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이문재, 「풍등(風燈)」

  • 작성일 2016-07-04
  • 조회수 1,873

이문재, 「풍등(風燈)」


저것은 연이다.
연실 없는 연
거기 몸을 태우는 불꽃을
연실로 만드는 저것은 연
불의 연이다.

저것은 바람이다.
제 몸을 태워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는
제 몸을 덥혀 스스로 가벼워지는
저것은 소신공양이다.

저것은 별
지상에서 올라가는
마음이 올려 보내는
마음의 별이다.
마음으로부터 가장 멀어 질수록
마음이 환해지는 별이다.

저것은 소진이다.
자기 몸을 다 태워야
가장 높이 날아오르는
가장 높이 날아올라
자기 몸을 불살라버리는
저것은 가장 높은 자진이다.
승화다.

아침 이슬이
유난히 차고 맑은 까닭이다.

▶ 시_ 이문재 -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지금 여기가 맨 앞』 등이 있다.

▶ 낭송_ 박웅선 - 배우. 연극 ‘오셀로’, 영화 ‘한반도’ 등에 출연.

배달하며

수식어를 줄여 시에 힘을 가했다. 온 몸으로 밀고 가는 시이다.
풍등은 연이다. 연실 없는 연, 불꽃, 불의 연이다.
바람이다. 몸의 소신공양이다. 별이다. 지상에서 올라가는 별, 마음이 환해지는 별.
소진이다. 제 몸을 다 태우는 자진이다. 승화다.
이 시인의 상상의 구도는 화엄(華嚴)의 사유와 상상력으로 차있다. 풍등의 세계는 우주의 만다라, 그 사이를 풍등처럼 타 올라 사라지는 생명의 메타포를 본다. 산성비 내리는 것을 보고 하마터면 아름답다고 말할 뻔 했다던 시인 아닌가. 그래서일까? 끝마무리가 승화다. 하지만 허무이면 어떤가. 한 줌 검은 재, 덧없음이면 안 되는가. 차고 맑은 아침 이슬을 보는 시인의 눈이 끝내 선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 음악_ Stock Music / piano-classics n225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추천 콘텐츠

복효근,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작품 출처 : 복효근 시인, 창비청소년시선 05 『운동장 편지』, 창비교육, 2016. ■ 처음 인사드리는 그대여. 한때 저는, 제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내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하여, 아쉬운 맘 달래보자고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우고는 이팝나무 우체국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우체국 뜰에서 시엽서를 쓰고 시배달을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풀벌레 소리처럼 떨려옵니다.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려오는 그대여, 그대에게 있어 가장 따뜻했던 저녁은 언제였는지요? 내가 멘 가방 지퍼를 닫아주는 척 붕어빵을 넣어주던 선재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은근, 기분이 좋아져 옵니다. 가장 따뜻한 저녁이 그대에게 당도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우체국 마당 구절초가 가는 목을 빼고 그대 향해 피었다는 소식 전하면서 이만 총총합니다. 문학집배원 시배달 박성우 - 박성우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워 이팝나무 우체국을 낸 적이 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 『난 빨강』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애써 심심하게 살고 있다.

  • 김 태 형
  • 2016-10-13
양선희, 「늙은 신갈나무처럼」

양선희, 「늙은 신갈나무처럼」 몸을 침범하는 벌레를 중심을 어지럽히는 곰팡이를 속을 갉아먹는 나무좀을 그 속에 둥지 트는 다람쥐나 새를 용서하니 동공이 생기는구나바람을 저항할 힘을 선사하는 양선희 - 1960년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7년 계간 《문학과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가 당선되었다. 시집 『일기를 구기다』, 『그 인연에 울다』와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를 펴냈으며, 이명세 감독과 영화 의 각본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에세이로는 『엄마 냄새』, 『힐링 커피』가 있다. 낭송 - 나지형 - 배우. 성우. 연극 ‘9살 인생’, ‘대머리 여가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지난여름은 지독한 불볕이었다. 그 중에도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불길하고 끔찍한 뉴스들이었다. 세상 어디를 손가락으로 찔러 보아도 더러운 악취가 새어나왔다. 시정신이 없는 혼탁한 기회주의 시인을 향해 어떤 시는 “이 땅은 방부제도 썩었다”라고 탄식했다.신갈나무는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그 이파리를 짚신의 신발창처럼 갈아 쓴다하여 신갈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참나무 잎으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할 것 같다. 온갖 설익은 말, 벌레 먹은 말, 끔찍하고 억지스러운 말, 다 가리고 크게 다시 숨 쉬고 용서하고, 가을 밤 하늘에 새로 떠오르는 처녀별 같은 그런 시가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폭력적이고 기형적인 언어의 흙탕물 속에서 싱싱한 생명의 시를 골라 배달하겠다고 했던 첫 인사말이 떠올라 가슴 아릿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그 인연에 울다』(문학동네) ▶ 음악_ Tune ranch-orchstral-2 중에서 ▶ 애니메이션_ Alice Jiyu▶ 프로듀서_ 김태형

  • 김 태 형
  • 2016-09-26
손 세실리아, 「갠지스강, 화장터」

손 세실리아, 「갠지스강, 화장터」 다홍 천 턱까지 끌어올리고 장작더미에 누운 여자 기척도 없다 불길 잦아들도록 끝끝내 이글거리던 가슴뼈와 골반 회(灰)가 되어 허물어진다 한 때 소행성과 대행성이 생성되고 해와 달과 별이 맞물려 빛을 놓친 적 없던 여자의 집, 감쪽같이 철거당했다한우주가 사라졌다 시_ 손세실리아 - 북 정읍에서 태어나, 2001년《사람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기차를 놓치다』, 『꿈결에 시를 베다』와 산문집『그대라는 문장』이 있다. 낭송 - 나지형 - 배우. 성우. 연극 ‘9살 인생’, ‘대머리 여가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에 출연. 배달하며 힌두(Hindu)의 삶은 갠지스에서 시작되고 갠지스에서 끝난다. 갠지스 성스러운 물에 몸을 담그는 세례로 시작하여 그 강에 회로 뿌려지는 것으로 끝난다. 물로 시작하여 불로 끝을 맺는 제전이다.이 시는 장작더미에 누워 화장을 기다리는 여자의 자궁속의 해와 달과 별이 맞물리는 윤회와 인연을 포착하고 있다. 그녀의 자궁 속에서 진행되던 생명의 달거리, 소행성과 대행성을 품었던 생명 원류로서의 여자의 집! 이 시는 그것이 장작더미 불길에 의해 감쪽같이 철거되고 한우주가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 말라! 갠지스에 뿌려지면 죄는 사라지고 다시 생명으로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 장엄한 회귀를 위해 그녀의 발목에 화장의 삯으로 은발지가 걸려있었을 것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출전_ 『기차를 놓치다』(애지) 음악_ 07-A Simpler Time 중에서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 김 태 형
  • 2016-09-19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3건

  • 10408문관호

    자기자신을 스스로 태우고 덥히는 풍등의 그런 희생적인 모습이 나에게는 안쓰럽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결국 멀리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빛나는 등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낄 뿐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풍등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것 같다. 나는 풍등의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지금 내가 고등학교에 와서 공부하는 것이 연상되었다. 내가 지금 나를 스스로 태우고 덥히며 공부하는 동안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결국에는 나도 풍등처럼 위로 저 위로 올라갈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풍등의 날아오르는 겉모습처럼 나의 성공한 모습만 보일테지만 나는 풍등의 속모습처럼 나를 덥히고 태우며 위로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 2018-05-28 10:02:10
    10408문관호
    0 / 1500
    • 0 / 1500
  • 익명

    좋은시 행복합니다... 이메일로 시배달 소식 받고 싶어 전화도 하고 신청도 여러번했는데 도통 소식이없네요

    • 2016-07-12 08:14:15
    익명
    0 / 1500
    • 0 / 1500
  • 포엠스타

    머물다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2016-07-12 07:30:53
    포엠스타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