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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광기의 재개발」

  • 작성일 2016-05-16
  • 조회수 1,399

서효인, 「광기의 재개발」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여기 있구나
모교 앞, 문방구는 이름이 바뀌고
주인 여자도 졸업식마냥 늙었는데
오래된 오락기 위에 먼지가 되어 앉았구나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웃는구나
장마처럼 침을 흘리며 먼지처럼 닦이지 않으며
너를 보는 모교 앞

백 원만 하는 너
몰라보는구나 나를
국민 체조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콧물과 함께 흘리던 교문에서
미친년이라고 아무리 놀려도 백 원만 백 원만 했다 넌
기억나니 넌, 고학년 오빠들이 아랫도리에 손을 찌르며
오락하듯 백 원을 넣고 흔들 때도 장마처럼 침을 흘렸다 넌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여기에
몇 떼의 구름이 지나가도록 섰구나
촌지처럼 교실은 시끄러운데
아직도 웃는구나 동전은 소리 내며 웃는데
너는 소리도 없이 진짜로 누가 미쳤느냐고
백 원만 백 원만 하며 묻고 있구나

▶ 시_ 서효인 - 1981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이 있다.

▶ 낭송_ 성경선 - 배우. , 등에 출연.

배달하며

몇 떼의 구름이 지나가도록 아직도 여기에 서있는 빈곤과 차별과 무지의 폭력……. ‘백원 만’이라는 말이 비명처럼 아프다.
소외와 타자들을 거침없이 짓밟고 조롱하며 광기어린 재개발은 반복 되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 조롱과 폭력을 모교 앞 문방구 어디쯤에다 두고 온줄 알았는데 기실 현실 속에서 여전히 장마처럼 침을 흘리기도 하고, 우리들의 오락기구 위에서 닦이지 않는 먼지가 되어 놓여 있기도 하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이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인데 아시다시피 파르티잔은 프랑스어 파르티(parti)에서 유래된 말로 에스파냐의 게릴라와 함께 우리에게 빨치산으로 친근한 말이다. 빨치산에서 게릴라를 거쳐 핵무기 까지 왔지만 그 사이로 ‘광기의 재개발’이 여러 이름으로 진행 되었지만 무지와 야만은 제대로 개발 된 적이 없다. 아리엘 클레이만의 영화처럼 우리는 언제 집단과 힘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민음사)
▶ 음악_ Stock music / song bird av212 중에서 입니다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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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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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포엠스타

    붓 가는 대로 쓴, 시의 깊은 울림이 좋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 2016-05-17 21:38:36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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