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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기 좋은 숲

  • 작성일 2016-01-13
  • 조회수 208

마시기 좋은 숲

 

진흙이 앙금처럼 찻잔에 가라앉아 있는 새벽

풀잎사귀 종아리를 스치며 피톨들을 밀어 올린다.

뻐꾸기 울음소리 수면 위에 회오리를 돌고

지탱하던 지팡이를 스푼처럼 저어 묽은 숲의

향기를 코로 맡으면, 어느덧 이슬에 촘촘히 젖어

선명해진 나뭇잎들. 등이 딱딱한 곤충들을

이겨진 흙과 함께 조금 위로 건져 올리는 일.

햇볕을 잘 풀어 넣은 한낮의 부푼 숲

바람의 머리카락이 함부로 찰랑거리지만

꽁지처럼 묶은 찻잔의 손잡이는 매끈하다.

신발에 온통 묻어나는 눈 감은 진흙들

변죽에 입을 맞추고 차를 들이키자 온 숲이

가슴으로 훌렁 넘어 들어온다. 침엽수의 뾰족한

바늘이, 활엽수의 넉넉한 바닥을 박음질해

길은 찻물을 쏟은 카펫 한 장이 된다.

숲을 머금은 카펫 한 장으로 새벽을 털털 턴다.

새들이 우수수 날아오르고 길들도 가볍게 붕

날아올라, 발밑에는 투명하게 비치는 한 줌의 숲.

햇빛이 너무 개운해 깜박, 눈을 감았다가 뜨면

어느새 또 다시 숲 속이다. 나는 낡은 카펫처럼 가만히 엎드려

신선한 진흙을 떠먹고, 나무의 껍질을 벗겨 먹는다.

아직 따끈한 새알을 이빨로 눌러 맛본다.

꽃잎사귀는 어찌나 상큼한지. 식어버린 숲 한 잔의 풍성함.

이제 말끔히 숲을 먹어치운 내 몸속에 피처럼 숲이 돌고 있다.

다시 따뜻한 숲이 흐르고 있다.

스푼을 저을 때마다 발자국이 찍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순한 녹색의 표정들. 멀리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를 탄다.

길들이 젖은 카펫처럼 식도를 따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