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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김포행 막차」

  • 작성일 2021-12-30
  • 조회수 1,177




 김포행 막차 -박철 그대를 골목 끝 어둠속으로 보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롭지 못한 만큼을 걷다가 기쁘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울다가 슬프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취하여 흔들거리며 가는 김포행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멀리 비행장 수은등만이 벌판 바람을 몰고와 이렇게 얘기합니다 먼 훗날 아직도 그대 진정 사람이 그리웁거든 어둠 속 벌판을 달리는 김포행 막차의 운전수 양반 흔들리는 뒷모습을 생각하라고. 작가 : 박철 출전 : 『김포행 막차』 (창비, 1990)



박철 ┃「김포행 막차」을 배달하며


늦은 밤, 마지막 배차 순서의 버스가 달리는 풍경이 선연하게 그려집니다. 버스 안에 혼자 남아 있던 손님까지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이고요. 그 손님은 이내 골목 끝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손님이라는 존재를 시간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이 작품의 의미는 한결 넓어집니다. 그동안 기쁘지 않은 시간만큼 울었고요. 슬프지 않은 시간만큼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손님이 없지만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 버스를 운전하는 한 사람이 핸들을 꼭 쥐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사랑도 많았던 지난 시간들을 다 흘려보내고 이제 나만의 호젓한 시간이 펼쳐진 것입니다. 어둠 속 벌판을 달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밝은 빛이 눈앞에서 비치고 있습니다. 한결 더 가볍게 그리고 땅의 굴곡을 거부하지 않고 적당히 흔들려가며 향하는 막차. 이 장면에서 어떤 거룩함마저 느껴집니다. 막차는 오늘의 마지막 차이지만 동시에 내일의 첫 차와 가장 가까운 시간으로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 박준


작가 : 박철

출전 : 『김포행 막차』 (창비, 1990)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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