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입맞춤-사춘기2」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 같은 복도입니다. 그런 복도라면 나는 복도 위의 복도와
복도 아래의 복도를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걸레를 밀며 달려갔다 달려왔지요. 그런 복도라면 어느 쪽도 이쪽이어서 우리들은 계단을 함부로 오르내렸지요.
여자애가 화장실에서 치맛단을 접고 나올 때는 말입니다, 무릎이 보일 듯 말 듯 했지만요, 이쪽과 이쪽 사이에서 못 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 우리는 생각보다 참 욕도 잘했고
참 쉽게 웃기도 잘했습니다. 창문에 붙어서 우리는 창문만 닦았고, 그런 복도라면 우리는 복도 위의 복도와 복도 아래의 복도에서 창문만 닦겠지만,
정말 뭐가 더 잘 보였겠습니까? 어쩌면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 같은 복도입니다.
김행숙 ,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

 

 

김행숙, 「입맞춤-사춘기2」를 배달하며

 

    작품에 등장하는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 저는 이 복도를 걸어본 적도 또한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 같은 복도가 어떤 복도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 생각 없이 달려갔다 다시 달려올 수 있는 곳이라면, 이쪽을 저쪽이라 부르고 저쪽을 또 이쪽이라 부를 수 있다면, 웃음과 욕과 맹목이 한데 뒤섞이는 시간이라면, 이 시간이 깃드는 장소라면. 이들은 모두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를 닮았을 것입니다.
    이 작품이 수록된 김행숙 시인의 시집 『사춘기』의 뒷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었다.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나는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다. '주어지지 않은 역사'이므로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내가 알았던 것에 기댈 수 없을 뿐이다. 그리고 다만, 나의 무지의 힘으로 으으으 달릴 뿐이다.”
    읽으며 읽으며 무지가 가지고 있는 굳센 힘을 생각합니다. 번복과 고침으로 자유롭게 나아가는. 이쪽이 저쪽이 되고 저쪽이 이쪽이 되는 일처럼 확실하거나 확언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만큼은 확신할 수 있는 것.

 

시인 박준

 

작가 : 김행숙

출전 :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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