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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연, 「우리는 만난다」

  • 작성일 2018-06-21
  • 조회수 4,982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하재연 시집, 『라디오 데이즈』, 문학과 지성사, 2006.




하재연 |「우리는 만난다」를 배달하며…



시 속의 너와 내가 만나는 장소를 생각해봅니다. 야구장인가 봐요. 흰 공처럼 나는 당신의 팔을 부수고 라이트를 깨뜨리며 경기장 밖으로 날아갑니다. 나를 멀리 쳐내고 당신은 비 내리는 야구장을 힘껏 뛰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슬픔의 홈런을 칩니다.
어린 시절에 ‘만남’이란 마냥 좋기만 한 단어였던 것 같아요. 앞마당에 내린 첫눈, 처음 뺨에 닿은 꽃잎, 처음 만난 바다, 처음 사귄 친구, 모두 놀랍고 아름다운 만남이었지요. 당신과의 만남도 시작은 분명 그랬을 텐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투우장에 나부끼는 붉은 천과 흥분한 황소처럼 만나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오늘은 당신에게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모처럼 야구장과 투우장을 떠나,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데서 만나는 거 어때?’라고요.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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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5건

  • 이승우10810

    이 시에서 말하는 것은 만남에 대한 것인 것 같다. 하지만 그 만남을 가지는 과정을 어떻게 가지는지 야구에 비유하였다. 이 시에서 나와 흰 공이 만났었고 그다음부터는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점점 멀어지는 것을 라이트, 나의 팔, 주위의 소리, 비 와 같은 것들로 표현하였다. 이것들 중 너의 팔이 부서지고는 나와 공의 헤어짐 중에서 아픔을 나타내는 것으로 느꼈다 또 비가 내리며 푸른 잔디를 키우는 것은 나와 흰 공의 성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느꼈다 제가 이 시를 선택한 이유가 전과같이 고통이 있더라도 성장을 하는 성장통이니 견뎌내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느꼈다.이제부터는 아픔도 견뎨내며 성장할것이다.

    • 2018-11-05 16:09:21
    이승우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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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미아

    대략 4개월 전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라이트에 눈이 멀었다'는 부분이 '본다'는 인간 행위와 관련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라이트가 쨍,하고 깨지는 순간,/ 너의 팔이 부서지고'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나는 나와 다른 누군가(들)와 만날 때면 안과 밖의 경계를 지치도록 서성이곤 한다. 그런 가운데 내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하는 '윤리적 폭력'을 저지르고서는 선을 추구하는 유덕자인 마냥 의기양양할 때가 참 많았다는 걸 요새 절감하고 있다. 내 팔이 부서질 걸 모른 채 상대의 팔을 부서트리곤 했으니... '그 안에 네가 있었고/•••/어디선가 비가 내리듯/ 바깥이 젖는 것 같았다'는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경계를 꼭 완전히 허물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인간 교차점'이란 말을 참 좋아하니까 말이다.

    • 2018-10-29 12:44:47
    우주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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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11 안준현

    친구를 만날때 항상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곤 했는데, 이 시를 읽고 나니 어린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부터 현재 만나는 친구들까지 어떤 감정으로 만났는지, 항상 좋은 감정으로만 만났는지 같은 생각들을 하게되네요. 시에서는 친구를 어느샌가부터 좋지 않은 감정으로 만났지만 결국엔 좋은 감정으로 바뀌었는데 이처럼 나도 타인과 만남을 가질때는 나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만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된 것 같습니다. 또한 지나가버린 만남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습니다.

    • 2018-10-29 11:55:23
    11011 안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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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추

    흰 공을 힘껏 쳐내고 도망치듯 달려가도 결국 공도 타자도 베이스를 향해 달려간다. 떠난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추억이라는 한 베이스에서 만난다. 누가 좀 더 먼저 올 뿐. 너도 나를 떠올릴 때가 있겠지. 나는 오늘 널 떠올렸다. 우리는 만난다. 안만나도 만난다.

    • 2018-10-29 00:51:29
    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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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lm

    사랑은 모노톤 일상을 총천연색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렌즈라고, 그리고 이 시의 화자는 그러한 사랑을 만난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번의 만남을 갖는다. 아침에 눈을 떠 새벽 빛과 만나고, 이불의 따스함을 벗어나 차가운 공기와 만나고, 포근한 슬리퍼와 만나고, 따뜻한 밥 한공기와 만나고, 세안 후 깨끗해진 내 얼굴과 만나고, 촉촉하고 향이 좋은 수분크림과 만난다. 하지만 어떤 만남은 그저 서로 마주하거나 닿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만남의 순간은 내 일부가 부서지고, 내 안의 무언가가 나의 바깥으로 내던져짐으로써 가능하다. 만나고자 있는 힘껏 고개를 돌리지만 상대방의 존재에 눈이 멀게 되는 아찔한 찰나이기도 하다. 이 순간 나는 그 사람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상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주변은 비오는 날 습기를 머금은 공기처럼 무겁고 차분하며 촉촉해진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렌즈를 착용한 ‘나’는 총천연빛 세상을 마주한다. 거짓말처럼 푸른 잔디를, 붉은 흙투성이 신발로 뛰고 있는 ‘너’를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기분 좋은 만남으로 가득했던 나의 지난 몇 달을 생각하면 온 마음이 든든하고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하지만 내 일상의 균형을 깨뜨리고 숙면을 방해하며 마음의 평온을 부수는 어떤 만남 덕분에 내 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고요하고 맑았던 수면은 흙탕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깨뜨려지며 너를, 나를 우리는 만난다. 비록 고장난 심장 때문에 잠들지 못하였어도 나는 푸르른 웃음을 터뜨린다. 산산조각이 날 두려움을 무릅쓰고 뛰어오는 너 또한 발견한다.

    • 2018-10-28 16:11:36
    b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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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산산조각이 날 두려움을 무릅쓰고 뛰어오는 너"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모르는 척 합니다. 아니면 그런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런 표현은 이제 아이에 대한 내 마음으로밖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게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이승우 작가가 '사랑의 생애'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이제 숙주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랑이 떠난 것도 서운하지만 balm님의 글에 가슴으로 느낄 수 없는 것도 왠지 섭섭해지네요.

      • 2018-10-28 22:05:00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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