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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

  • 작성일 2016-06-06
  • 조회수 2,259

나희덕, 「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


철새들이 줄을 맞추어 날아가는 것
길을 잃지 않으려 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한몸이어서입니다
티끌 속에 섞여 한 계절 펄럭이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걷고 있는
저 두 사람
그 말없음의 거리가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
또는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 그 온기에 젖어
나는 오늘도 두리번거리다 돌아갑니다

몸마다 새겨진 어떤 거리와 속도
새들은 지우지 못할 것입니다

▶ 시_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반통의 물』 등이 있다. 김수영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2014년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낭송_ 황혜영 - 배우. 연극 ‘타이피스트’ ‘죽기살기’,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모니’ 등에 출연.

배달하며

풀어헤친 머리가 땅에 닿을락 말락 실려 가는 나무들이 하는 말을 아프게 들을 줄 아는 시인은 그 풍경에서 언어의 도끼에 다쳐 본 둔탁한 상처를 떠올릴 줄 안다. 돼지 머리가 입과 콧구멍에 만 원권 지폐를 물고 있는 것을 향해 “웃어. 웃어봐”하던 것을 출근 길 운전하는 자동차의 룸미러 속에서 자조하듯 떠 올리며 거기에다 자신의 얼굴을 겹쳐 놓을 줄도 안다.
철새들이 줄을 맞추어 날아가는 풍경에서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읽는 시인은 그 사이의 거리와 속도에서 지워지지 않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시간의 온기(溫氣)를 읽는다. 천지는 나와 한 뿌리, 만물은 나와 한 몸, 아직도 가시지 않은 진도 앞바다의 통곡은 우리의 울음!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그녀에게』(예경)
▶ 음악_ Soap Lovers Guitar
▶ 애니메이션_ 박지영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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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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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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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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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10209 박재홍

    새들이 날아가면서 헤어지기 싫은 것 처럼 이미 한 몸이 되어버린 사람에 비유적인 표현을 쓴 것이 아름답다. 새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 처럼 사람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수있게 해준다. 즉, 연인들을 말하고 있다. 어떨때에는 떨어져있다가 다시 만나게되는 것을 6,7행에서 잘 드러나게하였다. 그런 두사람을 보고 시적화자는 또 새들을 비유하여 그러한 추억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걸 말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떨어져잇다가 다시 만나게되는 두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2018-05-31 08:57:36
    10209 박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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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원10412

    가을 정도에 철새들이 엄청난 수로 다 같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장관이다. 이 시에서는 철새들이 다 같이 날아가는것을 한 계절동안 펄럭이면서 날아가면 한몸이다 라고 비유하였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나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니는것이라고 시의 화자는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 두사람은 집이나 학교를 같이하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될 수도 있고, 20대의 연인이 같이가는 모습인줄 알았지만, 철새에게 한 계절은 사람으로 치면 꽤 오랜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에서 말하는 두 사람은 60대가 넘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요" 정도의 부부임을 짐작하였다. 댓글의 마지막에 부부가 오랫동안 살아오고 사랑한것은, 철새가 감히 따라할수 없는, 어떻게 보면 그 누구도 따라할수 없는 사랑이라서 이 시의 화자가 직접 경험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깊게 생각을 하는 사람인것으로 생각하였다. 노부부의 사랑을 어쩌면 관계가 없을 수 있는 철새에 빗대어 정말 잘 표현하였다.

    • 2018-05-28 10:01:20
    이석원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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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성정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꺠달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시이네요. 앞으로도 좋은 시를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2017-07-09 21:41:03
    우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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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스타

    마음에 미소가 절로 납니다. 행복한 시간 되세요.^^

    • 2016-06-07 16:17:34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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