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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내 시의 하나밖에 없는 애인」

  • 작성일 2016-05-26
  • 조회수 1,560


‘내 시의 하나밖에 없는 애인이 되어’ 라고 자신에게 속삭이는
이 가만한 다짐이야말로 홀로 피는 꽃같은 시가 아닌가.



김상미, 「내 시의 하나밖에 없는 애인」

늘 마시고 또 마셔도 커피가 좋은, 커피 중독자인 내 앞에 놓인 한 잔의 뜨거운 커피. 커피 향이 불러일으키는 어제, 그리고 더 오래 된 말들의 그림자들, 오늘은 그 그림자들의 실체를 불러내 시를, 시를 쓰기 위해 이곳에 앉아 있다. 올해 들어 무지막지하게 글이 쓰고 싶어졌다.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엔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원고 마감일이 다가올 때마다 가슴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손끝이 불에 덴 듯 뜨거웠다. 십 년 넘게 시집도 내지 않고 시를 멀리했으니 그에 대한 죄 값이 나를 들복고 채찍질하는 걸까? 예전의 열정을 다시 불러오고 싶어 매일매일 몸살을 앓는 내가, 그러나 전혀 싫지가 않다.
주인아저씨 몰래 창문에 입김을 불어 ‘詩’라고 써본다. 詩, 한 번도 질린 적 없는 단어, 벗어나고 싶은 적은 있었으나 질린 적은 없는, 유일하게 나와는 아주 깊은 내연관계인, 변함없는 사랑, 오늘 따라 커피 맛이 참 좋다. 하루에 6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는 발자크, 어떤 작가에게는 커피가 식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게 참 기쁘다. 건강과잉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현대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비사들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이상한 쾌감. 그들과 한통속이 되고 싶다는 묘한 심리학적 합리화.
노트를 꺼내 ‘FC 바르셀로나’라고 쓴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본 2014-2015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FC 바르셀로나와 유벤투스 경기. 한밤을 꼬박 새워 응원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와 있는, 탈진한 듯 감미로운 피곤함. 나는 한두 시간을 자고 일어날까 하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이곳으로 나왔다. 맛있고 향 좋은 커피가 마시고 싶어 밤을 새운 피곤한 내 몸에게 양해를 구하고(며칠 전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내가 영양이 실종(?)되었다나!), 그래도 과잉보다는 부족한 게 더 견디기 쉬운 내 체질을 나도 어쩔 수 없어 빈속에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FC 바르셀로나’란 시 한 편을 쓴다. 시가 있어서 참 좋고, 축구가 있어서 참 좋고, 아무런 부담 없이 내게 친절한 이런 공간, 이런 아저씨들이 있어서 참 좋다. 오늘은 산문 원고료가 들어오는 날이니 아저씨가 만들어 주는 스테이크를 사 먹어야지. 오전 햇살이 물러나고 오후 햇살이 다가오는 창가로 잠자리 몇 마리가 날아가는 게 보인다. 꼬리가 아주 붉은 걸 보니 고추잠자리들이다. 나는 창문을 연다. 창문은 닫을 때보다 열 때가 훨씬 더 나와 가깝고 훨씬 더 내게 많은 위안을 준다. 8월의 무더운 열기가 확, 하고 얼굴을 덮친다. 이런 열기 속에선 잠을 자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푹 잠을 잔 적이 없다. 오늘 밤엔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을 좀 자두어야겠다.
수전 손택이 쓴 소설 『화산의 연인』을 반쯤 읽다 눈을 드니 어느새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다. - 나는 수전 손택이 참 좋다.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려는 그녀가 좋고, 언제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그녀의 따뜻한 지성이 좋다. - 이 시각이면 먼 바다의 돌고래들이 낮잠에서 깨어날 시각. 나는 어두운 물속을 헤엄치는 돌고래 무리들을 상상하며 몬드리안 카페를 나온다. 주인아저씨가 덤으로 더치커피 한 병을 건넨다. 오전에 쓴 시 「FC 바르셀로나」를 들려준 선물이란다. 고맙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돌고래들의 청회색 몸뚱이, 부드럽고 미끈한 피부. 시라노의 코처럼 불쑥 튀어나온 주둥이에 감도는 그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떠올리며 혼자 웃는다. 귀여운 녀석들. 그들의 전파 같은 웃음소리가 듣고 싶고, 괘골괘골, 왁자지껄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도 듣고 싶다. 서울에 와서 참 많은 걸 잃고, 잊고 지냈다. 그동안 내가 놓치고, 모른 체하고, 돌보지 않았던 것들에게 늘 미안함이 앞선다. 혼자 사는 삶이 이렇듯 힘들 줄을 몰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벅차고, 아파 모두에게 미안하고, 특히 시와 나에게 가장 미안하다.
집으로 돌아와 밖에서 쓴 원고들을 정서하다보니 어느새 한밤중. 배에서 꼬르륵~ 밥을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상이 정말 그립다! 간단하게 저녁밥을 차리고 정서한 원고들을 읽어본다. 소리 내어 글을 읽는 이런 시간들이 나는 참 좋다.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내가 대답하는 것 같다.
이제는 내 글이 내 맘에 들지 않아도 타인의 미학적 잣대로 내 글을 판단하지 않게 되어 참 좋다. 이런 평심을 찾는데 몇 년이 걸렸다. 몇 년 동안 나는 나를 폐기시키고 버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 아프고 힘들고 부질없는 시간들을 어렵게 통과해 맛보는 자유로움. 나는 이제 넓은 운동장에 서 있는 한 아이로 돌아왔다. 혼자서 놀아야만 해도 잘 놀 수 있는 튼튼한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에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런히 줄 처진 종이를 주거든 줄에 맞추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써라”고 했던 후안 라몬 히메네즈의 말을 따를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제 곧 이 밤이 지나면 새로운 하루의 태양이 뜰 것이다. 그 안에 아직도 내가 살아 있고, 살아 움직인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 움직임이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시를 쓰고, 시를 쓸 것이며, 시와 함께 오, 아름다운 나날들을 멋지게 꾸려갈 것이다. 내 시의 하나밖에 없는 애인이 되어!

▶ 작가-김상미-시인. 바다가 보이는 부산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1990년『작가세계』여름호로 시인 등단.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산문집『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등이 있다. 박인환 문학상, 시와 표현 작품상을 받았다.

▶ 낭독_ 성경선 - 배우. 연극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배달하며

밤새워 축구 경기를 보고 난 뒤의 달콤한 피로,
뜨거운 샤워물에 느긋하게 몸을 맡기는 호젓함,
동네 카페에서 참 좋다, 하고 마시는 커피 한 잔,
창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끼고,
카페를 나올 때 먼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을 고래를 상상하며,
배고픈 것도 잊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시를 정서하고 나니
문득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상이 그립다.
넓은 운동장에 혼자 서 있는 아이 같은 자유로움이
머무는 곳마다 자족의 노래로 흐르고 있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 《시인동네》(2015년 겨울호)
▶ 음악_ Stock music / Americana-06-TetonPioneers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김태형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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