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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고래상어

  • 작성일 2016-01-28
  • 조회수 811

  해변의 고래상어

 

 

   기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계속 창밖을 봤다. 능선과 들판과 강줄기들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이었다. 저기서 살면 어떨까 상상했다. 어쩌면 영영 닿을 일 없는 세계일지도 몰랐다. 바깥은 초록색 혹은 노란색 유화 물감을 손가락으로 대충 문지른 것처럼 지나갔다. 창문턱을 넘으면 같이 휩쓸릴 것 같았다.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안쪽은 지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잤다. 깨 있는 몇몇마저도 스마트폰을 봤다. 혹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나는 두꺼운 유리벽으로 된 수조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딱딱한 유리벽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도 수조 안에서 질식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래, 바다. 겨울 바다가 얼마나 운치 있는데. 너 바다 본 적 없다며. 같이 올걸 그랬다.' 통화였다. 자랑하는 것 같았다.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바다를 그리고 있을까. 친구를 부러워하고 있을까. 혹시 만나게 된다면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 바다는 말이에요, …….
   말할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난 겨울은 그렇게 시작됐다.

   집에 안 쓰는 자전거가 하나 있었다. 꽤 오래 전에 산 녀석이었다. 타지도 못할 언덕 동네에 살 때였는데 굳이 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평지로 이사한 건 내가 대학에 들어간 다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울로 올라가야 했고 동생은 용돈으로 새 자전거를 샀다. 그래서 몇 년씩이나 방치되어 있던 것이다. 나는 녀석을 타고 나갔다. 페달이 낯설어서 오랜만이네, 하고 인사해 줬다. 삐걱, 소리가 났다. 오후 다섯 시였다.
   아파트 단지를 나오면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왼쪽으로 꺾었다. 우레탄은 부드러웠다. 칙칙하게 빨간 색이었다. 첫 횡단보도 앞에서 멈출 때 넘어질 뻔 했다. 두 번째부터는 괜찮았다. 횡단보도 네 개를 지나 자전거 도로가 사라지고 시장이 나왔다. 짜고 고소한 건어물 냄새가 났다. 가다 서다 하면서 가판대 뒤의 아주머니들을 흘끔거렸다. 사나운 짐승들 같았다. 처마에 매단 북어들과 눈싸움을 하는. 거리는 북적였다. 거의 걷다시피 해야 했다. 앞으로는 낮이나 늦은 밤에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장 거리를 겨우 빠져나와 큰길을 조금 달렸다. 대교로 통하는 고가도로 입구가 차도 가운데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쯤부터 자전거도로가 다시 이어졌다. 얼마 가지 않아 방파제가 나타났다. 바다였다. 역시 낯설었다.
   그날 밤 서의 첫 번째 이메일을 받았다.
   「너도 도착했겠지, 지금쯤. 거긴 어때? 여긴 엄청 추워. 바다에서 멀어서 그런가봐. 공기를 머금고 있으면 맛이 나. 눈구름을 씹으면 이런 맛일까, 상상하게 돼. 」
   나는 서가 열대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것을 상상했다. 추운 겨울, 유럽의 백인들 사이에서. 적도의 열대어처럼. 이메일은 계속되었다.
   「여기 도착했을 때, 그러니까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 무서웠던 걸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면 어쩌나 하고. 친구한테 이야기하니까 웃더라.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난 돌아가고 싶은걸. 돌아가서 너한테 바다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걸. 해준 적 없었잖아. 이십 년을 바닷가에서 살았다면서. 너한테 바다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서 내 가까이에 있었던 것들을 얘기해줄게. 너도 네 가까이의 것들을 이야기해주길. 」
   나는 서에게 들려줄 것들을 생각하려 애썼다. 아직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바다 가까이에 산 적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추신이 있었다.
   「보고 싶다는 얘기야. 」
   간단한 답장을 보냈다. 나 바다 잘 몰라, 라고 쓰려다가 그만뒀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 것은 이주일 쯤 지난 초저녁이었다. 나는 매일 바다로,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겨우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옆으로 바다를 보고 달릴 수 있게 됐다. 바닷고기들을 생각했다. 평생 바다에서 육지를 곁눈질만 하며 살아가겠지. 얼굴 옆에 달린 눈으로. 말하자면, 나는 바다를 곁눈질 하는 바닷고기였다.
   한 번 해변을 돌면 이십 분에서 이십오 분, 천천히는 삼십 분 정도가 걸렸다. 이십 분 아래가 되지는 않았다. 대교로 올라가는 고가도로 입구 근처 자전거도로부터 해변의 반대쪽 끝까지였다. 해변에 시작과 끝이란 건 없겠지만, 첫 날에 내가 정했다. 일단 오른쪽의 큰 대교를 곁눈질하면서 달린다. 그럼 해변의 곶에 닿게 돼 있었다. 바로 거기, 만과 곶의 모퉁이쯤에 조형물이 하나 있었다. 네온사인으로 된 참돔 한 마리였다. 생선의 뼈를 생각나게 하는 기둥 위에서 반짝거렸다. 매일 나는 그걸 끼고 빙글 돌았다. 그리고 온 길을 거꾸로 갔다. 왼쪽으로 바다를 곁눈질하면서. 이주일 내내 한 번도 참돔을 넘어가지 않았다.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 너머엔 서가 말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 날도 평소처럼 참돔에 도착해 반쯤 돌았다. 딴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한 무리의 인파와 맞닥뜨렸다.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아서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멈추지도 못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참돔을 넘어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길이 너무 좁았다. 어어, 하고 비틀거리다가 겨우 내렸다. 그리고 쭉 걸었다.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끌고. 좁아서 뒤돌 수도 없었다. 왼쪽은 차들이 무신경하게 달리는 도로였다. 백미러와 부딪힐 것 같았다. 오른쪽은 쭉 횟집들이었다. 거리에 네모난 수조가 줄지어 있었다. 처음 보는 어패류가 가득했다. 나는 접시에 올라갈 투명한 살점들을 생각했다. 녀석들은 자다가 뒤척이듯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그 길에서 수조를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멈췄다. 그녀는 차 세 대가 지나가고 나서야 나를 알아챘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참돔처럼 입을 두어 번 뻐끔거렸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비켜 드려요?"
   "어. 네."
   엉거주춤하게 지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쭉 걸었다. 늘어서 있던 횟집들 끝에서야 자전거를 돌릴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다시 마주쳤다. 계속 수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척을 내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수조를 보던 눈빛 그대로. 차 한 대가 지나갔다.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바로 비켜 주지 않았다.
   "이거 뭔지 알아요?"
   "네?"
   그녀는 수조 안을 가리켰다. 정말 못생긴 녀석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툭 불거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음, 우럭?"
   알고 있는 못생긴 놈 중 아무거나 댔다.
   "우럭."
   "네. 우럭."
   우리는 ‘우럭’을 발음하다가, 입 안에서 익살맞게 구르는 ‘ㄹ’ 때문에 다시 웃었다. 애써 참으려는 코웃음으로 시작했다가, 이번엔 숨 넘어 갈 정도로, 깔깔깔. 줄지은 횟집들 앞에서, 못생긴 횟감들이 우릴 구경하는 수조 앞에서, 그렇게 깔깔깔.
   해변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같이 걸었다. 우럭이 자꾸 입안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킥킥거리다가 참돔으로 다시 돌아와서야 겨우 뱉어낼 수 있었다. 우럭은 까만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나는 어설프게 인사하고 페달을 밟았다. 그녀가 뒤에서 말했다. 또 봐요, 우럭 씨.
   그렇게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바다로 갔다. 자전거로 해변을 달리는 시간이 늘어 갔다. 하지만 딱히 알게 된 것은 없었다. 바다는 그냥 바다였다. 바다가 어떤 곳인지 말할 수는 있게 됐다. 하지만 느끼게 해줄 자신은 없었다. 해변에 늘어선 상가들을, 밤이 되면 번쩍거리는 네온사인들을. 겨울에도 잎이 달린 야자수들과 모래사장, 그리고 까맣게 넘실대는 해변을, 그리고 하얀 대교를.
   바다는 계속해서 변했다. 시간, 날씨에 따라서, 혹은 내 기분에 따라서. 그녀를 만난 무렵부터 매일 한 시간씩 카페에 들르기 시작했다. 노트와 펜을 가져가서 생각나는 것들을 끄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1. 바다의 빛깔. 바다에서는 스펙트럼의 모든 색을 볼 수 있다. 붉은색부터 보라색까지. 어쩌면 양쪽 밖의 보이지 않는 빛까지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 한낮의 바다. 빛의 발판이 깔렸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반사된 것이다. 눈부신 조각들이 떼 지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비친 거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그것들은 스스로 빛난다.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3. 하늘 한 쪽 가장자리만 붉은, 그리고 나머지는 점점 어두워지는, 일몰 직후. 밤이 오기 직전. 이때의 바다를 무슨 색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조금은 흐릿한 낮의 가루들이 뿌려져 녹은 것 같기도 하고. 구름이 많다면 행운이다. 해질녘 구름은 진분홍색이다. 강렬한 유채 물감을 무심하게 슥슥, 터치만 한 것 같다.
   4. 밤이 되면, 그리고 달빛이 밝다면, 달로 가는 길이 생긴다. 낮처럼 빛의 발판이 생긴다. 하지만 좀 더 은은하다. 해안선을 따라 가면서 ‘틈’을 찾아야 한다. 네온사인이 바닷물에 비치지 않는, 작고 얇은 틈. 그 틈과 나와 달이 직선에 놓이면, 달빛이 바다에 비치고 하얗게 반짝거리는 길이 생긴다. 맨발로 올라서면 차가울 것이다. 출발하면 중간에 내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매혹적인 길이다.
   겨울 내내 쓴 글들을 모아서 서에게 보여줄 생각을 했다. 서가 있는 곳은 어떨까 궁금했다. 입을 뻐끔거리며, 그녀는 어떤 어항에 있을까. 유럽을 한 바퀴 도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거기도 참돔이 있을까. 나는 네 번째 답장에 이런 문장을 썼다.
   「너도 참돔을 잘못 넘어가진 않았니. 그러지 않았길 빌어. 돌아올 수 없을 테니. 」
   답장은 이랬다.
   「참돔? 갑자기 무슨 참돔이야. 기다려, 돌아갈 테니. 여기 와서 말야, 금붕어를 어항에 넣을 때가 생각났어. 비닐봉지에 담아서 넣어야 하잖아. 갑자기 수온이 바뀌어서 죽어버리지 않게.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영원히 비닐봉지 안에서 살 수는 없을까? 힐끔힐끔, 곁눈질만 하면서. 」
   나는 서와 내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녀를 두 번째로 만난 건 다시 일주일 뒤였다. 내려온 지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아서 계속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렸다. 대신 장갑을 껴야 했다. 손이 갑갑했다. 아니, 근질거렸다. 장갑 속에서 작은 바다 치어들이 손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장갑을 벗으면 대교처럼 새하얀 골격이 있는 건 아닐까. 차들이 거기를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곶에서 곶으로. 엄지 뼈 끝에서 검지 뼈로. 그리고 중지 뼈로. 계속해서 다른 세계로.
   계속 손이 근질거려서 캔맥주를 한 캔 산 날이었다. 자전거를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에 묶어 두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자갈 언덕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해변의 정중앙쯤이었다. 캔을 홀짝거리면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파도가 계속해서 모래를 적시고 있었다. 젖은 모래에서 빛이 났다. 물기와 소금기에 비친 상가 네온사인이었다. 신비하게 빛나는 모래는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해변 끝에서 끝까지 띠처럼 둘러져 있었다. 누군가가 그어 놓은 테두리 같았다. 땅은 여기까지고, 이 너머는 바다야. 넘어갈 테면 넘어가 보시지. 참돔이 이렇게 뻐끔거리는 것을 상상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거기까지 갔다.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파도가 닿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돌아보니 그녀가 있었다.
   "맞죠? 그 때? 어, 음, 우럭 씨? 뭐 하고 계세요?"
   호주머니에 손을 반쯤 찔러 넣은 그녀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나도 미소를 짓고 답해 줬다. 그냥. 보고 있어요.
   "뭘 그렇게. 걸어 들어가시려는 줄 알았어요."
   "그러기엔 춥네요."
   "바다 너무 좋네요. 이런 데 살고 좋겠어요."
   "여행 오셨어요?"
   "네. 일주일 째 바닷가에만 있네요."
   잠깐 뜸을 들이다 말했다.
   "바다만 해도 뭐."

   그녀도 잠깐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럴 것 같아요. 혼자 와서 뭐, 돌아다닐 기분도 안 나고."
   우리는 그 날 한 시간 정도 모래사장을 걷다가 헤어졌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다가 겨우 자전거를 기억해 냈다. 가지러 가야 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걸어버렸다. 방에서 컴퓨터를 켰을 땐 너무 지쳐 있었다. 서의 메일이 와 있었다. 읽지 않았다.

   다음날 누나를 만났다. 이른 오후였다. 날씨는 가을 같았다. 남쪽이라 그런지 너무 따뜻해. 되게 좋아. 전날 누나는 나이를 확인하자마자 말을 놔 버렸다.
   "나 물고기 보고 싶어."
   "바닷가에선 안 보일 텐데요."
   누나는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나도 웃었다.
   "아쿠아리움 가자는 얘기야."
   우리는 아쿠아리움으로 갔다. 통유리 여러 장으로 지은 입구만 덜렁 길 위에 올라와 있었다. 지하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와 매표소, 그리고 요금표밖에 없었다. 

   "오고 싶었나 봐요?"
   "혼자 여행 오는 건 좋아하는데 혼자 돌아다니는 건 안 좋아해."
   "뭐 보고 싶은 거라도?"
   누나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고래상어!"
   나는 누나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이상한 사람인가 싶었다. 누나는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말했다.
   "원래 사람들은 정신병자같은 구석 하나씩은 다 있어."
   "누나는 하필 그게 고래상어네요."
   "그렇네요, 우럭 씨."
   우리는 웃으면서 지하로 들어갔다. 온통 어두웠다. 사람도 많이 없어서 을씨년스러웠다. 수조가 내는 빛이 벽과 천장에 비쳐 어슴푸레하게 흔들렸다. 심해에 내려온 것 같았다. 물고기들은 신비한 조명을 받으며 헤엄쳤다. 모두 수조 밖을 곁눈질하면서.

   열대어들을 모아 놓은 곳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이 뻐끔거렸다. 그리고 작은 몸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 녀석들은 뻐끔거리면서 무슨 맛을 느낄까 궁금해졌다. 열대어들도 눈구름을 씹는 상상을 할까. 서를 떠올렸다. 떠올려야 할 것 같아서 떠올렸다.
   "무슨 생각 해?"
   수조에 눈을 밀착시키고 누나가 물었다.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요."

   누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영락없는 물고기 같았다.

   "재미없어. 피라냐한테 먹이 주는 쇼는 안 하나."
   "애들 오는 데잖아요."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계속해서 걸어 들어갔다. 불가사리와 집게, 상괭이라는 회백색 돌고래와 펭귄들을 지났다. 누나는 펭귄을 보고 희극배우처럼 눈썹을 치켜 올렸다.

   "펭귄이 살 만큼 추운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중얼거렸다.

   "살고 싶어서 살았던 게 아닌가 보죠. 추운 곳에서."

   우리는 킬킬대며 한 층 더 내려갔다. 상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괭이상어, 까치상어, 망치상어, 빨판상어, 제브라상어, 온갖 상어들이 다 있었다. 고래상어는 없었다. 누나는 쪼그라든 불가사리처럼 시무룩해졌다. 너무 커서 그런 게 아닐까요, 위로하려고 했다. 누나는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투정을 부렸다. 나는 대신 제브라상어를 이야기했다. 봐요, 얼룩말 상어래요. 재미있지 않아요? 누나가 말했다. 너처럼 썰렁한 애들이 있어서 펭귄이 버티나 보네.
   수조 안에서 상어들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넓어 봐야 수십 평인 공간에서 평생을 움직여야 할 녀석들이었다. 두꺼운 유리벽 너머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며 녀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잡아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누나가 말했다. 안 그럴 걸. 상어들은 생각보다 온순해. 고래상어는 특히 더.
   비스듬히 바라보면 유리가 두꺼워 수조 안쪽이 일그러졌다. 상어들이 우리를 보면 꽤나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구경하는 꼴일지도. 곁눈질, 곁눈질하면서. 어차피 경험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해안선을 그리던 젖은 모래를, 그 신비하게 빛나는 경계선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해에서, 그러니까 바다에서 육지를 향한 채 그 곡선을 바라보는 바닷고기 떼를 상상했다. 메모해 두었던 한낮의 바다, 눈부신 빛의 조각들은 어쩌면 밤낮없이 땅을 곁눈질하는 바닷고기들의 은색 등비늘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해파리와 가오리와 해마들을 지났다. 그리고 유리 터널에서 상괭이들을 다시 만났다. 반갑게 끽끽대고 있었다. 유리가 두꺼워 들리지는 않았지만. 누나와 나는 녀석들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그곳을 지났다. 끽, 끽. 너무 웃었던 나머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자 둘 다 힘이 풀려 넘어질 뻔 했다.
   그 날도 서의 메일을 읽지 않았다.

   바다는 항상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뭐라 말할 수 없이 그때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한결같았다. 누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바다가 얼마나 차가운지 알려면 그냥 직접 뛰어 들어가 보는 수밖에는 없는 거야. 세 번 뛰어든다 치면 세 번 다 다를걸? 남한테 알려줄 수도 없는 거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거거든. 다른 눈으로 보고, 다른 언어를 쓰고.
   그렇다면 내가 서에게 바다를 표현할 방법은 없는 셈이었다. 직접 데려오는 수밖에. 서의 이야기를 했더니 누나는 웃었다. 감성적인 친구네. 나처럼 직접 와 보면 되지. 나는 이렇게 말하려다 말았다. 아직 비닐봉지에 담겨 새 수조에 적응하고 있을 걸요. 뻐끔거리면서. 누나도 뭔가를 더 말하려다 만 것 같았다. 너는 어디쯤 있니, 이런 비슷한 말이 아닐까 추측했다.
   카페에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된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거야말로 곁눈질이었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자전거를 더 많이 탔다. 해변만 주구장창 돌기는 했지만. 어항 속 금붕어처럼 말이다. 참돔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누나를 만난 날 이후로 한 번도 참돔을 넘어가지 않았다. 그저 대교를 옆에 두고 참돔까지만 몇 번씩을 왔다 갔다 했다. 뻐끔, 뻐끔거리면서. 눈구름을 씹는 상상을 하면서.
   곁눈질도 줄었다. 안 그래도 겨울치고 따뜻했는데 날이 더 풀려버려서 사람들이 많아졌다. 거리에 시선을 둬야 했다. 바다를 그렇게 쳐다볼 이유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혼자 보는 바다와 서랑 둘이서 보는 바다는 다를 것 같았다. 그러니 애써 바다에 집착하는 건 헛것이었다. 대신 사람들을 봤다.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을.
   산책 나온 근처 주민들이 대다수였지만 여행객도 적잖았다. 딱 봐도 여행객인 사람들로 어림잡은 거니까, 주민 같은 여행객까지 합치면 더 많아질지도 몰랐다. 여행객 같은 주민들은 많지 않겠지 대충 생각했다.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다 대신 볼 게 많았다. 사람들은 바다만큼이나 제멋대로였다. 한 사람씩 스쳐 지나갈 때마다 어떤 비밀스런 공간을 엿보는 것 같았다. 강렬한 유채 물감이 거리 여기저기에 흩뿌려지는 듯이 사람들은 걸어갔다. 기차에서 바깥을 구경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뛰어들고 싶은 것까지. 우럭이라는 한 단어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웃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날 우리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라고 했다.
   "졸업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다닐 거야. 내년 겨울엔 아마 북유럽으로."
   "가서 뭐 하게요?"
   "혼자 갈 거니까, 돌아다니기 싫어서 또 한 군데 박혀 있겠지. 행복해 죽을 것 같은 곳에.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이상한 취미야. 북유럽 어디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그런 곳들이겠지."
   "이름만 들어도 추워 보이네요."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한 번 발음해 봐요. 그곳을 생각하면서. 노르웨이." 
   노르웨이. 노르웨이. 누나는 두어 번 중얼거려 보고 웃었다. 그렇네. 그냥 추울 것 같은 단어야. 바람이 세졌다. 그래서 우리는 손을 잡았다. 꽤 오래 서 있었다. 어색해질 때까지. 근처에 있던 한 쌍이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면 나는 바다로 뛰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여기까지 와서? 남자 쪽이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쳐다봤다. 여자 쪽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화내는 거야? 이게 화낼 거야?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여기까지 와서 왜 화를 내? 남자는 후우, 하고 세게 한숨을 쉬었다. 입김이 마구 흩어졌다. 왜 여기까지 와서 그래? 오빠가 오자 그랬잖아. 내가 뭐 잘못했어? 여자는 더 세게 몰아붙였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짜증을 내, 진짜. 남자는 등을 돌리며 말했다. 됐어. 그만하자. 잘못했어. 그리고 천천히 모래사장을 걸었다. 여자는 따라가지 않고 서 있다가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나 먼저 들어간다. 오든지 말든지. 그리고는 모래사장을 벗어났다.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서의 이메일이 생각났다. 누나의 손을 놓았다. 누나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우럭같이 뻐끔거렸다. 처음 만난 날처럼.
   "고래상어는 왜 보고 싶었던 거예요?"
   겨우 꺼낸 말이 그거였다. 누나는 웃었다. 입은 미소만 지은 채 코로 웃었다. 고래가 물을 뿜는 것 같았다.
   "방에서 뭐 보여줄게. 올래?"
   9시였다. 서의 메일이 하나쯤은 더 와있을 것 같았다.
   "아니요. 다음에요."

   다음날 아침 계정을 열었다. 메일이 두 개 와 있었다.
   「잘 지내? 나 여기가 익숙해져버린 것 같아. 처음에 그랬잖아, 친구가.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아예 헛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아. 보고 싶지 않다는 소리는 아냐.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듣고 싶은 얘기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생긴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아. 그것도 이전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들이.
   프랑스에서 집시 여인을 만났어. 뤽상부르 공원에서 팔을 잡혔어. 불어로 뭐라고 막 이야기하더라. 나는 어깨를 으쓱했어. 그랬더니, 두 유 스피크 잉글리시? 불어의 바람 새는 소리가 영어에서도 그대로 나더라. 회색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뿌리칠 수가 없었어. 돈을 주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대. 우리는 벤치에 앉았어. 연못에 오리가 있었어. 새끼 오리 네 마리가 어미를 따라갔어. 새끼 오리에게도 비닐봉지가 필요할까, 생각했어.
   집시 여인은 어떤 도시의 다리 얘기를 해 줬어. 도시 한가운데에 강이 흐르고 있었어. 넓어서 그냥은 못 지나가고, 도시 외곽까지 나가야 겨우 얕은 곳을 건널 수 있었던 거지. 사람들은 이전부터 다리를 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강에 마녀가 살았대나 뭐래나. 강을 건너는 나룻배들도 다 뒤집어 버리는 사악한 마녀였어. 바로 강 건너에 사는 연인들을 생각해 봐. 얼마나 속이 탔을까.
   그러던 어느 날! (집시 여인이 이 식상한 말을 얼마나 맛있게 했던지, 아직도 기억나네) 도시에 영웅이 나타나서 마녀를 물리쳐 줬어. 이제 다리를 지을 수 있게 된 거지. 그런데 마녀가 죽으면서 이런 말을 했어. 다리를 건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마녀가 정말 똑똑했다고 생각해.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니.
   드디어 사람들은 다리를 지었어. 하지만 아무도 건너지 못했지. 맞은편을 바라만 보면서. 마녀가 내린 저주가 무엇일까 모두들 고민했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어. 그들이 상상한 모든 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 확인할 용기를 낼 수 없었어.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도록 시민들은 한 번도 다리를 쓰지 못했대.
   집시 여인에게 2유로를 줬어. 정말 고마워하더라. 그리고 공원 안에 있는 작은 돌다리를 건너 사라졌어. 재미있지 않아? 여기서 내게는 이런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어! 」
   나는 이 곳 해변의 새하얀 대교를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교를 건너는 사람들을,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밤에 나타나는 빛나는 해안선을, 네온사인 참돔을, 또 바다를, 두려움 같은 바다를 생각했다. 그리고 누나를 두 번째로 만난 날 파도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내가 생각하던 것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저 안에 뭐가 있을까 상상하고 있었다. 해변 상가의 네온사인과 대교의 야간 조명이 바다에 쏟아졌다. 빛은 불꽃같았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뭐라 표현할 수도 없는 색으로 반짝거렸다. 그 안에 있을만한 것들을 상상했다. 수면 아래는 잔잔할까. 부드러울까. 겉은 저렇게 화려한데. 손을 넣으면 뭔가가 갉아먹지는 않을까. 장갑 속 치어들이 저기 사는 건 아닐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육지로 올라오고 싶은 심해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비스듬히 헤엄치며. 얼굴 옆에 달린 눈으로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곁눈질하며. 불꽃처럼 흔들리는 저 빛들은 그런 물고기들이 내는 게 아닐까.
   두 번째 메일은 이랬다.
   「답이 없네. 이야기가 재미없었나봐. 기다릴게.
   스위스에서 알프스 융프라우에 갔어. 봉우리 이름이야. 젊은 처녀라는 뜻이래. 인터라켄(호수 사이라는 뜻이야)이라는 도시에서 모노레일을 탔어. 정상 가까이까지 데려다주더라. 올라가면서 또 똑같은 두려움이 느껴졌어. 하지만 이번엔 괜찮았어. 집시 여인의 이야기가 기억났거든.
   얼음 동굴이 있었어. 관광용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려면 어때. 융프라우를 사람들이 쉽게 등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거래. 이 동굴을 짓던 인부들이 공사 중에 조개 화석을 발견했대. 신기하더라. 이렇게 높은 곳이 옛날에는 바다였다니. 재미있다 못해 아름다운 이야기. 우리는 옛날에 바다였던 얼음 동굴을 지나서 꼭대기로 올라갔어. 등반을 한 건 아니고. 모노레일만 한두 시간 타다가 따뜻한 건물 안에서 몇 걸음 걸은 것밖엔 없어.
   문을 열고 나갔더니 상상도 못했던 세상이 있었어. 정말로. 세 가지 색밖에 없더라. 하늘색, 흰색, 드문드문 검은색.
   여기는 이야기 못할 것 같다. 글재주도 없지만, 아무리 설명해 봐야 네가 완전히 나와 같은 장면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언젠가 너도 한 번 와 보길 바랄게.
   한 곳 한 곳 가볼 때마다 내가 달라지는 게 느껴져. 조금씩 다른 언어를 쓰게 되는 것 같아. 우리는 달라지지 않길. 」
   서가 들어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읽었다는 간단한 답장만 보냈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책은 재미없었고 잠은 오지 않았다. 집을 나갔다. 해변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은 처음이었다. 밖은 한산했다. 익숙해진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네 개 지났다. 을씨년스러웠다. 처마 밑에 달린 생선들을 지났다. 바다가 나왔다.
   역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낮게 뜬 해가 바다를 비췄다. 대교의 윤곽이 희미했다.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차 몇 대가 위태롭게 지나갔다. 바다는 여전히 흔들렸다.
   그러다 모래사장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파도가 닿을락말락한 곳이었다. 자전거를 잠깐 세워 두고 거기까지 걸었다. 걸을수록 파도 소리가 크게 났다. 나는 가까이까지 가서 그걸 내려다봤다. 물고기였다. 죽은 채 거기까지 쓸려나와 있었다. 화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너덜너덜한 몸으로.

   다음으로 누나를 만난 건 나흘 뒤 저녁이었다. 전화가 왔다. 슬슬 올라가야겠어. 뭐하니? 만날 보다가 갑자기.
   만나서 해변을 걸었다.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나는 누나에게 물어봤다. 밤바다를 가리키며.

   "누나는 저 안에 뭐가 있을 거 같아요?"
   "갑자기 왜?"
   "그냥."
   누나는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모르겠다. 고래상어!"
   우리는 웃었다.
   "고래상어 되게 좋아하시네."
   "이름도 좋잖아. 발음해 봐. 고래상어."
   고래상어.
   네 음절이 한 번에 입 안에서 굴렀다. 원래 한 글자인 것처럼.
   "좋은 단어네요. 뭔지 알겠어요. 고래상어. 고래상어."
   "빠르네."
   "이유가 이것뿐이에요?"
   "글쎄. 궁금해?"
   잠깐 생각했다. 며칠 전 해변에서 본 물고기가 떠올랐다. 녀석은 머릿속에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서 나를 쳐다봤다.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누나의 방으로 갔다.

   누나는 침대에서 노트북으로 내게 다큐 하나를 보여줬다. 고래상어에 대한 내용이었다. 제작진은 열대의 바다에서 고래상어를 따라다녔다. 다른 녀석들보다 수십 배 커다란 고래상어는 두세 마리씩 바다를 헤엄쳤다. 상어 등에 흰색 점 찍고 크기만 늘려 놓으면 될 것 같아요. 내 말에 누나가 반박했다. 얼굴을 봐. 누나의 말에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고래상어의 눈이 점처럼 보였다. 미소 짓는 것처럼 커다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빙그레. 인물이 좋네요. 누나는 내 옆구리를 찔렀다. 손톱이 맨살을 긁어 아팠다.
   나레이션이 말했다. 고래상어의 헤엄처럼 말했다.
   '고래상어도 어류에 속합니다. 아가미로 호흡하죠. 그런데 녀석들의 아가미는 좀 특이한 편입니다. 보통의 어류들은 아가미를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지만, 이 녀석들은 아닙니다. 스스로 아가미를 열지 못하죠.'
   나레이션은 여기서 잠깐 뜸을 들였다.
   '그래서 녀석들은 멈춰 있으면 숨이 막혀 죽습니다. 물살로 아가미를 열기 위해서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고래상어는 그렇게 평생, 헤엄칩니다.'
   이제 알겠어? 누나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메라는 고래상어 두 마리의 뒷모습을 잡았다. 텅 빈 바다 속에서 고래상어들은 헤엄쳤다. 계속해서.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끊임없이 새로운 곳으로. 짙은 푸른색에 가려 희미해질 때까지. 좌우로 움직이던 꼬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화면에는 짙푸른 바다밖에 남지 않았다. 텅 빈 바다. 그리고 서서히 암전하며 다큐가 끝났다.
   우리는 숨이 막혀서 한참을 더 움직였다.

   다시 해변에 간 건 일주일 후였다. 아침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한국에 들어온 서와 통화를 했다. 이야기는 무탈하니?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내려와야 할 걸.

   자전거 페달이 낯설었다. 다시 횡단보도 네 개를 지나 시장으로 들어갔다. 한산해서 페달을 더 빠르게 밟았다. 순식간에 시장을 빠져나와 해변으로 향하는 자전거도로에 들어섰다. 오른쪽에는 대교에 올라가는 차들이 보였다. 계속해서 달렸다. 방파제가 나타나고, 바다가 솟아올랐다. 등 뒤에서부터 뻗어나가 왼쪽으로 휘어지는 대교를 보면서 해변까지 갔다. 언제나처럼 바다는 흔들렸다.
   달리면서 먼 바다를 생각했다. 요동치는 해안선 너머를 생각했다. 흔들리는 수면 아래 물고기들을 생각했다. 가로로 길게 뻗은 하얀 대교를, 그 위를 달리는 차들을, 그리고 대교를 건넌 사람들이 겪게 될 일들을 생각했다. 대교 너머까지 생각했다. 수평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더 멀리를. 거기엔 지난 번 죽은 물고기의 친척들과 꿈틀대는 우럭과 붉게 번쩍이는 참돔, 또 옆에 달린 눈으로 끝없이 곁눈질하는 물고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심해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무언가가 있었고 무엇보다 고래상어가 있었다. 평생 헤엄치는, 매 순간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고래상어가 있었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있었다.
   생각하다가 어느새 참돔에 도착했다.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참돔을 지나갔다. 옆의 다른 해변으로 통하는 길이 나왔다. 자전거로 거기까지 가 보고 싶었다. 참돔이 내 뒤에서 뻐끔거리는 것 같았다. 똑같이 뻐끔거려 줬다.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갔다. 짙푸른 바다 속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고래상어처럼.

 

 

 

 

 

  해변의 고래상어

 

 

   기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계속 창밖을 봤다. 능선과 들판과 강줄기들은 하나같이 비현실적이었다. 저기서 살면 어떨까 상상했다. 어쩌면 영영 닿을 일 없는 세계일지도 몰랐다. 바깥은 초록색 혹은 노란색 유화 물감을 손가락으로 대충 문지른 것처럼 지나갔다. 창문턱을 넘으면 같이 휩쓸릴 것 같았다.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안쪽은 지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잤다. 깨 있는 몇몇마저도 스마트폰을 봤다. 혹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나는 두꺼운 유리벽으로 된 수조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진 채 딱딱한 유리벽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도 수조 안에서 질식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래, 바다. 겨울 바다가 얼마나 운치 있는데. 너 바다 본 적 없다며. 같이 올걸 그랬다.' 통화였다. 자랑하는 것 같았다.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바다를 그리고 있을까. 친구를 부러워하고 있을까. 혹시 만나게 된다면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 바다는 말이에요, …….
   말할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난 겨울은 그렇게 시작됐다.

   집에 안 쓰는 자전거가 하나 있었다. 꽤 오래 전에 산 녀석이었다. 타지도 못할 언덕 동네에 살 때였는데 굳이 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평지로 이사한 건 내가 대학에 들어간 다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울로 올라가야 했고 동생은 용돈으로 새 자전거를 샀다. 그래서 몇 년씩이나 방치되어 있던 것이다. 나는 녀석을 타고 나갔다. 페달이 낯설어서 오랜만이네, 하고 인사해 줬다. 삐걱, 소리가 났다. 오후 다섯 시였다.
   아파트 단지를 나오면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왼쪽으로 꺾었다. 우레탄은 부드러웠다. 칙칙하게 빨간 색이었다. 첫 횡단보도 앞에서 멈출 때 넘어질 뻔 했다. 두 번째부터는 괜찮았다. 횡단보도 네 개를 지나 자전거 도로가 사라지고 시장이 나왔다. 짜고 고소한 건어물 냄새가 났다. 가다 서다 하면서 가판대 뒤의 아주머니들을 흘끔거렸다. 사나운 짐승들 같았다. 처마에 매단 북어들과 눈싸움을 하는. 거리는 북적였다. 거의 걷다시피 해야 했다. 앞으로는 낮이나 늦은 밤에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장 거리를 겨우 빠져나와 큰길을 조금 달렸다. 대교로 통하는 고가도로 입구가 차도 가운데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쯤부터 자전거도로가 다시 이어졌다. 얼마 가지 않아 방파제가 나타났다. 바다였다. 역시 낯설었다.
   그날 밤 서의 첫 번째 이메일을 받았다.
   「너도 도착했겠지, 지금쯤. 거긴 어때? 여긴 엄청 추워. 바다에서 멀어서 그런가봐. 공기를 머금고 있으면 맛이 나. 눈구름을 씹으면 이런 맛일까, 상상하게 돼. 」
   나는 서가 열대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것을 상상했다. 추운 겨울, 유럽의 백인들 사이에서. 적도의 열대어처럼. 이메일은 계속되었다.
   「여기 도착했을 때, 그러니까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 무서웠던 걸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면 어쩌나 하고. 친구한테 이야기하니까 웃더라.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난 돌아가고 싶은걸. 돌아가서 너한테 바다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걸. 해준 적 없었잖아. 이십 년을 바닷가에서 살았다면서. 너한테 바다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서 내 가까이에 있었던 것들을 얘기해줄게. 너도 네 가까이의 것들을 이야기해주길. 」
   나는 서에게 들려줄 것들을 생각하려 애썼다. 아직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바다 가까이에 산 적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추신이 있었다.
   「보고 싶다는 얘기야. 」
   간단한 답장을 보냈다. 나 바다 잘 몰라, 라고 쓰려다가 그만뒀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 것은 이주일 쯤 지난 초저녁이었다. 나는 매일 바다로,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겨우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옆으로 바다를 보고 달릴 수 있게 됐다. 바닷고기들을 생각했다. 평생 바다에서 육지를 곁눈질만 하며 살아가겠지. 얼굴 옆에 달린 눈으로. 말하자면, 나는 바다를 곁눈질 하는 바닷고기였다.
   한 번 해변을 돌면 이십 분에서 이십오 분, 천천히는 삼십 분 정도가 걸렸다. 이십 분 아래가 되지는 않았다. 대교로 올라가는 고가도로 입구 근처 자전거도로부터 해변의 반대쪽 끝까지였다. 해변에 시작과 끝이란 건 없겠지만, 첫 날에 내가 정했다. 일단 오른쪽의 큰 대교를 곁눈질하면서 달린다. 그럼 해변의 곶에 닿게 돼 있었다. 바로 거기, 만과 곶의 모퉁이쯤에 조형물이 하나 있었다. 네온사인으로 된 참돔 한 마리였다. 생선의 뼈를 생각나게 하는 기둥 위에서 반짝거렸다. 매일 나는 그걸 끼고 빙글 돌았다. 그리고 온 길을 거꾸로 갔다. 왼쪽으로 바다를 곁눈질하면서. 이주일 내내 한 번도 참돔을 넘어가지 않았다.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 너머엔 서가 말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 날도 평소처럼 참돔에 도착해 반쯤 돌았다. 딴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한 무리의 인파와 맞닥뜨렸다. 자전거가 익숙하지 않아서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멈추지도 못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참돔을 넘어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길이 너무 좁았다. 어어, 하고 비틀거리다가 겨우 내렸다. 그리고 쭉 걸었다.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끌고. 좁아서 뒤돌 수도 없었다. 왼쪽은 차들이 무신경하게 달리는 도로였다. 백미러와 부딪힐 것 같았다. 오른쪽은 쭉 횟집들이었다. 거리에 네모난 수조가 줄지어 있었다. 처음 보는 어패류가 가득했다. 나는 접시에 올라갈 투명한 살점들을 생각했다. 녀석들은 자다가 뒤척이듯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그 길에서 수조를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멈췄다. 그녀는 차 세 대가 지나가고 나서야 나를 알아챘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참돔처럼 입을 두어 번 뻐끔거렸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비켜 드려요?"
   "어. 네."
   엉거주춤하게 지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쭉 걸었다. 늘어서 있던 횟집들 끝에서야 자전거를 돌릴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다시 마주쳤다. 계속 수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척을 내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수조를 보던 눈빛 그대로. 차 한 대가 지나갔다.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바로 비켜 주지 않았다.
   "이거 뭔지 알아요?"
   "네?"
   그녀는 수조 안을 가리켰다. 정말 못생긴 녀석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툭 불거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음, 우럭?"
   알고 있는 못생긴 놈 중 아무거나 댔다.
   "우럭."
   "네. 우럭."
   우리는 ‘우럭’을 발음하다가, 입 안에서 익살맞게 구르는 ‘ㄹ’ 때문에 다시 웃었다. 애써 참으려는 코웃음으로 시작했다가, 이번엔 숨 넘어 갈 정도로, 깔깔깔. 줄지은 횟집들 앞에서, 못생긴 횟감들이 우릴 구경하는 수조 앞에서, 그렇게 깔깔깔.
   해변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같이 걸었다. 우럭이 자꾸 입안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킥킥거리다가 참돔으로 다시 돌아와서야 겨우 뱉어낼 수 있었다. 우럭은 까만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나는 어설프게 인사하고 페달을 밟았다. 그녀가 뒤에서 말했다. 또 봐요, 우럭 씨.
   그렇게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바다로 갔다. 자전거로 해변을 달리는 시간이 늘어 갔다. 하지만 딱히 알게 된 것은 없었다. 바다는 그냥 바다였다. 바다가 어떤 곳인지 말할 수는 있게 됐다. 하지만 느끼게 해줄 자신은 없었다. 해변에 늘어선 상가들을, 밤이 되면 번쩍거리는 네온사인들을. 겨울에도 잎이 달린 야자수들과 모래사장, 그리고 까맣게 넘실대는 해변을, 그리고 하얀 대교를.
   바다는 계속해서 변했다. 시간, 날씨에 따라서, 혹은 내 기분에 따라서. 그녀를 만난 무렵부터 매일 한 시간씩 카페에 들르기 시작했다. 노트와 펜을 가져가서 생각나는 것들을 끄적인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1. 바다의 빛깔. 바다에서는 스펙트럼의 모든 색을 볼 수 있다. 붉은색부터 보라색까지. 어쩌면 양쪽 밖의 보이지 않는 빛까지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 한낮의 바다. 빛의 발판이 깔렸다고 생각했다. 햇빛이 반사된 것이다. 눈부신 조각들이 떼 지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비친 거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그것들은 스스로 빛난다.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3. 하늘 한 쪽 가장자리만 붉은, 그리고 나머지는 점점 어두워지는, 일몰 직후. 밤이 오기 직전. 이때의 바다를 무슨 색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조금은 흐릿한 낮의 가루들이 뿌려져 녹은 것 같기도 하고. 구름이 많다면 행운이다. 해질녘 구름은 진분홍색이다. 강렬한 유채 물감을 무심하게 슥슥, 터치만 한 것 같다.
   4. 밤이 되면, 그리고 달빛이 밝다면, 달로 가는 길이 생긴다. 낮처럼 빛의 발판이 생긴다. 하지만 좀 더 은은하다. 해안선을 따라 가면서 ‘틈’을 찾아야 한다. 네온사인이 바닷물에 비치지 않는, 작고 얇은 틈. 그 틈과 나와 달이 직선에 놓이면, 달빛이 바다에 비치고 하얗게 반짝거리는 길이 생긴다. 맨발로 올라서면 차가울 것이다. 출발하면 중간에 내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매혹적인 길이다.
   겨울 내내 쓴 글들을 모아서 서에게 보여줄 생각을 했다. 서가 있는 곳은 어떨까 궁금했다. 입을 뻐끔거리며, 그녀는 어떤 어항에 있을까. 유럽을 한 바퀴 도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거기도 참돔이 있을까. 나는 네 번째 답장에 이런 문장을 썼다.
   「너도 참돔을 잘못 넘어가진 않았니. 그러지 않았길 빌어. 돌아올 수 없을 테니. 」
   답장은 이랬다.
   「참돔? 갑자기 무슨 참돔이야. 기다려, 돌아갈 테니. 여기 와서 말야, 금붕어를 어항에 넣을 때가 생각났어. 비닐봉지에 담아서 넣어야 하잖아. 갑자기 수온이 바뀌어서 죽어버리지 않게.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영원히 비닐봉지 안에서 살 수는 없을까? 힐끔힐끔, 곁눈질만 하면서. 」
   나는 서와 내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녀를 두 번째로 만난 건 다시 일주일 뒤였다. 내려온 지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아서 계속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렸다. 대신 장갑을 껴야 했다. 손이 갑갑했다. 아니, 근질거렸다. 장갑 속에서 작은 바다 치어들이 손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장갑을 벗으면 대교처럼 새하얀 골격이 있는 건 아닐까. 차들이 거기를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곶에서 곶으로. 엄지 뼈 끝에서 검지 뼈로. 그리고 중지 뼈로. 계속해서 다른 세계로.
   계속 손이 근질거려서 캔맥주를 한 캔 산 날이었다. 자전거를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에 묶어 두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자갈 언덕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해변의 정중앙쯤이었다. 캔을 홀짝거리면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파도가 계속해서 모래를 적시고 있었다. 젖은 모래에서 빛이 났다. 물기와 소금기에 비친 상가 네온사인이었다. 신비하게 빛나는 모래는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해변 끝에서 끝까지 띠처럼 둘러져 있었다. 누군가가 그어 놓은 테두리 같았다. 땅은 여기까지고, 이 너머는 바다야. 넘어갈 테면 넘어가 보시지. 참돔이 이렇게 뻐끔거리는 것을 상상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거기까지 갔다.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파도가 닿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돌아보니 그녀가 있었다.
   "맞죠? 그 때? 어, 음, 우럭 씨? 뭐 하고 계세요?"
   호주머니에 손을 반쯤 찔러 넣은 그녀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나도 미소를 짓고 답해 줬다. 그냥. 보고 있어요.
   "뭘 그렇게. 걸어 들어가시려는 줄 알았어요."
   "그러기엔 춥네요."
   "바다 너무 좋네요. 이런 데 살고 좋겠어요."
   "여행 오셨어요?"
   "네. 일주일 째 바닷가에만 있네요."
   잠깐 뜸을 들이다 말했다.
   "바다만 해도 뭐."

   그녀도 잠깐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럴 것 같아요. 혼자 와서 뭐, 돌아다닐 기분도 안 나고."
   우리는 그 날 한 시간 정도 모래사장을 걷다가 헤어졌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다가 겨우 자전거를 기억해 냈다. 가지러 가야 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걸어버렸다. 방에서 컴퓨터를 켰을 땐 너무 지쳐 있었다. 서의 메일이 와 있었다. 읽지 않았다.

   다음날 누나를 만났다. 이른 오후였다. 날씨는 가을 같았다. 남쪽이라 그런지 너무 따뜻해. 되게 좋아. 전날 누나는 나이를 확인하자마자 말을 놔 버렸다.
   "나 물고기 보고 싶어."
   "바닷가에선 안 보일 텐데요."
   누나는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나도 웃었다.
   "아쿠아리움 가자는 얘기야."
   우리는 아쿠아리움으로 갔다. 통유리 여러 장으로 지은 입구만 덜렁 길 위에 올라와 있었다. 지하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와 매표소, 그리고 요금표밖에 없었다. 

   "오고 싶었나 봐요?"
   "혼자 여행 오는 건 좋아하는데 혼자 돌아다니는 건 안 좋아해."
   "뭐 보고 싶은 거라도?"
   누나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고래상어!"
   나는 누나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이상한 사람인가 싶었다. 누나는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말했다.
   "원래 사람들은 정신병자같은 구석 하나씩은 다 있어."
   "누나는 하필 그게 고래상어네요."
   "그렇네요, 우럭 씨."
   우리는 웃으면서 지하로 들어갔다. 온통 어두웠다. 사람도 많이 없어서 을씨년스러웠다. 수조가 내는 빛이 벽과 천장에 비쳐 어슴푸레하게 흔들렸다. 심해에 내려온 것 같았다. 물고기들은 신비한 조명을 받으며 헤엄쳤다. 모두 수조 밖을 곁눈질하면서.

   열대어들을 모아 놓은 곳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이 뻐끔거렸다. 그리고 작은 몸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 녀석들은 뻐끔거리면서 무슨 맛을 느낄까 궁금해졌다. 열대어들도 눈구름을 씹는 상상을 할까. 서를 떠올렸다. 떠올려야 할 것 같아서 떠올렸다.
   "무슨 생각 해?"
   수조에 눈을 밀착시키고 누나가 물었다.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요."

   누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영락없는 물고기 같았다.

   "재미없어. 피라냐한테 먹이 주는 쇼는 안 하나."
   "애들 오는 데잖아요."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계속해서 걸어 들어갔다. 불가사리와 집게, 상괭이라는 회백색 돌고래와 펭귄들을 지났다. 누나는 펭귄을 보고 희극배우처럼 눈썹을 치켜 올렸다.

   "펭귄이 살 만큼 추운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중얼거렸다.

   "살고 싶어서 살았던 게 아닌가 보죠. 추운 곳에서."

   우리는 킬킬대며 한 층 더 내려갔다. 상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괭이상어, 까치상어, 망치상어, 빨판상어, 제브라상어, 온갖 상어들이 다 있었다. 고래상어는 없었다. 누나는 쪼그라든 불가사리처럼 시무룩해졌다. 너무 커서 그런 게 아닐까요, 위로하려고 했다. 누나는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투정을 부렸다. 나는 대신 제브라상어를 이야기했다. 봐요, 얼룩말 상어래요. 재미있지 않아요? 누나가 말했다. 너처럼 썰렁한 애들이 있어서 펭귄이 버티나 보네.
   수조 안에서 상어들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넓어 봐야 수십 평인 공간에서 평생을 움직여야 할 녀석들이었다. 두꺼운 유리벽 너머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며 녀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잡아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누나가 말했다. 안 그럴 걸. 상어들은 생각보다 온순해. 고래상어는 특히 더.
   비스듬히 바라보면 유리가 두꺼워 수조 안쪽이 일그러졌다. 상어들이 우리를 보면 꽤나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구경하는 꼴일지도. 곁눈질, 곁눈질하면서. 어차피 경험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해안선을 그리던 젖은 모래를, 그 신비하게 빛나는 경계선을 떠올렸다. 그리고 천해에서, 그러니까 바다에서 육지를 향한 채 그 곡선을 바라보는 바닷고기 떼를 상상했다. 메모해 두었던 한낮의 바다, 눈부신 빛의 조각들은 어쩌면 밤낮없이 땅을 곁눈질하는 바닷고기들의 은색 등비늘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해파리와 가오리와 해마들을 지났다. 그리고 유리 터널에서 상괭이들을 다시 만났다. 반갑게 끽끽대고 있었다. 유리가 두꺼워 들리지는 않았지만. 누나와 나는 녀석들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그곳을 지났다. 끽, 끽. 너무 웃었던 나머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자 둘 다 힘이 풀려 넘어질 뻔 했다.
   그 날도 서의 메일을 읽지 않았다.

   바다는 항상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뭐라 말할 수 없이 그때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한결같았다. 누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바다가 얼마나 차가운지 알려면 그냥 직접 뛰어 들어가 보는 수밖에는 없는 거야. 세 번 뛰어든다 치면 세 번 다 다를걸? 남한테 알려줄 수도 없는 거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거거든. 다른 눈으로 보고, 다른 언어를 쓰고.
   그렇다면 내가 서에게 바다를 표현할 방법은 없는 셈이었다. 직접 데려오는 수밖에. 서의 이야기를 했더니 누나는 웃었다. 감성적인 친구네. 나처럼 직접 와 보면 되지. 나는 이렇게 말하려다 말았다. 아직 비닐봉지에 담겨 새 수조에 적응하고 있을 걸요. 뻐끔거리면서. 누나도 뭔가를 더 말하려다 만 것 같았다. 너는 어디쯤 있니, 이런 비슷한 말이 아닐까 추측했다.
   카페에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된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거야말로 곁눈질이었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자전거를 더 많이 탔다. 해변만 주구장창 돌기는 했지만. 어항 속 금붕어처럼 말이다. 참돔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누나를 만난 날 이후로 한 번도 참돔을 넘어가지 않았다. 그저 대교를 옆에 두고 참돔까지만 몇 번씩을 왔다 갔다 했다. 뻐끔, 뻐끔거리면서. 눈구름을 씹는 상상을 하면서.
   곁눈질도 줄었다. 안 그래도 겨울치고 따뜻했는데 날이 더 풀려버려서 사람들이 많아졌다. 거리에 시선을 둬야 했다. 바다를 그렇게 쳐다볼 이유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혼자 보는 바다와 서랑 둘이서 보는 바다는 다를 것 같았다. 그러니 애써 바다에 집착하는 건 헛것이었다. 대신 사람들을 봤다.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을.
   산책 나온 근처 주민들이 대다수였지만 여행객도 적잖았다. 딱 봐도 여행객인 사람들로 어림잡은 거니까, 주민 같은 여행객까지 합치면 더 많아질지도 몰랐다. 여행객 같은 주민들은 많지 않겠지 대충 생각했다.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다 대신 볼 게 많았다. 사람들은 바다만큼이나 제멋대로였다. 한 사람씩 스쳐 지나갈 때마다 어떤 비밀스런 공간을 엿보는 것 같았다. 강렬한 유채 물감이 거리 여기저기에 흩뿌려지는 듯이 사람들은 걸어갔다. 기차에서 바깥을 구경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뛰어들고 싶은 것까지. 우럭이라는 한 단어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웃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날 우리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라고 했다.
   "졸업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다닐 거야. 내년 겨울엔 아마 북유럽으로."
   "가서 뭐 하게요?"
   "혼자 갈 거니까, 돌아다니기 싫어서 또 한 군데 박혀 있겠지. 행복해 죽을 것 같은 곳에.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이상한 취미야. 북유럽 어디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그런 곳들이겠지."
   "이름만 들어도 추워 보이네요."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한 번 발음해 봐요. 그곳을 생각하면서. 노르웨이." 
   노르웨이. 노르웨이. 누나는 두어 번 중얼거려 보고 웃었다. 그렇네. 그냥 추울 것 같은 단어야. 바람이 세졌다. 그래서 우리는 손을 잡았다. 꽤 오래 서 있었다. 어색해질 때까지. 근처에 있던 한 쌍이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면 나는 바다로 뛰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여기까지 와서? 남자 쪽이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쳐다봤다. 여자 쪽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화내는 거야? 이게 화낼 거야?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여기까지 와서 왜 화를 내? 남자는 후우, 하고 세게 한숨을 쉬었다. 입김이 마구 흩어졌다. 왜 여기까지 와서 그래? 오빠가 오자 그랬잖아. 내가 뭐 잘못했어? 여자는 더 세게 몰아붙였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짜증을 내, 진짜. 남자는 등을 돌리며 말했다. 됐어. 그만하자. 잘못했어. 그리고 천천히 모래사장을 걸었다. 여자는 따라가지 않고 서 있다가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나 먼저 들어간다. 오든지 말든지. 그리고는 모래사장을 벗어났다.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서의 이메일이 생각났다. 누나의 손을 놓았다. 누나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우럭같이 뻐끔거렸다. 처음 만난 날처럼.
   "고래상어는 왜 보고 싶었던 거예요?"
   겨우 꺼낸 말이 그거였다. 누나는 웃었다. 입은 미소만 지은 채 코로 웃었다. 고래가 물을 뿜는 것 같았다.
   "방에서 뭐 보여줄게. 올래?"
   9시였다. 서의 메일이 하나쯤은 더 와있을 것 같았다.
   "아니요. 다음에요."

   다음날 아침 계정을 열었다. 메일이 두 개 와 있었다.
   「잘 지내? 나 여기가 익숙해져버린 것 같아. 처음에 그랬잖아, 친구가.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아예 헛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아. 보고 싶지 않다는 소리는 아냐.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듣고 싶은 얘기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생긴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아. 그것도 이전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들이.
   프랑스에서 집시 여인을 만났어. 뤽상부르 공원에서 팔을 잡혔어. 불어로 뭐라고 막 이야기하더라. 나는 어깨를 으쓱했어. 그랬더니, 두 유 스피크 잉글리시? 불어의 바람 새는 소리가 영어에서도 그대로 나더라. 회색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뿌리칠 수가 없었어. 돈을 주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대. 우리는 벤치에 앉았어. 연못에 오리가 있었어. 새끼 오리 네 마리가 어미를 따라갔어. 새끼 오리에게도 비닐봉지가 필요할까, 생각했어.
   집시 여인은 어떤 도시의 다리 얘기를 해 줬어. 도시 한가운데에 강이 흐르고 있었어. 넓어서 그냥은 못 지나가고, 도시 외곽까지 나가야 겨우 얕은 곳을 건널 수 있었던 거지. 사람들은 이전부터 다리를 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강에 마녀가 살았대나 뭐래나. 강을 건너는 나룻배들도 다 뒤집어 버리는 사악한 마녀였어. 바로 강 건너에 사는 연인들을 생각해 봐. 얼마나 속이 탔을까.
   그러던 어느 날! (집시 여인이 이 식상한 말을 얼마나 맛있게 했던지, 아직도 기억나네) 도시에 영웅이 나타나서 마녀를 물리쳐 줬어. 이제 다리를 지을 수 있게 된 거지. 그런데 마녀가 죽으면서 이런 말을 했어. 다리를 건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마녀가 정말 똑똑했다고 생각해.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니.
   드디어 사람들은 다리를 지었어. 하지만 아무도 건너지 못했지. 맞은편을 바라만 보면서. 마녀가 내린 저주가 무엇일까 모두들 고민했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어. 그들이 상상한 모든 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 확인할 용기를 낼 수 없었어.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도록 시민들은 한 번도 다리를 쓰지 못했대.
   집시 여인에게 2유로를 줬어. 정말 고마워하더라. 그리고 공원 안에 있는 작은 돌다리를 건너 사라졌어. 재미있지 않아? 여기서 내게는 이런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어! 」
   나는 이 곳 해변의 새하얀 대교를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교를 건너는 사람들을,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밤에 나타나는 빛나는 해안선을, 네온사인 참돔을, 또 바다를, 두려움 같은 바다를 생각했다. 그리고 누나를 두 번째로 만난 날 파도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내가 생각하던 것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저 안에 뭐가 있을까 상상하고 있었다. 해변 상가의 네온사인과 대교의 야간 조명이 바다에 쏟아졌다. 빛은 불꽃같았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뭐라 표현할 수도 없는 색으로 반짝거렸다. 그 안에 있을만한 것들을 상상했다. 수면 아래는 잔잔할까. 부드러울까. 겉은 저렇게 화려한데. 손을 넣으면 뭔가가 갉아먹지는 않을까. 장갑 속 치어들이 저기 사는 건 아닐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육지로 올라오고 싶은 심해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비스듬히 헤엄치며. 얼굴 옆에 달린 눈으로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곁눈질하며. 불꽃처럼 흔들리는 저 빛들은 그런 물고기들이 내는 게 아닐까.
   두 번째 메일은 이랬다.
   「답이 없네. 이야기가 재미없었나봐. 기다릴게.
   스위스에서 알프스 융프라우에 갔어. 봉우리 이름이야. 젊은 처녀라는 뜻이래. 인터라켄(호수 사이라는 뜻이야)이라는 도시에서 모노레일을 탔어. 정상 가까이까지 데려다주더라. 올라가면서 또 똑같은 두려움이 느껴졌어. 하지만 이번엔 괜찮았어. 집시 여인의 이야기가 기억났거든.
   얼음 동굴이 있었어. 관광용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려면 어때. 융프라우를 사람들이 쉽게 등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거래. 이 동굴을 짓던 인부들이 공사 중에 조개 화석을 발견했대. 신기하더라. 이렇게 높은 곳이 옛날에는 바다였다니. 재미있다 못해 아름다운 이야기. 우리는 옛날에 바다였던 얼음 동굴을 지나서 꼭대기로 올라갔어. 등반을 한 건 아니고. 모노레일만 한두 시간 타다가 따뜻한 건물 안에서 몇 걸음 걸은 것밖엔 없어.
   문을 열고 나갔더니 상상도 못했던 세상이 있었어. 정말로. 세 가지 색밖에 없더라. 하늘색, 흰색, 드문드문 검은색.
   여기는 이야기 못할 것 같다. 글재주도 없지만, 아무리 설명해 봐야 네가 완전히 나와 같은 장면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언젠가 너도 한 번 와 보길 바랄게.
   한 곳 한 곳 가볼 때마다 내가 달라지는 게 느껴져. 조금씩 다른 언어를 쓰게 되는 것 같아. 우리는 달라지지 않길. 」
   서가 들어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읽었다는 간단한 답장만 보냈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책은 재미없었고 잠은 오지 않았다. 집을 나갔다. 해변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은 처음이었다. 밖은 한산했다. 익숙해진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네 개 지났다. 을씨년스러웠다. 처마 밑에 달린 생선들을 지났다. 바다가 나왔다.
   역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낮게 뜬 해가 바다를 비췄다. 대교의 윤곽이 희미했다.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차 몇 대가 위태롭게 지나갔다. 바다는 여전히 흔들렸다.
   그러다 모래사장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파도가 닿을락말락한 곳이었다. 자전거를 잠깐 세워 두고 거기까지 걸었다. 걸을수록 파도 소리가 크게 났다. 나는 가까이까지 가서 그걸 내려다봤다. 물고기였다. 죽은 채 거기까지 쓸려나와 있었다. 화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너덜너덜한 몸으로.

   다음으로 누나를 만난 건 나흘 뒤 저녁이었다. 전화가 왔다. 슬슬 올라가야겠어. 뭐하니? 만날 보다가 갑자기.
   만나서 해변을 걸었다.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나는 누나에게 물어봤다. 밤바다를 가리키며.

   "누나는 저 안에 뭐가 있을 거 같아요?"
   "갑자기 왜?"
   "그냥."
   누나는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모르겠다. 고래상어!"
   우리는 웃었다.
   "고래상어 되게 좋아하시네."
   "이름도 좋잖아. 발음해 봐. 고래상어."
   고래상어.
   네 음절이 한 번에 입 안에서 굴렀다. 원래 한 글자인 것처럼.
   "좋은 단어네요. 뭔지 알겠어요. 고래상어. 고래상어."
   "빠르네."
   "이유가 이것뿐이에요?"
   "글쎄. 궁금해?"
   잠깐 생각했다. 며칠 전 해변에서 본 물고기가 떠올랐다. 녀석은 머릿속에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서 나를 쳐다봤다. 얼마나 고민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누나의 방으로 갔다.

   누나는 침대에서 노트북으로 내게 다큐 하나를 보여줬다. 고래상어에 대한 내용이었다. 제작진은 열대의 바다에서 고래상어를 따라다녔다. 다른 녀석들보다 수십 배 커다란 고래상어는 두세 마리씩 바다를 헤엄쳤다. 상어 등에 흰색 점 찍고 크기만 늘려 놓으면 될 것 같아요. 내 말에 누나가 반박했다. 얼굴을 봐. 누나의 말에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고래상어의 눈이 점처럼 보였다. 미소 짓는 것처럼 커다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빙그레. 인물이 좋네요. 누나는 내 옆구리를 찔렀다. 손톱이 맨살을 긁어 아팠다.
   나레이션이 말했다. 고래상어의 헤엄처럼 말했다.
   '고래상어도 어류에 속합니다. 아가미로 호흡하죠. 그런데 녀석들의 아가미는 좀 특이한 편입니다. 보통의 어류들은 아가미를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지만, 이 녀석들은 아닙니다. 스스로 아가미를 열지 못하죠.'
   나레이션은 여기서 잠깐 뜸을 들였다.
   '그래서 녀석들은 멈춰 있으면 숨이 막혀 죽습니다. 물살로 아가미를 열기 위해서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고래상어는 그렇게 평생, 헤엄칩니다.'
   이제 알겠어? 누나가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메라는 고래상어 두 마리의 뒷모습을 잡았다. 텅 빈 바다 속에서 고래상어들은 헤엄쳤다. 계속해서.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끊임없이 새로운 곳으로. 짙은 푸른색에 가려 희미해질 때까지. 좌우로 움직이던 꼬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화면에는 짙푸른 바다밖에 남지 않았다. 텅 빈 바다. 그리고 서서히 암전하며 다큐가 끝났다.
   우리는 숨이 막혀서 한참을 더 움직였다.

   다시 해변에 간 건 일주일 후였다. 아침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한국에 들어온 서와 통화를 했다. 이야기는 무탈하니?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내려와야 할 걸.

   자전거 페달이 낯설었다. 다시 횡단보도 네 개를 지나 시장으로 들어갔다. 한산해서 페달을 더 빠르게 밟았다. 순식간에 시장을 빠져나와 해변으로 향하는 자전거도로에 들어섰다. 오른쪽에는 대교에 올라가는 차들이 보였다. 계속해서 달렸다. 방파제가 나타나고, 바다가 솟아올랐다. 등 뒤에서부터 뻗어나가 왼쪽으로 휘어지는 대교를 보면서 해변까지 갔다. 언제나처럼 바다는 흔들렸다.
   달리면서 먼 바다를 생각했다. 요동치는 해안선 너머를 생각했다. 흔들리는 수면 아래 물고기들을 생각했다. 가로로 길게 뻗은 하얀 대교를, 그 위를 달리는 차들을, 그리고 대교를 건넌 사람들이 겪게 될 일들을 생각했다. 대교 너머까지 생각했다. 수평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더 멀리를. 거기엔 지난 번 죽은 물고기의 친척들과 꿈틀대는 우럭과 붉게 번쩍이는 참돔, 또 옆에 달린 눈으로 끝없이 곁눈질하는 물고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심해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무언가가 있었고 무엇보다 고래상어가 있었다. 평생 헤엄치는, 매 순간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고래상어가 있었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있었다.
   생각하다가 어느새 참돔에 도착했다.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참돔을 지나갔다. 옆의 다른 해변으로 통하는 길이 나왔다. 자전거로 거기까지 가 보고 싶었다. 참돔이 내 뒤에서 뻐끔거리는 것 같았다. 똑같이 뻐끔거려 줬다.
   
   나는 그렇게 계속해서 갔다. 짙푸른 바다 속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고래상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