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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의 솔방울+김 숨의 장편소설 '한 명'

  • 작성일 2017-10-30
  • 조회수 358

 

○ 수다팀 이름: 청송의 솔방울

○ 수다 진행 날짜/시간/장소: 2017. 10. 28./오후 7시/상산고등학교 주변 카페 ‘더 착한 커피’

○ 수다 참가 인원 및 명단: 총 6명, 김지명, 박도현, 박서영, 이세희, 장준경, 송해진 담당 선생님

○ 수다 원작 작품: 김숨 장편소설 ‘한 명’

○ 내용: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단재 신채호가 한 말이다. 김숨 작가의 ‘한 명’은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는 한 할머니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몇 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위안부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슬픔이고 모두가 책임을 져야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위안부는 한 민족으로서 모두가 함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위안부를 보고 소위 ‘더럽다’라는 말을 내뱉고, 관심조차 두지 않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역사적 사실로서 위안부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이 아닌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이 얼마나 큰 수모와 치욕을 겪었는지 알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나 그 시절을 직접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작가의 생각이나 상상을 담고 있는 문학이다. 어느 소설을 읽든 간에 우리는 어느 부분이 픽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국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죽고 단 한 명만 남았을 때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다른 소설보다 더욱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그 가정이 마냥 픽션이라고 느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 한 명밖에 남지 않을 상황이 올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역사적 치욕과 대놓고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들의 폭로이다.

우리 수다팀은 여성과 남성 둘 다 속해있는 팀이기 때문에,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남성으로서 ‘그녀’와 그녀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몸속에 들어가는 삿쿠의 질감을 알 수 없고, 자궁을 들어내는 것의 공허함을 그대로 느낄 수 없다. ‘그녀’는 분명 우리의 가족일 수도 있었고, 옆집 이웃일 수도 있었지만, 시대라는 장벽과 성별의 차이 때문에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는 결코 그들로서 살아 숨 쉬어 볼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들의 피와 살을 우리 속으로 밀어 넣으려 노력했다. 장이 뒤틀리고 꼬이는 것 같기도 했고, 일본 군인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그녀’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모공 사이로 뜨거운 피가 흘러넘치는 기분도 들었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이해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던 그 또래의 여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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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앞에 두고 종이죽 탈의 막힌 입을 한참 더듬는다.

손톱깎이에 달린 칼을 뽑아, 그 칼끝을 종이죽 탈의 막힌 입으로 가져간다.

칼끝으로 죽- 소리가 나도록 긋는다.

그녀는 긋고 또 긋는다. 쉰 번쯤 그었을까, 막힌 입에 마침내 구멍이 뚫린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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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살아온 수십 년 동안, 마지막 한 명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동안 그녀는 쉰 번은 넘게 망설였을 것이다. 반으로 접힌 백지 위 “나도 피해자요.”라는 글을 종이죽 탈 입에 뚫린 구멍 사이로 내뱉기 까지.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주로 ‘그녀’ 한 명의 번민에 주목했지만, 분명 우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명들’이 그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위안부에 대한 직접적인 생각 말고도 우리는 시대적 상황에도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만약 2017년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녀’가 돌아오는 상황이었다면 그 때와 같았을까?” 지금의 13살은 쉽게 글도 읽고 자신이 어디에서 사는지 정확히 주소로 말할 수도 있고 쓸 수도 있는 나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13살 여자 아이는 다르다. 글을 잘 읽지도, 글을 잘 쓸 수도 없었다. 그런 ‘그녀’는 견디지 못할 만큼 혹독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7년 동안 일본어를 들으며 겪었다. 7년 후, 그녀는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자신이 서 있는 ‘여기’가 어딘지 몰랐다. 또한 돌아갈 자신의 집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바뀌어버린 ‘고국’에서 길을 헤맸다. 그녀가 만주 위안소에 있던 시절, 그녀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컸어도 그녀의 정신만큼은 일본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얼른 한국에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그녀가 결국 자신의 고국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라 돌아가지 못했다. 만약 현대의 ‘그녀’였더라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을까?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그녀들이 위안부여서, 그런 고통을 받아서 슬픈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힘이 없고, 지식이 없었던 것은 비단 ‘그녀’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시 국가의 힘이 약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정부와, 여성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았던 나라의 상황이 섞여서 만들어진 시대적 상황 탓이라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내용 면에서 그치지 않고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에도 있다. 책에서 사용한 상징, 과거의 회상과 현실의 연결과 열린 결말에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많은 상징이 쓰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상징을 뽑자면 ‘신발 옆에 놓인 죽은 까치’ 그리고 ‘새끼 고양이’이다. 우선 종이죽 탈은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소재이다.

까치는 초반 상징적 존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녀는 신발을 신을 때마다, 그 신발을 신고 걸을 때마다 죽은 까치를 신고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신발을 신는 행위는 ‘어딘가로 가겠다’라는 의지를 의미한다. 신발은 발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주며 그것을 신은 사람이 더 편히 목적지에 이르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있어 신발은 자신이 사는 양옥집과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우리는 신발을 신는 행위가 그녀가 물리적으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소통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 신발이 ‘죽은’ 까치와 겹쳐 보인다. 왜 굳이 ‘죽은’ 까치와 겹쳐 보았을까. 죽음은 앞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신발이 ‘죽은 생물체’로 보였다는 것은 본디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그녀와 바깥세상 사이의 단절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가 이 신발을 죽은 까치로 여기는 것은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그녀에게 두려움과 아픔을 주어왔기 때문인 것으로, 어쩌면 그것 때문에 그녀가 세상과의 소통을 스스로 포기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흐름은 다른 책에 비해 독특하다. 이 책은 과거 회상과 현실의 전환이 자주 일어난다. 책을 읽다보면 과거의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현실로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회상이 현실과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다. 물론 작가가 꿈, 혹은 위안부와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과거와 현실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매개체에 의존하지 않고 주인공, 즉 ‘그녀’의 생각의 흐름이 주된 이야기의 전달 형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작가에게는 ‘모험’이고 독자에게는 ‘낯섦’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표현하는 도중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잘 표현해야 하는 작가의 역할과 표현된 이 과정을 잘 이해하는 독자의 역할이 책 이해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결과적으로 작가의 선택이 적중한 셈이 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주로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수단은 교과서이다. 교과서 속에서도 우리는 문학에 대한 감상 보다는 문학의 형식적인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서 단순히 형식의 미를 알아가는 것 보다는 한 책에 다양한 관점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문학의 접근 방법이 교과서 인 것처럼 학생들은 문학을 접할 시간, 기회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이 프로그램을 전국 고교생에게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시키고, 정원 또한 늘린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한층 문학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