운 심연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열심히 생각했다. 소로에서 얼핏 보았던 사망의 골짜기와 비슷했지만, 좀 더 어두웠고 음침했다. 그가 몇 분 정도 깊은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졌다가 어수선해졌다. 구나카시는 무슨 일인가 해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무언가에 놀라면서 허둥지둥 도망가고 있었다. 그 소란에 구나카시는 두려움이 일었고 그 자신도 무언가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조심해야 하는 그 무엇은 보이지 않았다.

", 구나카시. 여기가 당신이 보고 싶다고 했던 큰 길의 끝입니다." 누군가 무시무시한 어조로 말했다.

구나카시는 그 말이 멜렉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몇 초 후에 알아차렸다. 멜렉의 키가 쑥쑥 늘어나고 있었다. 구나카시는 너무나 놀라서 기절할 뻔 했다.

잠시 후, 그의 앞에는 예전에 멜렉이었던 남자, 구나카시와 계속해서 같이 여행했던 좋은 동반자, 하지만 이제는 거인 같은 모습을 하고 그물을 어깨에 걸친 사냥꾼 서 있었다. 두 눈에서는 광채가 쏟아지고 있었고,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온 몸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구나카시는 하마터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선택하게, 구나카시. 이대로 내게 잡혀서 질질 끌려가겠는가 아니면 자네 발로 걸어서 돌아갈 텐가?"사냥꾼이 말했다.

구나카시는 놀라서 땅에 엎어졌고, 한동안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치는 심장을 붙들고 있어야만 했다. 그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고개를 들며 물을 수 있었다.

",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 했습니까?"

"여기가 어디인지 아는가?" 사냥꾼이 물었다.

그 말에 구나카시는 다시 한번 더 벼랑에서 끊긴 길과 그 너머의 공허를 보았다. 무언가가 구나카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것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피부에 닿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함과 소름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사냥꾼이 온 몸에서 뿜어내는 무서움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구나카시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양의 가죽을 뒤집어쓴 이리가 벼랑에서 기어 올라와 구나카시의 발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구나카시는 몸이 휘청했다. 하지만 사냥꾼이 즉시 큰 소리로 외쳤다.

"썩 꺼져라 스올의 귀신아. 나는 아직 이 자와 면담을 마치지 못했다. 이것은 내 사냥감이다."

그러자 구나카시의 발목을 잡았던 손이 불에 탄 것처럼 바스라졌다. 그리고 사냥꾼은 절벽으로 떨어지는 구나카시의 손을 잡고 강하게 당겼다. 구나카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사냥꾼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했다. 잠시 후, 그는 덜덜 떨며 절벽 끄트머리에 못 박힌 듯이 섰다.

이제 그 곳에는 구나카시와 사냥꾼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구나카시가 물었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인가, 구나카시? 소로의 선구자들이 자네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는가?"

구나카시는 몸을 떨었다.

큰 길의 끝에는 끊어진 벼랑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갈 수가 없었다. 그저 빛을 잃어버린 뒤틀린 세계가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곳으로 많이 떨어져서 결코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 곳은 좁은 길을 버린 모든 여행자들의 종착지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왜 아름답고 잘 닦인 큰 길의 끝에 이런 무시무시한 곳이 있단 말인가? 큰 길을 닦은 자들은 왜 길을 닦다가 말은 것인가?

"큰 길은 원래부터 있지 않았던 길이네. 같이 몰락하기를 원한 이들이 파 놓은 함정일 뿐이었지."

대체 누가 그런 짓을!”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네. 중요한 것은 자네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지. 자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네. 이대로 내게 잡혀서 질질 끌려가거나 아니면 자네 발로 걸어서 돌아가는 것이지. , 선택하게!"

  구나카시는 가까스로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나는 내 발로 직접 걸어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자 사냥꾼이 빙긋 웃었다.

"잘 생각했군. 돌아가는 길은 멀겠지만, 내 도움은 이제 필요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명심하게 구나카시. 자네는 큰 길의 많은 위험과 적들의 간계에 대해서 배웠으니 그것도 아주 시간낭비는 아니었지. 그것들을 잘 써먹어야 하네. 하지만 그 시간에 적들의 간계가 아니라 자네를 잡아오라고 명령한 우리 주인에 대해서 공부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네. 대로를 평생을 여행하고 배운 지식은 소로를 한 걸음 걷는 것으로 배우는 지혜에 비하면 형편없으니까."

"당신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네 녀석처럼 벼랑으로 달려가는 이들을 안타까워하시는 분이지. 그리고 돌아간다면 자네 목사에게 감사하게. 내가 자네를 데려오지 않는다고 밤낮으로 나를 괴롭혔으니까."

그는 몸을 돌려서 반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구나카시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을 꾸역꾸역 대로의 절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걸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나서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소로를 떠나던 날 그에게 목사가 주었던 지도였다.

지도를 펼치자 세계의 지도가 보였다. 지도의 네 귀퉁이에는 흰 비둘기가 한 마리씩 그려져 있었다. 모든 산과 언덕과 강이 거기에 있었고, 지도의 중앙에는 목적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람의 본향.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구나카시는 눈을 내려서 지도의 가장자리로 갔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구나카시가 걸었던 큰 길 역시 그려져 있었다. 끊긴 벼랑 또한 지도에 있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길 잃은 자들의 무덤. 사단의 둥지.'

 

* * *

 

「신은 죽었다.

-- 니체

 

「그래서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 분은 다시 살아나셨는데.

-- 작자미상

 

12. 여행의 시작

 

그리고 이 여편네는 한밤중에 변소에 갇혀 있는 불쌍한 애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태평스럽게 잠을 잤다는 거야. 이런 걸 이해할 수 있겠니? 자기가 무슨 변을 당하고 있는지조차 분명히 알지 못하는 조그만 어린애가 춥고 어두운 변소 속에서 조그만 주먹으로 터질 것만 같은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고 아무도 원망할 줄 모르는 순진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하느님 아버지께 구원을 빌기도 하는 이 기막힌 일을?

(중략)

이런 불합리 없이는 지상에서 인간은 생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선악을 인식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이렇게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런 대가를 치러가면서까지 그 저주스런 선악의 인식 따위를 해야 할 필요가 어디 있어? 만약 그렇다면, 인식의 세계를 통틀어 봐도 이 어린애가 하느님 아버지께 흘린 눈물만한 가치도 없지 않느냔 말이다. 나는 어른들의 고뇌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 어른들은 금단의 과실을 따먹었으니까 아무렇게나 된다 해도 상관 없어. 모두 다 악마의 밥이 된다 해도 무방해. 하지만 이 어린애들, 이 어린애들만은 방관할 수가 없단 말이야!

(중략)

나는 만약에 어린애들의 고뇌가 진리의 대가로 치러야 할 고뇌의 정량을 채우는 데 꼭 필요하다고 한다면, 미리 단언해 두지만, 모든 진리를 통틀어도 그만한 대가를 치를 값어치가 안 나간다고 말하겠어.

(중략)

그렇다고 내가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신에게 조화의 입장권을 정중히 반환하는 것뿐이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

 

구나카시는 여러 날을 걸어서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가 좁은 길로 들어가는 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곳에서 그는 어릴 때 보았던 풍경을 보았다.

모든 길 떠나는 여행자들을 준비시키는 목사가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보낸 사냥꾼이 제 일을 한 것 같군. 그래, 이제 여행을 시작할 마음이 생겼나, 구나카시?"

구나카시가 문 앞에 서자 목사가 물었다. 대로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라면 아마 이상하게 생각했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구나카시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충분한 시간을 허비한 뒤였다. 큰 길에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늦어버렸습니다, 목사님. 나를 좀 더 강하게 꾸짖으셨어야 했습니다. 밧줄로 묶으셨다면 더 좋았을 거에요."

"자네를 밧줄로 묶는 것은 내 일이 아니네. 그리고 너무 늦은 때는 없어. 큰 길의 낭떠러지로 추락하기 전에는 말이야. 하지만 명심해! 소로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난에 비하면 큰 길에서 겪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닐 걸세."

"알고 있습니다."

어서 가게.”

그 전에 목사님, 한가지. 한가지 질문에만 답을 해 주십시오.”

무엇인가? 하지만 단 한 가지 질문이네. 내 대답을 듣고 나서 당장 가야 하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구나카시는 그렇게 말하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고통. 불합리. 선하신 이가 이 모든 것들을 허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후손이고, 그들은 모두 죄인이네. 그것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나도 압니다. 원죄가 지독한 연좌제라는 것도, 벗어날 길 없는 죽음의 병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목사님 내게 대답해 주십시오. 내 머리가 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알아야겠습니다. 어린아이의 고뇌,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그 어린 영혼들은 우리가 치러야 하는 진리의 대가입니까?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담의 죄로 인해서 태어나자마자 목 졸려 죽게 되는 어린아이들. 신은 그것을 어떻게 허용하는 겁니까? 이 세상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 것입니까? 그에게 눈이 있다면! 그리고 귀가 있다면!”

깨끗한 영혼이 밟는 가시밭길, 죄 없는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당해 죽어가며 흘리는 눈물, 선한 이에게 닥치는 불합리, 고통, 누명 그리고 고문을 말하는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느냐고?”

그렇습니다!”

자네는 이미 답을 알고 있네! 이제 가게 구나카시! 자네가 말하는 그 신은 이미 자신의 아들을, 얼룩 한 점 없는 영혼을 가진 그를, 누구보다도 선한 그를, 한번도 죄 짓지 않아서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깨끗함을 지닌 그를,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모질게 학대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매단 다음 사흘간 지옥에 처박았으니까! 매 시간 소름 끼치는 학대를 받아가며 죽어가는 아기들이 무엇을 뜻하느냐고? 생의 짧은 순간이지만, 인간이면서도 동시에 천사의 일면을 가진 것 같은 그 작은 인간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을 뜻하느냐고? 자네는 답을 알고 있네. 그 모든 불합리는 이 세계가 만들어진 이래로 벌어졌던 가장 큰 불합리, 죄를 지은 적 없는 한 인간이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은 바로 그 사건을 가리키고 있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런 대가를 치러가면서까지 선악의 인식을, 그래, 자네의 말처럼, 진리의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을까? 물론이네! 신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하나뿐이지. 그것은 구원이고, 죄 없는 사람의 피를 대가로 필요로 한다네. 다른 어떤 것도 그를 대신할 수 없네. 세계가 감내하는 모든 고통은 그가 겪은 고통의 그림자일 뿐이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뜻하는 것은 신의 놀라운 사랑일세. 그가 무시무시한 값을 치르고 산 우리들의 생명 말일세.”

구나카시는 조용해졌다.

"구나카시 어떤 신들은 인간을 미워하네. 그리고 어떤 신들은 인간의 망상이 만들어낸 허상이지. 하지만 자네를 만든 신은 자네를 사랑한다네. 세상에 많은 거짓말이 있고, 그리고 신에 대한 거짓말이 가장 판을 치지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게. 십자가는 신의 사랑이네."

이제 구나카시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좁은 길로 가게 구나카시. 그게 바로 자네가 할 일이네. 그리고 더 이상 헛소리도 좀 그만하고. 자네처럼 고집불통인 사람은 정말 처음이야.”

구나카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좁은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사님, 안녕히!" 그가 손을 흔들었다.

"잘 가게! 서둘러야 할 거야. 이제는 뒤 돌아보지 말고 가게. 조금 있으면 혼인식이야. 시간은 맞추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