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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말하라, 기억이여』

  • 작성일 2016-06-16
  • 조회수 1,140


콜레트의 고수머리가 내 귀를 간질였을 때,
갑자기 그녀가 나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내 뺨 위에 입을 맞췄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말하라, 기억이여』

해변에서 더 색이 짙고 물기가 많은 쪽의 땅은 썰물일 때 성을 짓기에 가장 좋은 진흙을 내주던 곳이었다. 하루는 그곳에서 콜레트라 불리던 작은 프랑스인 소녀와 함께 나란히 앉아 땅을 파고 있었다.
그녀는 십일월이면 열 살이 된다고 했고, 나는 사월에 이미 열 살이 된 후였다. 그녀가 좁고 긴 발가락이 달린 맨발바닥으로 딛고 선 보라색 홍합 껍데기의 깔쭉깔쭉한 조각으로 내 주의가 쏠렸다. 아니, 나는 영국인이 아니야. 초록색이 감돌던 그녀의 눈은 갸름한 얼굴에 넘쳐나는 주근깨로 얼룩덜룩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요즘엔 운동복이라 불리는 것으로, 롤업 소매가 달린 푸른색 저지 셔츠와 푸른색 니트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처음엔 그녀가 남자인 줄 알았다가, 가는 손목에 달린 팔찌와 해군모 밑에서 달랑거리던 갈색 나선형의 머리카락을 보고는 당황했었다. (중략)
콜레트를 만났을 때 곧 나는 이번엔 진짜라는 것을 알아챘다. 콜레트에겐 내가 비아리츠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놀이친구와도 확연히 다른 구석이 있는 듯했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녀가 나보다 덜 행복하며 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여리고 보드라운 팔뚝 위에 든 멍은 끔찍한 상상을 하게 했다. 『그 남자는 우리 엄마처럼 날 꼬집어.』 개를 가지고 놀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군가 어머니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하길, ‘파리의 부르주아들’이라던 콜레트의 부모로부터 콜레트를 구해 내기 위해 여러 다양한 작전들을 짰다. 그 사람들이 파리에서부터 내내 푸른색과 노란색이 섞인 리무진(당대로선 진기한 경험이었다)을 타고 왔으면서도 콜레트와 콜레트의 개와 가정교사는 시시한 보통 열차에 태워 보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엔 내 식대로 그것을 경멸이라 해석했다. 콜레트의 개는 목둘레에 방울을 달고 꼬리를 실컷 흔들어대던 폭스테리어 암컷이었다. 콜레트의 장난감 통에 들어 있는 소금물을 성의를 다해 죄다 핥아 먹던 개였다. 나는 그 통에 그려져 있던 돛단배와 석양과 등대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 개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마음이 쓰인다.
비아리츠에 머무는 두 달 동안, 콜레트를 향한 나의 열정은 클레오파트라를 향한 열정을 거의 뛰어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이 그녀의 부모님을 잘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해변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늘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울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되면, 어찌할 도리 없이 내 눈에도 눈물을 불러오는 고통의 파도를 느껴야 했다. 그녀의 연약한 목에 자국을 남긴 모기들을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빨간 머리 남자아이와는 주먹싸움을 해서 이길 수 있었으며 또 그렇게 했다. 그녀는 내게 따뜻한 마음이 담긴 딱딱한 사탕을 한 옹금씩 주곤 했다. 하루는 둘이서 불가사리를 보며 몸을 수그리고 있을 때였다. 콜레트의 고수머리가 내 귀를 간질였을 때, 갑자기 그녀가 나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내 뺨 위에 입을 맞췄다. 너무나 황홀했던 내가 생각해 낸 말은 고작 ‘귀여운 내 원숭이’였다.
내겐 도주 자금이 될 거라 생각되는 금화 한 닢이 있었다. 그녀를 어디로 데려갈까? 스페인? 미국? 포에 있는 산? 오페라에서 카르멘이 노래했던 것처럼, ‘저곳, 저곳, 저 산속에’, 어느 기이한 밤에 완전히 깨어 있던 나는 계속해서 철썩이는 바닷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도주 계획을 짜고 있었다. 바다는 일어나서 어둠 속을 더듬다가 바닥으로 다시 무겁게 떨어지는 듯 했다.

▶ 작가_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소설가.18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나비채집에 열중했고, 1919년 가족이 독일로 망명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프랑스와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1940년 나치를 피해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시인, 소설가,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코넬, 하버드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1955년에 발표한 『롤리타』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고, 1977년 스위스 몽트뢰에서 영면.

▶ 낭독_ 장인호 - 배우. 영화 ‘고지전’, ‘하울링’ 등에 출연.

배달하며

유년의 기억은 어른이 재구성하는 순수함이다.
그리움이 재구성하는 콜레트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저편에만 있어
한 번도 자라본 적이 없는 아이이다.
해변의 바람에 팔랑거리는 모자 밑 나선형 갈색 머리,
보드라운 팔뚝의 푸른 멍, 연약한 목덜미의 모기 물린 자국.
한때는 실제했던 시간 저편 기억의 편린들은
순수를 지향하는 그리움으로 언제나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 출전-『말하라, 기억이여』(플래닛)
▶ 음악_ Themes-Concepts / The Altar of Being
▶ 애니메이션_ 신문희
▶ 프로듀서_ 김태형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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