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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 「가이드북이라는 장르의 역설」 중에서

  • 작성일 2022-02-17
  • 조회수 919


가이드북이라는 장르의 역설 중에서 - 전명윤

가이드북이란 책에 담긴 정보가 자세할수록 오류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운명을 지닌다. 가이드북 저자의 입장에서 정확한 책을 쓰는 방법은 정보를 최소한만 기록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쓴 책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라는 홍보 문구를 붙인 기막힌 일도 있다.
식당마다 가장 잘하는 요리가 있기 마련이다. 식당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거의 대부분 대표 메뉴를 주문한다. 나는 ‘간편 메뉴’에 그 식당을 대표하는 요리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가격까지 표기하면 여행자가 예산을 짤 때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게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걸. ‘간편 메뉴’를 넣기 전에는 취재지에 가면 우선 새로 문을 연 식당 등 책에 추가할 곳에 먼저 방문하고, 가격이나 위치, 영업 시간이나 맛이 달라졌을 법한 곳을 나중에 확인했다. 하지만 ‘간편 메뉴’를 만든 뒤로는 모든 식당에 다 방문해야 했다.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거기에 식당에 갈 때마다 메뉴판을 도둑 촬영해야 하는 궁상이 따라붙었다. 어떤 식당은 입구에 메뉴판을 놓아서 들어가지 않아도 메뉴와 가격을 확인할 수 있지만, 메뉴판에 요리의 비법이라도 적혀 있는 양 꽁꽁 숨겨놓은 곳이 훨씬 많다. 
공들여 만든 ‘간편 메뉴’는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몇몇 눈치 빠른 식당 주인은 똑같은 책을 들고 온 여행자들이 항상 똑같은 요리만 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제 그 요리의 가격이 해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차례이다. 
이 모든 상황이 가이드북 취재에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오류가 많아지는 역설을 초래한다. 그 결과 정보 제공이 목적인 가이드북에 구체적인 정보가 빠지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A라는 지역에서 B로 가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 A에서 B로 가려면 버스나 기차를 타야 한다.
2. A에서 B로 가려면 버스나 기차를 타야 하는데, 버스는 10:00~16:00 사이에 3편, 기차는 08:00~20:00 사이에 11편이 다닌다. 
3. A에서 B로 가려면 버스나 기차를 타야 한다. 버스는 10:00, 13:00, 16:00 하루 3편 운행하며 요금은 18달러다. 기차는 08:00~20:00 사이에 11편이 다니고 1등칸은 28달러, 2등칸은 19달러다.

이번에도 3번이 가장 정확한 설명이지만, 보기 1과 비교하면 틀릴 위험이 훨씬 크다. 보기 1은 갑자기 비행기 노선이나 뱃길이 열리지 않는 한 틀릴 일이 없다. 다만 저런 식의 설명은 정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이드북은 보기 2 정도에서 타협한다. 하지만 나는 인터넷에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가이드북 작가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직업윤리라는 것이 있다면 이 문제의 정답으로 보기 3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기록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류가 증가하는 상황은 가이드북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일부 독자들의 서평은 무섭기만 하다. 



작가 : 전명윤
출전 : 『환타지 없는 여행』 (사계절, 2019)  p.40-p.42

 

 

전명윤 ┃「가이드북이라는 장르의 역설」을 배달하며

 

    멀리 여행을 떠나신 지 오래되셨지요? 특히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로의 여행이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면 먼저 가이드북을 챙기게 됩니다. 그럴 때 가이드 북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나요. 사진 자료가 다양하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많은 책, 누구에게나 알려진 여행 코스말고 색다른 장소를 추천하는 가이드북이라면 손색이 없겠지요.
하지만 가이드북에 표기된 정보만 의지하고 있다가 당황한 경험도 있으실 겁니다. 발행된 지 오래 된 가이북일수록 정보 오류는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이미 출판된 책에는 교통 사정이나 현지 상황이 발 빠르게 반영되기 어렵다 보니 그런 일은 종종 벌어집니다.
여행지에 대한 완벽하고 현재적인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확한 정보와 사정은 여행자가 스스로 채워나가야 합니다. 가이드북에 적힌 정보는 대략의 지침만을 제공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여행지의 날씨와 분위기, 거리 풍경과 독특한 냄새, 낯선 음식과 대중교통 노선과 비용은 스스로 채워가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여행이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가이드북에서 말해주지 않은 정보를 스스로 발견해나가는 그 순간이요. 그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일 겁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전명윤

출전 : 『환타지 없는 여행』 (사계절, 2019) p.40-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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