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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숙, 「투우…… 짐승을 상대로 한 사기」

  • 작성일 2016-03-03
  • 조회수 1,046


“피비린내에 열광하는 저들의 함성은 무자비한 햇빛에 대한 두려움이다.”




강인숙, 「투우…… 짐승을 상대로 한 사기」


요동치는 율동을 따라 등에 꽂힌 알록달록한 단창들이 이리저리 흔들려 소는 채색 털을 가진 고슴도치 같아진다. 소의 검은 털 사이로 붉은 피가 줄줄이 흘러내린다. 털이 검어 피도 더러워 보인다. 고통에 찬 소의 헐떡임에 따라 단창 끝의 장식들이 더 출렁거리면 소의 형상은 광대같이 희화화된다.
소가 기운이 거의 빠질 때쯤에야 팡파르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면서 화려한 차림을 한 투우사가 나타난다. 그는 소와 한참 겨루다가 소가 지쳐서 목을 내리는 순간을 틈타서 전광석화같이 그 등에 결정타를 입힌다. 붉은 피를 줄줄이 흘리면서 아파서 헐떡거리는 덩치 큰 짐승이 다시 칼에 찔려 죽기까지 20분의 시간이 투우의 절정이다.
금빛 은빛으로 장식된 투우사의 호화로운 패션은 그의 젊음과 조응하면서 소의 야성을 부각시킨다. 움직임도 대조적이다. 소는 길길이 날뛰지만 노련한 투우사는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소 바로 곁에 장검에 걸친 홍포(muleta)를 들고 서서 소를 유인하다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몸을 휙 돌려 위기를 피하는 묘기를 연출한다. 아슬아슬하게 했다가 김을 뺏다가 하는 동작을 자유자재로 능란하게 연출하여 관중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그건 목숨을 걸고 하는 기막힌 게임이다. 그 싸움에서 살아남으려면 투우사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위험도가 높아야 관중들이 흥분하니까 그는 소의 가까운 거리로 바짝바짝 다가가는 모험을 감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소의 심장에 칼을 꽂아야 한다. 바로 목 뒤에서 심장을 정통으로 찔러 단칼에 숨통을 끊어 놓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러니까 그건 목숨을 건 진검(眞劍) 시합이 될 수밖에 없다. 투우사가 죽는 순간은 모든 관중이 투우사와 함께 죽음을 맛보는 순간이다.
나는 그걸 보지 않겠다!
날더러 떠오르라고 해 다오
나는 모래 위에 뿌려진 익나시오의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
나는 그걸 보지 않겠다!
가르시아 로르까가 명투우사 익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다.


▶ 작가-강인숙-평론가. 1933년 함경남도 갑산 출생.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 졸업. 숙명여대에서 문학박사 학위 취득, 건국대학교 국문과장으로 재직. 저서로 『불.일.한 3국의 자연주의 비교연구 』『내 안의 이집트 』등이 있고, 현재 영인문학관 관장.

▶ 낭독_ 강애심 - 배우. 연극 ‘나무위의 군대’, ‘육쌍둥이’, ‘달팽이의 별’ 등에 출연.


배달하며

실존조차 녹아내리게 하는 햇빛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집 그늘 깊은 곳으로 숨는 사람들.
대낮의 잠은 존재의 증발을 방어하는 가사 죽음이다.
이루었고, 이루려고 하는 모든 것이, 빛의 폭거에
가물거리는 현기증 너머로 사라져간다.
투우는 죽음의 공포, 피비린내가 있어, 살아있음이 확인되는 제의(祭儀)이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네 자매의 스페인 기행』(샘터사)
▶ 음악_ -The Film Edge/ Themes-Concepts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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