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디디의 우산」 중에서
- 작성일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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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 『디디의 우산』을 배달하며…
고향마을 우편집배원의 큰 가방 속은 편지보다는 감, 복숭아, 참외 같은 제철 과일들로 가득 빛나곤 했습니다. 배달 사례로 받은 것들인데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지요. 저도 문장보다는 그런 걸 배달하게 될지도 모르니 그러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문장 속의 정전된 곳은 서울의 가장 큰 전자상가인 종로3가의 세운상가입니다. 전성기를 다했다는 이유로 세운상가의 점포들이 신개발단지인 용산의 전자상가로 집단 이전을 마쳐가던 시기의 어느 한 밤중이고요. 이곳에서 한평생을 보내다시피 한 이들은 이전을 망설이고 있었지요. 크고 밝고 교통 좋은 새로운 개발단지로 이전하지 않고 어째서 미적미적 버티는지는 얘기해 주지 않는군요. 물건이야 다 옮긴대도 끝내 옮길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는 듯, 그들은 공동화 되어가는 세운상가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저승과도 같아질 어떤 것. 그러나 몇몇이 남는 것으로는 그 무언가를 지켜낼 수는 없어 이미 죽어버린 세운상가를 봅니다. 그 무언가란 눈부신 개발과 이윤의 논리에 묻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마는 어떤 것일 테지요.
소설가 구효서
작가 : 황정은
출전 : 황정은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109~111쪽. 창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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