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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마당 약전(略傳)」

  • 작성일 2018-12-20
  • 조회수 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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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곽효환|「마당 약전(略傳)」을 배달하며…


약전(略傳)은 한 사람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록한 글입니다. 시인은 마당의 약전을 통해 하나의 공간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하나로 고정된 존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톡 치면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새 문양을 만들어내는 만화경 속 유희가 좋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태어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결혼식장에서 결혼하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죠. 하지만 예전에는 모든 것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어요.
가족들이 아이의 탄생 소식을 들으며 기쁨으로 두 손을 맞잡던 곳도 마당. 집 밖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아이가 아장아장 걷던 곳도 마당. 그곳에서 혼례를 치루고, 이웃을 만나고, 물그릇을 놓고 소원을 빌기도 했어요. 세월이 흘러 숨을 거두기 전 한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방문을 열어달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방문 너머로 자신의 한 생을 오롯이 받아준 눈 덮인 마당을 바라보며 고요히 떠나가기 위해서요. 문득,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집니다.


* 롤랑 바르트, 『목소리의 結晶』, 김웅권 옮김, 동문선.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곽효환 시집, 『너는』, 문학과 지성사, 2018.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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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1건

  • 눈물이

    마당약전은 가족들의 처음과 끝이었다.요즘엔 비싼 집도 마당이 없다.그래서 캠핑을 다니고 강과 산에 텐트를 치고 조그만 공간만 보여도 돗자리를 까나보다. 마당은 바깥의 여유로운 공적공간이기도 하고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다 깃들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을 품고 기르고 지켜보고 마무리했던 옛날의 마당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심지가 굳어보인다.마당의 이야기는 탁 트인 곳에서 꽃과 햇볕과 바람과 눈과 비를 오롯이 다 안고 사람들도 안아주었던 공간에서 비롯된다. 70을 넘기신 엄마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자고 같이 양평까지 내려가 집을 알아보다가 도시가스가, 근처 슈퍼가 없어 시들해져버렸는데 이 시를 읽고 문명의 편리함보다 지친 마음을 품어줄 마당 있는 집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 2019-06-11 23:14:29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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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ra

    오랫만에 마당을 떠올릴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마당은 생각만으로도 푸근하고 깊은 숨이 쉬어지게 한다. 김장하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뭐니뭐니 해도 마당은 안주인의 것이다 김장철, 마당 가득 쌓여있던 배추들이 어린 눈에는 작은 산처럼 보였다. 그 산을 내 집 마당에 쌓기도 하고 풀어 헤쳐서 갖은 비법을 더 해 맛있는 김치로 재탄생 시키는 작업을 하는 동네 엄마들이 마술사처럼 보였다. 이처럼 마당은 변화하고 재탄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마당은 지나간 사랑의 흔적을 하나하나 태우며 느꼈을 상실과 먹먹한 마음을 담아주던 공간이기도 할 것이다. 나에게 물리적 공간의 마당은 따뜻하게 품을 내어주고 변화하려는 용기를 든든하게 지켜봐주는 안전한 심리적 정화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 2019-04-10 12:34:24
    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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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놀

    시골의 풍경이 그려진다. 그리고 인생도 그려진다. 삶의 희노애락과 가문의 역사가 담겨있는 그곳 이제 놀이도 잔치도 예식도 사람도 사라져 존재마져 희미해진 이름이라고 하니 참 안타깝고 슬프다. 이런곳은 오래오래 지켜지고 전해지면 좋겠는데

    • 2019-04-10 12:23:38
    지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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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산I

    이 시를 읽고난 후 든 첫 생각은 움직임이 많다는 것이었다. '걷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뒹굴고 뜀박질하고' 자신을 다잡아가는 과정에서 세상을 향해 무수히 나아가고 또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일방적인 생에 대한 헌신이 아닌 상호교류로 표현한 것으로 볼 때 시인이 과거를 지금의 세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시인이 말하는 과거의 삶은 지루함이란 없어보이고 그 지루함 또한 휴식과 같은 침묵이었을 것이다. 꼭 과거 뿐만이 아니다. 현재라고 해서 우리가 얌전히 있을 이유가 없는데 우리 사회엔 육체의 움직임을, 육체 노동을 다소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다소 있다.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는 사람들이 어떤 학문에 대한 무지함을 내보일 때 역시 그렇겠거니 하대하는 여론은 그들이 움직임에 몰두하느라 학업에 쏟지 못한 시간을 계산해주지 않는다. 그 뿌리깊은 '얌전함'에 대한 선망은 선비 문화의 반로로 여겨진다. 시인은 이런 상류층의 풍류 대신 마당 잔치터의 시끄러움을 택한 듯하다. 여기나오는 마당에 드나드는 이들은 농악을 하는 일반 백성들인데, 이들 삶 속에 어떠한 거창한 학문적 성과는 없지만 의미없고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 또 하나, 자신의 바운더리를 공고히 하는 요즘과 대비되게 '마을 사람들의 흥성거리는 잔치터'로 마당을 내어주기도 하는 여유란 무엇일까? 물론 요즘도 친한 이들을 집에 부를 수도 있지만 저 마을 사람들은 모두 마당 주인과 절친한 관계일 거란 걸 알 수가 없다. 다양한 생명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어우러질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열린 사고를 가져야지만 가능하다. 시인은 삶 이외의 것을 모두 추구하느라 소진된 마음 대신 마음 그 자체로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원초적인 생명력을 갖고 살던 그 때를 그리워하고 있나 싶다.

    • 2019-04-10 01:01:20
    한산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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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바토디

    마당의 생애를 담담하게 읊조린 이 글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나의 마당이 떠오른다. 내게 마당은 생애 초기의 중요한 기억 2개가 매여 있는 아주 소중한 장소이다. 내 생애 첫 기억은 3살이 된 내가 갓 태어난 남동생을 안아본 것이다. 엄마가 애기를 주면 떨어뜨린다고 난색을 하셔서, 외할머니가 나를 뒤에서 안은 자세로, 외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부들부들하고 새빨간 살덩어리를 처음으로 안아 봤다. 아빠가 가구를 만들다가 남은 목조로 대충 지은 간이마루에서, 그 마당에서 동생을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그 때 나는 동생을 보고 못생겼다며 싫어했다고 하지만... 뭐.ㅎㅎㅎ 두 번째 기억 역시 마당을 배경으로 한다. 4살에 태백에 엄청 큰 홍수가 났다. 물바가지랑 세숫대야로 엄마랑 외할머니가 마당에 찰방찰방하게 차오른 물을 퍼서 바깥으로 버리고, 또 버리고...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이를 악물고 물을 내보내는 가족들의 모습이 너무 낯설고 놀라서 엉엉 울던 기억. 지금은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겨온 우리집. 그래도 멀지 않은 곳에 옛 집이 있어 태백을 가면 종종 남의 집인 것을 알면서도 유심히 살펴본다. 높은 담벼락에 가려져 있어 아쉬운 듯 천천히 스치며, 애틋하게 상상만 거듭할 뿐이지만. ...아빠가 뽑아버린다고 그래서 울고 단식투쟁까지 하며 사수했던 호두나무는, 여전히 안녕할까? 매해 철마다 내 기분을 예쁘게 물들여주던 봉선화는 이제 어떤 어린이의 손톱을 담당하고 있을까? 아빠가 욱여넣은 블록 하나를 굳이 헤집어서, 그 속에 비밀스럽게 숨겨두었던 알록달록한 구슬들과 미니어처 인형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까? 사시사철 마당을 벗삼아 웃고, 울고, 도약하고, 가끔은 숨어서 눈치를 보던 그 시절의 어린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 2019-04-09 23:53:24
    쿠바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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