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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가 외계인이었던 시절

  • 작성일 2015-12-31
  • 조회수 210

 

 

동인은 소희가 외계인이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 시절의 출발점은 동인과 소희가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한 학년 올라갔을 때의 봄방학이다.

소희의 ‘외계인이었던 시절’은 아직 가지 끝에 겨울이 서려있던 무렵으로부터 1년 남짓한 기간을 일컫는다. 겨우 1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기는 하다. 인생전체를 놓고 보면 더 확연하다. 100살 까지 산다고 치면 1/100일 뿐이니까. 실제로 동인이나 소희나 훗날에는 그 시절 일은 거의 잊고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시절이 둘의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시기는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갔을 때의 어느 봄날, 보충수업 2주차 월요일이었다.

동인과 소희가 다니는 학교는 방학 중에는 무조건 보충수업을 한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는 수업일수가 더 길지만, 비교적 방학기간이 짧은 봄방학 때는 2주일 동안만 하기로 일정이 잡혀있다.

대부분의 학생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는 이 보충수업이 짜증나고 귀찮은 시간이었다. 1년 중 며칠 안 되는 짧은 기간이나마 푹 쉴 수 있었을 텐데, 그것마저 방해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꾸역꾸역 얼굴은 내보이는 건 수업이 좋아서가 아니다. 보충수업을 받지 않으면 여러모로 불이익을 받아서다.

다른 친구들이야 어쨌든, 동인은 보충수업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집에 있더라도 무료할 터였다. 어차피 해야 할 공부고, 혼자 있으면 자습을 안 할 걸 알기에 지각하는 법 없이 항상 제때 얼굴을 비춘다. 늦게 왔다고 혼나는 학생들과는 대조적이다.

또 동인은 친구들, 선생님들과 크게 마찰을 일으키는 일도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형적인 모범생이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이 불평을 터트리면 같이 한 마디씩 보태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다. 항상 머리 아프지 않을 정도만 공부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생각 없이 아무 곳에나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머리를 비우고 앉아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창문을 향해 고개를 튼 채, 바로 옆 밑에서부터 위쪽으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창문을 보고 있을 예정이었다. 그 창문은 동인이 매일매일 닦고 있어서 다른 창문들에 비해 유독 깨끗하고, 밖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창문으로 보는 하늘이 가장 깨끗한 하늘이었다. 게다가 조금 고개를 위쪽으로 올려야 시야가 트인다는 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창문이었다. 가장 안 좋은 창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맨 밑의 창문으로, 운동장 같은 곳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가 특히 안 좋다. 오래 내려다보고 있으면 목이 아프다.

 

그날 2교시가 끝난 후 쉬는 시간, 아직 꽃샘추위가 회색조 건물 내벽에 들러붙어있는 교내에서 동인은 또 멍하니 앉아 창밖 정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주위가 조용하다는 걸 동인이 깨달았다. 교실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침 교실 안은 이 반 학생들이 매점에 가거나, 다른 반에 놀러가거나, 화장실에 가는 등의 이유로 확 빠져나가 있었다.

그때 동인의 책상 밑에서 휴대폰이 희미하게 울었다. 확인해보니 소희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었다.

소희: 조금 놀랄 만한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동인은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앞자리에 앉은 소희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문자를 입력하고 있었다.

동인이 손에 든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소희: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듣고 나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동인: 응, 말해봐.

소희: 이런 걸 문자로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희: 남들 앞에서 얘기하기는 어려운 얘기라.

소희: 지금 당장 말 안 하면 못 말할 것 같기도 하고.

소희: 따로 불러내서 말하기도 어렵고.

소희의 문자가 이어졌다. 동인이 다시 소희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뒷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소희는 완전히 몰두해서 휴대폰 액정만 들여다볼 뿐 동인을 돌아볼 생각이 없었다.

원래 얌전한 성격이긴 했지만, 평소보다 더 말을 끄니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해졌다.

소희의 등에서 눈을 떼고 한참 기다리고 있자니, 긴 서문을 마쳤을 때는 쉬는 시간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교실 앞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짧은 시간에 쫓겨 다급하게 보낸 탓에, 본론은 서문에 비해 간결했다.

소희: 어제 자정에 깨달았는데, 나 사실 외계인이야.

 

소희는 그 고백 이후로 드문드문 자기의 이야기를 동인에게 들려주었다. 가장 처음 꺼낸 얘기는 자기가 어느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냐는 것이었다. 소희의 얘기에 따르면, 그녀는 지구로부터 몇 백 광년이나 떨어진 어느 행성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지구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외계인들의 행성이다.

소희의 모성(母星)은 과학문명이 발달한 행성이었다. 지구의 과학문명 쯤은 자기네들 발끝 언저리에 닿은 수준이다. 지구의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수준의 기계는 역사를 찾아볼 때나 접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발달한 과학문명으로 번영을 누리던 그 행성의 주민들은, 그 자신들이 누리던 앞선 과학문명처럼 인류의 이해를 뛰어넘는 아득한 뭔가에 의해 멸망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멸망시킬 그 거대한 위험이 닥쳐오기 직전, 소희는 우주선을 타고 모성을 떠났다. 하지만 소희보다 먼저 도망친 외계인들도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소희도 탈출하면서 내심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소희는 살아남았다. 소희의 종족이 수천억 번은 멸망해야 그중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희박한 확률이 소희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때는 정말로 신이 이 우주에 존재하고 계셔서, 자기가 속한 종족의 멸망을 가엽게 여기셨던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자기는, 자기만은 살아남았다. 지독하게 희박한 확률에게 선택받은 건 자기 외엔 없을 거라고 말했다. 있다 해도 겨우 한 명 더 있을 정도이며, 우주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이젠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탈출하고 난 후의 일도 일이었다. 살아남았다고 모든 일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젠 돌아갈 고향도, 집도, 만날 동족도, 친구도, 가족도 무엇도 남은 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외계문명을 찾아보기로 했다.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진 채 천 년 가량 흘렀을 무렵, 우주선에 탑재한 광역 성계 스캔 장치가 지구를 발견하자 소희는 긴 냉동수면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천왕성 부근이었다. 자신의 새 삶을 시작할 이주지로서 지구를 선택한 후, 그대로 기척을 죽이고 지구로 접근했다.

성층권 언저리에서 일주일 정도 지구를 살폈다. 외계인의 모습으로 지구에서 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종은 더 이상 이어질 수도 없었기에 굳이 외계인으로서의 자신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이주지의 주민으로 살며, 자신이 받은 여분의 시간을 자기 개인의 행복과 안녕에 쏟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소희는 지구인으로서 다시 태어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자신을 낳고 자신을 보호해줄 부모란 존재가 필요했다.

며칠 동안 이어진 탐색 끝에 한 부부를 선정했다. ‘향후 백년은 안전할 것으로 보이는 지역에 사는’, ‘부유한 사람이며’, ‘심신 모두 건강하고’, ‘가족과 이웃끼리 사이가 좋은’, ‘아직 자식이 없는’ 부부였다. 요컨대 소희의 부모다.

소희는 이주 계획을 실시했다. 먼저 특정 유전자를 가진 배아 형태의 물질을 만들었다. 그 유전자란 형질적으로는 현재 소희의 부모와 비슷하며, 정신적으로는 온전히 자기 자신의 정신을 갖춘 유전자였다. 만들어낸 결과물을 공간도약 기술을 응용해 어머니의 태내에 전송했다. 소희의 유전자는 태내에 자리 잡고,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렸다. 그렇게 소희의 어머니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러고 난 이후는 평범한 지구인의 삶이다.

소희가 타고 왔던 우주선은 남극대륙의 어느 균열 깊숙한 곳에서 모든 동력을 멈춘 채 잠들어 있다.

 

소희가 이 사실들을 자각한 것은 열다섯 살 때의 생일이다. 왜 그때서야 깨달았는지에 대한 해답도 소희는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외계인이었던 소희는 지구인인 소희가 자신의 정체를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크게는 진짜 외계인 취급을 받아 위험할 수도 있고, 작게는 이상한 애 취급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별력을 갖출 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유예를 뒀고, 나이가 차면 자연스럽게 기억이 돌아오도록 안배해둔 것이다. 그 분별력의 기준이 되는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다.

알게 된다고 해도 알리지 말라는 그런 의도였는데, 어쩐지 동인에게만은 그 사실을 밝혔다. 보충수업 중에 문자로 알렸던 날이 바로 소희의 생일이었다. 동인이 친구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동인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학교 마치고 소희의 생일을 챙겨주려 했는데, 동인 쪽이 먼저 의외의 선물을 받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미 동인에게 한 번 밝히긴 했지만, 그때 이후로 소희는 더 이상 원래 의도에서 예외를 두지 않았다.

진영아, 혹시 내가 외계인이면 어떡할 거야? 물론 내가 진짜로 외계인이라는 건 아니고. 나 사실 외계인 아니야.

무슨 말이야?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훗날 동인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왜 자신에게만 말했었는지.

이유가 있었다고 소희가 답했다.

그때 나는 운동도 못 하고, 공부도 별로고, 눈에 띄는 편도 아니었잖아? 지금은 다르다고도 못하겠고.

그런 대단찮은 여자애였는데도 불구하고 동인이 옆에 있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조적인 내용이었지만 그다지 씁쓸한 어투는 아니었다.

동인은 무안해져, 그야 이웃이기도 했고, 어딘가 맹해 보여서 가만히 놔두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몇 살 어린 여동생 같았어.

그 시절, 소희는 동인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남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탓인지 동인과 둘만 이야기할 때는 조잘조잘 자기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모성에서 겪었던 이야기였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동인은 가만히 소희의 얘기에 귀 기울였다. 몇 백 광년이나 떨어진 먼 과거의 이야기가 둘을 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난 말이야. 지금은 내가 외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야 그렇겠지.

당연한 거야?

그도 그럴게, 너나 나나 고등학생이니까.

 

소희의 망상은 열여섯 살 생일이 지나자 사라졌다. 둘이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갔을 때였다. 2월, 다시 소희의 생일이 돌아온 날이었다.

여태까지 말했던 외계인 이야기들, 내가 착각했었어. 라고 자정에 전화가 왔다.

그렇구나.

동인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바로 어젯밤에도 외계인에 대해 얘기하던 애의 말 같지는 않았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동인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는 그날 이후 외계인에 대해 얘기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중학교 2학년 2월부터 3학년 2월까지 소희는 외계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은 동인뿐이었다. 친구니까.

 

소희가 물었다.

그때,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지?

글쎄.

나중에 인터넷에서 중2병이라는 말을 보고, 아, 내가 그랬구나 생각했어.

응. 깨달은 거 보니까 다 컸네.

등을 툭 쳤다.

 

소희가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여겼던 무렵으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까이 지냈던 것처럼, 우연히 고등학교도 같은 곳으로 갔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그 시절의 일도 추억으로 여겨질 때였다.

2월이었다. 날숨이 눈앞에서 하얗게 얼어갔다. 동인은 자기가 점점 커갈수록 겨울이 길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내가 외계인이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 어렸을 때 일인데.

소희가 물어왔다. 그 말을 듣자 묻혀있던 기억이 의식 위로 떠올랐다. 동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 말을 취소했던 것도 기억나.

소희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난 말이야. 지금은 내가 외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그 시절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어.

동인이 귀를 기울였다. 소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나는 분명 열다섯 살에 기억을 되찾도록 자신의 유전자를 프로그램 했었어. 하지만 거기서 끝낸 게 아니야. 지구가 내가 살기에 적절한 환경인지 어떤지를 시험해보자고 생각했던 거야. 그야 그렇잖아? 외계인이었던 나는, 아무리 예측을 했다고 한들 내가 이 지구라는 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지구를, 지구인을 믿을 수 있는지 어떤지 시험해보고자 한 거야. 지구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정체를 밝혀라, 라고 했던 거지.

동인이 물었다. 결과는 어땠어?

합격이지, 뭐. 난 이제 내 삶과 내 일상이 좋아. 그래서 그 시절 떠올랐던 기억들은 이제는 다 망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던 거야.

동인이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을 담았다. 그럼 내가 네 말을 믿지 않았다던가, 시험에 불합격했다면 어떻게 됐는데?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너랑 같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말하는 옆모습을 들여다보며, 동인은 생각에 잠겼다.

남극에 있다는 그 우주선은 결국 잠들어 있을 운명이었구나.

노을빛이 비치며 둘의 그림자가 이어졌다. 평소처럼 둘이서 돌아가는 하굣길이 그때따라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소희가 지구를 단념하고 새로운 여정을 걷지 않은 것도, 또는 다른 지역에서 또 다른 수정란으로 환생하지 않은 것도, 혹은 외계문명의 그 압도적인 과학기술로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은 것도, 자기가 실망한 이 행성을 버리지 않은 것도 모두 나의 태도 덕분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니, 소희의 망상은 중2병에서 벗어난 게 아니라 아마 다음 단계로 옮겨갔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소희는 이제 외계인이 아니고, 다시 외계인으로 보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때 동인이 정말로 소희를 무시하지 않았는지, 혹은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동인의 진의는 중요하지 않고, 소희가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가 전부였다.

동인은 기억을 되짚었다. 소희가 외계인이었던 시절, 나는 소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외계인이었던 시절, 나는 너에 대해.

겨우 생각났구나, 라고 생각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