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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아직도 누군가 서성거린다」

  • 작성일 2016-07-11
  • 조회수 1,769

김명인, 「아직도 누군가 서성거린다」


통째로 쏟아 부은
몇 레미콘분의 콘크리트 거적처럼 뒤집어쓰고
철근 골조는 마침내 잠이 들었다
인부들이 버리고 간 낮 동안의 고함 소리도
절단기 소음을 두더지 대가리처럼 패대던
망치질도 거기 앙탈하며 끼어들던
착암기의 쨍쨍거림도 지금은
먼지 부스러기로 주저앉아 어스름을 덮고 있다
각목 쪼가리들 그 불구를 뒤적거리며
함바집 여자 혼자 빈 그릇을 거둬들인다

푸른 잎맥들이 뻗어나가던 공터를 헐어내고
막간을 세우려는 어떤 힘의 음모가
저 그릇들에 담겼을까
세상에, 어설프게 얽힌 저런 세력이
구름의 함정이라니!

▶ 시_ 김명인 - 194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출항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물 건너는 사람』, 『푸른 강아지와 놀다』, 『바닷가의 장례』, 『길의 침묵』, 『바다의 아코디언』, 『파문』, 『꽃차례』, 『여행자 나무』와 시선집 『따뜻한 적막』, 『아버지의 고기잡이』, 산문집 『소금바다로 가다』 등이 있다.

▶ 낭송_ 남도형 - 남도형 - 성우. KBS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에 출연.

배달하며

구름의 함정이라니...!?
어지러운 공사판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다가 끝부분에 불쑥 관념적이고 애매모호한 구름의 함정이라는 표현에 이른다.
앰비규이티(ambiguity)? 생각해보면 사실적인 묘사를 한 공사판 풍경은 애매하고 모호한 언어로 치장된 풍경이고 구름의 함정만이 가장 명료한 실상에 가까운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늘 미흡하고 정확한 것은 아니니까.
등장인물은 함바집 여자 하나인데 시 전체에서 수많은 왁자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언어를 세밀하게 조탁하다 보면 결국 시인의 전정이 가 닿는 곳이 구름의 함정일 것 같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 『파문』(문학과지성사)
▶ 음악_ Tune ranch /crank city-1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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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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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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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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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포엠스타

    역시 김명인 시인님의 시는 묘사의 힘도 크고, 아무튼 읽기에도 수월한 것 같습니다. 문운과 건강을 기원합니다.^_^

    • 2016-07-16 17:57:42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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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어와문자

    한창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가 갑작스레 공사를 멈추어야 했을 만큼 아주 거센 비가 오는 바람에 공사를 멈춘 다음 자연스럽게 공사의 막간이 생겼지만 언제쯤 비가 멈춰 다시 공사를 재개하려고 해도 다시 공사를 재개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시간 대라서 다음날쯤으로 공사가 미루어져 현재는 공사가 중지되어져 있는 상태 같네요. 공터에다가 공사를 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푸른 잎맥들이 뻗어나가던 탓으로 봐야겠는데 그렇게 뻗어나가 있었으려면 빗물이 많이 필요했겠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빗물로 인해 무성하게 된 푸른 잎맥들이 공터를 아주 거추장스럽게 차지를 하고 있게 되니까 결국 공터에는 어떠한 공사가 진행되어져 공터는 사라지게 되었나 보네요. 아주 거센 비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져 있었을 공사 현장으로 이미 한창 공사 중이었을 때 배달해 주었던 음식 그릇을 회수해 가기 위해 함바집 여자 혼자 각목 쪼가리들 사이에서 찾아낸 빈 그릇 안에는 공사 현장의 흙먼지를 머금어 더럽게 된 빗물까지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공사 현장 바닥으로 쪼르륵 따라 버리고 말았겠죠. 아주 거센 비로 쏟아 내진 빗물이 바로 구름의 함정이었군요. 아직도 누군가 서성거린다는 것은 공터의 주인이 큰마음 먹고 시작한 공사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사 현장 주변에 자주 나타나 어서 공사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네요. 아무렇게나 상상해 본 것을 이쯤에서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 2016-07-12 14:41:44
    언어와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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