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차주일 , 「45 나누기 21」

  • 작성일 2016-04-11
  • 조회수 1,750


차주일 , 「45 나누기 21」


친구 결혼식에 나눗셈 하러 갔다
늦은 나이에 어린 아내를 맞는 게 면구스러운 친구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내에게
알아볼 수 없는 수화와 몸짓으로
내가 불알친구임을 말해주었다
신부 볼에 핀 수줍음이 몽고반점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행진에
평소보다 많은 박수를 쳐주었지만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는 심사가 무한소수처럼 남았다
언젠가 텔레비전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서
동남아 한 산간마을 풍경을 본적 있다
우리말과 비슷하게 발음되고 뜻이 같은 몇 단어 중
엄마와 우리 그리고 구들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 신부가 마음으로 오물거리는 엄마라는 단어가
자꾸만 그의 입술에서 도드라지는 것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저 심사와
그 속내를 볼 수밖에 없는 내 눈치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유전형질 같은 우리일 것이다
썰렁한 신부측 하객석에 홀로 앉는다
몽고반점이 구들처럼 따뜻해져 온다

▶ 시_ 차주일 - 1961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다.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냄새의 소유권』이 있다.

▶ 낭송_ 정인겸 - 배우. 영화 ‘암살’ 등에 출연.

배달하며

최근 세계화와 국제화, 국제결혼의 증가로 다문화 가족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상의 일부로 떠오르고 있다.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순혈주의와 단일 민족을 강조하고 살아온 터라 이렇듯 이질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문제는 몇 가지 이견을 대두시킬 때도 있다.
늙은 신랑, 어린 신부의 결혼식, 45 나누기 21, 결혼식과 나눗셈, 몽고반점, 혀 속을 맴도는 엄마, 우리, 구들에 이르는 매우 긴 사회 문화적 행로를 펼쳐 보이는 시이다.
‘저 심사’와 ‘그 속내’ ‘내 눈치’ 가 유전형질 같은 우리의 몽고반점, 따스한 구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간다. 이 시인의 시적 앵글이 근래에 이르러 인류 최초의 동굴 암각화, 에티오피아 소녀, 아프리카 전도 등 종횡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세상의 타자들에게로 깊게 확장되어가는 것을 주목해 본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냄새의 소유권』(천년의 시작)
▶ 음악_ won's music library 03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추천 콘텐츠

복효근,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작품 출처 : 복효근 시인, 창비청소년시선 05 『운동장 편지』, 창비교육, 2016. ■ 처음 인사드리는 그대여. 한때 저는, 제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내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하여, 아쉬운 맘 달래보자고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우고는 이팝나무 우체국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우체국 뜰에서 시엽서를 쓰고 시배달을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풀벌레 소리처럼 떨려옵니다.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려오는 그대여, 그대에게 있어 가장 따뜻했던 저녁은 언제였는지요? 내가 멘 가방 지퍼를 닫아주는 척 붕어빵을 넣어주던 선재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은근, 기분이 좋아져 옵니다. 가장 따뜻한 저녁이 그대에게 당도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우체국 마당 구절초가 가는 목을 빼고 그대 향해 피었다는 소식 전하면서 이만 총총합니다. 문학집배원 시배달 박성우 - 박성우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워 이팝나무 우체국을 낸 적이 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 『난 빨강』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애써 심심하게 살고 있다.

  • 김 태 형
  • 2016-10-13
양선희, 「늙은 신갈나무처럼」

양선희, 「늙은 신갈나무처럼」 몸을 침범하는 벌레를 중심을 어지럽히는 곰팡이를 속을 갉아먹는 나무좀을 그 속에 둥지 트는 다람쥐나 새를 용서하니 동공이 생기는구나바람을 저항할 힘을 선사하는 양선희 - 1960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7년 계간 《문학과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가 당선되었다. 시집 『일기를 구기다』, 『그 인연에 울다』와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를 펴냈으며, 이명세 감독과 영화 의 각본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에세이로는 『엄마 냄새』, 『힐링 커피』가 있다. 낭송 - 나지형 - 배우. 성우. 연극 ‘9살 인생’, ‘대머리 여가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지난여름은 지독한 불볕이었다. 그 중에도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불길하고 끔찍한 뉴스들이었다. 세상 어디를 손가락으로 찔러 보아도 더러운 악취가 새어나왔다. 시정신이 없는 혼탁한 기회주의 시인을 향해 어떤 시는 “이 땅은 방부제도 썩었다”라고 탄식했다.신갈나무는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그 이파리를 짚신의 신발창처럼 갈아 쓴다하여 신갈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참나무 잎으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할 것 같다. 온갖 설익은 말, 벌레 먹은 말, 끔찍하고 억지스러운 말, 다 가리고 크게 다시 숨 쉬고 용서하고, 가을 밤 하늘에 새로 떠오르는 처녀별 같은 그런 시가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폭력적이고 기형적인 언어의 흙탕물 속에서 싱싱한 생명의 시를 골라 배달하겠다고 했던 첫 인사말이 떠올라 가슴 아릿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그 인연에 울다』(문학동네) ▶ 음악_ Tune ranch-orchstral-2 중에서 ▶ 애니메이션_ Alice Jiyu▶ 프로듀서_ 김태형

  • 김 태 형
  • 2016-09-26
손 세실리아, 「갠지스강, 화장터」

손 세실리아, 「갠지스강, 화장터」 다홍 천 턱까지 끌어올리고 장작더미에 누운 여자 기척도 없다 불길 잦아들도록 끝끝내 이글거리던 가슴뼈와 골반 회(灰)가 되어 허물어진다 한 때 소행성과 대행성이 생성되고 해와 달과 별이 맞물려 빛을 놓친 적 없던 여자의 집, 감쪽같이 철거당했다한우주가 사라졌다 시_ 손세실리아 - 북 정읍에서 태어나, 2001년《사람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기차를 놓치다』, 『꿈결에 시를 베다』와 산문집『그대라는 문장』이 있다. 낭송 - 나지형 - 배우. 성우. 연극 ‘9살 인생’, ‘대머리 여가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에 출연. 배달하며 힌두(Hindu)의 삶은 갠지스에서 시작되고 갠지스에서 끝난다. 갠지스 성스러운 물에 몸을 담그는 세례로 시작하여 그 강에 회로 뿌려지는 것으로 끝난다. 물로 시작하여 불로 끝을 맺는 제전이다.이 시는 장작더미에 누워 화장을 기다리는 여자의 자궁속의 해와 달과 별이 맞물리는 윤회와 인연을 포착하고 있다. 그녀의 자궁 속에서 진행되던 생명의 달거리, 소행성과 대행성을 품었던 생명 원류로서의 여자의 집! 이 시는 그것이 장작더미 불길에 의해 감쪽같이 철거되고 한우주가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 말라! 갠지스에 뿌려지면 죄는 사라지고 다시 생명으로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 장엄한 회귀를 위해 그녀의 발목에 화장의 삯으로 은발지가 걸려있었을 것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출전_ 『기차를 놓치다』(애지) 음악_ 07-A Simpler Time 중에서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 김 태 형
  • 2016-09-19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2건

  • 10610 박찬우

    45 나누기 21이란 제목이 내 관심을 확 끌었다. 시를 읽고 머지않아 나는 그것이 친구인 신랑과 젊은 외국인 신부의 나이 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두배 이상 차이 나는 것,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흔하지는 않은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타고난 유전형질처럼 그들도 모르게 저 둘을 ‘심사’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이 시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엄마’는 그 의미와 뜻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통용되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겉으론 달라보일지 몰라도 결국 우리와 같이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 같은 것 말이다. 우리나라에 다문화 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점점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결혼식의 다른 하객들처럼 그들을 ‘심사’하고만 있을까? 아니면 마지막 화자처럼 그들과 같은 쪽에 앉을까?

    • 2018-10-31 11:17:32
    10610 박찬우
    0 / 1500
    • 0 / 1500
  • 포엠스타

    마음에 힐링이 됩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고운 시간 되세요.

    • 2016-04-12 18:24:01
    포엠스타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