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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리가 천리

  • 작성일 2016-04-30
  • 조회수 837

한 다리가 천리

긴 세월 동안의 투병 생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고 괴로운데 본인이야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느냐? 글을 읽으면서 내가 아버지였다면 오지 마라 한다고 가지 않았겠느냐? 한 다리가 천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른이라고 외삼촌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ㅈ태야 너무 미안하구나. 그 긴 시간  동안 고생 말 못 할 아픔도 모르고 조금 심하게 다쳤나 보다. 생각했으니 수 없이 많은 시간 동안 잘 참아주었고 견뎌주었다. 긴 투병생활 상상을 초월하는 수술실과 병실을 오가는 너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많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겠느냐? 수술실에 들어가는 네 모습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이젠 나도 나이라고 여성화 되어가는 모양인지 아니면 마음이 여러 그러한지 드라마에 좀 불쌍하고 어려운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긴 고통이 더 큰 성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감히 해본다. 생각하기 괴로운 일일 것이 다만 긴 시간 동안의 너의 아픔과 투혼과 절망에서 희망을 쟁취한 지금 너의 절실한 경험은 너의 모습은 또 다른 사람이 너와 같은 입장에서 오늘 내일 희망의 불씨를 찾을 때 너의 말할 수 없는 아픈 경험이 약이 되고 희망이 되고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장이넝쿨 같은 희망의 끈 또한 될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혹 너 마음을 알지 못하는 나의 부지불식간 생각이라면 생각이 짧았다 해야 할 것이나 나의 큰 고통 아픔을 나누는 것 또한 또 다른 봉사 활동이라 믿고 싶다.

생각하기도 싫은 그 긴 아픔의 과정을 다시금 일성 거리는 것  또한 아픔일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어릴 때 촌에서의 생활을 기억하는 것을 보니 이모 의 사랑도 기억할 것으로 믿는다. 대광주리 속의 보리밥을 기억하는 너를 보면서 보쌀(보리쌀) 소쿠리에 쥐나들듯 한다 는 말이 생각난다.

너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큰 외할아버지 댁은 00에서 아니 00시에서도 빠지지 않은 큰 부자였다.

외가는 가난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명절이나 기제사에 큰집에 가면 그날은 고기며 떡을 또 다른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기다려졌겠느냐. 그러니 항상 가난한 우리 집이 원망 서러웠다. 그러나 어쩌겠느냐. 어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안으로 싹이며 빗나가고 엇나가기도 했었다만 큰 이모와 함께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신자 생활이 나를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방황하든 그때 내 생활이 보쌀 소쿠리에 쥐나들듯 집에서 밖으로 또 집으로 들락거렸을 것이다.

지금 후회 아닌 되새김 해본다. 더 나아질 수 있었는데 너도 사랑하는 큰 이모는 나의 어머니기도하고  멘토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며 또 한 편으로는 멍에이기도 하다.

ㄷ우에 근무할 때 마산에서 대구로 온 것은 홀로 사시는 큰  이모의 아픔을 보면서,  작은 외삼촌이 이혼이다 머다 할 때였다 내가 장남인데 내가 대구로 와야겠다. 세월 흘러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와서도 별 뾰족한 수도 없는 것을 도리어 걱정만 해드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쩌거나 내 마음이 그런 것을

그때 과장 때였다 경기도 여주에 가면 차장 진급 시켜준다는 것 마다하고 ㅇ림 산업(ㄷ우방계 조그마한 회사) 과장으로 수평 이동 해 왔다. 고향인 대구가 객지였다. 사장과 상무 싸움에 죄 없이 연루 되 옷을 벗었다. 그래서 장사를 시작했고 나야 가장이니 괜찮지만 외숙모며 아이들이 고생을 했다. 여주에 갔더라면 아마 서울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아이들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너도 장남이니 동생들과는 아마 다를 것이다.

나빠도 더 나빠지지 않음에 감사드리는 너 마음을 읽으면서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나체로 있는 곳이 천국이라면 혼자 나체가 되는 수술실은 지옥입니다.“

“발가벗겨져 수술대 위에 눕거나 엎드리면, 그때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생각하는 고깃덩어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픈 경험에서 울어나는 이 말의 함축(含蓄) 성 그 아픔 고통 이는 시(詩)이며 경구(警句)이며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 처절함 이는 생각의 한계를 넘은 말이 아니라 글이 아니라 하나의 폭탄이었다 말하고 싶구나.

ㅈ태야 정말 고맙다 그 어려움을 이겨주어서 그 아픔을 참아주어서 그 슬픔 속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견뎌주었어 ㅇ체 엄마 정말 고생 많았다. ㅇ체도 ㅎ이도 얼마나 가슴 조였으며 걱정 하였을까?

ㅈ태야

너는 九九八八二三死 구구 팔팔 이 삼사 라고 하지만 나는 요즘 지하철을 타면서 많은 나 같은 얼굴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본다. 어떤 친구는 운수 재수 없어야 90까지 산다 하니 이는 재앙이라 말하고 싶구나.

늙으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늙은이와 아이는 나는 같다고 생각한다. 펭귄 모습으로 걷고 돌봐야 하고 보채고 도와야 하며 등등 아이는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늙은 사람은 마무래도

병원에서 호흡기를 달고 연명하는 드라마를 본다.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보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더욱 우리들은 천주교를  다니며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니 만큼 죽음은 지상에서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상에서 이별이 천상에서는 먼저 가신 아버지 어머니와의 상봉의 기쁨인 것을 그리고 자기 발로 걷고 자기 생각대로 살 때 인간이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사람이 모르모트나 반려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너희 외할머니같이 자는 잠에 적당한 나이 더 나빠지지  않을 때 나를 하느님 나를 대려가 주세요. 기도 한다.

ㅈ태야

나도 요즘 시라고 쓴다.

“소나기 내리면 마당 가득 생겨나던 물방울 거품과”

“후각의 기억이 시각의 기억보다 더 강렬하고 더 오래간다는 사실을 가끔씩 느낍니다.“ 등 병실에서 표현은 얻기 어려운 생각하기 쉽지 않은 아주 멋진 글귀이다.

하느님께서 너에게 그 처절한 아픔 고통을 알게 함으로써 또 다른 달란트를 주시려는 것은 아닌지? 한번 도전해 보아라. 나는 네가 보낸 사자성어는 잘 몰라서 언급을 할 수도 없다만 어느 시기에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자성어에 대한 내 견해도 한번 보낼게 너를 보면서 불행 중에 또 다른 희망을 본다.

시각의 기억보다도 촉각(스킨십, 피부교감)의 기억은 더한층 강하게 마음에 남는다. 너의 말에 더 첨가하자면 아름다운 사람에게 받은 아름다운 기억은 기쁨으로 간직하지만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당하는 아픔은 평생 씻을 수도 없고 아물지도 않은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옛 금호강을 생각하면서 땀 흘리면서 일하다 목간 할 곳 도 없는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여름 금호강변을 쓰고 얼마  전 자전거로 낙동강 강정보 부근을 돌아보면서 출렁이는 물결 위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제트보드(jet board )를 타는 젊음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면서 낙동강에서란 시를 쓰 보았다. 자기가 해야만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보는 즐거움 시원하게 물을 가르면 달려가는 물 찬 제비를 보는 이 또한 대리만족의 극치라 말하고 싶구나.

여름 금호강 강변

무더운 한여름 밤 금호강 강변

따가운 햇볕 아래.

논 밭 일에 찌든 때 씻으려

목간 나온 촌 아낙 여럿

철썩이며 몸 씻는 소리는

동정의 노총각 지키기 어려운 불쏘시개이어라 .

희끄무레 달빛 아래

보일 듯 아니 보일 듯

거리가 주는 어른거림은

낮 우물가 두레박 질 때

잠깐 훔쳐 본

도톰한 순이 젖가슴에 대한

내 마음의 실랑 이어라

나지막한 다리 아래 얕은 물가

여럿 둘러앉아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는

건넛마을 어여쁜 순이

좋다 말이 없는 내가 미워

저도 모르게 싫다 억지 부리는

거짓 도리질이라.

흐르는 구름속달은

보였다 아니 보였다.

안게 속 희뿌연 모습들은

하늘 선녀들의 목간을

몰래 훔쳐본

황홀경에 빠져 히죽거리는

혼자만의 상상이어라.

낙동강에서

느릿느릿 휘돌아 넘실거리며 출렁이는 강물이

이 나라 삼면(三面) 바다 어느 곳같이

연인(戀人) 인양 연신 강변 바위를 어루만진다.

춘풍(春風)에 떨어지는 꽃가루는 이슬비 내리듯

보(洑)와 보(洑) 사이 가득한 강물 위에 뿌려지고

푸르른 나뭇잎은

여름 내내 햇빛에 그으러

사람들 얼굴 여기저기에 피어나는

검버섯 모양

울긋불긋 단풍(丹楓)이 들더니

추풍(秋風)에는 떨어져 낙엽(落葉)이 되어 강물 위를 형형색색 조그마한 조각배 모습을 하고 떠내려간다.

옛 풍류객들이

강변 정자(亭子)에서 시 한 수 읊으며 놀던 그 자리에

구름에 가린 만월(滿月)이 희끄무레 강을 비출 때

격(格)은 다르다 해도

여럿 둘러앉아 요즈음 흔히들 즐기는

공산명월(空山明月)로 고니 스톱이니 하며

놀이에 빠졌다.

받아 쥔 패 신통찮아

혼자 잠시 비켜 나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앞 넘쳐나는 강정 보(洑) 부근

출렁이는 문산 강물에는

병풍(屛風)에 그려진 그림 같은

월주(月柱) (달빛이 강물에 비취는 형상)가 참으로 아름답다.

 

방금 외숙모가 네가 적은 글 보았다. 많이 마음 아파하면서 기도드린다며 거실로 갔다. 외숙모도 이젠 올해 지나면 70 기도가 하루 중 가장 큰 일이 되었다.

ㅈ태야

정성을 모운 기도는 야구장에서 홈런을 치면 빨랫줄 같이 담장을 넘어가 어느 관중에 잡히는 공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은 운집한 관중이며 정성은 홈런타자이며 공은 기도가 아닐까?

너무 장황했다. 빠른 시간 내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