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공개방송 후기] - 계단 위의 언어들
- 작성일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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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위의 언어들
- 찾아가는 문장의 소리 4월 공개방송 후기
옥정협
저절로 문장이 떠오르는 밤이 있다. 함께 있는 사람들과 공기를 붙잡아 놓지 않은 채 그대로 써내려가고 싶은 밤. 사람과 책, 다른 모든 것들과 교류하며 문장을 만들어가고 싶은 밤. 4월 8일 용두산 공원 초입언덕길 ‘딱 봐도 카페’의 밤은 그랬다. 커피향과 노래, 문장들이 밤공기를 따라 퍼져나갔다. 며칠사이 선선하다고 불러도 좋을 만큼 따듯해진 부산의 밤공기에서 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이버문학광장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에 초대된 손님은 각각 2016년과 2017년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김금희, 임현 작가였다. 공개방송에는 예상보다 많은 청객들이 모여 언덕 계단에 방석을 깔고 줄지어 앉았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청객들은 두 작가의 작품이 모두 실려 있는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나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를 품은 채 상기된 표정으로 작가들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해 카페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작가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두 작가의 인상은 선했지만, 마냥 선해보이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품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소설가란 그런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를 만난다는 건 참 오묘한 일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런 사람과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맞는 거죠, 라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글을 써본 사람은 글을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우면서 설레는 일인지 알고 있다. 작가가 돼서 자신의 작품을 읽은 사람들과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는 건 그러한 감정의 연장일까.
같은 학과에 다니는 형, 동생과 함께 스태프로 행사에 참여하게 된 나에게 사진 촬영의 임무가 주어졌다. 카메라를 다루는 게 서툴렀지만, 아기자기한 조명이 매력적인 카페와 작가, 달빛 아래에서 노래하는 뮤지션의 모습을 담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이 간 건 계단을 가득 채운 청객들이었다. 책을 품에 안고 작가의 말에 반짝이는 그들의 얼굴을 여러 각도로 담아내고 싶었다.
한밤의 낭독
김금희 작가가 등장하자 작은 환호가 퍼졌다. 웬만한 서점 매대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의 인기덕인 듯 했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등장한 그녀는 소설집에 대한 인터뷰 후 『너무 한낮의 연애』에 수록된 단편 <세실리아>의 구절을 낭독했다. 김금희 작가가 책을 펼치고 낭독하는 동안,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녀의 음성을 감상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방해가 될까 싶어 조심스러워졌다. 그녀의 음성이 밤공기 사이로 떠올라 퍼졌다.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가진 세실리아의 이미지가 되살아났다. 무심코 상상하며 읽었던 이미지-목소리나 얼굴, 피부색 같은 것들-이 그려졌다. 덤덤하면서도 분위기 있고, 또 예상치 못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소설은 그래서 매력 있다.
‘누구도 누구를 아프게 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가며’- <같이 살자>
김금희 작가의 순서가 끝나고 뮤지션 양양의 ‘그곳에서 흐르는 단어’ 공연이 이어졌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말이 위로가 되는 건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어서일까. 잔잔히 흘러 마음을 울리는 공연이었다.
그 개와 같은
‘다들 그러고 사는 거거든. 다들 들키지 않을 만한 허물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중략>… 그러니까 아무나 쉽게 비난하고 혐오하고 그게 정의인 줄 아는 거지.’
두 번째로 임현 작가가 등장해 <고두>를 낭독했다. 방송당일 출간되었던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어보지 못한 채 작가의 낭독을 들었지만, 절로 공감되는 구절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혐오할 대상을 만들고 그들을 욕하고 경계 지으면서 우리의 도덕성을 지켜내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모두가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바쁘면서도 허물이 들어난 사람들을 질타한다. 참 날카롭고도 아픈 시선이다. 만연한 혐오의 문제에 대한 용기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이정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젊은 작가상’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런 자극을 받으면 괜히 주눅 들면서도 열의에 타오르게 된다.
제목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얼핏 뜻을 몰라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 <고두>라는 제목을 짓게 된 경위에 대한, 그리고 후보였던 제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 또한 ‘고두’라는 단어가 한 번에 끌어당기는 제목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경의(敬意)를 나타내려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라는 뜻과 조금은 불편한 소설의 분위기에 맞는 제목 같기도 하다. 작가는 또한 곧 출판될 소설집의 제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등단작이기도 한 ‘그 개와 같은 말’로 할까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그 개와 같은 말’,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어지는 소설집 제목이다.
미련이 만드는 것
마지막 순서로 뮤지션 하림의 노래가 이어졌다. 대표곡 중 하나인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와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노래 몇 곡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와 노래는 안정적이면서도 힘이 담겨있었다. 아쉬워하는 청객들의 앵콜 요청을 받아 마지막 한 곡을 더 연주하고 공연이 끝났다. 떠나보내기 싫을 만큼 아름다운 밤의 마지막으로 참 괜찮은 공연이었다. 미련이 남는 밤이었음에 감사하며, 또 미련을 남기고 싶은 밤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문청’이라는 이름으로 이 자리에 초대받았다. 솔직히 나는 ‘문청’이라는 말에 부끄러웠다. 휴학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요즘 나의 가방 자리는 소설책보다는 토익 책이나 자격증 책이 차지하고 있고, 수업시간에 습작으로 단편 두 세편 써본 것이 내 창작의 전부였다. 소설은 나이가 들고 쓸 거리가 많아지면 다시 써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문학을 멀리했다. 그러나 문학의 힘은 참 오묘해서 조금만 가까이 가도 확 덮쳐온다. 하필 ‘젊은 작가상’ 작가들을 만나서 그런 걸까. 나도 그들처럼 젊은 작가로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꿈틀꿈틀 일어난다. 괜히 습작을 뒤져보게 되는 밤이다. ‘문장이 떠오르는 밤’이라고 했는데, 나는 무슨 문장을 떠올리며 그런 말을 적었을까.
내게는 모든 것이 행운이었다. 공개방송에 스태프로 참여하게 된 것, 두 작가를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계단 위의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것 모두. 쉽게 여운이 가시지 않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자꾸만 끄적이고 싶어진다.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머리맡에 둔 채, 이렇게 에세이를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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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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