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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분홍 코끼리 소녀」

  • 작성일 2018-12-06
  • 조회수 2,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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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김혜순|「분홍 코끼리 소녀」를 배달하며…


브레히트가 1927년 출간한 『가정기도서』에는 「영아 살해범 마리 파라에 대해」라는 시가 있어요. 마리는 남의 집에서 만삭의 몸으로 막일을 하던 고아처녀였죠. 이 미혼모는 불도 안 땐 자신의 골방이 너무 추워 하인들이 쓰는 뒷간에서 아이를 낳다가 우는 아이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서 죽어갑니다. 그 시가 씌어진지 1세기가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소녀들은 공중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버립니다. 브레히트는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분노하지 마라. /무릇 피조물이란 모든 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니.”*
코끼리는 신성하고 고귀한 영혼의 상징이기도 하죠.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몸이 낳은 것은 다 소중하고 보드라운 것들인데 세상의 무서운 추위가 그것들을 육중한 고통으로, 떨어져 발등을 찍는 종유석으로 꽝꽝 얼려버렸어요. 그러니 분홍 코끼리 소녀도, 나도, 당신도 모두 도움이 필요해요.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 살아남았지』, 이옥용 옮김, f.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김혜순 시집, 『피어라 돼지』, 문학과 지성사, 2016.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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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건

  • 우주미아

    얼마전 유투브에서 다 자란 코끼리 세 마리가 폭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아기 코끼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 커다란 몸을 바삐 움직이는 동영상을 반복 재생해가며 오래도록 보았다. 소녀도 그 세 마리의 코끼리와 같은 어머니를, 아버지를,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렸을 텐데...... 부르는 사람들은 오지 않고, 말캉하기는 하나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버겁게 큰 아기 코끼리가 그만 들러 붙고 말았다. 책상 아래 숨어 있던 양말에서 풀려나온 실, 소녀의 손목에 붙어 있던 붉은 반점에서 아기 코끼리로 이어지고. 코끼리 아이에게서 풀려나온 실은 또 어디로? 아이야!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지만 말고 네 영혼을 숨처럼 들이쉬고 숨처럼 내쉬렴.

    • 2018-12-10 10:57:59
    우주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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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책상 아래 늘어나있던 양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양말도 한짝에 혼자였을 것 같다. 전같으면 이런 일들이 남의 이야기처럼만 느껴져서 별 감흥이 없었을 것 같다. 요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있다. 책에서는 합리적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그 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전체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책 덕분에 유아적 개인주의였던 내게 이 시가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와 남일 사이에 그 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으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딴 세상일같지 않게 느껴진다. 우리는 크게 보면 같은 시공간 속에 있는 존재일테니 그게 맞을 것이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 2018-12-10 07:45:09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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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곡안개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정신이 멍해진다. 이 시인도 얼마나 안타깝고 답답했으면 시(詩)로 표현했을까. 시를 감상한다는 기분보다 앞서서 우리사회가 어떤 구조적인 모순에 의해서 이런 일이 발생하며 또, 해결책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그럴 때 마다 막연한 생각으로 그치고 만다. 우리 사회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번번이 발생하지만 ‘방관자 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소식을 접하는 사람이 많으니,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에 회피하는 군중을 발견한다(그 중 나를 포함해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죄악’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그때마다 알량한 나의 양심에 기대어 일말의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지만 또 지나갈 것 같다. 스산한 밤이다.

    • 2018-12-10 01:38:53
    계곡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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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추

    때론 몰랐으면 좋았을 일이 있다. 알아서 더 괴로운 것들이 있다. 그러나 내 눈을 가려서 행복했다면 그게 진짜 행복이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사랑에는 '알아서 괴로운 순간'이 오는것 같다. 소녀가 분홍코끼리를 낳은 정도는 아닐지라도 어느정도 눈감고 싶은 부분들이 보이게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보통 그런 순간은 내가 이미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이 단순히 내 것이 아닌 순간에 오는 것 같다. 그럴 때 우리는 선택하게 된다. 내 삶이 사랑에 흔들리게 둘 것인지, 아닌지.. 이 시인은 전자를 택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왔을까..

    • 2018-12-10 00:25:18
    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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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참...타이밍이 이상하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붉은달 푸른해' , 오늘 본 영화 '미쓰백' 그리고 이 시. 방임과 학대를 당하며 생존의 위험을 받으며 살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또 돕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 balm님의 말씀처럼 기사나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겠지. 아이를 학대하고 방임하는 부모 자신도 비슷한 어린시절을 보낸 경험이 많다는 것이 희한하다. 마음이 무겁다. 그들에게도 영화나 드라마처럼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관심있게 지켜봐 주고 다가와 주는 이들이 있었다면 그런 고통스런 대물림이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인데...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겪은 가난과 외로움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나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만으로는 할말이 없다. 어쩌면 이런 자극을 피하며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 미뤘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며 마음을 달래도 잘 되지 않는 밤이다.

    • 2018-12-09 23:39:30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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