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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키스」

  • 작성일 2016-06-13
  • 조회수 2,275

김기택, 「키스」


처음 네 입술이 열리고 내 혀가 네 입에 달리는 순간
혀만 남고 내 몸이 다 녹아버리는 순간
내 안에 들어온 혀가 식도를 지나 발가락 끝에 닿는 순간
열 개의 발가락이 한꺼번에 발기하는 순간
눈 달린 촉감이 살갗에 오톨도톨 돋아 오르는 순간
여태껏 내 안에 두고도 몰랐던 살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
뜨거움과 질척거림과 스며듦이 나의 전부인 순간
두 몸이 하나의 살갗으로 덮여 있는 순간
두 몸이 하나의 살이 되어 서로 구분되지 않는 순간
네가 나의 심장으로 펄떡펄떡 뛰는 순간
내가 너의 허파로 숨 쉬는 순간
내 배안에서 네가 발길질을 하는 순간
아직 다 태어나지 못한 내가 조금 더 태어나는 순간

▶ 시_ 김기택 - 1957년 경기도 안양시에서 태어났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가뭄」과 「꼽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이 있다.

▶ 낭독_ 서윤선 - 성우. 연극 ‘백치, 백지’, 영화 ‘줌 피씨 월드’, 애니메이션 ‘ 명탐장 코난’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일찍이 한국시는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을 안고 있다. 만해(萬海)가 「님의 침묵」에서 노래한 ‘키쓰’는 견성(見性)의 찰나, 공(空)이 존재와 접촉하는 순간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냥 사랑하는 이와의 사랑과 이별을 먼저 읽어야 한다.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에도 “붉은 키쓰”가 나온다.
‘키쓰’는 관능(官能) 중에서도 감각적인 부분, 그 중에서도 촉각 미각이 총동원된 시이다. 크림트의 명화 “키쓰”를 넘어, 감각(sense)을 넘어, 거의 절정(orgasm)에 가까운 묘사이다. 흔하고 천하지 않은 시어(詩語)로 이만큼 황홀한 ‘키쓰’를 묘사한 시는 흔치 않다. 소통이 그리운 시대, 이런 뜨거운 입술이 하늘과 땅 사이에 저 신록들처럼 무성히 매달렸으면….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갈라진다 갈라진다』(문학과지성사)
▶ 음악_ won's music library 08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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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복효근 시인, 창비청소년시선 05 『운동장 편지』, 창비교육, 2016. ■ 처음 인사드리는 그대여. 한때 저는, 제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내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하여, 아쉬운 맘 달래보자고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우고는 이팝나무 우체국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우체국 뜰에서 시엽서를 쓰고 시배달을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풀벌레 소리처럼 떨려옵니다.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려오는 그대여, 그대에게 있어 가장 따뜻했던 저녁은 언제였는지요? 내가 멘 가방 지퍼를 닫아주는 척 붕어빵을 넣어주던 선재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은근, 기분이 좋아져 옵니다. 가장 따뜻한 저녁이 그대에게 당도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우체국 마당 구절초가 가는 목을 빼고 그대 향해 피었다는 소식 전하면서 이만 총총합니다. 문학집배원 시배달 박성우 - 박성우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워 이팝나무 우체국을 낸 적이 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 『난 빨강』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애써 심심하게 살고 있다.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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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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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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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10401강지운

    제목이 호기심이 가기 좋게 되어 있어서 저도 모르게 이 시를 읽고 있었네요. 이 시를 읽다 보니 정말 표현력이 좋아서 키스의 느낌을 하지않고도 상기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느낄 수 있었던 많은 종류의 기분은 작가님의 그 뒤어남 표현력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시는 저에게 익숙하지않은 종류의 시 이고, 이런시도 있음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앞으로도 ㅇ런류의 시를 찾아봐야겠단 생각도 들 정도로 저의 맘에 드는 그런 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시를 읽게 해준 작가님, 집배원님께 가사를 드립니다.

    • 2018-11-05 10:10:18
    10401강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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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스타

    잘 감상했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_^

    • 2016-06-15 23:54:30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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