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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헬조선사 3화

  • 작성일 2016-01-14
  • 조회수 156

<이야기 헬조선사> 3화

지난 총선 패배 이후 정계를 은퇴한 유성룡 의원은 계남의 한 산골에 은거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왔다. 몇 번의 정계 은퇴 선언 번복 이후 정치권에서는 이제 아무도 그의 은퇴선언을 고지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가 다시 정계복귀를 선언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기울어져 가는 당을 살리겠다고 나선 그의 구당선언은 포털 사이트 톱뉴스와 신문 메인면을 장식하며 관객의 위치에 서 있는 민초당 지지자들에게 드라마티컬한 쾌감을 안겨 주었다. 구 민초당 양대계파 중 하나인 계남 서학동계 좌장들이 잇달아 탈당 선언을 했고, 당의 중심을 잡아 줄 것이라 믿었던 장희빈 의원에게 쏠렸던 비현광해 의원들의 관심이 그녀의 탈당 이후 당을 살릴 새 대표로 유성룡 의원 옹립을 주장했다. 유의원으로썬 언감청에 고소원이었지만, 유성룡 의원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밥을 지을 줄 알았다. 뜸을 들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북헬조선 핵실험 여파로 산적한 이슈들이 삼켜진 상황에서도 왜국 총리의 기만적인 침략전쟁 사과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안하무인한 태도는 가뜩이나 집권당에 대한 분노가 극에 치단 민초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집권당 행정부가 상정한 노동개혁법은 민간관리클러스터의 소원을 들어 준 '소원'법이라는 냉소를 받고 있었다. 선거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왕나라당과 민초당은 아직 선거구와 의석 조차 획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방원의 백의당은 정치 신인들의 진출을 가로막는 거대 양당의 선거구 책정 미루기를 야합이라 규정하고 총선 연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민초당을 탈당한 계남계 의원들이 속속 이방원의 신당으로 모여 들었다. 서학동계 좌장들도 그의 신당에 합류했다.

***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이의원님.

국회 회의실 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몇 분 전에 끝난 회의에서도 최고의원들을 비롯한 비현광해 의원들은 줄기차게 이영조 의원의 퇴진을 주문했다. 면전에서 대놓고 그의 야욕을 규탄하기도 했다. 이영조 의원은 진정으로 당내 새 세력 진입을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영조표 영입 1순위였던 범죄전문가 계백 의원의 활발한 활동은 실제로 민초들의 당내 개혁노선 지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내에서 그는 여전히 외로웠다. 오해를 사기 싫어 부러 친현광해 의원들을 멀리했지만 그의 개혁을 지지하거나 그의 보좌관이거나 누구든 그와 연관된 인사들은 그때부터 친현광해 부류로 분류되며 패권주의자 꼬리표를 뒤집어 썼다. 눈은 곧 스러졌다. 이영조 대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럽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구요, 천허생 의원님.

친현광해 의원계로 분류되는 천허생 의원은 학생권 출신이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보습학원 원장이었던 그는 이문으로 돌아가는 정치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었고, 정치권에 들어 서면 살아 남을 자신감도 있었다. 그는 코믹한 캐릭터를 뒤집어 썼고, 쉬운 언어로 정치의 길을 펼쳐 나갔다. 민초들에게 그는 연예인같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지나갑니다. 이영조 의원님. 시련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쇼.

이영조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광해 대통령님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죠. 가치를 가지고 나름대로 해온다고 해왔는데 돌이켜 보니 그저 물을 가르고 지나온 것같다고요. 지금 제 기분이 그렇습니다. 나 하나만의 진정성이 당내에 꼭 필요한 가치인가 싶기도 하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대표님. 진정성을 알아 줄 것입니다. 민초들이 꼭 알아줄 겁니다.
-진정성...이제 그런 말 내뱉기도 부끄럽네요. 상황이 어쨌든 패권주의자가 돼버렸으니까요.
-지금 잘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표님 인재 영입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그게 나를 위한 거라고 공격하는 목소리들도 있습니다. 자극을 만들어 내는 인사들을 영입해서 세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라고요. 어쩌면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대표님을 위해서면 또 어떻습니까?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저러다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또 대표님을 밀어 올리려고 할겁니다.

이영조 의원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걸 아니까요. 그래서 더 우울해 지는 군요. 이미지를 원하는 민초들을 정치가는 이용해야 하니까요.
-...
-천 의원님, 제가 괜히 정치를 했을까요?
-대표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야 하지않았나 하구요. 바지 사장처럼 또 다음 대선 때 짠하고 나타나는 게 좋지 않았을 까요?
-대표님...
-이대로면 이번 총선은 물건너갔는데, 총선 때 이겨보겠다고 한 혁신이 되레 유력한 대선 후보 한 명을 쫓아내는 격이 되어 버렸으니 저로써는 면목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앞을 보셔야 지요.

이영조 의원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요. 앞을 봐야지요.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제 미친 사람처럼 그냥 나갈 밖에요. 그냥 나중에 잘려 나가는 게 나 혼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의원님처럼 신념있는 정치가께서 또 제 옆에 섰단 이유로 함께 날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미 못 할 짓 많이 했고, 못 볼 꼴 많이 봐왔으니까요. 꼭 살아 남으십쇼, 천의원님.

천허생 의원이 웃음을 지었다.

-저야 또 학원 차리면 되니까요, 뭐. 의원님도 다음 대선에서 탈락하시면 또 인권 변호사하시면 될 거구요.

이영조 의원이 웃었다.

-아니지요. 전 고향으로 내려 가고 천의원님이 대권 주자로 나서셔야지요.
-그러겠습니다.

천허생 의원과 이영조 대표의 웃음소리가 의원 회의실에 가득 찼다.

-이제 나가 봐야 겠습니다. 기자회견이 잡혀 있습니다.
-그러시죠.

***

서학동계 좌장 및 원로 의원들의 민초당 탈당 및 이방원의 백의당 합류에 대한 민초당 당대표의 기자회견은 짧게 마무리되었다. 이영조 대표는 '아프다', '송구하다' 등 감성적 어휘로 탈당 사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고, 계속해서 신진 세력 유입에 공을 들이겠다는 말로 앞으로의 각오를 표명했다. 아프다,는 말과 혁신 의지 피력이 모순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말이 회견장을 나가는 그의 뒷통수에 꽂혀 왔다. 회견장 밖의 눈발이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이영조 의원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주차해 둔 차로 건너갔다. 그가 뒷좌석에 앉자 수행원이 차를 출발시켰다. 이영조 대표는 한참 동안 차 창 밖으로 스러질 듯 기세를 더하는 눈발을 바라 봤다.

-대표님.

이영조 의원은 룸미러를 통해 새 보좌관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네, 보좌관님.

운전석의 보좌관이 이영조 대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또 존대말이시네요. 약주 하셨을 땐 반말도 곧잘 하시더니.

수줍은 얼굴로 이영조 의원이 미소를 지었다.

-보리밥 잘 먹었습니다, 대표님. 저 사실 보리밥 처음 먹어 보거든요.

이영조 대표는 정말이냐는 표정으로 룸미러 속 보좌관의 얼굴을 바라 봤다.

-저희 어머니도 보리밥 할 줄 모르시거든요.
-아니, 그 맛있는걸.
-그러게요.

보좌관이 히터 온도 조절 코크에 손을 갖다 댔다.

-따뜻하세요, 대표님?
-예, 따뜻합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대표님.
-아니오. 걱정 해야 지요. 첫 마음을 잃지 않으려면 걱정해야 합니다. 걱정하면서 돌아 봐야 합니다. 첫 마음도, 그게 잘못되지 않았나 끊임없이 돌아 봐야 합니다. 그렇게 흔들리면서 나아가는 게, 그게 개혁입니다.
-그렇군요.

다시 창 밖으로 이영조 대표가 고개를 돌렸다. 솜눈은 어느새 거친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

집권한 뒤 신선덕 대통령은 불통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었다. 청와대 앞 가설 게시판에만 대자보를 붙이게 하는 국민의 소리 정책을 추진하면서 소통창구를 일원화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지만, 다양한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억압으로 받아들여졌고 비판 세력들의 성토의 목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누리집 기반 매체에 출현한 한 정치 평론가는 '에덴동산에 먹을 수 있는 과실나무는 한 그루 밖에 없고 나머지는 금지된 선악과로 채워져 있는 격'이라고 그녀의 소통 방식을 비판했다. 이밖에 백성고유숫자와 실거주지가 기록된 호패 차용을 법제화하면서 정부는 실명거래 및 범죄행위차단 등의 이유를 들었다. 개인권 침해가 있다는 각종 여론 조사 수치가 있었으나 조사 문구가 맛사지되었다는 의혹을 받는 조사 매체 표본을 들어 반대의 목소리를 '일각의 목소리'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시행령을 포고하는 브리핑 룸에서 신선덕 대통령의 대변인이 된 왕나라당의 당대표는 '공익광고스러운 설득광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질문에 입을 다문 채 브리핑 룸을 빠져나갔다.

퍼스트 레이디시절 그녀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는 극렬 지지자들의 충성도와 민초당 및 민의당 정치구호들에서 빌려온 선거 공약들을 통해 당선된 신선덕 대통령은 공약 사항이었던 경제 민주화 정책을 폐기하고 순방 외교를 해나갔다. 주민들에 의해 공약 실천을 강요받는 지자체들의 공익사업 교부금을 삭감하여 결과적으로 공공부문 세출을 감소시켰고, 연초세 공과금 등 간접세를 높여 결과적으로 경제적 상위계층에 대한 누적 혜택을 강화했다. 민초들의 분노가 켜켜이 쌓여 갔으나 집권 이후 일관?된 친민간관리클러스터 우대 노선으로, 농축 자산으로 인한 민간 관리회사 경영자들의 배는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고 농축된 분노로 국민들의 속은 곪기 일보직전이었다. 공룡이 된 민간관리클러스터들의 입장 역시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산은 쌓여 가도 부채 비율이 높으니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언제 어떤 운명을 맞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술 대국으로까지 성장한 청나라의 추격이 만만치 않았고, 오랫동안 대외 수출의 거대한 한 축을 담당해 주었던 우방 '양국'의 경제 위기로 인한 수입 규제 정책이 헬조선의 유수 민간관리클러스터의 목을 조여 오고 있었다.

밑물의 지옥으로 시작된 헬조선 사회는 이제 그야 말로 무간지옥으로 빠져 들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