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책으로 물들다 + 백수린 소설집 '참담한 빛'

ㅇ 수다팀 이름: 배꽃, 책으로 물들다

ㅇ 수다 진행 날짜 / 시간 / 장소: 2017. 10. 21 / 정오 / 스타벅스 파미에파크

ㅇ 수다 참가 인원 및 명단(전체): 총 5명, 이수미 김영신 문현수 이미나 장서정

ㅇ 수다 원작 작품: 백수린 소설집 '참담한 빛’

 

첫 번째 책모임이 진행된 날은 ‘배꽃, 책으로 물들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수채화 같은 날이었다. 가을 햇볕이 따사로웠던 정오의 시간에 우리들은 하얀 레이스 커튼이 그려진 표지의 책, 백수린의 ‘참담한 빛’을 가지고 만났다. 따뜻한 카페 안, 향긋한 커피 향기 그리고 부서지는 빛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미 : 너희들과 ‘배꽃, 책으로 물들다’의 첫 번째 책모임을 시작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 그런데 다들 왜 백수린의 ‘참담한 빛’을 첫 번째 책모임에서 다루고 싶은 책으로 선택했는지가 궁금해.

영신 : 나는 이 책의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 ‘참담한 빛’이라는 제목과 하얀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는 이 책의 표지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가끔씩 해가 저물 무렵, 집 안에 고요히 앉아서 커튼 사이의 빛이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그 때 느꼈던 여러 가지의 감정이 떠올랐어.

미나 : 나는 ‘참담한 빛’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 끌렸던 것 같아. ‘참담하다’라는 것은 몹시 슬프고 괴롭고 절망적이라는 뜻이잖아? 그런데 그런 형용사가 ‘빛’이라는 밝고 반짝이는 명사와 만났을 때 묘한 울림을 주는 것 같아서 이 책을 선택했어.

서정 : 맞아. 그리고 이 책이 백수린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인데, 난 이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을 재미있게 읽었거든. 그래서 나도 이 책을 너희와 함께 읽어보고 싶었어.

현수 : 나는 사실 다른 책을 선택했었지만…(웃음) 이 책을 읽고 나니 만약 이 책을 읽지 않고 지나쳤다면 큰일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

 

여기가 아닌 장소와 이방인

‘참담한 빛’은 단편 소설들이 모인 소설집이기 때문에 우리는 각 소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 전, 우선 전체 소설을 관통하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우리 모두가 가장 인상 깊은 점으로 꼽은 것은 이 소설 속엔 다른 한국 소설과 비교해 배경이 한국이 아닌 곳이 많이 등장하며, 동시에 등장인물 중에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수미 : 이 소설집엔 한국이 배경이 아닌 소설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아. 평소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외국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집은 처음인 것 같아.

미나 : 맞아. 진짜 읽다보면 외국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웃음)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만 해도 리버풀, 런던, 파리, 베네치아,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엄청 다양했잖아. 그 지역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보면 작가가 이 지역에 직접 살거나 다녀오지 않고서는 이렇게 쓰지 못할 것 같아.

서정 : 작가에 대해 조금 알아보니 불문과를 졸업했더라고. 특히 유럽의 지역들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많은 것을 보니 작가의 이력과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영신 : 맞아, 나도 이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어. 특히 직접적인 배경으로 등장하지 않더라도 모든 소설 속에서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지역, 특히 외국의 지역이 한번 이상은 언급 되는 점이 신선했어. 예를 들면 ‘첫사랑’에서는 한국이 배경이지만 인물들은 러시아와 러시아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거나, ‘중국인 할머니’에서도 할머니가 살았던 산둥지방이 언급된다거나 또는 ‘참담한 빛’에서도 ‘아델 오나한’의 입을 통해 시카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식이야.

현수 : 응, 그리고 지역과 더불어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은 등장인물 중에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는 거야. 화자인 ‘나’는 한국인이지만 ‘나’와 얽히는 사람들, ‘나’가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닌 경우가 많아.

수미 : 맞아. 뭔가 언어가 다르고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애초부터 완전히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형성된 것 같았어. 특히 ‘여름의 정오’에서 인물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이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좋았어. 오빠 친구였던 ‘타카히로’에 대해 ‘말 없고 멀찍이 떨어져서 알듯말듯한 웃음만 짓는’ 사람이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알듯말듯하다’라는 이 단어가 내가 느끼는 인물간의 거리감을 잘 표현한 것 같아.

현수 : 응, 그래서 결국 인물들 사이의 어렴풋한 교감은 한 순간에 그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일지도 몰라. ‘참담한 빛’에서 “아델을 떠나왔으나 정호에게 도달하지 못한 무언가. 캐러멜처럼 열기에 녹아내려 그들 사이에 들러붙은 무언가.”라는 구절을 보면 이들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것 같아.

미나 : 하지만 나는 너희가 말한 그런 거리감 때문에 오히려 인물들이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결국 ‘여름의 정오’에서 ‘나’도 한국의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결국 친오빠보다 ‘타카히로’에게 더욱 자신을 이해받는 듯한 느낌을 받잖아. ‘스트로베리 필드’에서도 ‘나’에게 ‘주드’가 스스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자신의 내면에 대해 털어 놓잖아.

서정 : 맞아. 미나가 말한 내용을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참담한 빛’이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아델 오나한’과 ‘정호’는 인종, 국적, 사용하는 언어 등 너무 다른 점이 많고 아마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이지만 이상하게도 ‘아델’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정호에게 다 털어놓잖아. 이방인들끼리 만났을 때 묘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영신 : ‘여름의 정오’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어.”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조금씩은 자신의 주변 인물들과는 다른 ‘이방인’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 ‘첫사랑’에서 나머지 친구들이 전부 짜장면을 시킬 때 혼자 짬뽕을 시키는 것처럼.(웃음) 이 소설집 속에는 자기 나라, 또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 미묘하게 섞이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살던 화자가 다른 이방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현수 : ‘첫사랑’에 이런 구절이 등장하잖아. “신입생들이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 듣던 전공필수 강의가 끝나고 텅 빈 강의실에 홀로 앉아 있거나 하굣길,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보면 문득문득 나의 존재가 지닌 밀도라는 것이 얼마나 희박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미 : 나도 그 부분에 밑줄 그었는데! 나도 가끔씩 내가 있을 곳이 여기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어. 누구나 가끔씩 자신이 이방인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 공감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빛 속에서 선명해지는 참담함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제는 이 소설집 속의 인물들에 대해 넘어갔다.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시작해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방인 정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왜 등장인물들이 세계 속에서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참담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나 : 우리가 지금까지 ‘이방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잖아. 난 왜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겉도는 이방인 같은 상태일까에 대해 생각을 해봤어. 그리고 그 이유를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안고 있는 고통에서 찾아보았어.

서정 : 맞아.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지니고 살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은폐된 죄책감 같은 그런 것 말이야.

영신 : ‘은폐된’이라는 그 표현이 정말 적절한 것 같아. 내가 사전에서 찾아보니 ‘참담하다’라는 단어는 ‘끔찍하고 절망적이다, 몹시 슬프고 괴롭다’의 뜻을 가지고 있더라고. 이런 뜻을 가진 단어는 뭔가 ‘어둠’이랑 어울릴 것 같은데, 이 책 속에서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참담함’은 서정이가 말한 대로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빛’속에서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는 거겠지.

수미 :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참담한 빛”이라고 붙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 예를 들어 ‘시차’의 주인공은 영문과를 졸업한 후 로펌에서 번역일을 하다 변호사인 남편을 만나서 서래마을에 거주하고 있어. 누가 봐도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지. 소설의 포커스는 내내 이모가 23살에 몰래 낳고 네덜란드로 입양을 보낸 ‘최정훈’이라는 남자에 맞춰져 있다가 여의도 불꽃 축제, 즉 너무나 밝게 빛나는 그 빛 아래에서 주인공에게 묻을 수 없는 상처가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잖아. 동생을 초등학교 졸업식 날 유원지에서 잃어버렸다는 상처 말이야. 주인공은 동생에게 그 자리에 있으라고 말했지만 동생이 없어졌다는 식으로 서술했고, 부모님들도 주인공에게 잘못을 묻진 않으셨지만 주인공의 죄책감은 자기가 동생의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반추하며 악몽으로 등장하지. 서정이가 말한 은폐된 죄책감, 숨겨진 고통이 불꽃 아래에서 드러난 거지.

현수 : 응, 나는 ‘여름의 정오’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고통도 대학 축제의 불빛 아래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잖아. 친구 J의 죽음이라는 고통. 그냥 같은 반 친구였다고 담담하게 표현하지만 J의 죽음이 성적과 관련이 있는 것 같고, 주인공은 J가 가고 싶던 학교에 입학했으니 그 사이에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이 생겼을 것 같아. 누군가가 주인공의 등을 떠미는 건지 혹은 주인공이 누군가의 등을 떠미는 건지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그런 느낌말이야.

미나 : 그리고 표제작인 ‘참담한 빛’에서는 좀 더 노골적으로 작가가 ‘빛 속에서 드러나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겉보기에는 능력 있고 잘나가는 기자인 정호에게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통에 대해 모두 이야기해주었던 아델에게까지 결국 털어놓지 못한 아이의 유산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아내에게 가한 폭력에 대한 고통이 빛 속에서 결국 드러나잖아.

서정 : 응, “그 뒤에 줄지어 선 높다란 나무의 우듬지 위로 참담하리만큼 눈부신 햇빛이 폭설처럼 쏟아져 내렸다.(…)그 순간이었다. 알 수 없는 공포가 그의 뒷덜미를 내리친 것은.(…) 그는 이 공포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라졌다가도 계속, 계속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이 부분을 다들 눈여겨 읽었을 것 같아.

영신 : ‘참담한 빛’에서는 그 부분 말고도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어. 부부가 아이의 유산을 알기 전 완연한 봄날에 공원을 걸으며 눈부시게 핀 수선화를 바라보잖아. 그리고 아이를 잃고 나서 아내가 “아이가 어두운 배 속에서 그렇게 죽은 줄도 모르고 걷고 웃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완벽한 빛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아내에게 그 고통은 더 극대화되어 느껴졌다는 생각이 들어.

현수 : 맞아. 백수린 소설집 속 인물들은 다들 각기 다른 고통을 안고 있고, 그 고통은 빛을 대야만 보일 정도로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그 고통과 상처를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온전한 나 자신을 보일 수 없는 것일 테고. 그러니까 언뜻 보기엔 세계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미묘하게 섞이지 못하고 붕 떠있는, 자기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외로운 처지가 되는 것 같아.

 

고통은 치유될 수 있을까

빛 속에서만 선명하게 드러난 인물들의 참담한 고통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우리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의 고통과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모두 외로움, 죄책감, 공포, 고통 등의 감정을 작건 크건 갖고 살기 때문에 더욱 진지하게 이 주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다.

수미 : 나는 인물들이 안고 있는 상처들은 쉽게 치유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특히 ‘시차’에서 결국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이 각각의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고 시차는 좁혀지지 않으니까. 네덜란드와 한국의 시차가 좁혀지지 않는 것처럼 끝내 ‘빈센트’를 만나길 거부한 이모처럼 두 인물은 가닿을 수 없고 상처는 치유되지 않겠지.

미나 : 맞아. 나도 ‘시차’라는 그 작품이 여운이 많이 남았어. 수미은 네덜란드와 한국의 시차를 언급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차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나는 ‘나’와 ‘나의 과거 즉 동생을 잃어버린 사건’과의 시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어. 나와 내 과거 사이의 시차를 좁힐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선연하게 남는 거겠지.

영신 : 응, ‘참담한 빛’에서 아델이 한 말을 인용하고 싶어. “이렇게 살아지겠구나. 시간과 함께. 그런데 그것이 치유일까요. 나는 그제야 비로소 로베르가 왜 그토록 치유되는 걸 두려워했는지 깨달았어요. 그리고 로베르를 보낸 뒤 처음으로 울었어요. 아이처럼. 호숫가의 한가운데 희미한 빛의 한복판에서요.” 인생을 살다보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상처와 고통이 찾아오지만 배는 어처구니없게도 고파오는 거고, 나도 모르게 풍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기도 하는 것처럼 살아지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그것을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 마지막에 정호도 “그는 이 공포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라졌다가도 계속, 계속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이라고 얘기하잖아.

현수 :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이 소설 속에서 각자의 고통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보듬어주고 있다고 생각해. ‘시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람들 간의, 또는 나와 나의 과거와의 시차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는 점에는 나도 동의해. 서로의 마음을 영원히 헤아릴 수는 없을 거야.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이젠 다신 만나지 않을 사람일지도 모르는 ‘빈센트’에게 ‘오빠’라고 불러준다든지 ‘빈센트’가 주인공에게 ‘HAVE A GOOD LIFE’라는 메시지가 적힌 카드를 보내는 것을 통해 인물들이 서로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서정 : 나도 현수의 의견에 동의해. ‘여름의 정오’에서 스무살의 ‘나’와 서른 살의 타카히로는 애매모호한 관계이고 서로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 그렇지만 타카히로와 여름을 보내고 난 뒤 주인공은 ‘내 안에서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고, 또 자살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타카히로에게 주인공은 “그래도 죽지는 마”라는 말을 건네잖아. 그리고 현재 타카히로가 무엇을 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아직 그가 살아 있었던 것을 보면 타카히로를 주인공이 붙잡아 줬다고 생각해.

수미 : 그런 의미에서 ‘중국인 할머니’의 마지막 장면은 참 아름다웠던 것 같아. 화교인 새할머니에 대해 거리감과 거부감을 느껴서 딱히 말조차 걸지 않았던 주인공이었지만 아름다운 달빛 아래에서 새할머니께 ‘그때 왜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으셨어요?’ 하고 묻게 되고, 할머니는 ‘이렇게 너를 만나려고 그런 게 아니었겠느냐’라고 대답하잖아. 그 후에도 딱히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짧은 순간에 서로에게 건넨 말의 온기는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

영신 : “거짓말처럼 아름답던 그 밤, 할머니와 나 그리고 어느 틈엔가 내 옆으로 다가와 있던 진운이는 잠시 그렇게 서 있었는데. 덧없이 짧은 한 순간 동안, 손만 내밀면 닿을 듯 닿을 듯 가까워 보였던 반투명한 달 아래. 마치 사이좋은 한 가족이기라도 한 듯이.” 이 부분이었지? 빛 속에서 참담함이 선명하게 드러나더라도 잠시 그렇게 서 있어 주는 것, 한 가족처럼 옆에 서 있어주는 것, 최소한 이 정도의 온기 정도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백수린 작가의 ‘참담한 빛’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했지만, 다 읽고 이야기를 나눈 결과 이 작품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생각은 일치했다. 특히 우리는 고통을 안고 사는 다양한 인물들을 어루만지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좋았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물론 서로 인상 깊었던 부분이나 생각하는 방향은 조금씩 달랐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로 왜 그렇게 감상했는지 이해가 되었고 작품을 혼자서 감상할 때 보다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다. 혼자 읽어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열지 못했던 문이었을 것이다. 10년 째 우정을 유지하면서 온갖 주제에 대해 수다는 떨어봤어도 책을 가지고 수다를 떤 적은 없었는데, 이런 행사를 계기로 처음으로 책을 가지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신선하고 즐거웠다. 책수다 팀에서 앞으로도 계속 마감 날짜가 있는 다양한 미션을 부여해 준다면, 조금 더 의무감을 가지고 알찬 모임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우리가 백수린의 책을 가지고 이야기한 대부분의 주제는 ‘고통, 상처, 참담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공감의 미소가 번지며 우리의 마음은 책으로 물들어 갔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책보다는 ‘행복함’이라는 단어로 물들었던 것 같다.

 

kakao

2
댓글남기기

1 Comment threads
1 Thread replies
0 Followers
 
Most reacted comment
Hottest comment thread
2 Comment authors
  Subscribe  
Notify of

문학 수다도 감동적일 수 있네요~, 붙임자료를 풀어서, 글쓰기로 올려주시면 많은 분들이 좀 더 편하게 보실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