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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모일, 저녁」 중에서

  • 작성일 2019-07-18
  • 조회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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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 「모일, 저녁」을 배달하며…


추억이랄 것까진 없지만, 붕장어인 ‘아나고’에 대한 기억이 있다. 소설 속 장면보다 좀 더 잔혹했던가. 널판의 튀어나온 못에 대가리를 박아 꿰고 목에 해당할 부위를 빙 둘러 얕게 칼집을 낸 뒤 펜치로 껍질 끝을 집어 아주 빠르게 꼬리방향으로 주욱 잡아당기면 눈 깜짝할 사이에 홀라당 껍질이 벗겨지며 ‘아나고’는 순식간에 백사처럼 희고 투명해진다. 꿈틀거리는 그것을 오이 썰 듯 송송송송 탕탕탕탕 썰면 ‘아나고회’가 되는데, 살아 있던 붕장어가 접시 위의 ‘아나고회’가 되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빠르기. 그 스킬이 생활의 달인이 되고도 남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토록 많은 ‘아나고’를 잡다보면 왠지 어느 때인가는 ‘아나고’들의 반격을 받지 않을까 무서웠는데……그럴 리가. 그럴 리가. 하지만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어진’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반격 받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맥락 단절을 피하기 위해 발췌 편집했으나 문장 훼손은 없었습니다.)


소설가 구효서


작가 : 김숨

출전 : 김숨. 『간과 쓸개』. 문학과 지성사. 55~67쪽.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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