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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중에서

  • 작성일 2022-02-03
  • 조회수 904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 서유미

다음 주부터 빙수를 만들겠다는데.
너무 막막한 거야.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여름이 온다니까. 
내일은 원래 모르는 거야. 
그렇지. 그건 알지.
지호가 내 손을 잡았다. 그 애의 얼굴 위에서 웃는 이모티콘이 빛났다. 
나는 미래가 두려워. 
나도 그래. 
지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는 둘 다 웃지 않았다.
웃지 않아도 나란히 서 있으니 완전히 깜깜하지 않았다.
내일은 모르겠지만 이 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작가 : 서유미
출전 :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민음사, 2021)

 

 

서유미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을 배달하며

 

    체크아웃과 체크인의 시간을 지나면서 오후가 되었다. 체크인한 손님들은 테이블 옆에 트렁크를 세워 둔 채 커피를 마시거나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 봄이 왜 이렇게 짧아. 시간이 점점 빨리 흘러가. 호텔 안의 모든 사람들이 계절과 시간에 대한 얘기만 주고받는 것 같았다.
오후 산책 못 할 것 같아.
지호가 우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섬 밖으로 나갔다가 마지막 배를 타고 돌아올 거라고 했다.
괜찮아. 산책은 다음에 하면 되지.
이번에는 내가 웃는 이모티콘을 붙였다. 무슨 일 때문에 나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몇 글자 쓰다가 지웠다.
산책 대신 강기슭의 벤치에 앉아 삼십 분의 휴식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섬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섬에 대해 알아 갈수록 부피는 줄어들고 밀도가 진해졌다. 휴양지라 사람들은 잠시 머물렀다 떠나지만 어떤 것은 결국 남아 마음과 장소에 흔적을 남겼다.
지호가 없는 호텔은 조용하고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그 애가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운 것만으로 세상이 텅 빈 듯한 기분이 드는 게 더 놀라웠다.
카페의 영업이 끝나고 배의 운행 시간이 종료되자 섬은 어둠에 잠겼다. 섬의 메인 가로등과 호텔의 로비를 제외한 상점과 간판의 불이 꺼지자 투숙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숙소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블라인드를 내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컬러링 북을 펼 기운도 없었다.
별 보러 나올래.
지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그 여섯 개의 글자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것은 어제의 것과 같았다.
사람들은 호텔 로비 앞에 모여 있고 뒤뜰은 한적했다. 일교차가 커서 바람이 찼다. 까만 하늘 아래 우뚝 선 나무의 초록빛이 선명했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과 지호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바람 속에 가만히 서 있으니 아세톤을 듬뿍 묻혀 닦아 내는 것처럼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지금 괜찮지 않냐. 이만하면 괜찮지 않아? 별도 있고 일도 하고.
하늘을 보며 지호가 물었다. 그 애가 섬 밖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밤은 괜찮아. 이 별도 괜찮고.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지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고개를 돌려 마주 보았다.
다음 주부터 빙수를 만들겠다는데. 너무 막막한 거야.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여름이 온다니까.
내일은 원래 모르는 거야.
그렇지. 그건 알지.
지호가 내 손을 잡았다. 그 애의 얼굴 위에서 웃는 이모티콘이 빛났다.
나는 미래가 두려워.
나도 그래.
지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는 둘 다 웃지 않았다. 웃지 않아도 나란히 서 있으니 완전히 깜깜하지 않았다. 내일은 모르겠지만 이 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서유미

출전 :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민음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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